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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요. 님의 서재입니다.

현실에서 플레이하는 딸 키우기

웹소설 > 작가연재 > 현대판타지, 게임

완결

하요.
작품등록일 :
2019.12.25 22:45
최근연재일 :
2020.03.10 21:30
연재수 :
6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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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14
추천수 :
543
글자수 :
332,033

작성
20.02.20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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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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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49화 - 가출

DUMMY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보솜씨를 아무리 달래봐도 그녀는 계속 넋이 나간 채였다. 어떤 위로나 격려도, 또 어떤 꾸짖음도 그녀에겐 통하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걸지도 모른다. 태어나서 평생을 따라온 신이랑 갑자기 연락이 끊겼다. 20년 넘게 영혼이 이어졌던 신이랑 끊긴 느낌은, 어쩌면 평생을 같이한 가족이랑 헤어지게 된 그런 기분이랑 비슷할지도 모르지.

그녀를 달래는 걸 실패하고 방에서 나왔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다면, 시간을 두고 상태를 지켜볼 수밖에 없겠지. 밥이나 먹이고 내일 다시 상태를 살펴보자.


“아빠!”


방에서 나오니 단아가 바로 나를 반긴다.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한 태도다.


“단아야, 아까는 아빠가 미안했어”

“밥!”


조금 전에 화를 낸 걸 사과하자니, 단아가 바로 조르기 시작했다.


“밥?”

“응!”


애들, 저녁 안 먹었나 보다. 보솜씨가 저런 상태니, 애들을 챙겼을 리도 없다. 뭐라도 차려볼까.


“배고파~!”

“응응, 알았어...”


나는 단아를 적당히 달래며 주방으로 향했다. 냉장고에 있는 거로 적당히 아무거나 만들어야...


“밥이다 밥~ 아빠가 해주는 밥~”


이 아이는 그저 밥을 먹는다는 사실이 즐거운 모양이다.


“밥을 먹으면 다 같이~ 괜찮아질 거야~”

“......”

“다 같이~ 행복해~”


노래까지 부를 정도로 신난 모양이다. 단지 밥만 먹을 수 있으면 된다는 듯이 말이다.


“뭐 먹을 거야!?”

“이제 보고...”


단아가 흥얼거리며 옆에서 알짱거린다. 관심사는 온통 저녁 메뉴에 쏠려 있다.


“미트볼! 미트볼 먹고 싶어!”


뭘 먹고 싶은지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알아서 희망 사항을 말한다.


“그래, 그래”


미트볼이라, 냉장고에 있으려나. 얼른 차려서 밥 주고 그다음에...


“저번에도 맛있었고!”


알았어, 그래.


“이번에도 미트볼이면...”

“단아야, 수애 불러와 줄래?”


단아를 떼어놓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 심부름을 시킨다.


“수애! 아빠가 불러~!”


단아는 움직이지 않고 그 자리에 서서 외친다. 우렁찬 목소리가 온 집 안에 퍼진다.


“이제 올 거야!”


그러고는 내 심부름을 끝마친다. 내 의도대로 움직여주질 않는다.


“음... 가서 데려올래?”


짜증을 참고 단아에게 부탁한다. 잠깐이라도 나 혼자 내버려 뒀으면 좋겠다. 아이의 투정까지 들어줄 마음의 여유가 없다.


“왜? 불렀으니 올 건데?”


하지만 단아는 내 부탁을 파악하지 못한 채 되묻는다.


“...알았어, 자 그러면...”

“미트볼 해주는 거야!?”


조용히 기다리고 있으렴. 금방 밥 차려줄 테니깐. 그렇게 말하려고 했지만 단아는 내 말을 끊는다.


“밥~ 밥~! 먹으면~”

“단아야...”


잠깐만 조용히 해주지 않겠니.


“행복해질 거야~ 다들 배가 부르면~”

“단아야!”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커진다. 아이한테 소리를 지르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효과는 확실한 방법이다.


“......”


단아가 조용해진다.


“잠깐만, 조용히 해줄래...?”


지금처럼 말이지.


“아빠... 화났어...?”

“아니야, 그건 아니고... 아빠가 지금 좀 정신이 없어, 그러니깐 잠깐만 조용히 해주렴, 잠깐이면 되니깐...”

“왜 화났어...?”


그걸 모르고 묻는 거니. 순간 그렇게 말해버릴 뻔했다.


“지금 보솜씨나 별님이가 다 안 좋으니까, 그러니깐...”

“괜찮을 거야!”

“안 그렇잖니?”


지금 둘 다 많이 안 좋은데, 마냥 괜찮을 거라고 말하는 게 뭐니. 단아에게 화가 나기 시작한다.


“어...”

“둘 다 지금 많이 안 좋잖니?”

“그런 거야...?”

“그래, 그런 거야”

“그렇지만... 맛있는 거 먹으면...”

“지금 계속 맛있는 거 찾을 때니?”


단아의 식탐에 화가 난다.


“너 좋아하는 미트볼 해줄게, 너 많이 주고 그럴 테니깐 걱정하지 말고 조용히 기다리고 있으라고. 가족들이 안 좋으니까 조용히는 해주렴”

“그렇지만 나는...”

“나는, 뭐?”

“나도 생각해서 그런... 건데...”

“그게 생각한 거야?”


신경질이 폭발했다.


“정말로 그렇게 생각해? 밥밥밥 그러면서 먹고 싶은 거 달라고 조르는 게 가족들을 생각한 거니?”

“그게 아니라...”

“그게 아니긴! 조금 전까지 계속 보채기만 했잖니!”


신경질이 폭발한 뒤로는 잔소리를 퍼부을 뿐이었다.


“잠깐만 기다려! 방에 가서 수애랑 기다리고 있어! 아빠가 부를 때까지 조용히 있어, 알았지?”

“......”


마지막 말을 듣자 단아는 뛰어가 버렸다. 대답도 없이 도망친다. 그 모습을 보고 나는 의자에 털썩 주저앉아버렸다.

하... 일이 이것저것 터진 덕분에 짜증이 많이 쌓였다지만, 이렇게 터트리고 싶지는 않았는데. 터트린 직후에 후회가 생긴다. 아무리 후회가 빨라도, 이미 늦은 뒤긴 하지만.


“...밥 차리고”


그래, 단아한테 얼른 밥 차려주고, 좀 사과하고 달래고, 다시 보솜씨 살펴보고, 그다음에 병원 가고. 그렇게 하자. 할 일만 생각하자. 짜증은 그만 참고.

금세 자신을 다독이고, 냉장고에서 간단히 요리 가능한 것들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생각을 정리하고 짜증을 가라앉히며 요리를 마친다. 한 거라곤 밥을 짓고 거기에 냉동식품을 적당히 준비한 것뿐이지만, 지금의 나로서는 이게 한계다.


“보솜씨, 일단 이거라도 드세요”


우선 밥을 챙겨 보솜씨의 방으로 들어갔다. 아직도 넋이 나간 채인 그녀 앞에 상을 차린다. 그녀는 상을 보지도 않는다.


“일단 먹고 기운 차려봐요”

“......”

“그... 기운이 없어서 연결이 안 된 걸지도 몰라요”


물론 그럴 리는 없겠지만, 무슨 말을 해서든 밥부터 먹이고 보자는 생각에 한 말이다.


“......”

“아무튼 얼른 드세요, 알았죠? 부탁이에요”


앞에 상을 놓고 나간다. 애들 밥 먹이고 다시 와야겠다.


“애들아, 밥 먹자”


대답이 없다. 단아, 삐진 걸까? 밥 달라는 말에 그렇게 화를 냈으니 삐질 만도 하지.


“애들아?”


그런데 수애도 대답이 없는 건 이상하다. 닫혀 있는 애들 방문을 노크한다. 아무 대답이 없다.


“애들아, 뭐 하니?”


다시 한번 노크한 뒤에, 천천히 방문을 연다. 어두운 방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애들아?”


어디 간 거지? 다른 방들도 바로 확인한다. 책을 넣어놓은 방에도, 장난감을 넣어놓은 방에도 보이지 않는다. 내 방은 물론이고 다른 빈방에도 아이들은 보이지 않는다.


“단아야! 수애야!”


집 안에서 소리 높여 외친다. 아무도 반응이 없다. 불안한 마음에 현관을 향했다.

단아와 수애의 신발이 보이지 않았다.




서둘러 집에서 나와 1층까지 내려간다. 건물 밖으로 나갔다면 어디로 갔을지 찾기도 힘들 거다.

갑자기 가출이라니. 구박하고 나무란 게 이번이 처음이긴 하지만, 그것 한 번에 가출이라니. 게임에서도 가출하는 경우는 있다지만, 그건 조짐을 미리 보여준단 말이다. 애가 불량해진다거나, 뭐라고 항의한다든가, 아니면 집사가 조언해준다거나.

아니, 이건 내 실수다. 애가 불량해졌는지 아닌지 제대로 살펴보지 않고 지냈다. 그냥 아이템을 사주고 말 뿐이었고, 또 기본적인 육아는 보솜씨에게 맡긴 채 나는 소연씨에게나 신경을 많이 쓰고 있었잖아.

단아가 나에게 항의하는 것도 나무라면서 짓눌러버렸고, 나에게 도움을 주던 보솜씨가 지금은 저런 상태고... 어쩌면 가출할 조짐을 내가 다 무시한 걸까?

아니, 지금은 자책할 때가 아니다. 애들이 어디 갔는지부터 찾아보자. 그러면 어디부터 살펴봐야 하지.


“어이”


익숙한 목소리에 눈길을 돌린다. 태화씨가 이쪽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잘 됐다, 태화씨! 혹시 단아랑 수애...”

“다나님에게 무슨 짓을 한 거냐?”


태화씨는 나를 노려보면서 멈춘다.


“조금 나무랐는데 그게 큰 충격이었나 봐요, 그나저나 단아 어디로 갔는지...”

“다나님은 나랑 함께 계시다”


다행이다. 아직 멀리 가지도 않았구나.


“수애는 잘 모르지만”


다행도 아니군. 수애랑 단아가 함께 있는 게 아니라면, 애들을 찾는 일이 더 복잡해진다. 일단 단아부터 챙기고 바로 수애를 찾으러 가자.


“좋습니다, 단아는 지금 어디에...”

“알 것 없다”

“네?”


나를 노려보는 태화씨의 눈동자가 불타오르고 있다.


“그렇게 경고했는데도 다나님을 그렇게 대하다니, 인간이란 역시 믿을 수 없는 존재군”

“...잔소리를 좀 했을 뿐이에요”


이 사람은 또 왜 나에게 시비를 걸지.


“물론 뭐라고 한 게 잘했다는 건 아니지만...”

“두 번째다”

“뭐가요?”

“네 놈이 내 앞에서 실수하는 걸 보인 게, 두 번째라는 소리다”

“실수요?”

“한 달 전에 다나님을 잃어버리고 나한테 찾아달라고 했던 일”


애들에게 자유행동을 줬다가 애들을 찾느라 고생했던 그 일을 얘기하는 거다. 단아를 찾기 위해 억지로 태화씨를 부른 뒤에 어디 있냐고 물은 적이 있었지. 그 덕분에 단아를 바로 찾을 수 있었고.


“그리고 이번에는 단아님을 혼내고 내쫓은 일”

“내쫓은 거 아니에요!”


내쫓은 적 없단 말입니다.


“경고다”

“뭘 말입니까!”

“다나님을 ‘잘 모셔라’, 알았냐?”

“잘하고 있거든요! 적어도 당신보다는!”


키우는 건 난데 당신이 뭐라고 나를 평가하고 그러는 거지? 태화씨의 평가에 짜증이 다시 일어나기 시작한다.


“...단아님은 잠시만 내가 모시겠다”

“네? 무슨 소립니까 그건?”

“며칠 뒤에 다나님을 만나게 해주지, 그때까지는 다나님은 나랑 생활할 것이라는 소리다”


말을 마치고는 태화씨는 몸을 돌린다. 일방적으로 자기 할 말만 하고는 가버리는 그 모습에 화가 난다.


“이봐요!”


하지만 태화씨는 내 말에 대꾸도 하지 않고 가버렸다. 따라가서 따지든가 화를 내든가 할까?

아니다. 지금은 차라리 이게 나을지도 모른다. 신경 쓸 일도 많고 정신도 없는 상태니깐, 태화씨에게 잠시 단아를 맡기는 게 오히려 도움이 될 거다.

좋아, 그러면 단아는 태화씨에게 맡기고... 수애는 어디로 갔지? 수애를 찾아야 한다. 단아랑 같이 나갔으니 같이 있을 거로 생각했는데 그건 아닌 모양이고.

어디로 갔을지 생각해본다. 가출이다. 왜지? 내가 단아를 혼내서. 보솜씨를 때리는 걸 보여서. 즉, 엄마랑 싸우고 애들을 혼내는 아빠가 무서워서.

수애의 옛날 환경을 생각해보면, 트라우마를 불러일으킬 만한 모습이다. 애가 싫어하고 무서워하던 걸 다시 생각나게 했겠지. 그렇다면 사람 없는 조용한 곳으로 도망치지 않을까? 혼자 숨어있고 싶을 테니깐.

수애는 애초에 사람들 많은 데를 좋아하지도 않고. 예전에 잃어버렸을 때를 생각해봐도, 어디 구석에 있었다.

어디 구석?

나는 다시 떠올린 장소를 향해 서둘러 움직였다. 예전에 수애를 찾은 곳, 상점가 구석에 있는 휴게 장소. 어쩌면 그곳에 수애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수애는 그곳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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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60화 - 기도 20.03.06 135 3 11쪽
59 59화 - 단아의 바람 20.03.05 138 4 11쪽
58 58화 - 정령계로 20.03.04 160 1 11쪽
57 57화 - 고백 20.03.03 145 2 13쪽
56 56화 - 지랄 말게 젊은이 20.03.02 143 1 11쪽
55 55화 - 꼬이는 단판 20.02.28 145 4 12쪽
54 54화 - 수애, 소연씨 +1 20.02.27 243 2 12쪽
53 53화 - 신님과 대화 20.02.26 156 1 12쪽
52 52화 - 보솜씨랑 대화 20.02.25 201 2 11쪽
51 51화 - 첫 단계부터 20.02.24 159 2 11쪽
50 50화 - 발견 20.02.21 153 2 11쪽
» 49화 - 가출 +1 20.02.20 166 2 11쪽
48 48화 - 동시다발적 폭발 +1 20.02.19 162 4 12쪽
47 47화 - 순수하다는 문제 20.02.18 189 2 12쪽
46 46화 - 아무 말도 +1 20.02.17 167 3 12쪽
45 45화 - 스무고개 +1 20.02.14 211 6 12쪽
44 44화 - 꼬이기 시작 +2 20.02.13 185 5 12쪽
43 43화 - 목격, 두 번째 +1 20.02.12 200 3 13쪽
42 42화 - 목격 +3 20.02.11 259 5 11쪽
41 41화 - 재미없다 +2 20.02.10 228 5 12쪽
40 40화 - 계획대로 +2 20.02.07 232 5 11쪽
39 39화 - 크루즈 파티 +2 20.02.06 234 5 12쪽
38 38화 - 수확제의 결과 +2 20.02.05 232 7 12쪽
37 37화 - 보솜씨와 쇼핑 +1 20.02.04 237 6 12쪽
36 36화 - 신보솜씨 +2 20.02.03 257 6 13쪽
35 35화 - 태화씨 +1 20.01.31 253 6 11쪽
34 34화 - 늦은 저녁, 그리고 반성 +1 20.01.30 269 6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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