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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요. 님의 서재입니다.

현실에서 플레이하는 딸 키우기

웹소설 > 작가연재 > 현대판타지, 게임

완결

하요.
작품등록일 :
2019.12.25 22:45
최근연재일 :
2020.03.10 21:30
연재수 :
6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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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3
추천수 :
543
글자수 :
332,033

작성
20.03.09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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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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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61화 - 대면

DUMMY

“굉장하네”


정신을 차렸을 때, 눈앞에는 처음 보는 사람이 나를 향해 감탄하고 있었다. 긴 녹색 머리가 인상적인 사람이었다.


“...?”

“너 진짜 굉장하네”


뭐가 굉장하다고 계속 감탄하는 건지. 뭐라고 응대하고 싶었지만, 말이 나오질 않는다.


“왜 그래? 이쯤이면 뭐라고 나한테 항의할 즈음인데”

“......”

“어? 말을 못 하는 거야?”


상대는 고개를 갸웃하더니 무언가 깨달았다는 듯한 표정을 짓는다.


“하긴 지금 영혼이 불안정한 상태라서 그렇겠구만”

“...무슨...”


드디어 말이 나왔다. 그 말과 함께 일어날 수 있었다. 방금까지는 스스로가 누워있었다는 것을 인지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역시 굉장해”


똑같은 단어를 세 번 연속으로 들으니 기분이 별로 좋지 않다. 정말로 굉장하다고 생각하기보다는 놀리는 것처럼 들려서다.


“뭐가 굉장하다는 겁니까?”


화를 내고 싶다는 생각과 함께 말이 똑바로 나온다.


“많은 부분이!”


상대는 과장되게 팔을 벌리며 나에게 다가온다.


“세상이 죽이기 전에 스스로 죽은 것이나, 정령계에서 단아를 데려온 것이나, 마지막으로는 지금 정신 차리고 나한테 대꾸한 것이나!”


상대는 나를 잘 아는 것 같다. 내가 조금 전까지 한 것들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 눈치였다.


“재밌게 해달라고해서 진짜 재밌게 해줄 줄은 몰랐어!”


남자인지 여자인지조차 구분되지 않는데, 나 또한 상대를 알 것만 같다.


“...혹시, 신님이세요?”

“응. 이렇게 직접 보는 건 처음이지? 내 목소리 직접 듣는 것도”


그렇게 말하면서 신님은 웃는다. 어느새 생긴 의자에 앉는다.

나는 인제야 주위를 둘러본다. 완전히 흰 공간, 아무것도 없는 공간이 그저 끝없이 펼쳐져 있다. 여기가 현실 세계가 아니라는 걸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이상한 곳이다.


“자자, 너도 앉아. 지금 서 있기도 힘들 텐데”


그렇게 말하며 신님이 손을 뻗어 권한다. 내 뒤에 어느새 의자가 생겨있다. 아니, 원래 있었는데 내가 보지 못한 것일까? 나는 앉는다. 그제야 몸에서 엄청난 피로가 느껴진다. 당장이라도 쓰러질 듯한 피로다.


“아...”


현기증에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새어 나온다.


“응, 많이 힘들 거야”

“...뭐가, 어떻게 된 거죠?”

“뭐가?”


아니 그걸 제가 물어본 건데요.


“그러니깐...”

“뭐부터 물어봐야 할지도 모르겠다? 하긴 너희 인간들은 항상 그렇긴 하더라”


쌓인 불만이 많았던 모양이다. 신님은 제멋대로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소원을 빌 거면 바라는 걸 말해야 하는데 바라는 걸 제대로 말하지도 못하고, 가끔은 뭘 바라는지조차 모르는 채 빌고... 그러면 이쪽이 큰맘 먹고 소원을 들어주려고 해도 들어줄 수가 없잖아”

“...복권 당첨되게 해달라는 건 명백한 소원 아닌가요?”


사람들이 보통 잘 비는 소원으로 반박을 해본다.


“복권 당첨 좋지. 언제? 몇 등으로? 어떤 복권? 그걸 말하지도 않잖아. 그리고 마음속으로 바라는 건 복권 당첨이 아닌 주제에 복권 당첨을 소원으로 빌면, 그건 꼬이지. 마음이랑 말하는 거랑 다른데 어떻게 소원을 들어줘”

“아 그러세요...”


이 사람의 말에 일일이 대답하기 귀찮아졌다. 졸립다. 지금 그냥 자고 싶다.


“야야, 잠들지 말라고. 잠들면 그대로 죽으니깐”

“죽... 네?”


신님의 경고에 눈이 확 떠진다.


“죽는다니, 지금... 어... 이미 죽은 게 아니에요?”


신님이랑 직접 이상한 곳에서 만나니깐 이미 죽은 뒤인 줄 알았는데?


“죽은 건 아니야. 반쯤은 살아있어”


반쯤?


“반은 죽었고 반은 살아있고, 아니면 인간계랑 영혼계 사이에 걸쳐있고, 아니면 뭐라고 해줄까... 가사 상태?”

“그러니깐, 지금 죽기 직전이라거나 살아나기 직전이라거나 그렇다는 거죠?”

“뭐 그렇다고 하자”


신님은 설명하기 귀찮은 모양이었다.


“자 그러면... 뭐부터 설명해줄까?”

“음... 지금 무슨 상황인 건지 좀 더 자세히 말해줄래요?”

“아, 그럴까”


그렇게 말하면서 신님이 다리를 꼰다.


“일단 너, 지금 반쯤 죽은 상황이야... 정확히는 아직 살아는 있는데, 영혼이 불안정한 상태지”

“정령 같은 게 되었다는 거예요?”

“어... 너 같은 경우에는 비슷하게 볼 수도 있겠네”


비슷해?


“아무튼, 정령계로 갔다가 다시 인간계로 돌아왔거든? 다시 인간이 되는 것까지는 성공했는데 네 몸이 여러모로 불안정해”

“불안정하다는 건 무슨 뜻이에요?”

“원래대로라면 너, 단아에게 네 영혼을 바치고 소멸해야 했어. 정령이 된 단아에게 인간이 네 영혼을 줘서 단아를 인간으로 다시 되돌렸으니깐, 네 영혼은 소멸한 거지. 여기까진 이해되지?”

“네, 제가 한 것이니깐요”

“그런데 단아도 너한테 같은 짓을 했어. 제 영혼을 바쳐서 네가 죽지 않게끔 했지!”

“네?”

“정령의 영혼과 인간의 영혼 둘 다 가지게 된 아이니깐, 그 영혼을 반씩 섞어서 너한테 넣어버렸다, 뭐 그런 거야. 덕분에 너도 죽지 않고 다시 살아나게 되었고”

“아니, 그러면 단아는 어떻게 되는 거예요... 기껏 인간으로 되돌렸는데...”

“음, 그건 문제없어. 네가 원하는 대로 그 아이는 인간으로 다시 돌아갔거든”

“저한테 다시 영혼을 바쳤다면서요?”

“그게... 너한테 영혼을 바친 게 단아 뿐만은 아니야. 태화도 너한테 영혼을 나눠줬어”

“...태화씨가요?”

“놀랐지?”

“당연히 놀랐죠”


저를 싫어할 사람, 아니 정령이 저한테 영혼을 나눠주다니.


“태화는 너를 싫어하는 건 아니야”


신님이 내 생각을 읽은 듯이 설명을 이어나간다.


“다만 상처가 많아서 사람을 잘 못 대할 뿐이지. 오히려 너한테는... 크흠, 이건 스스로 알아봐야지”


말 많은 아줌마가 실수로 남의 비밀까지 말하게 되었을 때 하는 행동까지 해가는 신님.


“아무튼, 그 결과 너랑 단아랑 태화는 셋이 영혼을 공유하게 되었어. 세 명의 영혼이 서로 뒤섞여서 셋 다 인간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지”

“인간의 혼, 1/3뿐인데 가능한 거예요?”

“물론 영혼만으로는 불가능이지만... 엘릭서빨도 좀 있고 말이지”

“엘릭서요?”


그러고 보니 정령계에서 엘릭서를 구하려고 했었다. 물론 구하는 데는 실패했지만.


“엘릭서가 있었나요?”

“네가 만들었잖아”

“네?”

“고귀한 행동이 엘릭서를 만든다. 엘릭서는, 고귀함과 그에 대한 슬픔으로 만들어지는 눈물이야”

“갑자기 뭔 소리예요”


사람이 알아듣게 좀 설명해요.


“네가 단아를 위해 희생했고, 그 과정에서 단아와 태화도 너를 위해 희생했지. 그 고귀한 행위 속에서 너희 셋이 눈물을 흘렸고 그 눈물이 바로 엘릭서가 되었다는 거야”

“...네?”

“정령의 눈물이 엘릭서인데, 문제는 정령의 눈물은 지금 말한 듯이... 고귀한 행동이라거나 뭐 이것저것 복잡해야만 생기는 거야. 정령은 원래 눈물을 흘리지 않거든”

“그러고 보면 행상인이 쉽게 구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는 했는데...”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만 생기는 물건이었구먼.


“그런데 그 엘릭서라는게... 육신에는 만능인 물건이거든?”

“만능이요?”

“응, 뭐라고 해야 할까... 무안단물?”


예시가 틀렸는데요.


“어쨌든 쉽게 말하면 만병통치약이긴 한데, 병을 치료하는 효과만 있는 건 아니고... 육신에는 말 그대로 만능인 물건이야”

“육신에는 뭐든지 할 수 있다는 뜻인가요?”

“말 그대로. 죽지만 않았다면 절반이 폭발한 육체도 다시 복구할 수 있고 뭐...”

“그러면 혹시... 몸을 더 크게 만들거나 하는 것도...?”

“응, 그 정도야 뭐”

“아아악!”


나는 비명을 지르며 머리를 감쌌다. 그럴 줄 알았으면 행상인이 팔 때 사서 키를 5cm만 키울걸!


“자, 잠깐만요! 방금 태화씨랑 단아가 엘릭서를 만들었다고 했죠? 그러면 그 엘릭서 저한테 있는 건가요!?”

“아니. 이미 다 썼는데”

“네!?“


저는 쓴 기억이 없는데요.


“너, 인간계로 다시 돌아왔잖아? 그거 엘릭서 덕분이야”

“엘릭서 덕분이요?”

“인간의 육체를 다시 되돌리는데 엘릭서를 다 쓴 거지. 엘릭서니깐 그런 말도 안 되는 게 가능하기도 했고”

“아...”


그래서 다시 살아난 거구만.


“원래대로라면 넌 그대로 죽어야 했어. 인간의 혼을 다시 되돌려받았다고 해도, 인간의 몸으로 정령의 반지를 껴서 영혼이 분리된 상태. 그대로 영혼만이 남아야 했지. 하지만 네 혼은 단아랑 태화랑 섞이면서 정령계에서도 계속 살 수 있게 되었고...”

“육체는 엘릭서로 다시 만들었다. 그런 거군요”

“만들었다, 기보다는 변해버린 너한테 맞춰서 육체를 다시 조정하는 데 쓰였다고 해야겠지만”


그건 무슨 뜻이에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별님이가 기도한 덕분에 네 영혼과 육신이 다시 이어질 수 있었고 말이야”

“기도 덕분에요?”

“별님이도 나와 같은 신이니깐”


그렇게 말하면서 씨익 웃는 신님.


“신의 기도라니, 보통 특별한 게 아니야. 잘 알겠지?”


아뇨.


“아무튼 그래서 네가 다시 살아났다, 그 말이야”

“계약위반인데 다시 살아날 수 있는 거예요?”

“아 그거”


신님이 내 말을 듣고 머리를 긁적거린다.


“계약 위반이 아니게 되었어. 그래서 살아나도 오케이인 거 같아”

“아니라고요? 저, 소연씨에게 제 사정 다 설명했는데요”

“그랬지”

“그러면 계약 위반이잖아요. NPC인데 게임인 거 모르는 사람한테 지금 제가 게임을 하는 중이라고 말하면...”

“이제 소연이는 NPC가 아니거든”

“어...”


그 말에 또 무슨 뜻이냐고 물으려다가, 일단 뒤로 기대앉았다. 갑작스럽게 닥친 안도감이 너무나 컸기 때문이다. 다행이다. 이제 소연씨는 내 게임에 휘말린 것에서 벗어났구나.


“네가 소연이를 그렇게 만들었잖아”

“제가요?”

“응. ‘당신이랑 같이 하고 싶었어요’ 라고 했지?”

“...그랬나...?”


그런 말을 했던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그 말 덕분에 이제 소연이는 플레이어야. NPC가 아니고. 너랑 같이 게임 플레이하는 플레이어”


그건 또 무슨 뜻이 되는 거지.


“그래서 너랑 같이 게임을 하게 되었고, 같이 게임을 하는 사람한테 게임을 하는 중이라 설명하는 건... 뭐 아무 문제도 없지”

“아무튼 이제 문제없다는 소리군요”


이유야 어쨌든 다행이다. 그것만으로 만족해서 신님의 설명은 귀에 잘 들어오지도 않는다.


“자, 이제 돌아가. 설명해줄 건 다 해준 거 같다”

“잠깐만요”

“뭔데”

“보솜씨는요? 보솜씨는 이미 신님이랑 연결이 끊겼잖아요? 그러면 보솜씨도 NPC가 아니게 해주세요”

“너 좀 멍청하지?”

“네?”

“방금 소연이가 NPC가 아니게 되었다고 했지? 그러면 보솜이는 어떻겠냐?”

“제가 그걸...”


말하는 순간 깨닫는다. 내가 보솜씨에게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 있었지.


“슬슬 네 혼도 안정화가 된 것 같다. 그러면 잘 가라”

“마지막으로 궁금한 거 하나만”

“또 뭔데?”

“신님, 저한테 지금 친절하게 설명해준 거, 혹시...”


그 말에 웃어주는 신님.


“선행은 아무도 모르게 해야 하는 것인데 그걸 눈치채고 그러냐”

“...저 때문에, 그러니깐 제 혼이 안정화될 때까지 돌봐주려고...”

“게임, 재밌게 플레이하는 거 잊지 말고”


그 말과 함께 신님도 이상한 흰 공간도 모두 사라져버린다. 나만이 남았다가, 그대로 모든 것을 느낄 수 없게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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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62화 - 다 같이(완) +2 20.03.10 321 3 13쪽
» 61화 - 대면 20.03.09 181 1 12쪽
60 60화 - 기도 20.03.06 135 3 11쪽
59 59화 - 단아의 바람 20.03.05 138 4 11쪽
58 58화 - 정령계로 20.03.04 160 1 11쪽
57 57화 - 고백 20.03.03 145 2 13쪽
56 56화 - 지랄 말게 젊은이 20.03.02 143 1 11쪽
55 55화 - 꼬이는 단판 20.02.28 145 4 12쪽
54 54화 - 수애, 소연씨 +1 20.02.27 243 2 12쪽
53 53화 - 신님과 대화 20.02.26 156 1 12쪽
52 52화 - 보솜씨랑 대화 20.02.25 201 2 11쪽
51 51화 - 첫 단계부터 20.02.24 160 2 11쪽
50 50화 - 발견 20.02.21 153 2 11쪽
49 49화 - 가출 +1 20.02.20 166 2 11쪽
48 48화 - 동시다발적 폭발 +1 20.02.19 162 4 12쪽
47 47화 - 순수하다는 문제 20.02.18 189 2 12쪽
46 46화 - 아무 말도 +1 20.02.17 168 3 12쪽
45 45화 - 스무고개 +1 20.02.14 211 6 12쪽
44 44화 - 꼬이기 시작 +2 20.02.13 185 5 12쪽
43 43화 - 목격, 두 번째 +1 20.02.12 201 3 13쪽
42 42화 - 목격 +3 20.02.11 259 5 11쪽
41 41화 - 재미없다 +2 20.02.10 229 5 12쪽
40 40화 - 계획대로 +2 20.02.07 233 5 11쪽
39 39화 - 크루즈 파티 +2 20.02.06 234 5 12쪽
38 38화 - 수확제의 결과 +2 20.02.05 232 7 12쪽
37 37화 - 보솜씨와 쇼핑 +1 20.02.04 237 6 12쪽
36 36화 - 신보솜씨 +2 20.02.03 258 6 13쪽
35 35화 - 태화씨 +1 20.01.31 253 6 11쪽
34 34화 - 늦은 저녁, 그리고 반성 +1 20.01.30 269 6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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