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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요. 님의 서재입니다.

현실에서 플레이하는 딸 키우기

웹소설 > 작가연재 > 현대판타지, 게임

완결

하요.
작품등록일 :
2019.12.25 22:45
최근연재일 :
2020.03.10 21:30
연재수 :
62 회
조회수 :
23,103
추천수 :
543
글자수 :
332,033

작성
20.02.14 21:30
조회
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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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글자
12쪽

45화 - 스무고개

DUMMY

어음. 좆됐다.

완전히 좆됐다.

소연씨를 보면서 드는 생각은 그것뿐이었다. 두뇌를 풀가동해서 변명을 짜내든지 아니면 현재 상황을 타개할 대책을 생각하든지 아무튼 무언가 생각을 해야 하는데 잘 안 된다. 머릿속에 가득 찬 한 가지 생각만이 나를 짓누른다.

좆됐다.


“그...”


다음 말이 막힌다. 무슨 소리를 하든 틀린 거 같아서다.

그...건 무슨 소리예요? 발뺌하는 건 불가능할 것 같다.

그...걸 어떻게 아세요? 이렇게 말하면 이미 인정하는 건데, 일단 보솜씨는 내 아내가 아니다. 진실이 아닌 걸 인정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어쩔 건데요? 갑자기 분위기가 스릴러가 된다. 그래서 증거있어? 그래서 나를 처벌할 수 있어? 범죄자의 마지막 발악과 같은 스탠스가 되어 버린다.


“어제 봤어요. 집에 가다가유광씨 부르고 싶어서 되돌아갔다가...”


소연씨의 대답은 두 질문에 대한 대답을 동시에 만족하고 있었다. 무슨 소리인지, 그리고 어떻게 알았는지 말이다.


“여자분이랑 벤치에 앉아계신 걸 봤어요”

“......”

“무언가 얘기를 나누고 있기에 멀리서 보고만 있었죠. 아, 물론 그 몰래 보거나 그러려던 건 아니에요! 다만... 이야기 끝나고 부르러 가야지, 했을 뿐이지...”


목소리가 잠깐 내려가는 소연씨.


“그런데 유광씨가 외치더군요... 그분이 아내, 분이시라고요?”


그제서야 기억해낸다. 어제 보솜씨랑 이야기를 하다가, 보솜씨는 제 가족이고 아내나 마찬가지라고 설득할 때를 떠올린다. 분명히 그녀에게 강하게 어필하고자 목소리를 높였던 것 같다.


“......”

“......”


소연씨가 나를 본다. 나도 소연씨를 본다. 둘 다 아무 말 못 하고 있다.


“그게...”

“......”


무언가 말을 꺼내야 할 거 같아서 입을 열었다. 그리고 이내 입을 다물었다. 지금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뭐라고 해야 할까?


“......”

“...솔직히”


이번에는 소연씨가 입을 열다가 만다. 잠시 침묵이 흐른다. 그리고 이내 소연씨가 말을 잇는다.


“...솔직히, 말해줄래요?”

“네...?”

“궁금한 걸 물어볼게요, 솔직하게... 말해줄래요?”

“...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지금의 분위기는 견디기 힘들었다. 그래서 제안을 던진다.


“일단 나가지 않을래요?”

“......”

“밖에서 바람이라도 쐬면서 얘기하죠”


그 말에 소연씨는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그러다가 이내 옷을 챙겨입는다. 우리는 말 없이 사무실을 나섰다.




정처 없이 걸었다. 둘이서 말없이, 곧 저문 햇빛이 남아있는 흔적을 따라 길을 걷는다. 그리고 달빛이 그 흔적을 지우기 시작할 때, 우리는 공원에 도착했다.


“춥네요”


한참 말없이 걷던 우리의 침묵을 깬 건, 사소한 말이었다.


“그렇군요”

“......“

“......”


그다음에 깨진 건 발걸음이었다. 우리는 그 자리에 멈추어 섰다. 그래서였을까? 소연씨는 갑작스러운 말을 꺼냈다.


“그러고 보면 유광씨는 저를 속이지는 않았군요”


갑작스러운 말을 따라가기 힘들다.


“그건 무슨 말씀이시죠?”

“걸으면서 조금 생각해봤는데... 지금까지 한 얘기를 보면 유광씨가 저를 속인 적은 없었네요”


소연씨가 앞에 있는 벤치에 앉는다.


“아내가 있다거나 가족이 있다거나 하는 거, 말하지도 않았지만 없다고 하지도 않았다는 걸 기억해냈어요”

“하지만... 속인 거나 마찬가지죠”

“왜 그렇게 생각하세요?”


질문자와 답변자가 바뀐 질문이 나온다.


“당신은 저에게 마음이 있었고 저도 그걸 눈치채고 있었으면서...”

“......“

“저는 제가 밝혀야 할 걸 안 밝힌 셈이니깐요”

“...그렇네요”


내 말에 수긍하는 소연씨. 잠시 발끝을 내려다보던 소연씨가 고개를 든다.


“스무고개라도 해볼까요?”

“스무고개요?”

“네, 제가 물어볼 테니, 유광씨가 대답해주세요”

“......”


심문 같네요. 물론 이 생각을 입 밖으로 내지는 않는다.


“그러면 Yes or No 로만 대답해주세요. 그걸로 제가 알고 싶은 걸 최대한 파악해볼게요”

“알겠습니다”


대신에.


“거짓말은 하면 안 돼요, 알았죠?”

“...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소연씨의 눈동자를 바라보며 확실하게 네, 라고 말한다.


“좋아요... 그러면...”


소연씨는 주저한다. 처음 꺼낼 질문을 고르느라 고민한다.


“아내가 있나요?”

“아니오”

“......”


대답에 놀란 듯이 나를 쳐다보는 소연씨. 나는 그런 소연씨의 눈을 피하지 않는다.


“그래요... 무언가 생각보다 복잡한 모양이네요?”

“네”

“좋아요, 그러면... 가족이 있나요?”

“네”

“부모님에게서 나온 가족이 아니라, 자신이 만들어낸 가족이 있는 건가요?”

“음...“


내가 만들어냈다고 봐야 할까?


“잘 모르겠네요”

“네 아니면 아니오로만 대답하셔야죠”

“정말로 잘 알 수 없어서...”

“그러면 아니오는 아니란 소리군요”


흐으으음. 소연씨가 고민하기 시작한다. 내가 생각해도 답변이 이러면 무슨 상황인지 파악하기 힘들 거다.


“저한테 진실을 말하지 못한 이유가 있나요?”

“네”


이 사실을 말하면, 신님이 어떤 짓을 할지 모르거든요. 알리지 말라는 말도 있었고요.


“그건 당신을 위해서인가요?”

“아뇨”

“저를 위해서였나요?”

“네”


그렇다고 생각한다. 우선 소연씨의 목숨을 위해서였으니깐.


“뭔가... 재밌네요”


웃는 소연씨.


“와, 도대체 무슨 상황인 건지 짐작도 되질 않아요! 그러면...”

“......”

“결혼했나요?“

“아뇨”

“하긴 아내도 없는데 이 질문은 의미가 없네요. 아, 그러면, 음음...”


추측하기 어려우니 아무 질문이나 던져본 셈이다.


“집에 혼자 사시나요?”

“아니요”

“여자랑 단둘이 살고 있나요?”

“아니요”

“그러면... 집에 유광씨를 제외한 사람은 다 여자인가요?”

“...예”


그렇긴 한데 이거 누가 들으면...


“엄청나네요. 그 할렘? 인가 하는 그건가요? 막 일부다처제에...”

“할렘은 그... 미국의 뒷거리 같은 거고...”

“아 그런가, 그럼 하렘? 지금 그런 상황인 거에요?”

“아녜요, 아내나 애인들이 가득히 있느냐는 의미라면, 그건 아닙니다”


...오해할 질문이잖아.


“헤...”

“정말로 아닙니다...”


잠시 침묵이 흐른다.


“되게, 충격적이네요. 그 뭐라고 해야 할까, 그러니깐 그...”


말이 떠오르지 않아 당황하던 소연씨는 이내 단어를 떠올리고 외친다.


“카사노바!”

“아니에요!”


헤... 하고 웃는 소연씨. 눈빛이 이미 나를 놀리기 시작하는 눈빛이다.


“아는 여자 많아요?”

“질문이 모호한데요...”

“연애 대상으로 삼을 수 있는 여자, 많이 아나요? 최근 한 달 기준으로, 말이죠”

“많다, 는 말이 좀 모호한데요...”

“3명 이상인가요?”

“아...”


아니오라고 말하려다가 말이 멈추었다. 태화씨도 연애 대상으로 삼을 수 있나? 생각을 안 해 본 건 아니다. 계획을 짜던 도중 그것도 하나의 방법으로 넣어놨거든. 물론 볼 때마다 나를 죽일 듯이 노려보기에 힘들 거 같지만...


“네”

“역시 많네요”

“4명 이상은 아니에요”

“흠...”


그게 많지 않다는 건 아니죠? 그런 눈빛으로 소연씨가 나를 보기에, 고개를 돌렸다.


“그러면 집에 있는 사람은 3명인가요?”

“아뇨”

“4명?”

“아니에요”

“와우, 5명!?”

“....네”


놀리듯이 놀라고서는, 갑자기 고개를 갸웃거리기 시작하는 소연씨.


“잠깐만, 연애 대상으로 삼을만한 여자는 3명인데, 거기에 저도 있죠?”

“네”

“그러면 남은 여자는 2명인데, 집에 있는 사람은 5명이고, 그런데 다 여자랬으니... 상관없는 여자가 2명...”


흠...


“남자는 다 늑대 아닌가요?”

“의미가 모호하지만, 아무튼 아닌 거 같습니다”

“그럼 유광씨는 늑대 맞군요?”

“그것도 아닐 거에요”

“에이, 재미없게”


뭐가 말입니까!


“뭐에요, 그럼 남은 여자 2명은... 집에 있는 여자 2명은 대체 뭐에요?”

“그... 첨언이지만, 연애 대상으로 삼을 ‘만한’ 여자 2명이 다 같이 사는 건 아니에요”


일부러 ‘만한’을 강조했다.


“아, 그러면... 유괴범?”

“아니에요!”


깔깔깔. 이 상황에서 웃다니 참 대단한 사람이야.


“...가족이에요”

“그렇군요”


그 말에 흐음, 하며 수긍하는 소연씨.


“아내는 없는데 어제 같이 있던 여자에게는 아내라고 하고...”

“아내라고 한 건 아니에요”

“아, 그러면 아내 같은 여자, 뭐 이런 식으로 말한 건가요?”

“...네”


드디어 진상에 조금이나마 접근하는 것 같다.


“와, 진짜요? 되게 신기하네요”


그렇게 말하고 입을 다문 소연씨. 나는 소연씨가 다시 입을 열 때까지 기다린다. 하지만 소연씨는 한참을 조용히 하고 있을 뿐이었다.


“...더 안 물어보시나요?”


결국 침묵을 견디지 못하고 먼저 입을 연 건 나였다.


“네”

“왜죠?”

“질문 스무 개, 이미 다 했는 걸요”

“스무 개나 했나요?”

“정확히는 모르지만 아마 그럴걸요”


아니면 스무개 넘게 했나? 웃어넘기는 소연씨였지만, 눈은 웃고 있지 않았다.


“더 물어보셔도 돼요”

“싫어요”

“......”


의중을 알 수가 없어서 아무 말 하지 못한다.


“물어보고 싶은 건 많긴 한데... 잘 모르겠어요”

“무얼 말이죠?”

“당신에게 제가 뭘 바라는지요”


그렇게 말하며 소연씨는 기지개를 켠다.


“제 생각, 제 감정, 그리고 제 마음이 정리되어야... 당신에게 묻고 답을 구하고, 그럴 수 있을 거 같아요”

“...그렇지만”

“저도 머리가 복잡하다고요! 그런데... 혼자서 고민해봤자 잘 떠오르진 않을 거 같네요”


그렇게 말하며 나를 쳐다보는 소연씨의 눈동자를 피하기 어렵다. 피하고 싶지만, 피해서는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원래 조금이라도 바람피우는 거 같으면 그냥 차버리거나 당신의 뺨이라도 때리거나 해야 할 텐데”

“......”


때리면 달갑게 맞겠습니다.


“이상하네요, 그런 생각이 들지를 않아... 콩깍지가 꼈나? 당신에게 화내야 할 텐데, 당신을 그냥 봐주고 싶네요”

“......”


과분한 대우다.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으니, 당신을 여기에 세워두고 보는 거예요. 당신을 계속 옆에 두고 보면서, 내 안의 마음이 어떤지 스스로 파악해보려고...”


그런데.


“생각보다 잘 안 되네요”

“......”


입을 열려다가 다문다. 지금의 그녀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이 없다.


“이상해...”

“......”

“생각이랑 마음이 따로 노는 느낌, 혼란스러우면서 이미 답을 내린 듯한 기분...”


소연씨는 조용히 나를 쳐다본다.


“그러니깐 잠깐 거기 서 있어요”

“네”

“벌이에요”

“...네”

“그런데 벌을 세운다고 들으면, 또 내 마음이 약하게 되어버리잖아요. 책임지세요”

“...알겠습니다”

“뭘 알겠습니다에요”


그렇게 말하며 소연씨는 웃음을 터트려버린다.


“아, 정말이지 당신이란 사람은!”

“...저기, 소연씨”

“스톱!”


그렇게 말하며 소연씨가 내 말을 막는다.


“나한테 말하지 못할 이유가 있다고 했죠? 그것도 나를 위해서?”

“......”

“그러니 아무 말도 하지 마세요. 그것보다 부탁이나 하나 들어주세요”

“네”

“집에 갈래요. 그러니깐... 집까지 데려다줘요”


그 말에 대답하지 못했다. 별님이랑의 약속도 떠올랐지만, 이 부탁을 피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알겠다’고 흔쾌히 대답하는 것도 힘든 일이었다. 나는 겨우 고개만 끄덕인다.

그걸 신호로 우리는 같이 공원을 빠져나와, 걸어가기 시작했다. 아무 말 하지 않고 밤바람을 느끼면서.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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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62화 - 다 같이(완) +2 20.03.10 321 3 13쪽
61 61화 - 대면 20.03.09 180 1 12쪽
60 60화 - 기도 20.03.06 135 3 11쪽
59 59화 - 단아의 바람 20.03.05 138 4 11쪽
58 58화 - 정령계로 20.03.04 160 1 11쪽
57 57화 - 고백 20.03.03 145 2 13쪽
56 56화 - 지랄 말게 젊은이 20.03.02 143 1 11쪽
55 55화 - 꼬이는 단판 20.02.28 144 4 12쪽
54 54화 - 수애, 소연씨 +1 20.02.27 242 2 12쪽
53 53화 - 신님과 대화 20.02.26 155 1 12쪽
52 52화 - 보솜씨랑 대화 20.02.25 201 2 11쪽
51 51화 - 첫 단계부터 20.02.24 159 2 11쪽
50 50화 - 발견 20.02.21 153 2 11쪽
49 49화 - 가출 +1 20.02.20 165 2 11쪽
48 48화 - 동시다발적 폭발 +1 20.02.19 162 4 12쪽
47 47화 - 순수하다는 문제 20.02.18 189 2 12쪽
46 46화 - 아무 말도 +1 20.02.17 167 3 12쪽
» 45화 - 스무고개 +1 20.02.14 211 6 12쪽
44 44화 - 꼬이기 시작 +2 20.02.13 184 5 12쪽
43 43화 - 목격, 두 번째 +1 20.02.12 200 3 13쪽
42 42화 - 목격 +3 20.02.11 259 5 11쪽
41 41화 - 재미없다 +2 20.02.10 228 5 12쪽
40 40화 - 계획대로 +2 20.02.07 232 5 11쪽
39 39화 - 크루즈 파티 +2 20.02.06 234 5 12쪽
38 38화 - 수확제의 결과 +2 20.02.05 232 7 12쪽
37 37화 - 보솜씨와 쇼핑 +1 20.02.04 237 6 12쪽
36 36화 - 신보솜씨 +2 20.02.03 256 6 13쪽
35 35화 - 태화씨 +1 20.01.31 252 6 11쪽
34 34화 - 늦은 저녁, 그리고 반성 +1 20.01.30 268 6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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