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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요. 님의 서재입니다.

현실에서 플레이하는 딸 키우기

웹소설 > 작가연재 > 현대판타지, 게임

완결

하요.
작품등록일 :
2019.12.25 22:45
최근연재일 :
2020.03.10 21:30
연재수 :
62 회
조회수 :
23,092
추천수 :
543
글자수 :
332,033

작성
20.02.25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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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52화 - 보솜씨랑 대화

DUMMY

송태화.

아마도 만들어진 서류일 거다. 신님이 마련한 게임인 데다가, 태화씨는 정령이라고 제 입으로도 말했으니깐. 그리고 실제로 그렇다는 것도 확인했다. 그래, 태화씨는 만들어진 사람이었을 터다.

하지만 만들어진 서류치고는 정교했다. 생년월일과 경력, 병에 대한 이력까지... 마치 태어나서 20년 넘게 실제로 살아온 사람 같았다.


“어렸을 때 교통사고로... 배에 큰 흉터...”


어린 시절에 교통사고를 당했고, 지금까지 겪은 병은 이러한 것들이 있고, 예방접종이나 기타 등등 받은 것들은 이렇고... 신님치고는 공들여 짠 설정인데?

경력을 보면 대학교까지 적혀있다. 흔해서 잘 기억에 남지 않을 이름의 중학교와 고등학교, 그리고 서울권 대학교 졸업까지... 과도 적혀있어서 철학과 졸업이라고 되어 있다.

이상한 느낌이 든다. 무언가 이상하다. 신님치고 지나치게 설정을 짜놨다. 별님이도 10살인 채로 바로 보냈고, 수애도 ‘알게 모르게 처리해서’ 나한테 보낸 신님이다. 성씨라거나 기타 상세한 건 설정하지 않아서 나를 고생시키기도 했다.

그런데 유독 태화씨만 이렇게 상세하게 설정한 건 대체 뭐지?

무언가 이상한 점이 있을까 확인하며 한참을 서류를 살펴보았다. 하지만 이상한 점을 찾아볼 수 없었다. 20년 넘게 살아온 사람이라면 이런 궤적을 거쳤겠지, 싶은 생각을 하게 해주는 서류들. 그 안에서 느껴지는 건 살아있는 사람의 온기에 가까운 궤적이었다.

그 점이 나로 하여금 더 혼란스럽게 한다.

서류를 살펴보는 일은 금세 끝났다. 정부에서 받은 공식적인 서류들만 있은 덕분에, 그 양은 많지 않았다. 왜 이 사람만 이렇게 상세한 거지? 그리고, 왜 이 사람은 자신의 서류를 이렇게 챙겨놓은 거지? 보통은 이렇게 뽑아서 모아놓을 리가 없는데..

이것저것 추측해보며 계속 태화씨를 기다린다. 하지만 날이 어둑어둑해질 때까지, 태화씨는 끝내 오지 않았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집으로 돌아왔다. 늦은 밤, 집 안은 불이 꺼진 채로 마치 아무도 없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수애는 노부부의 집에 보냈으니 없는 게 당연하다. 감사 인사도 할 겸, 노부부의 집에 놀러 갔다 오라고 시켰는데 정말로 가주다니, 참 착한 아이야. 아직 돌아오지 않은 걸 보면 그 집에서 잘 놀고 있나 보다. 잘 됐다. 노부부가 수애를 잘 반겨주는 모양이다.

생각을 정리해보자.

별님이는 아직 아프다. 그래도 호전세를 보인다. 이대로면 낫겠지.

단아는 태화씨가 맡고 있다. 애초에 맡고 있던 사람이니깐, 나보다 더 잘 맡을 거다. 이대로 그녀가 맡으면 그것대로 괜찮겠지.

수애는... 노부부를 어디까지 믿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나쁜 사람은 아니었던 것 같고, 수애에게도 호의적이었다. 확인은 해봐야겠지만, 수애도 그들에게 호의적인 듯싶으니... 잘만 하면 그들에게 맡길 수 있을 거다. 수애가 성인이 될 때까지는 맡아주겠지.

생각보다 잘 진행되고 있다. 애들 키우는 걸 포기하는 것 말이다.

그렇다. 내 생각은 단순하다. 애들 키우기를 끝내는 것이다. 물론 더 못하겠으니 도망치자는 생각은 아니다. 단지, 나보다 애들을 더 잘 맡아줄 사람들을 찾아서 넘기자는 것이다. 그것이 애들을 위한 길일 것이다.

내가 단 한 순간만 삐끗하면 개판이 된다. 그리고 그건 그대로 애들에게 큰 영향을 줘버린다. 결국, 어설픈 나 때문에 애들에게 상처만 주는 거다. 물론 애들에게만 영향을 주는 것도 아니다. 보솜씨나 소연씨도 나 때문에 피해를 보았다.

더 나 때문에 남이 피해 보는 모습은 보고 싶지도 않다. 그렇다면 가장 큰 원인인 ‘나’를 제외해야겠지.

이제 남은 일은 보솜씨랑 소연씨인데... 어떻게 해야 할까.

소연씨는 계속 연락을 받지 않는다. 오늘 나한테 연락을 하지 않은 걸 보면, 아마 오늘도 회사에 나오지 않은 거겠지. 사과라도 하고 싶었는데... 이대로 회사를 그만두고 그녀와 떨어져야겠다. 그러면 그녀는 자연스럽게 NPC에서 벗어날 수 있겠지.

자, 이제 남은 건 보솜씨인데...


“보솜씨?”


문을 두드리며 그녀를 불러본다.


“...네”


이번에는 대답이 들렸다. 실례한다는 말과 함께 문을 열었다. 보솜씨가 침대에 앉아서 나를 보고 있었다.


“일어나 계셨네요”

“...네”


이번에도 대답해주는 보솜씨. 대답해주는 것만으로도 상태가 많이 좋아졌다는 걸 알 수 있다.


“...죄송합니다”


사과하는 보솜씨. 나는 손사래를 치며 그녀에게 다가갔다.


“아녜요, 그래도 기운 차리셨으니 다행이에요”


그렇게 말하며 그녀 앞에 앉았다.


“......”

“지금은 좀 어떠세요?”

“...아직... 조금...“

“심리적 충격이 크셨군요”

“......”


보솜씨는 대답하지 않는다.


“저야 잘 모르겠지만, 생각해보면 말이죠, 만약에 제가 평생 같이 산 가족이...”

“조금 다릅니다...”


내 말을 끊는 보솜씨.


“저는 신님하고... 20년을 넘게 연결되어있었으니깐요... 가족이랑은 달리...”

“그렇죠, 그냥 제 말은 말이 그렇다는 거죠, 비유에요 비유”

“아뇨, 그게 아니라... 말 그대로 다르다는 소리입니다”


보솜씨가 자신의 아픔을 크게 표현하려는 줄 알았는데, 그것만은 아닌 모양이다.


“말 그대로, 20년 넘게 신님이랑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첫 신내림을 받은 이후로 쭉 말이죠”

“첫 신내림은... 언제 받으신 거예요?”

“아마도 2살...”

“2살이요?”

“네, 아마도... 너무 어릴 적이라 기억은 잘 나지 않습니다만, 2살 때일 겁니다”

“그걸 기억하시는 거예요?”

“희미하지만 신님이 내려오기 이전의 기억이 남아있습니다. 그리고... 어머니께서 돌아가신 게 제가 2살 때라고 하시더군요”


대답할 말을 순간 잃어버렸다.


“그렇기에 저에게는 평생에 가깝게 연결되어 있었습니다만... 신님과 연결되었다는 건, 일반적인 생활과는 다릅니다. 지금에서야 좀 알 수 있지만... 신님과 연결되어 있으면 항상... 아니 감각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보솜씨는 설명을 계속한다.


“세상 모든 것과 연결된 듯한 느낌, 그러면서 사소한 문제보다는 큰 문제가 더 잘 보이게 되고, 또... 항상 신님의 생각과 교류하면서 제 생각이 그의 생각과 묶여있는 그런 느낌...”


복잡한 느낌이네.


“그래서 그와 분리된 순간... 모든 것이 떨어져 나가는 기분이 들더군요”

“고통스러웠군요”

“...네”


순순히 수긍하는 보솜씨. 이 사람이 아프다고 말할 정도면 많이 아팠을 것이다.


“그래서 유광님에게 폐를 끼쳤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렇게 말하며 보솜씨는 나에게 고개를 숙인다.


“이제 정신 차리고 신님께서 내린 명령, 끝까지 완수하겠습니다”

“잠시만요”


결론이 좀 이상합니다.


“왜 그러시죠...?”

“신님하고 연결이 끊기셨잖아요?”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당신 마음대로 살면 되는 거 아닌가요?”

“무슨 뜻이지요...?”


보솜씨는 정말로 이해 못 하겠다는 눈치다. 답답하다.


“아니, 그러니깐요, 그, 예전에도 말씀드렸잖아요? 보솜씨에게는 보솜씨의 인생이 있다고요”

“그랬지요”

“그러면 이제 신님에게서 해방된 것이기도 하고, 당신 마음대로 살면 되는 거 아닐까요? 그런데 신님의 명령을 끝까지 완수하겠다니...”

“그야 신님이 내리신 명령이니깐요, 연결이 끊겼다고 해도 끝까지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게 이상하다는 거예요. 명령을 내린 사람이 연결 끊었으면, 그쪽 잘못이니 이쪽은 자기 할 거하고 살아야죠”


괜히 내가 화가 나네.


“보솜씨, 보솜씨는 NPC도 아니고 노예 같은 것도 아니잖아요”

“그렇...습니다만”


당신은 게임 캐릭터도, 그리고 누군가의 말만 따라는 종도 아니란 말입니다.


“그러니깐 이제는 당신의 인생을 살아야죠”

“이상하군요, 신님과 연결이 끊겼다고 바로 신님의 말을 저버리다니, 그것이야말로 신뢰를 저버리는 것 아닙니까?”

“그런 뜻이라기보다는...”


맞는 말로 반박당하니 할 말이 없어진다. 하지만 보솜씨의 말에는 계속 반박하고 싶다.


“그 이유, 이유가 이상하다는 거예요”

“이유가 말인가요?”

“네, 신님과 약속했으니 지키겠다고 해도요... ‘내가 약속한 것’이니 끝까지 지키겠다'는 이유여야지, ‘끝까지 신님의 말만을 따르겠다’는 것이 이유가 되면 이상하다고요”

“하지만...”

“보솜씨도 제 입으로 방금 말했잖아요, ‘신뢰를 저버리는 것’이니깐 약속을 지켜야 한다고요”


이번에는 보솜씨가 입을 다물었다.


“당신에게는 제가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겠죠! 하지만 저는 당신이 아무리 봐도 이상하단 말이에요”

“보통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하는 것, 잘 알고 있습니다”

“아뇨, 보통 사람들이나 그런 문제가 아니라! 사람으로서 말이에요”


답답하다 이 사람.


“사람이면 자신의 의지로 사는 거예요, 신님을 따르는 건 자신의 선택의 결과일 뿐이고요!”

“무슨 뜻이죠?”

“당신이 정한 믿음을 따르는 결과 신님의 말대로 사는 것이 되어야지, 신님의 말대로 살기 위해 믿음과 선택을 남의 결정대로 정하는 건 이상하다는 소리에요”


갑자기 종교 전쟁 같은 이야기가 나오려고 하네.


“당신의 인생은 당신의 선택으로 정해져야죠... 신님의 선택이 아니라”

“...하지만 저는 신님의 말을 따르기로...”

“그게 당신의 결정인 거에요?”

“......”


보솜씨가 다시 입을 다문다.


“당신이 스스로 정한 것이 신님의 말대로 하는 것, 이라고 하면 저는 좋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신님이 말했기에 자신의 선택을 그걸로 한 거라면, 그건 좋지 않아요”

“......”

“당신이 계속 걱정입니다. 앞으로도 신님에게만 휘둘리며 살까 봐... 당신은 당신의 선택으로 앞으로 살았으면 해요”


마지막에 내 바람도 나와버린다. 그렇다. 내가 이렇게 바라기에 그녀에게 같잖게 설교를 해버린 것이다.


“...미안해요, 좀 주제넘게 떠든 거 같네요”


무안한 마음, 그리고 보솜씨의 반응을 보고 서둘러 말을 끝내버린다.


“아무튼, 제 생각은 그런 거니깐... 부디 보솜씨는 보솜씨 결정대로 살아가요. 제가 조금 도와드릴 수도 있고 말이죠”

“...네?”


그 말을 마치고 나는 보솜씨 앞에서 일어섰다.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한 보솜씨의 반응은 무시한다.


“조금만 더 쉬세요. 잘은 모르지만... 떨어진 충격, 엄청나게 큰 모양이니깐”

“...네”


다행히 보솜씨는 아직 기운이 없는 것인지 내 말에 순순히 따라준다. 조금 전까지 자기 선택대로 살라고 그렇게 설득했는데도, 내 말에 저렇게 순순히 따른다. 멍청한 사람.

나는 그녀를 혼자 내버려 두고 밖으로 나왔다.




보솜씨의 일을 처리하기 위해서는 신과 담판을 지어야 한다. 그녀의 상태를 살펴보고 내가 내린 결론이었다. 그래서 그다음에 내가 한 일은 컴퓨터를 켜는 일이었다. 그리고 오랜만에 내 방송을 킨다. 설정은 Just chatting, 그냥 수다나 떨기로 하고...

시청자 0명. 하지만 아직 팔로워는 3명. 내 방송을 보던 신님은 여전히 팔로우 중이다. 나는 신님에게서 언제 연락이 올까, 생각하며 기다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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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62화 - 다 같이(완) +2 20.03.10 321 3 13쪽
61 61화 - 대면 20.03.09 180 1 12쪽
60 60화 - 기도 20.03.06 135 3 11쪽
59 59화 - 단아의 바람 20.03.05 138 4 11쪽
58 58화 - 정령계로 20.03.04 159 1 11쪽
57 57화 - 고백 20.03.03 145 2 13쪽
56 56화 - 지랄 말게 젊은이 20.03.02 143 1 11쪽
55 55화 - 꼬이는 단판 20.02.28 143 4 12쪽
54 54화 - 수애, 소연씨 +1 20.02.27 242 2 12쪽
53 53화 - 신님과 대화 20.02.26 155 1 12쪽
» 52화 - 보솜씨랑 대화 20.02.25 201 2 11쪽
51 51화 - 첫 단계부터 20.02.24 159 2 11쪽
50 50화 - 발견 20.02.21 153 2 11쪽
49 49화 - 가출 +1 20.02.20 165 2 11쪽
48 48화 - 동시다발적 폭발 +1 20.02.19 162 4 12쪽
47 47화 - 순수하다는 문제 20.02.18 188 2 12쪽
46 46화 - 아무 말도 +1 20.02.17 167 3 12쪽
45 45화 - 스무고개 +1 20.02.14 210 6 12쪽
44 44화 - 꼬이기 시작 +2 20.02.13 184 5 12쪽
43 43화 - 목격, 두 번째 +1 20.02.12 200 3 13쪽
42 42화 - 목격 +3 20.02.11 259 5 11쪽
41 41화 - 재미없다 +2 20.02.10 228 5 12쪽
40 40화 - 계획대로 +2 20.02.07 232 5 11쪽
39 39화 - 크루즈 파티 +2 20.02.06 233 5 12쪽
38 38화 - 수확제의 결과 +2 20.02.05 232 7 12쪽
37 37화 - 보솜씨와 쇼핑 +1 20.02.04 236 6 12쪽
36 36화 - 신보솜씨 +2 20.02.03 256 6 13쪽
35 35화 - 태화씨 +1 20.01.31 252 6 11쪽
34 34화 - 늦은 저녁, 그리고 반성 +1 20.01.30 268 6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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