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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요. 님의 서재입니다.

현실에서 플레이하는 딸 키우기

웹소설 > 작가연재 > 현대판타지, 게임

완결

하요.
작품등록일 :
2019.12.25 22:45
최근연재일 :
2020.03.10 21:30
연재수 :
62 회
조회수 :
23,130
추천수 :
543
글자수 :
332,033

작성
20.02.18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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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47화 - 순수하다는 문제

DUMMY

그 뒤에 일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무엇을 했는지 행동은 기억한다. 별님이를 들쳐 엎고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초고속'이라고 써놓은 주제에 느려터진 엘리베이터를 욕했다. 로비를 지나 인도를 가로질렀다. 보솜씨의 말에 따라 병원 쪽으로 발길을 향했다.

하지만 그 일들이 실감은 나지 않았다. 내가 한 게 아니라 남이 한 걸 들은 것만 같은 기억이다. 응급실 문을 열고 서둘러 들어가서 의사를 찾고 별님이를 맡기고 그대로 따라 못 들어가게 하는 간호사에게 항의하고...

그렇게 실감 나지 않는 시간이 한참 지난 후에야, 차분해질 수 있었다.




한참 난리를 피운 후에 생각했다. 아이가 심한 감기에 걸리는 일이야,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물론 ‘흔하다’는 표현을 쓰기 싫지만, 통계적으로 그렇다는 소리다.

그렇다면 별님이도 그저 몸살감기가 심했던 걸지도 모른다. 그런데 다짜고짜 응급실부터 향하다니, 침착하지 못했다. 아이를 좀 진정시키고, 약을 먹이고, 사태를 살펴본 뒤에 움직여도 늦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의사가 불렀을 때 나 혼자 갔다. 간호사가 ‘아이들이 같이 들어도 괜찮겠나요?’라고 물었을 때 ‘그러면 저 혼자만 듣죠’라고 대답한 건 간단한 이유였다. 별것 아닌 일에 내가 난리를 친 것일까 봐.


“보솜씨, 아이들 좀 봐주세요”


마침 핑곗거리도 있으니 보솜씨도 떼어놓을 수 있었다. 보솜씨는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혼자 진료실로 들어갔다.


“아, 여기 앉으세요”


머리가 헝클어진 의사는 피곤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며 나를 자리에 권했다.


“감사합니다”

“자... 그 환자분 말입니다만”


의사는 눈앞의 모니터를 보면서 입을 연다. 마우스를 딸깍거리는 소리나 모니터를 보는 눈동자는 느려서, 아무 일도 없었구나 싶은 걸 알 수 있었다.


“애가 아픈 게 처음이라, 그만 당황했네요””


아하하. 괜히 혼자 웃는다.


“혹시나 해서 응급실로 뛰어온 거지만...”


의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변명을 시작했다.


“제가 참...”

“잘하셨네요”

“...호들갑을 떤 셈이죠?”

“아녜요, 잘하셨어요”


그렇게 말하며 내 눈을 보는 의사. 잘했다는 말을 이해하지 못하겠다.


“무슨 말씀이세요? 잘했다뇨?”

“위험했습니다, 한시라도 빨리 병원에 온 게 참 잘한 거에요”


의사는 계속해서 내 눈을 쳐다보고 있었다.


“시간이 지났으면 어떻게 되었을지 저도 확신할 수는 없습니다만, 합병증이나 다른 질병이 생기기 전에 병원에서 관리하는 편이 집에서 그대로 생활하는 것보단 나았을 겁니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물론 지금은 환자가 안정되고 그 뒤에 어떤지 상태를 봐야, 저도 더 말씀드릴 수 있겠지만... 이런 경우는 참, 의사 생활하면서 처음 보니 당황스럽군요”


영문을 알 수 없는 소리를 하는 주제에, 의사는 나에게서 눈을 떼지는 않고 있었다.


“저기...”

“환자분이 지금까지 이런 적이, 혹시 없었나요?”


당연히 없지, 별님이랑 생활한 지 이제 겨우 1달 더 지났을 뿐이라고.


“무슨 소리를 하시는 거죠?”

“아... 설명을 먼저 자세히 해드려야겠군요”


그렇게 말하며 의사는 시선을 모니터로 돌린다. 무언갈 살펴보고는 다시 나를 본다. 그제야 깨닫는다. 이 의사는, 나를 안심시키기 위해 계속 나랑 시선을 맞추고 있다. 일부러 말이다.


“우선 환자분의 지금 증상은... 감기입니다”

“네?”


심각하게 말을 해놓고는, 결론은 감기라고? 지금까지 말한 건 다 뭐야.


“허나... 환자분은 그, 증상은 감기가 만들 수 있는 온갖 반응을 다 보여주고 있네요”

“무슨 뜻인가요?”

“슈퍼감기라거나, 심각한 독감과 관련된 증상을 보인다는 뜻입니다만... 이건 감기의 문제는 아닙니다”


슈퍼감기라면서, 감기의 문제는 아니라니?


“좀 더 정밀한 검사를 해봐야 알겠습니다만, 지금 제가 보기엔...”


의사는 모니터를 보면서 입을 다문다. 나에게 말하기 어렵다거나, 할 말이 막혔거나 한 건 아니다. 말을 정리하고 있다.


“...면역체계가 없는 것 같습니다, 환자분에게”




몸 건강히 살아와서 병원이랑 친하지 못하다. 더군다나 문과라 의학은커녕 생물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한다. 그래서 의사가 하는 이야기는 마냥 어려웠다. 하지만 그 이야기를 요약해보면, 별님이에게 바이러스 항체나 면역력이 부족한 모양이다.

몸에 이상이 있는 건 아니란다. 정상적인 아이와 비슷하게 건강하고, 병이나 부족한 게 있는 건 아니란다.

그러면 뭐가 문제란 말이죠? 그 말에 의사는 경험치가 부족하다고 대답했다. 물론 의사가 그렇게 말한 건 아니고, 내가 이해한 데로 해석하면 그렇다는 소리다.

아이가 태어나고 자라면서, 수많은 바이러스를 만난다. 그 바이러스들과 싸우면서 몸에는 항체가 생기고, 또 수많은 예방접종을 통해 항체를 미리 만든다. 그러면서 사람은 점점 질병에 강해진다.

그런데 별님이에게는 그런 과정이 없었다. 순수한 무균실에서 자라던 아이가 갑자기 밖에 내던진 것처럼 보일 정도로, 항체가 너무 없다. 그러니깐, 레벨 1에 아무런 스킬도 없는 아이가 갑자기 사냥터에 내던진 꼴이라는 소리다.

아무튼, 그 덕분에 별님이에게는 지금 별것 아닌 감기도 큰 질병이 될 수 있단다. 일반적인 바이러스지만, 바이러스와 싸운 경험이 없는 별님이 몸에는 보스 몹 이상이 된다는 뜻이겠지.


“후우...”


한숨을 쉰다. 마음 같아서는 별님이를 쓰다듬어주면서 격려라도 해주고 싶은데, 면회 금지란다. 감염의 위험 때문에 혼자만 있어야 한단다.

방 앞에서 혼자 무력하게 앉아있는 자신이 한심했다.


“유광씨”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다주고 보솜씨가 돌아왔다.


“아, 다녀오셨어요?”

“네...”


보솜씨는 내 옆에 앉는다.


“우선 돌아가서 쉬시죠”

“아... 여기 있어야죠”


별님이가 저렇게 아파하는데 어떻게 집에 돌아가요.


“하지만 지금은 저희가 할 수 있는 것도 없고... 무슨 일이 생기거나 진척이 있으면 연락해준다고도 했으니깐”

“그래도요”

“집에서 그리 멀지도 않잖아요”

“그래도요”

“......”


보솜씨는 설득하는 걸 멈추었다.


“......”

“......”


우리는 둘 다 아무 말 하지 않고 그대로 앉아있을 뿐이었다.




내가 자리에서 일어난 건 한참 뒤였다. 피로와 하기가 강해진 탓도 있었지만, 더는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판단을 겨우 받아들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병은 의사에게 맡길 수밖에 없다. 게임에서도 그러지 않는가? 아프면 병원에 간다. 돈을 낸다. 그러면 병이 낫는다. 이게 빌어먹을 게임이라면 곧 별님이는 다 낫겠지.


“그나마 다행이에요”


근처에 있는 아무 식당이나 들어가서 점심을 먹는 와중, 보솜씨가 말한다.


“다른 아이들은 별 이상 없어서...”

“그렇네요”


다행이었다. 별님이가 그런 상태인 걸 알게 되자, 날이 밝고 나는 바로 단아랑 수애도 진단받게 했다. 혹시라도 별님이마냥 항체가 없다거나, 혹은 다른 문제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나를 초조하게 만들었다.

진단 결과는 다행이었다. 건강합니다. 단아는 오히려 지나치게 건강하고, 수애는 그냥 평범하네요.


“...어째서일까요?”

“무엇이 말이죠?”

“단아나 수애는 건강한데, 왜 별님이만...”


질문이라기보다는 한탄이었다. 하지만 그 이유를 알고 싶었다. 왜 별님이만 저항력이 저리 낮은 것일까?


“다른 아이들과 별님이가 다른 점이라면... 그렇군요, 별님이는 신님의 아이였죠”


한탄에 가까운 질문이었기에 답도 스스로 내린다. 보솜씨는 내 말을 조용히 들어줄 뿐이다.


“그래서 무균실에 있다가 나온 아이... 같은 거였을지도 모르겠군요”

“그럴 지도요”


만들 거면 제대로 만들란 말이다. 그런 불평을 하고 싶었다. ‘인간’적인 부분은 다 완벽하게 현실의 인간처럼 했으면서, 왜 바이러스나 항체 같은 건 제대로 못 적용한 거냐. 예방접종은 시켜야 할 거 아니야.


“단아는...”

“정령의 아이였죠”

“정령들이면... 신님이랑 달리 무균실이 아닌 걸까요? 이해가 잘 안 되네요”

“...저도 아는 건 적습니다만”


보솜씨가 설명을 시작했다.


“정령들은 우리랑 같은 세계에 살고 있다고 합니다”

“다른 세계가 아니고요?”

“이 세계를 이루는 또 하나의 구성원, 이라고 하더군요”

“흠...”

“그러니깐 이 세계에 있는 것들에 대해서는 이미 겪었겠죠”

“바이러스나 그런 것들도 말이군요”

“네, 그리고 무엇보다 정령들은 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강해요?”

“네, 인간이랑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물의 정령이면 물을 마음대로, 바람의 정령이면 바람을 마음대로 다룰 수도 있고... 잡귀나 악령 정도는 손쉽게 제압할 수도 있고...”


잡귀나 악령도 이 세상에 정말로 존재하는 건가요. 그건 또 걱정되네.


“그러니깐 단아도, 강한 것 아닐까 싶네요”

“......”


나중에 태화씨에게 몇 가지 물어봐야겠다.


“수애는... 그냥 인간이죠”


그렇다. 수애는 평범한 아이다. 불행한 가정환경을 겪었지만, 평범하게 살아온 인간이다. 아이템 꼼수를 썼을 때도, 그 상승 폭이 다른 아이들에 비해 적었다. 그걸 보고 ‘일반적인 인간이라서 그런 것일까?’ 하는 생각을 했지만... 정말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


“걱정하지 마시고, 오후에는 회사에 다녀오세요”


보솜씨가 나에게 말했다.


“무슨 일이 생기면 제가 병원에 갈게요”


별님이는 병원이 맡고 있고, 애들은 이상이 없다. 내가 걱정하고 그래봤자 아무런 소용없다.

그렇지만 움직이기가 싫다. 소연씨와 있었던 일, 별님이에게 생긴 일... 이 두 가지만으로 나는 모든 에너지를 잃을 정도로 지쳐버렸다.


“다녀오세요”

“......”


그런 내 마음을 아는 것인지 보솜씨가 다시 한번 권한다. 몰라서 권하는 걸 수도 있겠지만.


“회사 하루 빠져도 이상 없겠죠”

“그러지 마세요”

“회사야 신님과 하는 게임이랑 연관도 없고”

“아뇨, 있는 거 같아서 드리는 말이에요”


보솜씨는 그렇게 말하면서 나를 본다.


“직장이 생긴 것도, 지나친 우연의 결과였죠?”

“그랬죠”

“그렇다면 아마 신님이 준비한 것일 텐데... 그, 음소연씨도... 그렇고요”

“......”

“그러니 빠트리지 말아 주세요. 유광씨는 게임을 하는 사람이니깐, 저희의 지휘를 맡은 셈이죠?”

“그렇게 말하지 마세요”

“지휘관이니깐, 당황하지 마시고 평소처럼 지내주세요”

“하루 정도야 괜찮겠죠. 보솜씨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신님이 아무 말도 없는데 이게 유광씨가 평소 일과를 안 해서 그런 거 아닐까, 싶어서 그런 것도 있어요”


신님이 보솜씨에게 응답을 하지 않는다고?


“그런 적이 처음인가요?”

“처음은 아니에요. 종종 응답은 안 해주시니깐요... 하지만 보통, 신님이 말씀하시는 데로 행하지 않으면 응답하지 않으셨어요”

“그래서 저에게 회사를...”

“그 이유 하나 때문에 그런 건 아니지만...”


말끝을 흐리는 보솜씨. 물론 안다. 일상은 계속 유지하는 게 좋겠지. 하지만 신님이랑 연락이 안 되는 이유에 저렇게 권한다고 생각하면, 섭섭한 마음도 조금 생기는 것이다.


“알겠습니다”


하지만 보솜씨의 말은 옳다. 오후에라도 회사에 가야겠다. 나는 다시 소연씨에게 문자를 보낸다.


‘죄송합니다, 오늘 오후에 출근하겠습니다’


아침에는 오늘 출근하지 못할 것 같다고 해놓고, 점심에 그걸 취소한다. 나도 참 제멋대로다.

그리고 소연씨에게는 이번 연락에도 답장이 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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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59화 - 단아의 바람 20.03.05 138 4 11쪽
58 58화 - 정령계로 20.03.04 160 1 11쪽
57 57화 - 고백 20.03.03 145 2 13쪽
56 56화 - 지랄 말게 젊은이 20.03.02 143 1 11쪽
55 55화 - 꼬이는 단판 20.02.28 145 4 12쪽
54 54화 - 수애, 소연씨 +1 20.02.27 243 2 12쪽
53 53화 - 신님과 대화 20.02.26 156 1 12쪽
52 52화 - 보솜씨랑 대화 20.02.25 201 2 11쪽
51 51화 - 첫 단계부터 20.02.24 161 2 11쪽
50 50화 - 발견 20.02.21 153 2 11쪽
49 49화 - 가출 +1 20.02.20 166 2 11쪽
48 48화 - 동시다발적 폭발 +1 20.02.19 162 4 12쪽
» 47화 - 순수하다는 문제 20.02.18 190 2 12쪽
46 46화 - 아무 말도 +1 20.02.17 168 3 12쪽
45 45화 - 스무고개 +1 20.02.14 211 6 12쪽
44 44화 - 꼬이기 시작 +2 20.02.13 185 5 12쪽
43 43화 - 목격, 두 번째 +1 20.02.12 201 3 13쪽
42 42화 - 목격 +3 20.02.11 260 5 11쪽
41 41화 - 재미없다 +2 20.02.10 229 5 12쪽
40 40화 - 계획대로 +2 20.02.07 233 5 11쪽
39 39화 - 크루즈 파티 +2 20.02.06 234 5 12쪽
38 38화 - 수확제의 결과 +2 20.02.05 232 7 12쪽
37 37화 - 보솜씨와 쇼핑 +1 20.02.04 238 6 12쪽
36 36화 - 신보솜씨 +2 20.02.03 258 6 13쪽
35 35화 - 태화씨 +1 20.01.31 254 6 11쪽
34 34화 - 늦은 저녁, 그리고 반성 +1 20.01.30 270 6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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