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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요. 님의 서재입니다.

현실에서 플레이하는 딸 키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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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하요.
작품등록일 :
2019.12.25 22:45
최근연재일 :
2020.03.10 21:30
연재수 :
6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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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43
추천수 :
543
글자수 :
332,033

작성
20.02.19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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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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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48화 - 동시다발적 폭발

DUMMY

회사를 향하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소연씨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뭐라고 인사하면 좋을까? 무슨 얘기를 해야 할까? 평소처럼 지내야 할까? 내가 무언갈 해야 할까? 하지만 내 고민은 결국 의미가 없었다.

사무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할 일을 서둘러 마치니 오후 5시였다. 평소와 달리 혼자서 일만 한 덕분에 빨리 끝났다.

시간이 이러니, 소연씨를 더 기다릴 필요도 없겠지. 어쩌면 오늘 출근을 안 하는 날인지도 모른다. 나야 후임이니깐 휴가라거나 사정이 있으면 소연씨에게 보고를 했다. 하지만 소연씨가 나한테 그런 보고를 할 필요는 없을 테다.

그러니깐 나한테 아무 말 없는 거다. 그렇게 생각하자. 사무실을 정리하고 문을 닫는다. 혹시 몰라 쪽지를 사무실 문에 붙여놓고 떠났다.


‘일 다 마치고 퇴근할게요‘


이러면 오늘 안에 오셔도, 아니 내일 아침 일찍 오셔도 이걸 보겠지.




걱정되어서 병원을 갔지만, 아무런 소득도 건질 수 없었다. 면회 금지입니다, 아직 경과를 살펴보고 있습니다. 이쪽을 답답하게 하는 대답만 건질 뿐이었다.

다음으로 들른 곳은 편의점이었다.


“안녕하세요”

“그래”


태화씨는 여전히 무뚝뚝하다.


“잘 지내시죠?”

“그렇다“

“병이나 그런 건... 괜찮으세요?”

“병?”


태화씨는 내 말이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다는 표정을 한다. 한참 생각하고서야 아, 하고 알아듣는다.


“질병? 하찮은 잡귀들의 괴롭힘?”

“어... 뭐, 네”


바이러스가 몸을 공격하는 걸 잡귀들이 괴롭힌다고 표현하는 모양이다.


“너는 저번부터 나를 얕보는군”

“얕보다뇨?”

“겨우 잡귀들 따위가 나를 괴롭힐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태화씨는 화를 내고 있다.


“그런 게 아니에요, 그냥 원래 사람들끼리는 이렇게 인사하잖아요”

“...그런가?”


그리고 금방 화를 끈다.


“그래서 점주도 그런 모욕을 했던 거군”

“모욕이라뇨?”

“오늘 출근하니 점주가 요즘 환절기니 감기 조심하라고 하길래, 나를 얕본다고 생각했었다만...”


몇 시간 전에 나눈 인사를 인제야 이해하고는 납득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더는 나를 얕보지 마라”

“그렇지만 태화씨도 지금은 인간이잖아요”

“인간의 형태를 띠고 있는 것이지, 내 힘을 잃은 것은 아니다.”


그렇게 말하며 나를 째려보는 태화씨의 눈동자는 불길을 품고 있었다.


“이게 그렇게 실례되는 말인가요...”


자존심이 강한 건지, 아니면 정령은 인간들이랑 사고방식이 다른 건지. 그냥 건강하냐고 안부를 묻고 건강하기를 바라는 말을 한 게, 왜 얕보는 말이 되는 건지 이해를 할 수가 없다. 인사를 한 입장에서는 슬슬 짜증도 난다.


“약하다고 보는 것 아닌가?”

“약하다고 보면 실례에요?”

“당연한 소리를”


그렇게 말하며 태화씨는 눈앞의 물건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할 말 다 마치고 제 할 일을 한다는 느낌이다.


“태화씨야 강하다고 쳐도, 그렇다면 만약 저보다 약한 정령에게 제가 이렇게 말하면요? 그것도 실례인가요?”

“아니”

“왜죠?”

“너보다 약하니깐”


약한 놈에게 무슨 말을 하든 무슨 상관이지? 태화씨는 그렇게 말한다.


“그러면 태화씨는, 제가 단아를 아무렇게나 대해도 상관없는 거죠?”

“당연히 아니다”

“왜죠? 단아는 저보다 약하고 어린데요?”

“왜냐하면, 다나님은...”


태화씨는 바로 이유를 말해주려다가 멈춘다.


“...말 할 수 없지만, 그건 용납하지 못한다”

“정령들은 이중잣대라도 가지고 있는 건가요?”

“아니”


말에서 짜증이 묻어나오기 시작하는 태화씨.


“너가 다나님을 대할 때는, 힘에 상관없이 정중해야 한다”

“저한테는 다나’님’이 아닌데요?”

“너는 오늘따라 유난히 짜증 나는군”


그럴지도 모르죠. 어제부터 신경이 날카로워지고 있으니깐요.


“그 이유를 말해줄 수는 없지만, 반드시 그래야만 하는 이유가 있지”

“그러면 그 이유를 저는 모르니깐 납득 못 하겠네요”

“그리고... 다나님은 인간이니깐, 정령처럼 힘의 관계로 대하는 건 옳지 못하다. 아니, 그렇겠지? 인간의 기준을 내가 정확히 아는 건 아니다만, 인간은 힘으로 남을 판단하지 않는다고 알고 있다”

“...그건 그렇죠”


정령들처럼 힘의 관계로 깔보거나 그러지 않는다. 사람은 정령과 다르다.


“그렇다면 지금 태화씨도 인간이잖아요?”

“인간의 형태를 띤 것뿐이라고 했을 텐데”

“단아랑 무슨 차이라고요?”

“차이가 있지. 나는 인간의 형태를 빌린 것뿐, 하지만 다나님은... 인간이 된 것이니깐”


단아는 이제 완전히 인간이란 뜻인가. 제멋대로 이해했지만, 그걸 다시 확인하지는 않았다. 굳이 그럴 필요는 느끼지 못했으므로.

그보다는 더 중요한 질문이다. 나는 태화씨에게, 단아가 병에 걸릴 수도 있느냐는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태화씨의 얘기를 정리하면 단순했다.

그럴 일은 없다.

단아는 인간이 되면서 정령의 힘을 잃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 영혼은 기존의 정령에서 이어진 것, 그러므로 그 영혼이 가진 힘은 어느 정도 보존하고 있다. 그 정도의 힘만으로도 잡귀들은 단아를 괴롭힐 수 없다. 즉, 사소한 질병에는 끄떡도 없다는 소리다.


‘그러면 왜 별님이는 질병에 걸린 거죠?’

‘신의 아이를 내가 어떻게 알겠나?’

‘신이랑 정령이랑 둘 다 영혼 같은 거 아니에요?’

‘신은 우리도 잘 모르는 존재다’


별님이에 대해서는 정보를 얻지 못했지만, 단아에 대한 걱정을 던 것만으로도 큰 수확이다. 별님이가 병에 걸렸다는 말을 듣고, 아이들을 잘 돌보고 있는 게 맞냐고 따지는 태화씨의 얘기는 흘려버렸다. 다 상대해주기에는 이쪽이 한계다.

집에 가서 수애랑 단아를 좀 더 보살피고 다시 병원에 가보자. 저녁만 같이 먹고, 그다음에 다시 가서 좀 기다려봐야지.




“다녀오셨어요?”

“아빠~!”


집에 들어가면 단아랑 수애가 나에게 인사해준다. 마루에서 게임을 하던 둘은 내가 오니 바로 반겨준다.


“잘 놀고 있었구나”

“응!”


해맑게 웃는 단아. 그 표정이 평소랑은 다르게 느껴진다. 무언가 빠진 거 같다.


“...보솜씨는?”

“방에 있어!”


이상하다. 평소라면 애들이 나오면 보솜씨도 같이 따라 나오는데 말이지. 보솜씨 방문은 닫혀 있다. 내가 오는 소리를 듣지 못한 걸까?

똑똑.


“보솜씨?”


아무런 대답이 없다. 똑똑. 여전히 대답은 없다.


“아, 혹시 화장실 갔나?”

“계속 방에... 계세요...”


수애가 말해준다.


“언제부터 그랬니?”

“저희가 오고 나서... 들어가시더니 그 뒤로 쭉...”

“언제 왔어?”

“3시... 쯤...?”


3시간은 방에 계속 틀어박혀 있다고? 이상하다. 보솜씨가 그럴 사람이 아닌데. 그녀는 부지런하고 집안일을 열심히 해주는 분이란 말이지.


“보솜씨? 무슨 일 있어요?”


똑똑. 주무시나? 아니, 그것도 이상하다. 설마 보솜씨도 병에 걸렸다거나? 어쩌면 별님이의 감기는 슈퍼감기라서 전염되고 있는 걸까?


“보솜씨? 잠시 실례할게요?”


슬며시 문고리를 돌려본다. 잠겨있지 않은 덕분에, 막히는 것 없이 문이 열린다. 방은 불도 켜놓지 않은 덕분에, 석양빛과 함께 어두워지는 중이었다. 그리고 그 방 한가운데, 보솜씨가 주저앉아 있었다.


“보솜씨!?”


그 모습이 심상치 않아 서둘러 뛰어간다. 자세를 낮추고 보솜씨의 얼굴을 살펴본다. 보솜씨는 넋이 나간 채로 있다가, 내 얼굴이 앞까지 와서야 나를 알아챈다.


“유광님...”

“왜 그러세요?”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어디 아프세요? 무언가 이상이라도?”

“신님이...”

“신님이 또 뭐라고 하셨나요?”


이상한 소리를 한 걸까? 설마 별님이가 병에 걸렸다고 신벌 같은 것이라도 내린 걸까?


“신님이... 아무런 대답도 해주지 않으세요...”

“네?”


보솜씨는 내 팔을 꽉 쥔다.


“아무런 대답이 없으세요... 아무런 대답이...”


아, 난 또, 뭐라고...


“전 또 무슨 일이 생긴 줄 알고...”

“이건 큰일이에요!”


갑자기 보솜씨가 목소리를 높여 버럭 외친다. 나는 그 말소리에 놀라 보솜씨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말도 안 되는 거라고요!”

“뭐가요?”

“신님께서 제 부름을 완전히 끊으신 건 한 번도 없었던 일이었어요! 오, 어쩌면 좋아요, 어쩌면 좋죠!?”


보솜씨는 계속해서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마치 절규하듯이.


“진정하세요”

“안 돼요! 안 된다고요!”

“진정해요!”


나도 목소리를 높일 수밖에 없었다.


“가끔 불러도 안 오신다면서요! 그리고 종종 불러도 대답 없으셨잖아요? 원래 그런 것이라면서요”

“아니에요, 이건 아니에요! 대답은 안 하셔도 이어지긴 했어요, 응답이 오지 않아도 연결은 되었다고요! 그런데 지금은... 그 연결이... 완전히 끊겼어요...”

“잠시 끊겼을 뿐이겠죠”


인터넷도 끊길 때가 있는데, 신님하고 하는 연락 정도야 끊길 수도 있겠지.


“무슨 소리 하는 거에요?!”


보솜씨가 절규한다. 내 말에 화를 내고 있었다.


“그런 사소한 게 아니에요, 그럴 리가 없잖아요! 전 알 수 있어요, 저는 언제나 신님하고 연결되어 있었으니깐 알 수 있다고요! 완전히 끊겼어요, 완전히 끊겨버렸어요!”

“아, 알았어요, 일단 진정하세요”

“오오, 어쩌죠, 어떻게 하면 좋죠!”


계속해서 어쩌면 좋냐는 말만 반복하는 그녀는, 내 팔을 잡은 손아귀에 더 강하게 힘을 주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시선은 내 얼굴과 방 구석구석을 왔다 갔다 한다. 그녀의 반응은 마치 미치광이 같았다.


“멈춰봐요 보솜씨, 잠시만 멈춰봐요”

“어떻게요? 어떻게 멈추죠?”

“심호흡, 심호흡을 한 번...”

“오오, 안 돼요, 그럴 수도 없...”


짝.

보솜씨의 뺨을 살짝 때렸다. 이런 짓을 하고 싶지는 않다. 그래도 일단 진정시키고 보자.


“......”


보솜씨가 멈추었다. 뺨을 맞았다는 것 자체가 쇼크를 준 모양이다. 아프지 않게 살짝 치고도 멈추지 않으면 세게 때릴까 하고 있었지만, 다행이다.


“신님이 말이 없는 게 뭐가 어때서요, 그럴 수도 있어요”


보통은 신님 같은 거랑 평생 연락하고 그러지 않는다고요.


“......”

“자, 진정하고요, 일단 시간을 두고 기다려봐도 되지 않겠어요? 끊겼으면 다시 이어질 수도 있겠죠”

“......”


보솜씨는 계속 말이 없다. 그래도 내 말을 듣고는 있는 것 같다.


“싸...워...?”


수애가 뒤에서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묻는다.


“으응, 아니야 수애야”


나는 뒤돌아보며 수애에게 대답했다. 아이들에게 괜한 걱정을 끼치고 싶지는 않다.


“아빠? 왜 그래?”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 탓이었는지, 단아도 방에 들어온다.


“수애야, 단아랑 잠깐 나가 있을래?”

“그치만...”

“아빠가 보솜씨 조금만 진정시켜야 하니깐”

“싸우지... 마...”

“응, 싸우지 마!”

“싸우는 거 아니야 애들아, 이건 그냥...”

“제발요...”


정신이 없다. 미쳐 날뛰던 보솜씨, 울먹거리기 시작하는 수애, 옆에서 맞장구를 치는 단아... 셋 다 동시에 돌 볼 정신은 없다.


“싸우지 마세요... 제가...”

“그런 거 아니야!”

“힉!”


소리를 질렀다. 그 목소리에 놀란 수애가 딸꾹질을 한다. 미안하지만, 우선 상황을 정리하기 위해서다. 결코, 짜증을 내는 게 아니야. 애들한테 보솜씨의 이런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기도 하고 말이지.


“수애야, 단아 데리고 나가 있어. 곧 나갈게”


천천히, 또박또박 말한다. 그 말에 수애는 머뭇거리다가 나갔다. 그 뒤를 단아도 따라 나간다. 나는 멈추어버린 보솜씨를 내버려 두고 방문을 닫는다. 그동안 보솜씨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질 않았다.

우선 이 사람을 정신 차리게 하자. 어떻게 하면 좋지. 완전히 넋이 나간 사람. 살면서 많은 상황을 겪었지만, ‘신과 연락이 끊겨서’ 패닉에 빠진 사람을 어떻게 위로해야 하나. 처음 겪는 일에 머리만 박박 긁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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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62화 - 다 같이(완) +2 20.03.10 323 3 13쪽
61 61화 - 대면 20.03.09 181 1 12쪽
60 60화 - 기도 20.03.06 136 3 11쪽
59 59화 - 단아의 바람 20.03.05 138 4 11쪽
58 58화 - 정령계로 20.03.04 160 1 11쪽
57 57화 - 고백 20.03.03 146 2 13쪽
56 56화 - 지랄 말게 젊은이 20.03.02 144 1 11쪽
55 55화 - 꼬이는 단판 20.02.28 145 4 12쪽
54 54화 - 수애, 소연씨 +1 20.02.27 244 2 12쪽
53 53화 - 신님과 대화 20.02.26 156 1 12쪽
52 52화 - 보솜씨랑 대화 20.02.25 201 2 11쪽
51 51화 - 첫 단계부터 20.02.24 161 2 11쪽
50 50화 - 발견 20.02.21 153 2 11쪽
49 49화 - 가출 +1 20.02.20 166 2 11쪽
» 48화 - 동시다발적 폭발 +1 20.02.19 164 4 12쪽
47 47화 - 순수하다는 문제 20.02.18 190 2 12쪽
46 46화 - 아무 말도 +1 20.02.17 168 3 12쪽
45 45화 - 스무고개 +1 20.02.14 212 6 12쪽
44 44화 - 꼬이기 시작 +2 20.02.13 185 5 12쪽
43 43화 - 목격, 두 번째 +1 20.02.12 201 3 13쪽
42 42화 - 목격 +3 20.02.11 260 5 11쪽
41 41화 - 재미없다 +2 20.02.10 229 5 12쪽
40 40화 - 계획대로 +2 20.02.07 233 5 11쪽
39 39화 - 크루즈 파티 +2 20.02.06 234 5 12쪽
38 38화 - 수확제의 결과 +2 20.02.05 232 7 12쪽
37 37화 - 보솜씨와 쇼핑 +1 20.02.04 239 6 12쪽
36 36화 - 신보솜씨 +2 20.02.03 258 6 13쪽
35 35화 - 태화씨 +1 20.01.31 254 6 11쪽
34 34화 - 늦은 저녁, 그리고 반성 +1 20.01.30 270 6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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