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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비 님의 서재입니다.

지상 최강의 좀비가 된다면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완결

이호비
작품등록일 :
2019.01.12 21:51
최근연재일 :
2019.08.20 21:30
연재수 :
13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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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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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8,164

작성
19.01.24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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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9쪽

4. 우롱토끼 (3)

DUMMY

“솔직히 믿기 어렵지만 당신이 드래곤의 정신을 이어받아 마물과 소통을 하는 존재라면, 저와 당신은 맞물릴 수 없는 사이입니다.”


동행을 제시했지만 그녀는 거부의사를 내비쳤다.

나도 모르게 제시한 것도 있었지만 말을 내뱉은 순간 충분히 예상을 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그녀의 대답에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어보이니, 그녀는 곤란하다는 듯 울상 비슷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당신이 제가 생각하는 그런 존재가 아니라는 것은 알겠습니다. 하지만, 여신 아리아를 섬기는 몸으로서 마물을 거느리는 존재와 동행 할 수 없다는 뜻이죠.”


종교적인 신념에 의해 거절한 것인가.

그렇다면 그녀의 입장에서는 쉽사리 결정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이해할 수는 있었다.

하지만 나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은 채, 그녀를 바라보았다.


의도를 알 수 없는 나의 미소에 순간 움츠러드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고 덮고 있던 모포를 자신의 몸 쪽으로 끌어당긴 채 여성은 말을 더듬으며 대답했다.


“뭐, 뭐죠?! 드디어 본색을 드러내는 겁니까?”


장난은 그만두고 나는 표정을 풀며 담담하게 대답해 주었다.

같이 동행을 하는 것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기에 얘기가 술술 풀리는 느낌이다.


“같이 동행해도 아무 문제없어.”


“무슨, 말이죠?”


“내게 정신을 물러준 드래곤은, 여신 아리아의 계시를 받고 세계수에게 이름을 부여받은 자신의 딸을 찾아 달라고 부탁했거든.”


“헛소리군요. 제가 순순히 믿을 것 같은가요?”


“안 믿는 건 자유지만 내게 유언을 남긴 드래곤은 분명 여신 아리아의 계시를 받았다고 했어.”


그녀는 복잡 미묘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혼잣말로 드래곤을 입에 담은 것도 모자라서··· 라는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을 내뱉었지만 대꾸하진 않았다.


그녀는 생각에 잠긴 듯 보였고 자연스레 정적이 찾아왔지만 그리 오래 가지는 않았다.


“여신 아리아님의 이름을 함부로 입에 올렸다간 천벌을 받게 될 거에요.”


“나는 사실만을 말하고 있는 거야.”


“···좋아요, 당신의 제안을 받아들이겠어요.”


어렵게 승낙을 얻은 나는 흐뭇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일단 시간이 많이 늦었기 때문에 잠을 청하는 걸로 하고, 각자 자리에 누웠다.

나는 피곤하지 않았지만 리프세라, 아 짧은 통성명으로 이름은 알게 되었다.

리프세라와 쿠키는 몸이 성치 않았으니 지금이라도 휴식을 취해야 하기 때문에 조용히 있기로 하였다.


‘칼가진쿠들은 무사히 돌아갔을까?’


걱정스런 마음으로 눈을 감은 채 그들의 얼굴을 떠올렸다.

인간은 아니었지만 얘기를 나누어보면 심성은 나쁘지 않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다만 이 세계에서 인간과 몬스터는 서로 맞물릴 수 없다는 것은 지명한 사실이다.


사람도 여럿모이면 마찰이 생기기 마련인데, 종 자체가 틀리면 오죽하겠는가.

하지만 지성을 가지고 있고 말이 통한다면 언젠가 공생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지 않을까, 생각하며 잠을 청했다.


---


아침이 밝아왔다.

가장 늦게 잠에 들었지만 먼저 눈을 뜬 나는 상쾌한 아침에 보답하듯 기분 좋게 기지개를 켰다.


“날씨 좋다~”


끄으으으······.

몸의 이곳저곳을 풀며 스트레칭을 하고 있을 때, 쿠키가 슬그머니 내 곁으로 다가왔다.

털을 쓸어내리니 거친 콧바람을 불어대었고, 누더기에 가까운 내 옷은 볼품없이 펄럭였다.


“빨리 일어나셨네요.”


“몸은 괜찮아?”


“예, 충분히 휴식만 취한다면 크게 문제될 것은 없어요.”


얼굴까지 번졌던 검은 반점들은 흔적조차 찾아 볼 수 없었다.

그것이 무엇인지 물어보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묻지 않았다.

대신 칼가진쿠 일행들이 일부 남겨놓은 물과 식량을 그녀에게 주며 자연스레 대화를 이어나갔다.


“그거 다행이네, 일단 배부터 채우는 게 어때? 정신을 잃고 쓰러진 다음 아무것도 안 먹었으니 배고프지?”


차마 그녀에게 트롤의 고기를 권할 수 없었기에 칼가진쿠 부족에서 기르던 소를 도축하여 만든 말린 육포를 주었다.


말린 육포를 지그시 바라보던 세라는 날 보더니 입을 열었다.


“당신은 안 드시나요?”


“음, 어···나는 별로 안고파서.”


변질화 때문에 자제한다는 말은 차마 할 수가 없었다.

대충 얼버무리며 트롤의 고기를 뜯기 시작하는 쿠키의 곁으로 도망치듯 대피했다.

그녀는 식사를 하지 않는 것에 크게 의문을 품지 않았고, 조신하게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저기, 괜찮다면 이거라도 걸치는 게 어때요?”


식사를 끝낸 세라가 자신의 가죽 배낭에서 가죽 바지와 허리 끈, 셔츠랑 다소 폭 넓은 망토를 꺼내보였다.


“진짜 괜찮아?”


“예, 솔직히 말해서 눈을 어디에 둬야할지 모르겠거든요.”


“아, 그렇지···?”


속살이 거의 다 비치는 넝마를 걸치고 있었으니 난감할 수밖에 없었다.

낯부끄러웠는지 그녀는 시선을 돌린 채 내게 여분의 옷을 손에 쥐어 주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아무렇지 않게 이러고 다니는 내가 이상하게 느껴졌다.


뒤늦게 부끄러운 감정이 슬며시 올라오긴 했지만 그리 크지는 않았다.

그저 기쁜 마음으로 쿠키의 뒤로 돌아가 세라가 준 옷을 갈아입을 뿐이었다.


바지의 기장은 뒤꿈치까지 내려왔고 허리끈을 꽉 졸라매어야 흘러내리지 않았다.

상의는 그녀에게 맞춘 것인지, 가슴부분이 조금 헐렁했다.

망토는 온몸을 감싸고도 남았고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은 감촉이 너무 좋았다.

그녀의 키는 얼추 보아도 나보다 10cm 이상은 차이가 났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사이즈가 좀 큰 감이 없잖아 있었지만, 그래도 나는 상당히 마음에 들었다.


한창 온 몸으로 망토의 촉감을 느끼던 내게 세라가 대답했다.


“어제의 일에 대한 사과의 의미이기도 해요.”


“아, 이거 말이지?”


망토를 손으로 잡아들며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너무 기뻐하는 모습에 당황한 건지 세라는 작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전날 죽일 듯이 달려든 모습과 지금의 모습을 비교하면 무엇이 그녀의 본 모습일지 고민할 정도로 온도의 차이는 극과 극을 달렸다.


“그런데, 당신···아니, 어제 말 한대로 편하게 칼 이라고 부를게요.”


“응, 나도 편하게 세라로 부르고 있으니까. 근데 뭔가 묻고 싶은 거라도 있어?”


뭔가 궁금해서 물어는 보고 싶고, 그렇다고 노골적으로 물어보자니 꺼내기 힘들어하는 느낌이 강하게 느껴졌다.


“망설이지 말고 물어봐.”


생각하지도 못한 큰 선물을 받았기 때문에 나는 기분이 좋았다.

무엇이든 물어보면 대답을 해줄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가슴팍을 치며 호기롭게 대답했다.


그러자 세라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어 보였다.


“···몇 살이에요? 드래곤과 연관되어있으니 본 모습은 따로 있다거나···”


하긴 세라의 눈에 비친 내 모습은 무린에 있기엔 상당히 이질감이 드는 모습일 것이다.

대충 눈대중으로 나이를 측정할 수 없는 게 당연하지.


“···25살이지만 이상하게 생각하진 말아줘 나도 좋아서 이런 모습이 된 것은 아니니까···”


“···말 못할 사정이란 게 있기 마련이니까요. 제가 3살은 더 어리니 지금처럼 편하게 대해주세요.”



---


간단한 식사와 정비를 통해 길을 나설 채비를 끝낸 우리들은 쿠키의 등에 올라탔다.

쿠키의 커다란 덩치에 세라는 살짝 거부반응을 보였다.


쿠키가 마물이기 때문에 저런 반응을 보이는 것은 아닌 것 같았다.

뭔가 다른 무언가를 원초적으로 두려워하는 반응이었지만 그게 무엇인지는 알 턱이 없었다.


그렇게 보이지 않는 실랑이를 끝마친 세라는 등에 올라타는 것조차 힘겨워 했고 도움을 주기 위해 건넨 내 손을 거절하지 않았다.


의외로 한번 마음을 열면 쉽게 다가오는 성격은 아닐까 생각하며 나는 쿠키의 털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쿠키 오늘 하루도 잘 부탁할게.”


컹!


맹수의 울부짖음에 근처 나뭇가지 위에서 햇볕을 받던 새들이 놀라 날아올랐다.

나는 세라에게 떨어지지 않게 꽉 잡고 있으라며 신신당부를 하고 출발 신호를 알렸다.


“가자!”


슈와아아아악!!!


“꺄아아아악!!!”


쿠키의 속력에 놀란 세라가 내 허리를 강하게 끌어안았다.

날카로운 소리가 귓속을 때렸지만, 내 시선은 쿠키의 등에 펼쳐진 대륙의 지도로 향해 있었다.


출발하기 전, 대륙 지도를 가지고 있던 세라는 순순히 내게 건네주었다.

가는 방향이야 칼가진쿠들과 나섰던 방향을 기억하고 있어 쭉 가면 그만이었지만, 지도가 있는데 굳이 안 볼 이유는 없지 않는가?


게다가 본인은 인정하지 않는 눈치였지만 길치 본능으로 요정계가 아닌 무린에 발을 들인 자체가 그녀에게 지도는 무의미한 물건에 지나지 않았다.


“지금 우리들이 달리고 있는 곳이 이쯤이니까. 이대로 서쪽으로 쭉 가면 대초원에서 수인족의 영토로 들어가게 되는구나. 쿠키의 체력과 속도를 생각하면 끝자락의 숲까지는 금방 도달할 수 있겠어.”


“카, 칼?! 계속 이 속도로 이동하는 건가요?!!”


뒤에서 세라의 말이 들리는 것 같았지만 착각으로 치부해 버렸다.

언제 봐도 쿠키의 속력은 경이로웠다.

장애물은 쿠키에게 아무런 문제도 되지 못했다.


스피드만큼은 강화된 내 육체능력을 뛰어넘는 것은 아닐까?

그만큼 몸으로 부딪히는 공기의 저항은 묵직하게 다가왔다.

몸을 숙이지 않으면 바로 날아가 버릴지도 몰라 최대한 쿠키의 등에 상체를 숙여 이동했다.


“이대로 가면 오늘 안에 대초원도 지나갈 수 있겠어, 가능하지? 쿠키!”


쿠키의 귀에 대고 소리를 질렀다.

내 말에 쿠키는 스피드를 한층 더 올리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 했다.


---



- 그 시각, 수인족의 영토. 무린 대초원 북동쪽 접경 지역.


“귀기이리! 귀기이리!!”


“······.”


“귀기이리~”


“······.”


귀재수리의 전언을 받은 날부터, 우롱토끼는 한층 더 귀찮게 굴었다.

아침이 밝은 지금까지 뭐가 그리 신나는지 긴장감이라곤 전혀 찾아 볼 수 없는 모습이었다.


카지락스타의 목적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지만 그의 심기를 건드리면 수인족 전체에 재앙이 들이닥친다.


만전에 준비를 가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 어린 토끼는 드래곤이란 존재를 우습게보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귀기이리, 나 심심해~”


“···우롱토끼, 너란 녀석은.”


우롱토끼가 매사에 들뜬 아이라는 것은 그녀가 어렸을 때부터 쭉 지켜봐왔기에 알고 있었지만 이정도일 줄은 몰랐다.

진정성이나 경각심이 결여되었다고 해도 적막수왕도 힘겨워하는 존재가 온다면 사태의 심각성은 파악할 것이라 생각했다.


“나 왜? 너무 귀여워서?”


귀기이리가 앉아있는 곳까지 깡충 뛰어온 우롱토끼는 자신의 양 볼을 늘어뜨리며 귀여움을 어필 했지만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귀기이리는 분주하게 움직이는 수인족들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아직 경험해보진 못했다곤 해도 너무 쉽게 보고 있는 건 아닌가?”


안 그래도 2명의 칠난제들이 이곳으로 합류하기 위해 부랴부랴 달려오고 있는 중이다.

칠난제라 불리는 존재들이 4명이나 한 지역에 뭉치는 경우는 거의 볼 수 없는 일이었다.


각자의 구역을 벗어나야 할 만큼 위급한 상황이라는 뜻이었고, 드래곤이라는 존재의 강함은 그만큼 절대적이라는 소리다.


[날개 짓 한번으로 모든 생명체들이 주저앉았고, 포효한번에 정신을 잃었다. 설령 그 위압을 견뎠다한들 압도적인 존재가 내뿜는 기운 앞에선 한낮 미물과 다르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다.]


유하여제의 피를 이어받은 ‘멜’은 악룡과 맞서기위해 전례가 없을 정도의 토벌을 행하였다.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영웅의 말에 대륙 전역의 강자들과 군대가 파견되었다.

하지만 고대 드래곤들의 수장이자 ‘악룡 비피두스어’를 맞닥뜨린 인간들은 손에 쥔 무기조차 한번 휘두르지 못한 채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다고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그리고 유일하게 살아남은 멜은 저 말만을 남긴 채 홀연히 자취를 감추었다고 한다.


악룡 비피두스어가 드래곤들 중에서도 유별나게 강했다는 말이 있었지만 악룡이 어디에서 왔는지, 그렇게 강한 드래곤이 지금은 왜 흔적조차 찾을 수 없는지에 대해서는 기록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항간에는 드래곤이라는 존재의 위험성을 부각시키기 위해 선조들이 만들어낸 이야기에 불과하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유하여제의 피를 이어받은 영웅을 허무맹랑한 이야기 속에 등장시켰다는 점에서 종교적인 문제로까지 번지고 있는 실정이지만 모두가 알고 있는 인물인 만큼 효과는 대단했다.


자세한 내막이야 수인족인 귀기이리는 모르지만, 전 종족을 통틀어 가장 큰 번영을 이룬 인간들조차 드래곤을 절대적인 존재로 비유했다는 것이다.

귀기이리는 그 점을 강조하고 싶었다.


“그럴 리가 없잖아, 어르신들께 얼마나 많이 들었는지 지금도 귀가 따가울 지경인 걸?”


그걸 알고 있는 녀석이 너처럼 행동하겠냐고 생각하는 귀기이리였지만 우롱토끼의 다음 말에 옅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리고 나도 어엿한 칠난제의 한명이잖아? 발랄한 내가 드래곤이란 세 글자에 떨고 있는 모습을 보이면 다른 이들은 얼마나 두려워하겠어.”


“말은 잘하는구나.”


그저 철부지로만 생각하고 있었건만 귀기이리는 그녀를 다시 보게 되었다.

우롱토끼의 대답에 기특한 나머지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그녀에 대해 짧게 생각한 것에 대해 사과를 했다.


“그런 줄도 모르고, 미안하다.”


“으으으···응? 뭐가? 갑자기 왜 사과하는 거야? 말해봐, 분명 속으로 나 비꼬고 있었지? 맞지?”


귀기이리가 머리를 쓰다듬어주자 우롱토끼는 갑작스런 귀기이리의 사과에 손을 팍, 치고선 달려들었다.


그녀는 항상 이랬다.

밝고 명량하며 미소로 모두에게 활력을 불어넣어주었다.

그 소녀가 어느덧 숙녀가 되고, 칠난제가 된 이후에도 변함없이 한결같은 모습을 보였지만 그 속은 더욱 여물어져 있음을 느꼈다.


“적막수왕의 앞에서도 넌 늘 이랬지.”


“갑자기 왕이 왜 나오는 건데?!”


앙증맞은 손가락이 귀기이리를 향한 채 우롱토끼의 양 볼이 부풀어 올랐다.

한참 목조성채의 옥상에서 아옹다옹 거리고 있을 때, 검은 토끼 클로버가 올라왔다.


“‘만왕’님과 ‘오만꽃뱀’님께서 도착하셨습니다.”


클로버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두 명의 인물이 나타났다.


엄청난 풍채와 연륜이 느껴지는 흰 수염.

무엇보다 서 있는 것만으로도 풍겨오는 압력이 장난 아니다.

칠난제 중 유일한 노장인 그는 4개의 팔을 익살맞게 흔들며 반갑게 인사했다.


“이 녀석들, 못 본 사이 더 친근해졌구나.”


“할배! 왜 이제 왔어~ 기다렸잖아. 들어봐~ 귀기이리가······”


“허허허, 녀석 여전히 달라붙는 버릇은 남 주기 아까웠던 것이냐? 오냐, 어디보자!”


우락부락한 근육이 붙은 4개의 팔로 우롱토끼를 하늘 높이 들어, 그녀의 기분에 맞춰주었다.

만면에 미소를 지어보이며 즐겁다는 듯이 우롱토끼가 공중에서 만세 삼창을 연발했다.


“만왕님, 녀석의 어리광에 무리하게 어울려주실 필요는 없으십니다.”


“이 녀석아, 요 녀석이 얼마나 서러웠으면 다 늙은 노인네 품으로 한달음에 달려오는지 생각은 해봤느냐? 좀 더 살갑게 굴란 말이다.”


“···예, 알겠습니다.”


우롱토끼는 만왕의 팔에 매달린 채 귀기이리를 향해 혓바닥을 내밀며 승리의 미소를 지어보였다.

물론 귀기이리는 별 신경은 쓰지 않았지만 우롱토끼도 상관하지 않는 눈치였다.


“섭섭해 보이네?”


“착각이다.”


귀기이리의 곁으로 한 여인이 다가와 능청스럽게 말을 툭 던졌다.


“후훗, 나는 언제든 너의 편이 되어 줄 수 있는데.”


요염하게 손가락을 놀리며 귀기이리의 어깨를 쓰다듬는 그녀의 이름은 ‘오만꽃뱀’

모두가 의지하는 칠난제중에서도 유일하게 수인족들이 꺼려하는 인물 중 한명이다.


“생각 없이 내뱉는 것은 여전하군.”


“어머!”


귀기이리는 그 말만을 내뱉고선 자리를 피했다.

멀어져가는 그의 등을 바라보며 오만꽃뱀은 조용히 중얼거렸다.


“후훗, 재미없는 남자.”


그녀는 시선을 돌려 우롱토끼를 바라보았다.

어리광을 받아주는 만왕의 곁에 딱 달라붙어 떨어질 줄 모르던 우롱토끼는 순간 한기를 느꼈다.


“으, 어어······.”


우롱토끼는 만왕의 품에서 슬며시 시선을 돌려 오만꽃뱀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우롱토끼의 전신을 훑고 있었다.

서늘한 안광은 먹이를 바라보는 포식자의 눈을 하고 있어서 우롱토끼는 자신도 모르게 움츠러들기 시작했다.


“장난은 그쯤하게, 어린 것이 사시나무 떨 듯 떨고 있지 않느냐.”


그 모습이 안쓰럽게 비쳤는지 만왕은 자신의 거대한 팔로 우롱토끼를 감추며 오만꽃뱀을 향해 가볍게 내뱉었다.

장난으로 하는 행동임을 알고 있기에 크게 뭐라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장난을 받아들이는 우롱토끼의 입장은 심장이 내려앉는 고통을 감수해야만 했다.


만왕의 제지에 오만꽃뱀이 화사한 웃음을 지으며 둘의 곁으로 다가왔다.

요염한 그녀의 발걸음에 우롱토끼는 만왕의 등 뒤로 슬그머니 몸을 숨겼다.


“할배···.”


불안함이 증폭될수록 우롱토끼의 입에선 ‘할배’만이 튀어나왔다.


“요 녀석아. 그토록 이루고자 했던 칠난제가 되고나면 뭣 하느냐. 항상 떳떳하게 행동하라 가르쳤거늘 같은 칠난제의 앞에서 주눅 들면 어찌하느냐. 호랑이 앞에서도 당돌한 녀석이 어찌 이리 겁을 먹을꼬.”


칠난제 정도가 되면 상성이라는 것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지만 그녀에겐 오만꽃뱀에 대한 트라우마가 각인되어 있다.

그것을 잘 알고 있는 만왕은 어서 빨리 극복했으면 하는 마음이었지만 쉽게 되지는 않았다.


“우롱토끼 안녕?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귀엽네, 이토록 사랑스러울 수가 있을까.”


우롱토끼의 뺨을 오만꽃뱀의 희고 가느다란 손가락이 윤곽을 따라 목덜미까지 쓸어내려갔다.


흠칫!


작게 몸을 떤 우롱토끼는 눈가에 눈물이 한 두 방울씩 맺히기 시작했다.

도움을 청하듯 그녀의 큰 눈망울은 만왕을 향해 있었지만 만왕은 한쪽 손으로 이마를 감싸며 애써 눈길을 돌렸다.

도와주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어떻게든 오만꽃뱀에 대한 트라우마를 스스로 극복했으면 하는 마음이 더 컸기 때문이다.


“후후후, 귀기이리는 몰라도 우롱토끼가 날 아직까지 싫어하는 건 조금 섭섭할지도, 이런 내 마음을 언제쯤 알아줄려나?”


귓가에 속삭이며, 오만꽃뱀의 양 팔은 우롱토끼를 껴안아 보였다.


‘할배! 도와줘!!’


입 밖으로 말이 튀어나오지 않았다.

바들바들 떠는 몸을 진정시키기 위함인지 우롱토끼를 끌어안은 오만꽃뱀의 양 팔에 힘이 더해지기 시작했다.


“······.”


뒤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든 말든 상관하지 않고 초원만을 바라보고만 있던 귀기이리는 결국 조용히 한숨을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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