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고이태 님의 서재입니다.

창궁귀환(蒼穹歸還)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판타지

고이태
작품등록일 :
2021.05.12 13:13
최근연재일 :
2021.06.03 17:17
연재수 :
22 회
조회수 :
20,029
추천수 :
381
글자수 :
92,643

작성
21.05.25 17:37
조회
647
추천
12
글자
8쪽

불청객

DUMMY

*


“전하, 괜찮으십니까? 들어가서 숙취에 좋은 약을 올리겠습니다.”


“아, 그럴 필요 없어. 아주 쌩쌩하거든. 그것보다 갈 곳이 있다. 지금 가면 분위기가 딱 좋게 무르익을 때로군.”


“모시겠습니다. 어디로 가면 되겠습니까?”


“아버지를 뵈러 가자고. 오랜만에 효자 노릇 좀 해볼까.”


*


연회는 절정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 자리를 채운 자들은 저마다 바쁘게 움직였다. 황제에겐 아양을 떨었으며 황후에겐 진귀한 물건을 바쳤고 황태자에겐 아첨을 올렸다. 오직 두 명만이 움직이지 않고 앉아있었다.


“여기가 정말로 황궁이 맞나요? 제 생각과는 좀 다르군요.”


“괜한 생각 말고 가만히 있다 갑시다.”


‘말이야 그렇게 했지만, 너무나 어둡다. 황제를 넘어 황태자까지 저런 모습이라니. 술이 이렇게 불편한 건 처음이군.’


연회가 끝을 향해갈 적에 황제는 눈을 돌렸다. 움직이던 눈이 멈추자 옅은 미소를 지었다.


“내가 멀리서 온 손님에게 신경을 못 썼군. 어때 자리는 즐겁나?”


“예, 폐하. 술도 안주도 모자람이 없습니다. 과연 폐하께서 여신 자리답습니다.”


“그거 고맙군. 그런데 같이 온 일행은 그렇지 않은가 본데. 이 자리가 마음에 들지 않나?”


‘젠장. 그냥 넘어가나 했더니 마지막에 한판 벌이시는군. 다른 누구도 아닌 황제의 질문이다. 조금이라도 문제가 될 말이 나와서는 안 돼.’


“아닙니다, 폐하. 제가 이렇게 큰 자리는 처음이라 그렇습니다. 오히려 이런 초대해주신 것에 감사를 드립니다.”


‘이 정도면 괜찮겠지. 제발 여기서 끝냈으면 좋겠는데.’


“그래? 감사에는 답례가 있어야지.”


‘그럴 리가 없지. 대체 뭔 헛소리를 하려고.’


“무당에서 왔다고 했던가. 아니, 화산이었나. 어찌 되었건 나와서 칼춤이나 추지, 그래 그렇게 자랑하는 칼로 분위기나 한번 띄워보란 말이다. 그러라고 이 자리에 불렀으니 실망은 시키지 않으리라 믿겠다.”


“그게 무슨···.”


“음? 잘 안 들리는데 뭐라고 했나?”


진령의 손끝이 떨리고 있었다. 황제에게 자신의 사문과 검은 있으면 좋고 없어도 그만이다. 재밌는 놀잇거리,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일어나려던 그녀를 제갈첨은 재빨리 막았다.


‘좆됐네.’


“폐하, 그녀가 술에 취했는지 듣지 못했나 봅니다. 대신에 제가 한 춤 추겠습니다. 검을 빌려주시겠나이까?”


“호오, 그래? 제갈세가의 검이라? 재밌겠어. 좋다. 여봐라. 저자에게 어울릴 만한 검을 가져오라.”


천천히 걸어나가 단상 앞에 나섰다. 곧이어 늙은 환관이 손에 검을 쥐여주며 속삭이듯 말했다.


“잘 해보시게나. 젊은이의 피를 보는 건 썩 유쾌하진 않으니 말일세.”


“동창(東廠)의 제독께서 걱정이 많으시군요.”


“늙으면 다 이리되는 법이라네. 괜한 눈칫밥만 늘어나거든.”


환관은 돌아가 황제의 옆을 지켰다. 웃고 있었다. 즐거움인지 비웃음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 웃음이었다.


‘씨발, 내가 왜 이딴 짓까지···.’


검을 뽑았다. 장식된 보석이 연회의 불빛을 반사하며 빛나고 있었다.


‘그냥 해봤자 아무 의미 없다. 재미없다면서 또 헛소리하겠지. 그렇다면···.’


춤을 추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가볍게 움직였다. 황제는 심드렁한 표정을 지으며 턱을 괴었다. 그렇다면 다음 동작은···.


“별 것 없군, 그래. 우리 제독께서 보기엔 어떤가? 고수의 눈으로 보면 좀 다른 게 보이나?”


“평범합니다. 지금 성안에 있는 아무 병사나 데려와도 똑같을 겁니다.”


“기대한 내가 바보 같군. 응? 지금 뭐 하는 거지?”


춤을 추다가 앞으로 넘어졌다. 놓친 검을 쥐고 일어서다 뒤로 자빠졌다. 겨우 일어서 비틀거리다 이번엔 술상 위로 쓰러졌다.


“어이쿠, 이런 죄송합니다.”


어처구니가 없는 광경에 황제가 입을 가리며 웃었다. 웃음소리가 퍼지자 온 관중이 함께 웃었다. 당사자와 또 한 명만 빼고 말이다.


“이런 식으로 분위기를 띄울 줄은 예상 못 했다.”


“감사합니다.”


“흥을 돋우는 것 말고 또 자신 있는 건 없나?”


“저는 여기 오신 분들은 하나같이 어느 분야에 두각을 나타내시지 않았습니까. 그에 비하면 저는 아무 재주도 없는 범인(凡人)이나 다름없습니다.”


“알았다. 그럼 다음으로 나올 사람은 없나? 범인조차 짐을 미소짓게 하였는데 그대들은 더욱 멋진 걸 보여주겠지. 자신 있는 자는 나와보라.”


연회장을 메우던 웃음소리가 멈췄고 정적에 휩싸였다. 모두 서로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아무도 없나?”


갑자기 열리는 문소리가 답을 대신했다. 이 황자가 말리는 호위를 물리치며 들어왔다.


“분위기가 왜 이렇습니까?”


“이 황자님?”


“오, 겨우 며칠만이지만 다시 보니 반갑군. 보아하니 칼질이라도 했나 본데, 그것도 엄청 격렬하게.”


“네가 여긴 웬일이냐?”


“제가 여기 오지 못 할 이유라도 있습니까?”


“왔으면 가만히 있다 돌아가라.”


“하하, 그냥 갈 수야 있겠습니까. 밖에서 들으니 흥을 돋우라 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니 이번엔 제가 한 춤 추지요. 손에 든 검을 내놔라. 거치적거리니 얼른 꺼지고.”


황자의 명에 자리로 돌아갔다. 진령이 머리를 닦을 천을 건넸다. 더러워진 머리를 살짝 털었다.


“괜찮나요?”


“목이 잘리는 것보단 훨씬 괜찮지요. 그런데 내가 나서지 않았으면 어쩔 생각이었습니까?”


“그건···.”


“앞으론 조심 좀 합시다. 그건 그렇고 황자는 왜 나타난 거야?”


황자는 술에 취해 있었다. 균형을 제대로 잡는 듯하면서도 가끔 발을 헛디뎠다.


“칼은 있건만 벨 것이 없으니 영 허전한데.”


사람들 앞에 서서히 다가갔다. 그러더니 이름 모를 누군가의 멱살을 잡았다.


“기름칠한 혓바닥을 자르는 게 좋을까? 아니면···.”


옆에 앉은 자의 손목을 쥐고 들어 올렸다.


“냄새나고 더러운 건 잔뜩 묻힌 손? 그것도 아니면···.”


이번엔 뒤통수를 잡고 그 상태로 술상에 박았다.


“지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목이 좋으려나.”


황자가 건든 자들은 모두 황족에게 알랑대던 간신들이었다. 황자가 다음 대상을 찾던 중에 커다란 목소리가 울렸다.


“주제안(朱濟安)!”


“응? 형님께서 나에게 신경을 쓰다니 별일입니다. 그래도 이름을 함부로 부르는 건 좀 그렇지 않습니까?”


“지금 뭐 하는 짓이냐?”


“뭐하긴요. 형님을 돕고 있지 않습니까? 이 나라에 아무 도움도 안 되는 벌레들을 치우려 하는 데 방해나 하시다니.”


“그만!”


황제의 일갈에 두 형제는 말을 멈췄다.


“오늘 자리는 여기까지다. 당장 내 눈앞에서 사라지도록.”


*


황자와의 술자리를 끝내고 머물던 객점에 돌아왔다. 정형 스님은 바람을 잠시 쐬겠다며 밖으로 나가셨다. 술기운을 깨려 빨리 잠자리에 들기로 했다. 문을 열고 내 방으로 들어갔다. 무언가 이상했다.


“거기 누굽니까?”


“감이 좋군요. 이야기나 하러 왔습니다.”


“당신이 누군 줄 알고.”


“들어도 손해를 보진 않을 겁니다. 만난 기념으로 작은 선물을 하나 드리죠.”


어둠 속에서 이름 모를 자는 무언가를 던졌다. 작은 병이었다.


“이게 뭡니까?”


“당신을 죽음으로 이끈 독.”


“뭐라고?”


“한 방울 먹어보면 내 말이 진짜란 걸 알 겁니다.”


“이걸 어디서 구했지? 당장 말해라!”


“하하, 오늘은 그냥 인사차 왔습니다. 다음에 만날 때 이야기해봅시다. 그럼 오늘은 이만.”


꿈을 꾼 건가 싶었다. 그러나 내 손에 있는 병은 진짜였다. 난생처음 듣는 목소리였다. 불을 켜보았지만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이게 날 죽인 독이라고, 정말로?”


문밖에도 창밖에도 아무도 없었다. 바람 소리만이 들려올 뿐이었다.


“그자는 도대체 누구지?”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창궁귀환(蒼穹歸還)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앞으로의 연재 21.06.04 104 0 -
공지 연재시간 21.05.13 619 0 -
22 죽은 자의 매장 21.06.03 347 7 7쪽
21 참(斬) 21.06.01 386 9 7쪽
20 위협 +1 21.05.29 499 10 7쪽
19 독이 든 병 21.05.28 511 11 7쪽
18 아름답다 21.05.26 602 10 7쪽
» 불청객 21.05.25 648 12 8쪽
16 달이 지는 자리 21.05.23 678 13 9쪽
15 황궁 21.05.22 709 14 10쪽
14 호환(虎患) 21.05.21 746 19 10쪽
13 초대장 21.05.20 802 15 10쪽
12 전야(前夜) +1 21.05.19 897 18 11쪽
11 명경지수(明鏡止水) 21.05.18 910 18 11쪽
10 자신만의 검 21.05.17 928 17 11쪽
9 직(直), 곡(曲), 원(圓) +2 21.05.16 979 18 9쪽
8 달빛 아래서 +3 21.05.15 1,030 22 12쪽
7 무당 +4 21.05.14 1,098 23 9쪽
6 집으로 +1 21.05.14 1,116 21 8쪽
5 징조 21.05.13 1,170 20 10쪽
4 흰 고래 +1 21.05.12 1,231 22 10쪽
3 만남 +1 21.05.12 1,346 19 10쪽
2 제갈세가의 망나니 +1 21.05.12 1,455 28 11쪽
1 귀환 21.05.12 1,925 35 1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