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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이태 님의 서재입니다.

창궁귀환(蒼穹歸還)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판타지

고이태
작품등록일 :
2021.05.12 13:13
최근연재일 :
2021.06.03 17:17
연재수 :
22 회
조회수 :
20,031
추천수 :
381
글자수 :
92,643

작성
21.05.23 17:27
조회
678
추천
13
글자
9쪽

달이 지는 자리

DUMMY

“으으, 머리야.”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처음 보는 곳이었다.


“사제, 일어났구나. 몸은 괜찮아. 더 아픈 데는 없고.”


“네, 사저. 근데 제가 얼마나 이러고 있었죠.”


“오늘로 3일 째야.”


“3일이나 됐다고요. 그러면 오늘이 바로···.”


“그래. 연회가 열리는 날이지.”


“큰일 났네요. 빨리 준비를 해야겠어요.”


“그럴 필요는 없어. 대신 네게 부탁하고 싶은 일이 있어.”


“네?”


밝게 빛나던 해가 어느새 구름 너머로 사라졌다. 빈자리를 달과 별이 메꿔야만 하건만 그러지 못했다. 길가에 널린 주점과 기루의 화려함이 하늘의 반짝임을 빼앗고 있었다. 이곳에서의 달과 별은 밤이 왔음을 알리는 신호에 지나지 않았다.


“눈이 멀 정도입니다. 소림에서는 해가 지면 촛불 하나가 의지할 전부였는데 여기는 한낮과 다른 바가 없군요.”


“저도 이렇게 화려한 건 처음입니다. 아, 이곳인가 봅니다. 낙월루(落月樓), 달이 지는 곳이라.”


몇 층이나 높게 올려진 기루가 우리를 맞이했다. 안쪽에서 젊은 기녀가 나와 안내했다.


“이리 오시지요. 먼저 기다리시는 분이 계십니다. 자리로 모시겠습니다.”


기녀는 우리를 제일 위층으로 이끌었다. 주위에는 기녀를 제외하고 아무도 없었다. 누가 기루 전체를 예약이라도 하였는지 손님이라곤 우리뿐인 듯했다.


“그런데 스님께선 괜찮으십니까?”


“기분이 썩 좋지는 않군요. 그래도 어쩔 수 없지 않습니까. 황제 아들 전하의 명이신데.”


긴 계단을 걸어 올랐다. 한 명이 창밖의 호수를 보며 차를 홀짝이고 있었다. 우리는 그자 앞에 앉았다.


“두 분 다 상처는 괜찮습니까?”


“네. 괜찮습니다. 의원님이 아니었으면 이렇게 걸어 다니지도 못했을 겁니다. 그런데 성함은 어떻게 되십니까?”


“그냥 류 의원이라 부르시죠.”


“알겠습니다. 혹시 제가 당한 게 어떤 독인지 아십니까?”


몇 초간 뜸을 들이다 류 의원은 말했다.


“잘 모르겠군요. 증상이라면 설명할 수 있습니다. 호흡곤란과 심장에 이상을 일으키다 결국 죽음에 이릅니다. 꽤 위험한 종류란 건 확실하죠.”


‘역시 알아내는 건 무리였나. 의원님 말고 독에 알만한 자라면···. 아, 한 분 계시구나.’


“황궁에서 폭죽을 쏘아 올리는군요. 연회가 시작됐나 봅니다.”


‘지금쯤이면 사저와 제갈첨은 연회장에 있겠지. 이 황자는 대체 우리를 부른 걸까, 연회에 불참하면서까지.’


귀를 울리는 폭발음에 가려진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발소리가 멈추자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올렸다. 이 황자였다.


“아, 다들 반가워.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네. 곧 한 상 가득 차려서 나올 거야. 내가 내는 거니 마음껏 드시게.”


“황자님, 여기 멀리서 온 두 분은 그렇다 쳐도 저까지 부른 이유는 무엇입니까? 황녀 전하에게 한시도 눈을 떼지 말고 지켜보라 하시지 않았습니까.”


“오늘은 괜찮지. 연회장엔 태의(太醫)도 함께 있을 터인데 무슨 일이라도 있으려고. 자네도 좀 쉬라는 의미에서 불렀지. 그것보다 두 사람은 나에게 궁금한 것이 많아 보이는데. 얼마든지 물어봐도 좋네.”


“그렇다면 하나 묻겠습니다. 이 자리의 목적은 대체 뭡니까?”


“핑계.”


내가 긴장하며 물은 것이 어색해질 정도로 짧은 대답이었다.


“그냥 연회를 빠지기 위한 핑계라 생각하게. 다쳐서 연회에 참석하지 못하는 사람을 내가 보겠다는 핑계. 자네들도 나중엔 나한테 고마워할걸. 내 덕에 재미없는 자리를 벗어났잖아. 거기다 내 사람을 멋대로 움직인 일도 그냥 넘어가고, 안 그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나중에 함께 온 자에게 물어보면 알겠지. 루주, 이제야 왔나.”


상위에 온갖 진미들이 차려졌다. 루주라 불린 여인은 황자의 잔에 술을 따랐다. 곧이어 의원에게 그다음은 나에게 술을 따랐다. 긴 눈썹과 하얗고 곧게 뻗은 손가락이 인상적이었다.


“스님도 받으시나요?”


“저... 저는 괜찮습니다.”


“아쉽군요. 쉽게 죽음과도 맞바꿀만한 맛인데.”


“그럼 그 몫까지 나한테 주지그래.”


“전하는 술을 너무 즐기십니다. 그러다 정말로 죽음과 맞바꾸시는 건 아니겠죠?”


“술이 아니면 화병으로 벌써 죽었을 터. 괜한 소리 말고 음악이나 부탁하지.”


“좋아요.”


루주는 자리에 앉아 악기줄을 만졌다. 줄이 튕기는 소리 사이에 그녀의 노랫말이 들렸다. 문득 창밖을 보았다. 밝음을 빼앗긴 줄 알았던 달이 호수 위에 고요히 비치고 있었다.


“이태백(李太白)의 월하독작(月下獨酌), 역시 루주야. 이러니 내가 여기를 두고 다른 곳을 찾아갈 수가 있나.”


“칭찬 감사드립니다. 다른 분은 어떠셨나요? 혹시 원하시는 곡이 있다면 말씀해주시죠.”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조용히 듣기만 하던 류 의원이 짧게 말했다. 루주는 곧바로 연주를 시작했다. 연주가 끝나자 그녀는 우리와 같이 자리에 앉았다.


“다들 귀는 즐거우셨나? 북경 최고의 실력을 자랑하는 노래 솜씨는 어떤가?”


“제가 예(禮)와 악(樂)은 잘 모릅니다. 그래도 매우 훌륭하다, 이것만은 확실히 느꼈습니다.”


“그렇지? 마음만 먹으면 관리도 장군도 심지어는 황족도 홀릴 여인이 이러고만 있으니.”


“또 그 말씀이신가요. 저번에도 말했듯 저는 그럴 전혀 생각이 없답니다. 제 마음을 가져간 자는 저에게 아무 생각 없으니까요. 그자가 아니라면 제 몸도 마음도 가져가지 못한답니다.”


“어디 사는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바보 같은 인간이군.”


상위에 요리가 거의 다 사라지고 술병도 바닥을 보였다. 술에 취한 황자를 류 의원이 모시고 먼저 떠났다. 우리도 갈 준비를 하였다. 루주가 문까지 마중 나왔다.


“조심히 돌아가시길.”


밤늦은 거리를 걸었다. 취하긴 했지만 움직이기 어려울 정도는 아니었다. 그러나 술을 전혀 마시지 않은 정형 스님은 몸이 불편하기라도 한 건지 움직임이 이상했다. 스님은 잠시 뒤를 돌아보며 작게 말했다. 너무 작은 소리라 잘 들리진 않았다.


“아름... 답다.”


*


기루에서 술을 마실 때의 일이다. 제갈첨과 진령은 그리고 공주까지 황궁에 들었다. 안내를 받고 연회장에 들었다. 공주는 안쪽 자리를 받았다. 제갈첨과 진령은 반대로 출입구와 가까운 자리였다.


“흠···.”


“왜 그러시죠?”


“이 자리, 제일 말석입니다. 공주님을 보시죠. 황제 폐하와 황족 바로 다음 자리입니다. 우리가 공주님과 같이 앉을 정도는 아니죠. 그러나 함께 온 우리를 굳이 멀리 떨어진 그것도 제일 낮은 자리에 앉힌 다라.”


“그 말은 우리를 무시한다는 뜻인가요?”


“그렇죠. 대충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 노골적으로 나올 줄은 몰랐는데.”


“어라? 저번에 본 형이랑 누나네.”


생각에 빠진 제갈첨을 삼 황자의 목소리가 깨웠다. 깜짝 놀란 제갈첨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전하, 이러시면 안 됩니다. 자리로 가시죠.”


같이 온 학사가 황자를 자리에 앉혔다. 황자는 옆에 앉은 공주에게 장난을 쳤다. 공주는 웃으며 같이 놀아주었다. 학사는 돌아와 제갈첨에게 말을 걸었다.


“제갈첨, 경고하는 데 어떤 일이 있어도 나에게 불똥은 튀지 않게 해라.”


“아, 형님. 여기 자리 배치 누구 생각이야? 형님이라면 무슨 이게 의미인지는 알잖아.”


“황제 폐하.”


“하, 자기가 초대한 손님을 자기가 푸대접한다고. 그게 말이 되는 소리야?”


“그러니까 말했잖아. 불똥 튀기지 말라고. 너와 내가 남이나 다름없지만 같은 피가 흐르는 건 부정할 수 없으니까. 네 헛짓거리에 내가 피해를 보는 건 사양이다.”


“말을 너무 섭섭하게 하는데.”


“네 잘난 아버지가 무슨 짓을 했었는지 잊었나?”


“그게 내 탓은 아니잖아.”


“그래. 아비의 죄를 자식에게 물을 순 없지. 하지만 그 혜택을 보는 건 바로 너잖아.”


제갈각은 황자에게 걸어갔다. 제갈첨은 고개를 위로 들며 한숨을 쉬었다.


“저기 저게 무슨 말이죠? 친척이라 하지 않았나요?”


“남보다 먼 친척도 있는 법이죠. 흔해 빠진 이야기입니다. 집안싸움 끝에 쫓겨난 장남, 그 자리를 차지한 동생. 너무도 흔한 이야기죠.”


연회장에 정적이 흘렀다. 문을 열고 늙은 환관의 보필 아래 황제와 황후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 단상 위에 앉은 황제가 입을 열었다.


“다들 와줘서 고맙군. 편히 즐겨주길 바라네.”


밖에서 폭죽이 터졌고 연회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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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죽은 자의 매장 21.06.03 347 7 7쪽
21 참(斬) 21.06.01 386 9 7쪽
20 위협 +1 21.05.29 499 10 7쪽
19 독이 든 병 21.05.28 511 11 7쪽
18 아름답다 21.05.26 602 10 7쪽
17 불청객 21.05.25 648 12 8쪽
» 달이 지는 자리 21.05.23 679 13 9쪽
15 황궁 21.05.22 709 14 10쪽
14 호환(虎患) 21.05.21 746 19 10쪽
13 초대장 21.05.20 802 15 10쪽
12 전야(前夜) +1 21.05.19 897 18 11쪽
11 명경지수(明鏡止水) 21.05.18 910 18 11쪽
10 자신만의 검 21.05.17 928 17 11쪽
9 직(直), 곡(曲), 원(圓) +2 21.05.16 979 18 9쪽
8 달빛 아래서 +3 21.05.15 1,030 22 12쪽
7 무당 +4 21.05.14 1,098 23 9쪽
6 집으로 +1 21.05.14 1,116 21 8쪽
5 징조 21.05.13 1,170 20 10쪽
4 흰 고래 +1 21.05.12 1,231 22 10쪽
3 만남 +1 21.05.12 1,347 19 10쪽
2 제갈세가의 망나니 +1 21.05.12 1,455 28 11쪽
1 귀환 21.05.12 1,925 35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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