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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이태 님의 서재입니다.

창궁귀환(蒼穹歸還)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판타지

고이태
작품등록일 :
2021.05.12 13:13
최근연재일 :
2021.06.03 17:17
연재수 :
22 회
조회수 :
20,032
추천수 :
381
글자수 :
92,643

작성
21.05.14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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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9쪽

무당

DUMMY

*


눈이 나리기에 겨울이 오는가? 겨울이 오기에 차가운 눈꽃이 피는 것이다. 아무리 눈을 녹여도 결국에 겨울은 온다. 두 손으로 끝없이 퍼내 결국 썩어 문드러진다 하여도 겨울은 온다. 봄처럼 따스했던 행복한 시절이 지나감을 아무리 막으려 하여도 그 짧은 순간은 언젠가 끝나고 어느샌가 눈물로 지새우는 날을 마주하는 법이다. 지금에 와서 돌아본 내 인생이 그러했다. 스승님을 만나고 얼마 안 되는 순간이 봄이라면 그 뒤는 시린 겨울이었다. 만약 그 시절의 내가 훗날의 일을 알 수 있었더라면 그저 흘러가듯 보내지 않았을 텐데. 단 하나도 놓치지 않고 기억 속에 담아뒀을 텐데. 그러나 너무 늦었다. 나는 책장 구석에 있는 먼지 쌓인 책을 꺼내 읽는 것처럼 내 가슴 깊은 곳에 박힌 아련하고도 희미한 추억을 꺼내 곱씹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그것이 아무런 의미도 없는 자기만족에 불과할지라도.


*


일주일이 흘렀다. 그 사이 동생을 만나기도 하고 어머니를 뵙기도 하였다. 동생은 여전히 날 따랐으나 어머니는 여전히 날 좋게 보지 않으셨다. 그렇게 이전의 짧은 여행이 아닌 긴 출가(出家)의 때가 왔다.


“가면서 쓸만한 것들을 준비했습니다. 더 필요한 건 없으십니까?”


“이것도 과하다. 누가 보면 전쟁이라도 가는 줄 알겠어.”


“그래도 준비한 건 받아가시지요. 아무쪼록 제 아들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오냐. 자, 이제 출발한다.”


마중 나온 가족들에게 간단한 인사를 올렸다. 문이 열렸다. 그리고 나는 모든 것이 바뀔 한 발자국을 내디뎠다.


“무당까지 갈려면 한참 걸리겠군. 제자야, 뭐 궁금한 거라도 있느냐?”


“으음···. 스승님, 처음에 뵀을 때 산동(山東)으로 간다고 하셨죠? 그 이유는 뭡니까?”


스승의 얼굴이 갑자기 어두워졌다.


“썩 재밌는 이야기는 아니다. 너도 20년 전의 전쟁은 알고 있지? 너무도 많은 사람이 죽었다. 그리고 그중에는 내 첫 제자도 있었다. 그 녀석이 죽은 곳이 바로 산동이야.”


“죄송합니다.”


“아니다. 그 녀석이 죽고 나니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더구나. 그래서 세상에 등을 돌렸다. 다른 궁금한 건?”


“그러면 은거할 당시의 일을 알고 싶습니다.”


“별다를 건 없다. 그냥 하루 먹고 하루 자고 그런 일상이었지. 굳이 말하자면 거기서 제자를 하나 들였지. 네 사형이라고도 볼 수 있겠구나. 천기(天氣)가 밖에서 주워온 아이였다. 이름은 유하경(劉河鏡), 정말 대단한 녀석이었어. 우리 일곱 명의 모든 것을 닥치는 대로 배워나갔지. 내가 만난 사람 중 그 녀석보다 뛰어난 재능은 없었다. 재능만 놓고 보면 직접 가르친 우리도 한 수 접어야 했으니까.”


‘천기라면 20년 전 제갈세가를 넘어서 당대의 천하제일뇌(天下第一惱)로 평가받은 사파의 거인, 그자도 죽림에 있었나.’


“그 사람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나도 모른다. 몇 년 전 죽림을 떠났다. 언젠가는 천하에 이름을 떨칠 녀석이니 너도 만날 수 있을 게다.”


‘내가 알기로 스승님은 화경을 넘어선 현경의 경지를 이룩했다. 그런 스승님조차 넘어선 재능? 그런 분이 내 사형이라···. 대체 누구일까?’


몇 주간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하며 길을 걸었다. 마침내 호북성(湖北省)에 자리 잡은 무당산이 보였다.


“여긴 언제봐도 똑같이 생겼어. 발목까지 올라오는 낙엽에 더럽게 가파른 계단까지 바뀐 게 하나 없어.”


계단을 계속 올라나갔다. 산 정상이 눈에 보일 무렵 무당파의 현판이 보였다. 현판 아래에서 젊은 두 도인(道人)이 수다를 떨고 있었다. 사람이 오는 걸 눈치채고서는 각을 잡고 다시 자세를 잡았다.


“어르신은 누구십니까?”


“여기 도사다.”


“처음 뵙는 분이신데 무슨 말을 하시는 겁니까?”


“너희가 어려서 날 모르나 본데 잔말 말고 문이나 열어라.”


“말씀이 너무 무례하시군요. 신분도 확인되지 않은 자에게 문을 열 수는 없습니다.”


“이거 전에도 있었던 일 같은데 부수고 갈 수도 없고 참.”


끝날 줄 모를 입씨름이 벌어졌다. 소란을 듣고 누군가 나타났다.


“이게 무슨 소란이냐. 무당의 얼굴이나 다름없는 곳에 말이다.”


“장로님! 다름이 아니오라 여기 이분께서 무작정 들어오겠다 하셔서···.”


“대체 누구길래? 어? 어? 설마···.”


장로라고 불린 자는 놀라서 입을 다물지를 못했다.


“너 청호(淸湖) 맞지? 알아봤으면 저 녀석들 좀 치워봐라.”


“아이고, 사형 이제야 오셨습니까? 어서 들어오시죠. 야, 이놈들아! 너흰 나중에 보자.”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두 도인은 어안이 벙벙했다. 청호의 안내에 따라 드디어 무당파의 안에 들어갔다.


“사형, 아무 연락도 없이 오시면 어떡합니까? 그럼 미리 준비했을 텐데요.”


“내가 그런 거 싫어하는 거 알면서 물어보냐? 다른 녀석들은?”


“청명(淸明) 사형이 현재 장문인이고, 청영(淸影) 사저는 무당의 후기지수(後起之秀)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어라? 이 소년은 누굽니까?”


“그건 다 모이면 말해주마.”


무당의 중심에 해당하는 자소궁에 도착했다. 청호는 들자마자 목소리를 크게 외쳤다.


“사형, 사저, 얼른 여기 와보시오. 급한 일이오.”


소리가 궁 안에서 울려 퍼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노년의 남성과 여성이 내려왔다.


“무슨 일이냐?”


“아무리 급한 일이어도 이리 경망스러워서야 원.”


두 사람 모두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청호와 마찬가지로 스승님의 얼굴을 보자마자 화난 얼굴은 사라졌다.


“사형!”


“사형!”


“다들 오랜만이다.”


“갑자기 사라지시고 지금껏 무엇을 하셨습니까? 아니, 그런 게 뭐가 중요하겠습니까. 돌아오셨으니 됐지요. 옆에 있는 아이는 누구입니까?”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지. 내가 새로 들인 제자다. 여기서 가르칠 생각이다. 이전에 진무(眞武)와 지내던 집이 있지? 거기서 지내겠다.”


청영이라 불린 여성은 남궁현을 빤히 쳐다보았다.


“넌 이름이 뭐니?”


“네, 저는 남궁현이라 합니다.”


나는 곧게 자세를 잡고 당당히 말했다.


“남궁현? 남궁? 잠깐만, 남궁세가의 소가주가 아닙니까, 사형? 절대 안 됩니다. 외인(外人)을 직전제자(直傳弟子)로 들이다니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나라고 모를 것 같나. 속가제자로 들이고 무당의 절기도 알려주지 않을 거다. 그저 무의 묘리나 알려줄 셈이야.”


“그래도 안 됩니다. 무당의 계율에 어긋나는 일 아닙니까? 장문 사형께서도 한 말 하시지요.”


“그렇습니다. 평범한 아이였으면 저도 반대하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오대세가의 소가주를 제자로 들이다니요.”


“흐흐, 하하하!”


스승님은 갑자기 큰소리로 웃었다. 기분 좋은 웃음이 아니었다. 그 안에는 무언가 광기가 담겨있었다. 소리를 들은 모두가 오싹한 기운이 발에서부터 올라오는 걸 느꼈다.


“계율? 진무, 내 제자의 목을 바치고 내 손에 피를 묻히고 지킨 무당의 계율이라. 내가 아니었으면 벌써 다 죽었을 놈들이 나에게 계율을 논해? 제자들이 죽을 때 뒤에서 몸이나 사리던 것들이 감히···. 오래 못 봤더니 내 성질을 잊은 모양이지?”


“아이고. 청강 사형, 진정하십시오. 장문 사형이랑 청영 사저가 괜히 걱정돼서 한 말입니다. 그렇죠?”


“크흠. 죄송합니다, 사형. 마음 가는 대로 하십시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너무 흥분했습니다.”


청호의 만류와 함께 두 사람이 한발 뒤로 물러나자 스승님은 표정을 풀었다.


“나는 이만 가겠다. 현아, 가자. 그리고 경고 하나 하지. 두 번 참는 일은 없을 거다.”


한바탕 일이 벌어지고 자소궁을 나왔다. 나는 스승님을 따라 한참을 걸었다. 발끝이 도착한 곳에는 작은 폭포가 있었다. 그 옆에는 작은 오두막이 하나 세워져 있었다.


“앞으로 지낼 곳이다. 나는 잠시 어딜 다녀올 테니 안에서 쉬고 있어라.”


말을 마친 스승님은 금세 사라졌다. 나는 오두막에 들어가 짐을 풀었다. 오랫동안 쓰지 않은 탓인지 먼지가 수북이 쌓여있었다. 보다 못한 남궁현은 안에 있던 빗자루를 들고 청소를 시작했다. 청소가 한창일 때 밖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스승님이 돌아오신 건가?’


밖으로 나가니 스승이 아닌 처음 보는 여성이 있었다. 나보다 한두 살 정도 많아 보였다. 아직은 앳된 소녀였으나 하얀 피부와 크고 맑은 눈을 보면 훗날에 미인이라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소저께서는 누구십니까?”


“네가 이번에 온 청강 사백(師伯)의 제자야?”


“제 스승님의 도명이 청강은 맞습니다만 대체 누구신지?”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녀는 칼을 빼 들고 달려들었다. 당황한 나는 들고 있던 빗자루를 내던지고 자신의 검을 들었다.


“나는 도저히 이해가 안 돼. 네 실력을 보여봐.”


난데없는 비무가 시작되었다.


작가의말

 첫 문장의 ‘눈이 나리기에’는 원래 ‘눈이 내리기에’가 맞는 표현입니다만 제가 백석 시인의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라는 시를 좋아해서 표현을 인용해보았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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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죽은 자의 매장 21.06.03 347 7 7쪽
21 참(斬) 21.06.01 386 9 7쪽
20 위협 +1 21.05.29 499 10 7쪽
19 독이 든 병 21.05.28 511 11 7쪽
18 아름답다 21.05.26 602 10 7쪽
17 불청객 21.05.25 648 12 8쪽
16 달이 지는 자리 21.05.23 679 13 9쪽
15 황궁 21.05.22 709 14 10쪽
14 호환(虎患) 21.05.21 746 19 10쪽
13 초대장 21.05.20 802 15 10쪽
12 전야(前夜) +1 21.05.19 897 18 11쪽
11 명경지수(明鏡止水) 21.05.18 910 18 11쪽
10 자신만의 검 21.05.17 928 17 11쪽
9 직(直), 곡(曲), 원(圓) +2 21.05.16 979 18 9쪽
8 달빛 아래서 +3 21.05.15 1,030 22 12쪽
» 무당 +4 21.05.14 1,099 23 9쪽
6 집으로 +1 21.05.14 1,116 21 8쪽
5 징조 21.05.13 1,170 20 10쪽
4 흰 고래 +1 21.05.12 1,231 22 10쪽
3 만남 +1 21.05.12 1,347 19 10쪽
2 제갈세가의 망나니 +1 21.05.12 1,455 28 11쪽
1 귀환 21.05.12 1,925 35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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