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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이태 님의 서재입니다.

창궁귀환(蒼穹歸還)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판타지

고이태
작품등록일 :
2021.05.12 13:13
최근연재일 :
2021.06.03 17:17
연재수 :
22 회
조회수 :
20,023
추천수 :
381
글자수 :
92,643

작성
21.05.17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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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자신만의 검

DUMMY

연무장에는 온갖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무당의 사람들뿐만 아니라 쉬이 볼 수 없는 근처의 명사(名士)들도 한 자리씩 차지하고 있었다. 스승님을 비롯한 무당의 장로들은 장문인의 옆자리에 앉아있었다.


“시끌벅적하군요. 항상 새 울음소리, 바람 소리만 들리는 곳에서 이렇게 활기찬 건 오랜만입니다. 안 그렇습니까, 사형들?”


“조용히 해라, 청호. 사람들이 보고 있지 않으냐.”


“에이, 사저. 다들 아이들만 신경 쓰는데 누가 우릴 보겠습니까. 좀 편안히 즐기시죠.”


청영과 청호, 두 사제의 말다툼은 신경 쓰지 않은 채 스승님은 차례로 줄 서 있는 일대제자들을 보았다.


“청명, 저기 맨 앞에 선 녀석은 뭐냐?”


“아, 저 녀석이요. 제 제자입니다. 이름은 진규라고 합니다. 훗날 제 뒤를 이어 무당을 이끌 녀석이죠.”


“저 중엔 저 녀석이 제일 낫군. 별다른 이변이 없으면 저 녀석이 우승하겠어. 경지는 초절정, 다른 녀석 중에서도 초절정은 몇 보이지만 저놈은 느껴지는 기도가 달라.”


“이건 의외군요. 저는 사형이 남궁현, 저 아이를 편들 줄 알았는데요.”


“저 아이가 아직 부족하다는 건 내가 제일 잘 안다. 하지만 이거 하나 장담하지. 우승은 네 제자일지 몰라도 가장 재미있는 순간은 내 제자가 나올 때일 거다.”


“이거 기대되는군요. 그럼 기다리기도 슬 지치니 시작해봅시다.”


청명은 일어나 단상 위에 올랐다. 장문인의 등장에 모두 숨을 죽이고 입을 닫았다.


“자리에 참석해 빛내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리오. 그럼 이제 시작하겠소. 각 제자는 나와서 순서대로 여기 상자에 들어있는 종이를 하나씩 뽑아라.”


모두 하나씩 종이를 뽑았다. 종이에는 제각각 다른 숫자들이 적혀있었다.


“적혀있는 숫자가 바로 대진이다.”


비어있는 대진표에 제자들의 이름이 하나씩 채워졌다. 내 차례는 순서상 제일 마지막이었다.


“그럼 시작하겠다. 일(一)과 이(二)는 비무를 준비하라.”


본격적인 비무가 시작되었다. 기대와 달리 싱겁게 끝났다. 같은 일대제자라도 수준 차이가 나는 법이니 당연한 일이었다. 몇 번의 비무가 그렇게 끝나고 내 차례가 다가왔다.


“마지막 숫자를 뽑은 둘은 단상 앞으로 나오도록.”


나는 앞으로 나왔다. 나오는 와중에도 어제 든 생각이 멈추질 않았다. 단상 위에 올라서 상대를 보고 나서야 겨우 멈췄다.


“진령 사저가 첫 상대일 줄은 몰랐군요.”


“너 전에는 적당히 봐줬지만, 오늘은 아니야. 다치기 싫으면 그냥 포기해.”


“그건 좀 힘들겠는데요. 그냥 포기하면 스승님이 절 가만히 두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쉽게 질 것 같은 느낌이 안 드네요.”


“너는 역시 맘에 안 들어.”


시작을 알리는 북소리가 울려 퍼졌다. 모두가 단상 위를 보았다. 그러나 서로를 가만히 지켜보고 있을 뿐이었다.


*


“먼저 들어오지, 그래.”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입으로 작게 무언가를 말하고는 있었으나 사저에게 들릴 정도는 아니었다.


“무시하는 거야?”


사저의 말에도 나는 가만히 있었다. 얕보였다는 생각인지 사저는 검을 뽑고 빠르게 달려들었다. 그제야 나는 검을 쥐고 고개를 약간 들었다.


첫 합은 서로 가볍게 부딪혔다. 사저는 살짝 물러났으나 나는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고 그 자리 그대로 있었다. 계속 입으로 무언가를 말하면서 사저을 응시하고 있었다. 눈에는 뭐라 형용할 수 없는 광기가 서려 있었다.


“뭐야? 한 달 전이랑은 분위기가 다르잖아.”


잠시 주춤했으나 이내 마음을 다잡고 다시 공격을 가했다. 이전처럼 내 움직임에 맞춰 공격을 가하려 했다. 그러나 결과는 이전과 달랐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모든 타격을 흘려보냈다.


‘나는 곡선을 모른다. 무엇이 곡선을 만드는지 어떻게 곡선이 되는지 그 무엇도 모른다. 내가 아는 건 오직 직선.’


들어오는 공격을 가만히 지켜본다.


‘그러니 나는 직선으로 곡선을 만든다.’


팔의 위치를 고정한다. 움직이는 건 오직 손목뿐.


‘같은 곳에서 모든 방향으로 뻗어 나가는 직선, 모든 직선이 모이면 완성되는 것, 바로 원.’

과하게 들어간 힘을 줄이고 가볍게 가볍게 손목을 움직인다.


‘원은 둥글지 않다. 그저 둥글어 보일 뿐이다. 원은 직선이다. 그리고 곡선이다.’


수없이 많은 검의 잔상이 모여 하나의 원이 되었다. 원은 작아지기도 커지기도 하면서 계속 모습을 바꿨다. 변화무쌍한 모습에 사저의 공격은 변변히 원의 끝에 걸려 막혀버렸다.


둘 사이의 간격이 점점 더 좁아졌다. 나는 원을 만들며 조금씩 앞으로 나아갔다. 사저는 오히려 수세에 몰렸다. 계속 뒤로 물러나다 결국 단상 끝까지 밀려났다.


‘직선을 다시 하나로 모아 한 곳에 힘을 집중한다.’


단전 깊은 곳에서 내공을 끌어 올려 자세를 잡았다. 제왕검형(帝王劍形), 남궁가 최고의 검법이 펼쳐지고 있었다.


“전에는 이걸 못 보여드렸죠, 사저.”


“아···.”


검이 호쾌하게 춤을 추었다. 쾌와 강, 둘의 극한을 추구하는 검법인 제왕검형. 사저는 막으려 했으나 검이 버티지 못하고 부러져버렸다. 그러고는 바닥에 주저앉았다. 쓰러짐과 동시에 다시 한번 북소리가 울려 퍼졌다.


“승자 남궁현!”


그렇게 비무회의 일 차전은 모두 끝났다.


*


경기를 본 장로들의 얼굴은 모두 굳어있었다. 단 한 명만 빼고 말이다. 청영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사형, 저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무당의 검을 배우지 않은 아이가 저런 검법을 구사하다니요. 그것도 모자라 자기만의 공간을 만들다니. 이제 겨우 일류인데.”


“하하하! 내가 말했지 저 녀석이 제일 재밌을 거라고. 사고 한 번 제대로 쳤어.”


스승님은 상을 한 손으로 두들기며 크게 웃었다.


“역시 내 눈이 틀리지 않았어. 암, 저 정도는 해줘야 내 제자라 말할 자격이 있지.”


“사형, 대답해 주시지요. 사형께서 저 아이에게 무당의 검을 가르친 겁니까? 이전에 무당의 검은 전수하지 않기로 하였을 터인데요.”


“쯧, 네 눈은 옹이구멍이냐. 저건 무당의 검법이 아니다. 언뜻 보기엔 비슷해 보이지만 본질은 전혀 달라. 청명은 눈치챈 듯하군.”


“맞다, 청영. 저건 저 아이만의 검이다. 오직 저 아이만의 무공이자 저 아이만이 쓸 수 있는 검이다. 사형이 직접 가르친 겁니까?”


“아니. 나는 그저 곡선이 무엇인지만 보여줬을 뿐 그 너머는 저 아이 스스로 해낸 일이다.”


“들으면 들을수록 경외감이 드는군요. 저 정도의 자질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아무리 하찮은 무공이라도 스스로 창조해내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일인데 겨우 일류인 아이가 그걸 해내다니.”


“저 아이를 처음 봤을 때부터 느꼈지. 보통이 아니라고 말이야. 저 스스로 알지는 못하지만 분명 천고의 기재다. 쉽사리 포기하지 않는 성격에 괜찮은 인격, 거기다가 향시를 칠 정도의 두뇌까지 갖췄다. 체질은 좀 부족하지만 그건 내가 메꿔주면 되겠지.”


“이거 잘못하면 제 제자가 아니라 저 아이가 우승을 차지하겠군요.”


“그럴 수도 있겠지. 나도 저 정도로 해낼 줄은 몰랐으니. 하지만 아마 그리되지는 않을 거다.”


기뻐하던 스승님은 이내 표정이 바뀌었다.


‘하지만 이상하군. 어떻게 저 아이가 그걸 쓸 수 있는 거지? 제 아비께 배웠다 치더라도 일류 수준으로 펼칠 수 있는 것이 아닌데.’



*


비무회의 이 차전이 시작되었다. 이번 차례는 첫 번째였다. 상대는 바로 장문인의 제자였다. 처음 보는 둘은 서로 공손히 인사를 나눴다.


“반갑구나. 나는 진규, 장문인님을 스승으로 모시고 있지. 말로만 들은 청강 사백의 제자가 이 정도일 줄은 몰랐어. 진령이가 우리 중에 젤 어린 나이긴 하지만 그래도 무공의 깊이는 우리 못지않았거든. 그런데 그렇게 압도적으로 이길 줄이야.”


“반갑습니다, 진규 사형. 그저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


“겸손 떨 거 없어. 넌 정말 대단해. 방심하다간 나도 지겠지. 그래서 미리 양해를 구한다. 비겁하다고 말해도 상관없어.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완벽히 이길 수 없을 거 같거든. 혹여라도 내가 지면 스승님의 얼굴에 먹칠하는 셈이니까.”


북소리가 울리자마자 진규는 자신의 모든 내공을 쏟아부었다. 아무런 무공이나 검법도 없이 그저 내공으로만 밀어붙이는 공격에 당황했다. 재빨리 원을 그렸으나 압도적인 힘의 차이에 버티지 못하고 원은 깨져버렸다.


‘이것이 모든 것을 삼키는 파도, 뿌리마저 뽑아버리는 폭풍인가.’


그런 생각이 듦과 동시에 경기는 끝났다.


“승자 진규!”


일 차전과는 다르게 너무나 싱거운 결과였다. 승리한 진규는 이후 경기도 모두 승리하고 우승을 차지했다.


모든 일정이 끝나자 스승님이 다가왔다.


“잘했다. 정말로 곡선을 만들 줄은 나도 예상하지 못했다. 그것도 자신만의 방식을 만들어서 해낼 줄이야. 결과와 상관없이 네가 제일 뛰어났다. 제대로 경기를 본 녀석이면 누구나 너를 우승으로 생각할 게다.”


“아직 부족합니다. 저는 아직 갈 길이 멉니다.”


‘그래. 아직도 흑사련주를 잡기엔 너무도 부족하다.’



“이 녀석이 몸은 아직 작으면서 그 안에는 아주 욕심이 그득그득 하구나. 다 치우고 오늘은 아무 생각 말고 그냥 쉬어라.”


지친 몸을 이끌고 스승님과 함께 오두막으로 돌아왔다.


“다시 말하지만, 오늘은 아무 생각 말고 푹 쉬어라. 그동안 나는 어딜 좀 다녀오겠다.”


스승님의 말에 따라 남궁현은 폭포에서 땀에 젖은 몸을 씻고 침상에 누웠다. 자리에 누우니 어제부터 단 한숨도 자지 않은 탓에 단숨에 피로가 몰려왔다. 잠을 자던 와중 밖에서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소리에 잠에서 깬 나는 문을 열었다. 문을 두드린 사람은 바로 진령 사저였다. 그녀는 자신의 검을 이리저리 매만지며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가만히 있었다.


“어···. 무슨 이유로 오셨습니까, 사저?”


“그게 말이지. 그러니까 내가 이런 말 할 자격은 없지만···.”


사저는 우물쭈물하면서 쉽사리 말을 이어나가지 못했다. 말을 꺼내려 하면 다시 입을 닫았다. 그렇게 일각이 지날 때가 돼서야 하려던 말을 마저 이어나갔다.


“저에게 검을 알려주세요.”


이상했다. 내가 아는 사저였다면 절대 이러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를 사제가 아닌 사형처럼 대하는 사저, 거기에 맞춘 듯한 경어까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혼란스러워 하는 나를 사저는 가만히 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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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독이 든 병 21.05.28 511 11 7쪽
18 아름답다 21.05.26 602 10 7쪽
17 불청객 21.05.25 647 12 8쪽
16 달이 지는 자리 21.05.23 678 13 9쪽
15 황궁 21.05.22 709 14 10쪽
14 호환(虎患) 21.05.21 746 19 10쪽
13 초대장 21.05.20 801 15 10쪽
12 전야(前夜) +1 21.05.19 897 18 11쪽
11 명경지수(明鏡止水) 21.05.18 910 18 11쪽
» 자신만의 검 21.05.17 928 17 11쪽
9 직(直), 곡(曲), 원(圓) +2 21.05.16 978 18 9쪽
8 달빛 아래서 +3 21.05.15 1,030 22 12쪽
7 무당 +4 21.05.14 1,098 23 9쪽
6 집으로 +1 21.05.14 1,115 21 8쪽
5 징조 21.05.13 1,170 20 10쪽
4 흰 고래 +1 21.05.12 1,231 22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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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제갈세가의 망나니 +1 21.05.12 1,454 28 11쪽
1 귀환 21.05.12 1,925 35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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