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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이태 님의 서재입니다.

창궁귀환(蒼穹歸還)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판타지

고이태
작품등록일 :
2021.05.12 13:13
최근연재일 :
2021.06.03 17:17
연재수 :
2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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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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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92,643

작성
21.05.15 17:00
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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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달빛 아래서

DUMMY

*


비무가 벌어지기 직전의 일이다. 스승은 무당의 의술과 영약을 담당하는 정동궁에 들었다. 거기에는 청호(淸湖)가 궁주로 있었다.


“사형, 여긴 어쩐 일입니까?”


“이것 때문이다. 아까 줬어야 했는데 내가 너무 흥분해서 주지 못했다.”


스승이 내민 것은 작은 영단 3개였다. 청호는 그중 하나를 집어 들고는 빤히 쳐다보며 냄새를 맡았다.


“밝은 보랏빛과 은은히 퍼지는 이 향기, 이거 설마 자소단입니까? 그 전쟁 때문에 제작법이 실전되었는데 믿을 수가 없군요.”


“맞다. 내가 신의(神醫)한테 부탁해서 만들었다.”


“그분도 전쟁이 끝나고 같이 은거하셨죠. 그분이 아니었으면 전쟁 때 훨씬 더 많은 사람이 죽었을 겁니다. 그분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남의 병은 잘 고치는 놈이 제 수명은 못 고치더라. 얼마 전에 죽고 내가 장례를 치렀지.”


“이거 안타깝군요. 혹시 필요하신 건 없으십니까? 제가 내드릴 수 있는 건 다 드리겠습니다.”


“음, 그럼 제자가 먹을 벽곡단이랑 약재 정도만 다오.”


“알겠습니다. 벽곡단은 일단 한 달 치면 되겠고, 한창 성장기인 나이니까 약재는 이거랑 또 이거···.”


청호는 중얼거리며 서랍을 열었다. 그 안에서 계속 무언가를 꺼내고 있을 때 누군가 들어왔다.


“청호야, 혹시 진령(眞玲)이가 여기 오지 않았냐? 아, 사형께서도 여기 있었군요.”


청영은 아까 일 때문인지 조금 어색하게 말했다.


“어라, 진령이요? 오늘은 여기 안 왔는데요.”


“방에도 없고 연무장에도 없어서 약 받으러 여기 온줄 알았는데 이 애가 어딜 간 거지?”


스승은 가만히 말을 듣다가 돌연 밖을 쳐다보았다. 오두막이 있던 방향이었다.


“진령이가 대체 누구냐?”


“제 제자입니다.”


“혹시 네 제자가 절정 정도의 경지냐?”


“맞습니다. 그건 어떻게 아셨습니까?”


“어딨는지 알겠군. 청영, 너는 날 따라와라.”


*


“대체 누구시길래 이러시는 겁니까?”


소녀의 검은 빠르고 정확했다. 내가 자세를 잡으려 하면 손목과 관절에 공격이 들어왔다. 제대로 된 반격 없이 소녀의 공세에 끌려다녔다.


“경지는 일류, 나쁘지는 않지만 엄청나게 대단한 것도 아니야. 그렇다고 무공의 이해가 빼어나 보이지도 않고. 대체 사백께서는 왜 너를 제자로 들인 거지?”


‘이 여자, 대체 뭐야? 이유도 제대로 말하지 않고 밑도 끝도 없이 공격하다니. 살의(殺意)는 느껴지지 않지만, 그렇다고 가만히 앉아서 당할 수는 없지.’


재빨리 거리를 벌렸다. 그러고는 내공을 단전 깊은 곳으로부터 최대한 끌어올렸다.


‘냉정히 말해서 지금의 나는 이 정신 나간 여자보다 한 수 아래다. 그렇다면 방심하고 있을 때 한 방으로 끝낸다.’


소녀는 내 모습을 보고선 옅은 미소를 띄웠다. 내가 했던 것처럼 자신도 내공을 끌어올렸다.


“아, 그렇게 나온단 거지. 그럼 나도 같은 수로 가볼까.”


둘 사이에 정적이 흘렀다. 정적을 깨고 먼저 움직인 건 나였다. 그걸 본 소녀 역시 바로 응수에 들어갔다. 서로의 검이 서로의 검을 향해 맹렬히 부딪히려 하고 있었다.


“그만!”


갑자기 들린 큰 소리에 우리 둘 다 균형을 잃고 바닥에 넘어졌다. 넘어진 우리를 청영 사숙은 매우 화난 얼굴로 노려보고 있었다.


“오늘 온 저 아이가 먼저 싸움을 걸었을 리는 없고. 진령, 네가 벌인 일이렷다.”


“스... 스승님 이게 그러니까 그게 아니라.”


소녀는 변명하려 했으나 당황하여 말도 제대로 하지도 못했다.


“내가 분명히 두 번 참는 일은 없을 거라 했는데 하루도 안 돼서 그럴 줄은 몰랐어. 너도 그렇다 생각하지 않나, 청영?”


“아···.”


청영은 자신을 스승이라 불린 소녀의 머리를 부여잡고 바닥에 엎드렸다. 소녀 역시 힘에 이끌려 강제로 바닥에 엎드렸다.


“스승님?”


“죄송합니다, 사형.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제 책임입니다. 그러니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아직 철도 안 든 아이입니다. 이 아이는 부디 용서해 주십시오. 너도 빨리 사과드려라.”


“죄송합니다···.”


소녀는 마음이 상한 듯 말끝을 흐렸다. 자존심이 상해서일까? 아니면 존경하는 스승이 머리를 숙여서일까?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그건 내가 알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쯧, 됐다. 나도 아이들 일을 크게 만들 생각은 없으니까. 그 아이 데리고 이만 물러가라.”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너한테도 사과해야겠구나. 미안하다.”


청영은 소녀를 데리고 자리를 벗어났다. 스승님은 자신의 턱을 매만지며 나를 살폈다.


“어디 다친 데는 없느냐?”


“괜찮습니다. 근데 저 여자는 대체 누굽니까?”


“글쎄다. 청영이 들인 제자라고는 하는데 나도 처음 본다. 이름은 보자 진령이라 했었지. 생각해보니 그 녀석의 제자면 항렬 상 너한테는 사저가 되는구나.”


‘진령? 설마 그녀가 낙화검(洛花劍)? 지금 와서 보니 전생에 만난 그녀와 많이 닮았다. 하지만 이상하다. 내가 아는 그녀는 그렇게 감정적으로 움직일 리가 없는데. 기억 속의 모습은 오히려 차갑디차가운 성격이었지. 심지어는 흑사련주와 같이 싸울 때도 아무 말 없이 그저 따라오기만 했지.“


“으음···.”


“왜 그러느냐?”


“이유 없이 검을 들고 달려드는 여자가 사저라니···. 좀 그래서요.”


“하하. 앞으로 그럴 일은 없을 거다. 청영이가 따끔하게 혼을 내겠지. 그건 그렇고 비무는 어땠냐?”


나는 자신의 검을 빤히 쳐다보았다.


“졌습니다. 단 한 번도 공격이 제대로 들어간 적이 없습니다. 마지막 공격이 들어갔으면 모르겠지만, 그 전까지는 완벽한 패배입니다.”


“무공의 경지만 보면 네가 진 건 당연한 일이지. 하지만 단 한 번도 공격이 들어가지 않았다는 건 좀 문제로군. 그 정도로 압도적인 차이는 아닐 텐데.”


스승님은 오두막에 들어갔다. 들어가서 안을 한참 뒤지고서는 웬 쇳덩이를 꺼냈다.


“원래 오늘은 쉬고 내일부터 수련을 시작하려 했는데 꼴을 보니 그러면 안 될 거 같다. 제자가 맞고 돌아다니는 꼴을 두 번 볼 수는 없지. 지금 당장 시작하자꾸나.”


“손에 드신 건 뭡니까?”


“일단 들어봐라. 무공의 이해나 경지를 드높이는 데에 정해진 길은 없다. 그렇다고 강해지는 정해진 길은 없는가? 그건 아니지.”


스승님은 가져온 쇳덩이를 남궁현의 몸에 달았다. 그러고는 내 몸을 들어 올렸다.


“스승님, 이게 뭡···.”


말이 마치기 전에 몸이 날아올랐다. 세상이 반 바퀴 돌았다. 하늘이 아래에 있고 땅이 위에 있었다. 잠시 후 옆에 있던 폭포에 빠져버렸다.


“콜록콜록”


물이 목 안에 들어가 사레가 들었다. 내공을 끌어올려 겨우 균형을 잡아 물속을 헤엄쳤다. 그렇다고는 하지만 정신을 조금이라도 놓치면 쇠의 무게 덕에 바닥으로 가라앉았다.


“잘 들어라. 다른 건 몰라도 신체 즉 외공(外功)은 시간을 들일수록 단단해지지. 그러니까 너는 앞으로 매일 그걸 차고 이 폭포를 오르거라.”


“저기 이걸 어떻게 오릅니까?”


그렇게 높은 폭포는 아니었지만, 물살은 꽤 거칠었다. 몸에 쇳덩이를 달고 오를만한 건 아니었다.


“응? 튀어나온 돌들을 잡고 기어오르면 될 거 아니냐? 어떤 물고기는 폭포를 거슬러 올라 알을 낳는다고 하는구나. 물고기도 하는 일을 인간인 네가 못할 건 없겠지. 그럼 난 저녁을 준비할 테니 넌 군말 말고 시키는 대로 해라.”


무언가 잘못됐다.


*


소녀와 스승인 청영은 숲속을 거닐고 있었다. 오두막이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까지 멀어지자 가던 길을 멈췄다. 그러고는 제자의 옷에 묻은 흙먼지를 털어주었다.


“도대체 왜 그런 거니?”


“스승님이 자주 말씀하셨죠, 존경하는 사형이 있다고. 말이 안 되잖아요. 아무 특별할 것도 없는 녀석이 그분의 제자가 되다니. 이건 잘못됐다고요.”


“네가 말하는 건 그 아이를 싫어하는 이유구나. 내가 묻고 있는 건 그게 아니지 않니?”


소녀는 쉬이 입을 떼지 못했다. 눈에는 눈물이 약간 고여있었다.


“그 아이가 밉니?”


“그렇잖아요. 저는 죽을 듯 노력해서 겨우 스승님의 제자가 됐는데 저보다 못한 녀석이 사백님의 제자가 되다니요. 이건 불공평하잖아요. 그래서 그냥 좀 골려주려고···.”


“하아, 알았다. 일단은 돌아가서 마저 얘기하자꾸나.”


깊은 한숨을 내쉰 청영은 가던 길을 마저 걸어나갔다.


*


일단 스승의 말대로 폭포를 기어올랐다. 처음에는 쉽게 올라갔지만 계속 중간 정도 지점에서 떨어졌다. 몸에 찬 쇠의 무게와 폭포의 거친 물살 때문에 올라가기가 보통 쉬운 일이 아니었다. 오르다가 떨어지기를 계속 반복하다가 지쳐 몸이 더는 움직여지지 않았다.


“현아, 그만하고 밥이나 먹어라.”


스승의 말에 후들거리는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냥 걸었을 뿐인데도 온몸이 쑤셨다. 겨우 오두막 안에 들어가 상 앞에 앉았다. 상 위에는 갓 만든 요리가 차려져 있었다.


“잘 먹겠습니다, 스승님.”


식사를 시작했다. 훈련에 지쳤는지 제대로 씹지도 않고 음식을 목 너머로 넘겼다.


“맛은 어떠냐?”


“정말 맛있습니다. 요리는 언제 배우신 겁니까?”


“이걸 배웠다고 해야 하나? 20년 동안 밥만 하다 보니 자연스레 이렇게 되었구나. 죽림칠현이라 불리기는 하지만 그 녀석들 좀 정상이 아니거든.”


스승은 반찬을 하나 집어 먹더니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죽림에 있을 때 원래는 돌아가면서 밥을 했는데 천기(天氣)는 귀찮다고 아무거나 대충 넣고서는 밥이라고 내놓고 신의(神醫)는 몸에 좋다면서 이상한 약초를 집어넣고 그랬지. 다른 놈들도 별 차이는 없었다. 아직 자랄 나이인 하경이한테까지 그런 쓰레기를 먹일 수는 없어서 참다 참다 결국엔 내가 다 만들게 되었지.”


식사를 다 마치고 남궁현은 다 먹은 그릇들을 치웠다. 치우던 와중에 누군가 오두막에 찾아왔다.


“저기 청강 사백님 계십니까?”


“너는 요전에 문 앞을 지키던 놈 아니냐? 여긴 무슨 일이냐?”


“그 일은 잊어주시지요. 장문인께서 말씀을 전하라 하셨습니다.”


“현아, 너는 그릇들을 가지고 저 밑에 있는 하류에서 그릇들을 씻고 오너라.”


“네 알겠습니다.”


남궁현은 쌓인 그릇들을 들고 산길을 내려갔다.


“그래, 청명이가 뭐라고 하던?”


*


발밑에는 땅거미가 슬며시 깔리고 있었다. 혹여라도 그릇들을 놓칠까 조심하며 걸었다. 하류 근처에서 물소리가 들렸다. 이전의 소녀가 수북이 쌓인 옷들을 빨고 있었다. 그리고 울고 있었다. 내가 온 걸 눈치채자 눈가를 한 번 닦았다.


이전의 일 때문에 그녀가 아직 께름칙했지만 그런 모습을 보고 마냥 무시할 수는 없었다.


“저... 안녕하십니까, 사저?”


“내가 왜 네 사저야.”


소녀의 말투에는 가시가 돋쳐있었다.


“그럼 아닌가요? 저는 사저를 오늘 처음 봤는데 왜 그리 저를 싫어하시나요.”


“너는 말해줘도 몰라. 지극히 내 개인적인 이유니까. 그리고... 미안했어.”


사저는 옷들을 들고 일어났다. 이제는 완연히 땅거미가 깔린 시각, 그녀는 아련한 달빛 속으로 사라졌다. 나는 그녀의 뒷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눈을 떼지 못했다. 그녀가 나를 그리도 싫어하는 이유를 모르듯 그런 그녀가 왜 그리 내 눈에 밟혔는지 알 수 없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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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3

  • 작성자
    Lv.49 화주
    작성일
    21.05.16 15:00
    No. 1

    글이 부드럽게 읽히지도 않고 어색한 부분도 있지만
    흐름은 계속 보게하는 무언가가 있네요.
    잘 보고 갑니다.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6 고이태
    작성일
    21.05.16 17:16
    No. 2

    모자란 글을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69 하늘에다다
    작성일
    21.05.20 18:25
    No. 3

    물고기는 물에서 숨쉴수있다고 하더구나 물고기도 물에서 숨쉬는데 인간이라고 못할거없지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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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독이 든 병 21.05.28 510 11 7쪽
18 아름답다 21.05.26 602 10 7쪽
17 불청객 21.05.25 647 12 8쪽
16 달이 지는 자리 21.05.23 678 13 9쪽
15 황궁 21.05.22 709 14 10쪽
14 호환(虎患) 21.05.21 745 19 10쪽
13 초대장 21.05.20 801 15 10쪽
12 전야(前夜) +1 21.05.19 897 18 11쪽
11 명경지수(明鏡止水) 21.05.18 909 18 11쪽
10 자신만의 검 21.05.17 927 17 11쪽
9 직(直), 곡(曲), 원(圓) +2 21.05.16 978 18 9쪽
» 달빛 아래서 +3 21.05.15 1,030 22 12쪽
7 무당 +4 21.05.14 1,098 23 9쪽
6 집으로 +1 21.05.14 1,115 21 8쪽
5 징조 21.05.13 1,170 20 10쪽
4 흰 고래 +1 21.05.12 1,231 22 10쪽
3 만남 +1 21.05.12 1,346 19 10쪽
2 제갈세가의 망나니 +1 21.05.12 1,454 28 11쪽
1 귀환 21.05.12 1,925 35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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