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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이태 님의 서재입니다.

창궁귀환(蒼穹歸還)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판타지

고이태
작품등록일 :
2021.05.12 13:13
최근연재일 :
2021.06.03 17:17
연재수 :
2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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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6
추천수 :
381
글자수 :
92,643

작성
21.05.19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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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전야(前夜)

DUMMY

어느 눈 녹은 봄날이었다. 산에 핀 꽃들이 지고 피기를 여러 번 반복했다. 시간은 어느새 흘러 나는 성년(成年)이 되었다.


“사제, 뭐 해?”


“꽃이 아름다워 보고 있었어요.”


“여기는 항상 같은 꽃만 피는데 그게 뭐가 그리 좋다고.”


“사저는 그렇겠지만 저는 아직 열 번도 채 못 봤는걸요.”


사저와는 어쩌다 이리 가까워졌는지 잘 모르겠다. 처음 만난 이후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조금씩 우리 둘의 간격은 좁아졌다. 지금에 와서는 무당에서 가장 친한 사람이 누구냐 하면 조금의 거리낌도 없이 서로의 이름을 말할 정도였다.


“잡담은 그만하고 일어나. 장문인께서 찾으셔.”


“저를요?”


사저의 안내에 따라 자소궁에 들었다. 거기에는 장문인을 비롯해 스승님도 청영 사숙도 있었다.


“다들 왔구나. 다름이 아니라 너희에게 부탁할 일이 있어서 불렀다.”


“무슨 일이십니까?”


사저가 나보다 높은 위치에 있었기에 우리 둘을 대표하여 물었다.


“어디입니까?”


“안휘성 남궁세가.”


그 말을 들은 나는 눈을 크게 뜨고선 고개를 들었다.


“그런 표정 지을 필요 없다. 너도 곧 성년이 되는데 아버지께 인사는 올려야지. 청강 사형과도 이야기 끝났다.”


“알겠습니다.”


“도착하면 남궁일 가주가 해야 할 일을 알려줄 거다. 너희 말고도 다른 문파의 사람들도 올 테니 이 점 명심해라. 그럼 이만 돌아가서 여정을 준비하도록.”


“네.”


우리 둘은 밖으로 나왔다.


“나는 곧바로 준비할 거야. 너도 최대한 빨리 준비해. 여유를 갖고 도착해야 하니까.”


“그럼 저도 가기 전에 스승님께 인사를 올리고···.”


“그럴 필요 없다.”


뒤에서 스승이 나타났다. 사저는 공손히 살짝 뒤로 물러났다.


“너는 이만 돌아가거라. 이 녀석은 준비가 끝나는 대로 내가 직접 보내겠다.”


“알겠습니다.”


사저는 인사를 하고 자리를 벗어났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어.”


“저기 스승님···.”


“낯간지럽게 거창한 인사는 할 필요 없다. 그보다 떠나기 전에 해줄 말이 있다.”


“무엇입니까, 스승님?”


“너는 앞으로 강해질 거다. 아니 강해진다. 내가 보증한다. 화경? 현경? 아니 어쩌면 그 이상일지도 모르지. 그러니 나는 네가 올바르게 강해졌으면 좋겠다.”


“올바르게 말입니까?”


“그래. 그 이야기에 앞서 역사에 대해 말해볼까. 길고 긴 중원무림의 역사에서 이름을 남긴 건 몇 안 된다. 화경에 오른 자들은 역사서의 한두 면에 짤막이 적히고 현경에 오른 자들은 한 권의 책에 기록되었지. 현경을 너머 무림의 전설이 된 인물들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영원히 기억되었다. 무림의 시작이 되었다는 달마 조사, 여기 무당파를 연 장삼봉 진인(眞人), 천마신교(天磨神敎)를 세운 초대 천마(天魔). 너도 후세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을 거다. 그러나 나는 네가 악(惡)으로 기억되지 않기를 바란다. 그러니 올바르게 살아다오. 너의 힘을 선하게 써다오. 그리하여 너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것이 아닌 다시 돌아오길 그리워하는 그런 인물이 되어다오.”


“스승님의 말씀은 어떨 때는 쉬우면서 어떨 때는 어렵습니다. 지금 말씀은 어렵습니다. 하지만 잊지 않겠습니다. 가슴속에 새기며 살아가겠습니다.”


“그거면 됐다. 늙어서 그런가? 시간이 너무도 빨라. 젊을 적에는 시간이 너무도 느려서 답답했었는데.”


준비는 빠르게 끝났다. 애초에 무당산에 올 때 가져온 것이 딱히 없었으므로 짐도 약간의 여비와 식량 말고는 없었다.


“그거만 챙기면 끝이야?”


“네, 사저.”


남은 짐을 마저 집어넣고 진령과 같이 길을 나섰다. 잠시 걷다 무당산에서 처음 보았던 현판이 보였다. 거기에는 청강과 청영 두 스승이 있었다.


“스승님!”


“스승님!”


서로 동시에 입을 열었다. 청영이 먼저 말을 꺼냈다.


“진령아, 처음 나서는 길이니 조심해서 가거라. 네 사제도 잘 챙기고.”


“네.”


“사형께선 떠나는 제자에게 하실 말 없으신가요?”


“이미 다했다. 괜히 두 번 말 할 필요 없지.”


“마지막까지 쌀쌀맞으시군요. 갈 길이 먼데 둘 다 이만 출발하거라.”


둘은 대문 밖을 나섰다. 무당산을 내려갈 때까지 계속 뒤를 힐긋힐긋 쳐다보았다.


“정말 떠났군요. 이젠 보이지도 않네요. 당분간 꽤 심심하겠어요.”


“돌아오겠지. 언젠간 말이야. 그때가 되면은 어떤 모습일까 상상하며 보내면 그리 심심하진 않겠어.”


“기대되는군요, 그때가 정말로.”


*


“사제가 사는 곳은 어떤 모습이야?”


“저도 집을 나선 지 꽤 되어서 지금 모습은 모르지만 아름다운 곳이에요. 지금쯤이면 주위 산들에 꽃이 만발했을 거예요. 저마다 다른 꽃들이 다른 색으로 물들어가 형형색색 빛나고 떨어진 꽃잎들이 강물을 타고 흘러가죠.”


“가족들은?”


“아버지랑 배다른 어머니 또 동생이 한 명 있어요. 가족은 아니지만, 진짜 가족 못지않은 사람들도 있어요. 다들 좋은 사람들이죠.”


“좋은 곳이네.”


별다른 일없이 여정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그렇게 날들은 지나 마침내 안휘성에 있는 남궁세가에 도착했다. 나는 잠시 멈추고 문을 지키는 무인들에게 말을 걸었다.


“다들 오랜만입니다.”


“아, 도련님 이게 몇 년 만이십니까? 가주님도 작은 도련님도 목이 빠져라 기다리고 계십니다. 안으로 드시죠.”


안으로 들어가자 동생인 남궁휘가 달려나와 반갑게 맞이했다.


“형님!”


“많이 컸네.”


“형님도 그렇습니다. 없는 동안 얼마나 심심했는지 모르실 겁니다, 형님.”


“이 녀석이 왜 이리 격식을 차려.”


“형님도 저도 곧 성년인데, 어릴 때처럼 대할 수는 없죠. 근데 옆에 계신 분은···.”


“아, 내 사저되시는 분이지. 인사드리렴.”


남궁휘는 쭈뼛거리며 허리를 숙였다.


“저기, 반갑습니다.”


“저도 반가워요. 그런데 이제 어쩌면 될까요?”


진령은 약간은 차갑게 대답했다.


“오기로 하신 분들이 아직 아무도 오지 않아서요. 방을 내드릴 테니 그동안 편히 쉬시면 됩니다.”


“음, 그전에 가주님께 인사를 드리고 싶은데요.”


“알겠습니다. 바로 가시죠. 형님도 같이 가시고요.”


동생의 안내에 따라 안쪽에 자리한 연무장에 도착했다. 아버지와 강운, 두 사람이 서로 비무를 벌이고 있었다. 인기척을 눈치챈 둘은 검을 집어넣었다.


“왔구나.”


“오셨습니까, 소가주님.”


“옆에 계신 분이 아마 진령 진인 되시겠군요. 제 아들이 무당에서 많이 신세를 졌다고 들었습니다.”


“말씀 편히 하시지요. 그러시면 오히려 제가 불편합니다.”


“알겠소. 그럼 원하시는 대로 하겠소.”


“그보다 무슨 일로 부르신 건가요?”


“그건 모두 도착하면 알려드리겠소, 보통 큰일이 아니니. 기다리시는 동안 지루하지 않게 세가 안에 있는 것이면 뭐든 사용해도 좋소. 연무장도 괜찮고 서고에서 책을 읽으셔도 되고 마음 가는 대로 하시오.”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그러면 일단 방에 들어가 쉴 수 있을까요?”


“물론이도. 현아, 앞으로 네가 안내하도록 해라. 다른 사람이 굳이 하는 것보단 사제인 네가 하는 게 좋겠지.”


“네, 사저 가죠.”


“응.”


우리 셋은 빈방으로 발을 옮겼다. 모두 나가자 강운이 말을 꺼냈다.


“소가주님이 한 걸음 더 성장하셨군요.”


“귀선(鬼仙)께서 꽤 심혈을 기울여 가르치셨군. 이거 잘못하면 나중에는 내가 저 녀석에게 배워야겠어.”


“저도 그랬으면 좋겠군요.”


“그렇지. 제자가 스승을 뛰어넘고 자식이 아비를 뛰어넘는다. 이것만큼 기분 좋은 일도 없지.”


*


“사저는 이 방을 쓰시면 돼요. 손님방 중에선 제일 좋은 방이에요.”


“고마워. 네가 말한 대로네. 정말 좋은 곳이야. 그저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해지는 그런 곳. 아버지는 무뚝뚝해 보이시지만 너를 아끼는 게 느껴져. 동생은 너를 정말로 좋아하는 거 같고.”


“그렇죠. 저도 그래요.”


“만약 내게 가족이 있었다면 저런 모습이었을까? 나는 밖에서 버려진 아이였으니까 잘 모르겠네.”


“사저는 스승님이 계시잖아요. 그분이야말로 가족보다 더 가까운 관계가 아닐까요?”


“그렇지. 스승님이 버려진 날 주워주시고 가르쳐 주셨으니까. 하지만 가끔 진짜 가족이 무엇인지 궁금해지는 건 어쩔 수 없네. 나는 부모님의 사랑, 형제자매 사이가 무엇인지 전혀 모르니까.”


사저는 쓸쓸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폭포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갑자기 왜 그랬는 지는 잘 모르겠다.


“그런 말 마세요. 정 안되면 제가 사저의 가족이 되어드릴 테니.”


“그러니? 후후후 너라면 가족이 되어도 나쁘지 않을 듯해. 너는 어떨 때 보면 바보 같을 정도로 착하고 좋은 녀석이니까.”


창문 사이로 봄바람이 기분 좋게 불었다. 사저의 머릿결이 흩날렸다. 이 가슴 저릿한 순간이 지났을 때 궂은 비바람이 몰려올 줄은 아직 아무도 몰랐다.


*


“들어온 정보에 따르면 저들은 안휘성에 모여 함께 움직일 겁니다.”


“그렇다면 예상 지점은 여기인가? 딱 좋은 위치로군.”


하오문주(下汚門主)와 한림원주(翰林院主)는 지도를 펴놓고 대화를 나누었다. 둘 사이의 밀담(密談)을 누군가 벽에 기댄 채 듣고 있었다.


“자, 다 들었지? 노파심에 말하지만, 이번 작전은 네 원한을 위한 게 아니다. 소기(所期)의 목적을 달성하고 나서는 뭔 짓거리를 해도 신경 쓰지 않겠지만 만약 실패한다면···.”


“아, 그만! 아주 잘 알고 있지. 다름 아닌 우리 련주(聯主)님의 말 아니신가. 당연히 명심하고말고. 그래도 다행이지 않나? 그 원한 덕에 내가 네놈들 말을 가만히 듣고 있잖아. 아니었으면 너희 둘의 명 따윈 절대 듣지 않았을 테니. 그럼 난 이제 출발하지.”


터벅터벅 걸어가는 소리가 점점 작아지다 사라졌다. 한림원주는 혀를 차며 지도를 다시 보았다.


“재수 없는 놈, 련주님이 마음에 들어 하시니 더더욱 날뛰는군. 실력 하나만큼은 확실하니 어쩔 수 없지만.”


“계책을 세우는 게 제 영역은 아닙니다만 괜찮습니까? 잘못했다간 사람 목 하나 둘 잘리는 정도로 끝날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아, 괜찮다. 협력자가 있으니까.”


“그게 누구죠?”


“네가 알아도 될 자가 아니다. 그렇다고 알아낼 수 있는 자도 아니지.”


“흐음, 하오문주인 내가 알 수 없는 자라···.”


그렇게 때는 다가오고 있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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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달이 지는 자리 21.05.23 678 13 9쪽
15 황궁 21.05.22 709 14 10쪽
14 호환(虎患) 21.05.21 745 19 10쪽
13 초대장 21.05.20 801 15 10쪽
» 전야(前夜) +1 21.05.19 897 18 11쪽
11 명경지수(明鏡止水) 21.05.18 909 18 11쪽
10 자신만의 검 21.05.17 927 17 11쪽
9 직(直), 곡(曲), 원(圓) +2 21.05.16 978 18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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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무당 +4 21.05.14 1,098 23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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