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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이태 님의 서재입니다.

창궁귀환(蒼穹歸還)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판타지

고이태
작품등록일 :
2021.05.12 13:13
최근연재일 :
2021.06.03 17:17
연재수 :
22 회
조회수 :
20,025
추천수 :
381
글자수 :
92,643

작성
21.06.01 18:12
조회
385
추천
9
글자
7쪽

참(斬)

DUMMY

*


“고집이 세십니다. 그냥 말씀하시면 될 것을···.”


“몇 번을 물어봐도 내 대답은 바뀌지 않는다, 제독. 알고 있다 하여도 자식을 불구덩이에 밀어 넣는 부모가 이 세상 어디에 있나.”


“그러다간 당신이 불구덩이에 들어갑니다.”


“상관없다. 자식이 먼저 죽는 꼴을 보는 것보단 나으니까.”


“기개는 칭찬해드리죠. 그러나 모든 부모가 당신 같지는 않더이다. 내 부모도 당신 같았더라면 이런 일은 없었으려나. 아니, 폐하께서···. 어이쿠, 이건 실언이군요. 그냥 넘어가 주시길.”


굳은 창살 너머 손발이 묶인 남궁일을 뒤로하고 제독은 또 다른 사냥감을 만나러 움직였다.


“다시 뵈니 반갑습니다. 안주인께는 저번과 다른 대답을 들을 수 있을까요.”


“그이는 어떻지?”


“멀쩡합니다. 얼마나 오래갈지는 모르겠군요. 그러니 대답만 해주시면 됩니다. 자, 아드님은 어디 계십니까?”


“...”


“또 또 그러십니까. 이러면 사랑하는 남편께서 어떤 일을 당할지 잘 아시면서. 황후 전하를 시해하다니. 얼마나 큰 죄입니까. 원래라면 당신을 포함해 삼족을 멸해야 하건만 왜 그리 하지 않을까요. 첫째는 당신과 혈연이 아님을 알고 있기 때문이고 둘째는 당가가 여태껏 보여준 충성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계속 이리 나오시면 저도 강하게 나갈 수밖에···.”


“모르는 걸 안다고 할 수는 없는 일. 설령 안다고 하여도 전 말할 수 없습니다. 내 피를 이은 자식이 아니어도 오래 지켜보았습니다. 남의 목숨을 쉬이 뺏을 아이가 아닙니다. 짓지도 않은 죄의 대가를 치르게 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러다 당신들이 피를 흘리게 되는데?”


“상관없어요. 추하게 살아남을 바에 깨끗이 사라지는 게 나으니까.”


“이 이상 이야기해봤자 시간 낭비겠고 뒷문으로 가세요. 인사를 나눌 기회는 드리지.”


한번 쏘아보고는 당연경은 가리킨 방향으로 사라졌다.


“여기는 글렀고 그 쪽에게 맡겨둘까.”


*


아마 역사상 무당에서 가장 소란스러운 때라 말할 수 있을 터이다. 산으로 드는 모든 출입로에 병사들이 줄지어 있었다. 사원 주위도 마찬가지였다. 노년의 장군이 병사 몇을 이끌고 자소궁에 들었다.


“반갑습니다, 장문인. 썩 유쾌한 일은 아니라는 게 아쉽습니다.”


“북방에서 단 한 번도 물러난 적이 없다는 서영 장군을 두 눈으로 직접 뵙다니 반갑습니다. 지금은 금의위의 지휘사라죠. 함께 오신 분들은 금의위 소속입니까?”


“맞습니다.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겁니다.”


“의문이 풀리실 때까지 얼마든지 계셔도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아닌 사람도 있군요. 진인께선 성함이 어떻게 되시는지?”


“청강이라 한다. 내 제자가 왜 이런 꼴을 당해야 하지?”


“황후 전하를 시해한 것과 같은 독, 거기다 시중에서는 구할 수도 없는 종류 이 정도면 의심하기엔 충분하지요.”


“겨우 그게 다인가?”


“충분합니다. 그렇다면 다른 누군가를 말할 수 있습니까? 이만 비키시죠. 정 안되면 힘으로 갈 수밖에···.”


“나를 힘으로?”


“불가능하다 보입니까?”


분위기가 바뀌었다. 등에 멘 창을 손에 쥐었다.


짝!


“자, 다들 멈추시고 진정들 하시죠. 사형, 그만합시다. 이래서는 아무 의미도 없어요.”


청강은 겨우 화를 참으며 물러섰다.


“장문인과는 말이 통해서 다행입니다. 전군, 시작해라!”


*


밤늦은 시각이었다. 자리를 지켜야 할 보초들은 하나같이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올빼미의 울음소리가 적막한 철창 안을 메웠다.


“누구냐?”


“반갑습니다. 하오문주라 합니다. 그리고 아드님을 보호하고 있습니다.”


“뭐라고? 하오문주? 잠깐 현이가 거기에 있나?”


남궁일은 일어나 철창을 흔들었다.


“조용! 잘못했다간 보초들이 깹니다. 약으로 재우긴 했지만, 혹시 모르니까 진정하시죠. 네. 제가 미리 알아채고 빼돌렸습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다만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 당사자의 의견은 들어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뭔가?”


“누가 무슨 목적으로 이번 일을 벌였나? 그건 저도 모릅니다. 보통 놈이 아니죠. 그러나 바꾸기엔 너무 늦었습니다. 이대로 가면 누군가는 피를 흘려야만 합니다. 당신 아니면 당신 아들, 선택하십시오. 당신의 뜻은 무엇입니까?”


“내가 뭐라 할지 다 알면서 찾아왔군. 네가 어째서 이러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좋지 않은 의도로 접근한 게 아니란 건 알겠다. 뒷일은 잘 부탁한다.”


“자세히 설명하고 싶지만, 너무 오래 있으면 위험합니다. 그럼···.”


올빼미 울음소리는 사라지고 고요함만이 남았다. 하오문주는 달빛이 비치는 거리를 천천히 걸었다.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머리를 긁적이며 하늘을 바라보았다. 달빛이 한낮의 해보다 눈부셨다.


*


며칠의 시간이 지났다. 철창에 햇볕이 내리쬐었다. 동창의 제독이 마지막 날을 맞이할 죄수를 마주했다.


“유감입니다. 숨어있을 만한 곳은 죄다 뒤졌는데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습니다. 정말로 죽기라도 한 것인지 알 수가 없군요. 그래도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지요. 안 그렇습니까?”


“역사가 기억할 것이다. 옳지 못한 방식으로 옳지 못한 결과를 만들었으니 언젠가는 대가를 치를 것이다.”


“글쎄요. 아, 시간이 다가왔군요.”


보초들이 남궁일의 양팔을 단단히 잡고 밖으로 끌어냈다. 마당 한가운데에 무릎을 꿇렸다. 제독은 칼을 들었다.


“사람 목을 직접 베는 건 오랜만이군요. 곧 가실 분이니 말해드리겠습니다.”


남궁일의 귀에 대고 작게 속삭였다.


“당신들에게 죄가 없다는 건 잘 압니다. 왜냐하면, 제가 그랬거든요.”


“뭐라고? 지금 뭐라 말했나?”


“아무리 크게 외쳐도 소용없습니다. 제 기(氣)로 주위를 가려놓았으니까요. 괜히 힘 빼지 말고 이야기나 끝까지 들으세요. 역사가 기억한다? 그럴 일은 없습니다. 제가 하는 일은 그 잘난 역사를 바꾸는 것이니까요. 제 사정에 끌어들여서 죄송합니다. 제 잘난 맛에 황제를 속이려면 보통 수로는 안되거든요. 그래서 그랬습니다. 할 말도 이제 끝났으니 그만 가시길.”


남궁일의 입에 피가 흘렀다. 제독은 개의치 않고 칼을 높이 들었다. 목 하나가 피를 뿜으며 바닥에 굴렀다.


“미안하게 됐습니다. 만일 저승이 있다면 거기서는 제 목을 얼마든지 드리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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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연재시간 21.05.13 619 0 -
22 죽은 자의 매장 21.06.03 347 7 7쪽
» 참(斬) 21.06.01 386 9 7쪽
20 위협 +1 21.05.29 499 10 7쪽
19 독이 든 병 21.05.28 511 11 7쪽
18 아름답다 21.05.26 602 10 7쪽
17 불청객 21.05.25 647 12 8쪽
16 달이 지는 자리 21.05.23 678 13 9쪽
15 황궁 21.05.22 709 14 10쪽
14 호환(虎患) 21.05.21 746 19 10쪽
13 초대장 21.05.20 801 15 10쪽
12 전야(前夜) +1 21.05.19 897 18 11쪽
11 명경지수(明鏡止水) 21.05.18 910 18 11쪽
10 자신만의 검 21.05.17 928 17 11쪽
9 직(直), 곡(曲), 원(圓) +2 21.05.16 978 18 9쪽
8 달빛 아래서 +3 21.05.15 1,030 22 12쪽
7 무당 +4 21.05.14 1,098 23 9쪽
6 집으로 +1 21.05.14 1,116 21 8쪽
5 징조 21.05.13 1,170 20 10쪽
4 흰 고래 +1 21.05.12 1,231 22 10쪽
3 만남 +1 21.05.12 1,346 19 10쪽
2 제갈세가의 망나니 +1 21.05.12 1,454 28 11쪽
1 귀환 21.05.12 1,925 35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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