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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이태 님의 서재입니다.

창궁귀환(蒼穹歸還)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판타지

고이태
작품등록일 :
2021.05.12 13:13
최근연재일 :
2021.06.03 17:17
연재수 :
22 회
조회수 :
20,026
추천수 :
381
글자수 :
92,643

작성
21.05.16 17:16
조회
978
추천
18
글자
9쪽

직(直), 곡(曲), 원(圓)

DUMMY

그릇을 다 씻고 오두막으로 돌아왔다. 시간은 늦어 벌써 자정이 되었다. 지친 나머지 바로 잠이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니 스승님은 밖으로 갈 채비를 하고 있었다.


“스승님, 어디 가십니까?”


“아, 일어났느냐. 나는 잠시 나갔다 올 테니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라.”


“네.”


*


“오셨습니까, 사형.”


장문인을 비롯해 장로들이 한자리에 모여있었다.


“그래. 날 부른 이유가 뭐냐? 굳이 밑에 제자를 보내서까지 말이지.”


“그게 사형께 부탁드리고 싶은 일이 있습니다. 한 달 뒤에 일대제자(一代弟子) 전원이 참여하는 비무회가 열립니다. 사형께서 참관해주시면 안 될까요?”


“못 할 이유는 없지만, 굳이 나를 넣어야 하나? 난 일대제자 중에 아는 녀석 하나 없는데 괜찮나?”


“여기 있는 사람 중에 사형보다 무공을 잘 아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제자들도 사형이 온다는 걸 알면 더더욱 열심히 할 겁니다.”


스승은 잠시 고민하더니 물음에 답했다.


“뭐, 좋다. 밥값 정도는 해야지. 음? 잠깐만, 일대제자 전원이면 내 제자랑 청영, 네 제자도 참여하는 거냐?”


“아, 진령이요. 네. 그 아이도 참여합니다. 사형의 제자도 안될 이유는 딱히 없습니다만 괜찮으시겠습니까? 솔직히 말해서 수준 차이가 좀 나는데요.”


“좋다. 그러면 내 제자도 명단에 넣어라. 그럼 너희가 원하는 대로 해주마.”


“알겠습니다. 참고로 우승자에겐 이번에 사형이 가져온 자소단이 한 알 지급될 겁니다. 그 아이에게 전해주시죠. 좋은 동기가 될 겁니다.”


“그럼, 이제 할 말 없지. 난 이만 가겠다.”


“아 사형, 잠시만요.”


청영은 자리를 벗어나려는 사형을 말렸다.


“귀찮게 뭐냐?”


“남궁현, 그 아이가 다치지는 않았습니까? 진령이가 폐를 끼쳤는데요.”


“괜찮다. 네 사제는 대체 왜 그런 거냐?”


“하아, 좀 복잡합니다.”


청영은 깊게 한숨을 내쉬고서는 말을 이어나갔다.


“원래 진령이가 일대제자가 될 나잇대는 아닙니다. 부모를 잃고 무당에 들어온 아이가 죽기 살기로 노력해서 실력을 키웠죠. 그러다 제 눈에 띄어서 제 제자가 되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다른 녀석들한테 알게 모르게 무시당하더군요. 계속 속으로 삭이다 사형이 제자를 들인 걸 계기로 폭발한 거죠.”


“그 뒤는 말하지 않아도 대충 알겠다. 자기보다 못한 녀석이 똑같은 취급 받는 게 맘에 안 들었다, 이거지?”


“네, 나이 차도 겨우 한 살 밖에 안 되니 친해지면 좋을 듯하여 말해주었는데 이리될 줄은···. 그래서 마음을 좀 추스르라는 뜻에서 어제 벌로 강가에 빨래나 하라고 보냈습니다.”


“내 어릴 적에도 그랬지. 좀 튄다 싶으면 텃세를 부리고 말이야. 이런 걸 보면 세상은 참 변하지를 않아, 특히 좋은 방향으로는 절대. 이젠 할 말 더 없겠지. 이만 가겠다.”


*


가만히 앉아서 할 것도 없어서 폭포를 기어올랐다. 효과가 느껴지긴 했지만 더럽게 힘들었다.


“현아, 그만하고 이리 오너라. 할 말이 있다.”


“네, 스승님.”


스승님의 말에 잠시 멈추고 젖은 머리를 털었다.


“곧 있으면 무당의 일대제자 전원이 참가하는 비무회가 열린다. 네 이름도 넣어놨으니 최선을 다해서 준비해라.”


“제가 참여해도 되나요? 저는 외인(外人)이나 다름없는 데 문제가 되지는 않을까요?”


“걱정하지 말아라. 네가 걱정해야 할 건 그게 아니지. 거기서 형편없는 결과를 내면 내 체면이 말이 아니겠지?”


“어···. 그렇습니다.”


“원래는 여유를 두고 가르칠 생각이었지만 생각이 바뀌었다. 네 검을 가져와라. 내 몇 수 봐주지.”


‘드디어 검을 배우는 건가. 귀선의 검을 내 눈으로 직접 보게 될 줄이야.’


“일단 어제를 떠올려볼까. 왜 너는 그 아이의 검을 하나도 막지 못했을까.”


“잘 모르겠습니다. 제 검이 닿으려 하면 어느 순간 사저의 검이 나타나 제 검을 쳐냈습니다.”


“그건 직선(直線)과 곡선(曲線)의 차이 때문이다. 음 일단 눈으로 직접 보는 게 좋겠군.”


스승님은 근처의 커다란 나무 앞에 섰다. 그러고는 자신의 검을 단 한 번 크게 휘둘렀다. 그러자 나무는 깔끔히 두 동강 나며 쓰러졌다.


“이것이 네 검의 특징인 직선, 압도적인 힘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쾌(快)와 강(强)의 특성이 오롯이 드러나는 남궁가의 검법이지. 그러나 그 아이, 즉 무당의 검은 이와 다르다.”


이번에는 쓰러진 나무 옆에 있는 나무 앞에 섰다. 앞의 나무도 꽤 컸지만, 이 나무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아까와는 달리 스승은 검을 여러 번 휘둘렀다. 그러나 동작 하나하나는 매우 가볍고 경쾌했다. 나무 기둥에 여러 흠집이 생겼다. 흠집은 점점 벌어지더니 결국에 나무는 제 무게를 버티지 못하고 무너졌다.


“이것이 곡선, 부드럽게(柔) 상대를 제압하는 무당의 검법이다. 상대의 결을 읽고 가격하여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최대한의 효과를 내지. 그런 것도 이해하지 못하고 너는 무작정 정면으로 들이댔을 터 그러니 옷깃도 스치지 못하고 당할 수밖에.”


‘그런가. 전생의 삶이 오히려 걸림돌이 되었구나. 나는 평생 배워온 검에 사로잡혀 있었다. 만약 전생의 경지를 그대로 이룩했다면 괜찮았겠지. 그러나 지금의 나는 아직 모자라다.’


“그럼 어찌해야 합니까?”


“가장 간단한 건 네가 강해지는 거지. 모든 것을 삼키는 거대한 파도처럼 나무뿌리마저 뽑아버리는 폭풍처럼 강렬한 검이 된다면 그 누구도 막지 못할 거다.”


‘그 말씀은 전생에 걸었던 길을 다시 한번 걸어가는 것과 같은 뜻이구나.’


“두 번째 방법은 좀 어려울 게다. 네가 곡선의 묘리를 이해하는 거다. 그러나 너의 사고는 이미 직선에 사로잡혀 있다. 머리로는 이해해도 몸이 따라가지 않겠지. 둘 중 무엇을 선택할지는 네 자유다.”


‘이건 새로운 길을 찾으라는 뜻인가.’


“스승님, 두 갈래 길 중 어느 길이 맞는 것일까요.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니 저는 두 길 모두를 걷겠습니다. 이도 저도 아닌 결과가 된다 하여도 저는 그리 하겠습니다. 훗날 ‘아, 그쪽이 아니었는데.’ 하면서 후회하긴 싫으니까요.”


“흐흐, 이거 아주 욕심이 많구나. 좋다. 내 제자면 그 정도 배짱은 있어야지. 네 마음대로 해보아라.”


이날 이후 나는 오직 검에만 매달렸다. 스승이 말한 강함을 만들기 위하여 폭포를 오르고 떨어지며 몸을 단련했다. 그러다 보니 손은 어느새 상처와 굳은살로 뒤덮여있었다. 그런데도 개의치 않고 계속 폭포를 올랐다. 이전보다는 몸이 성장했으나 만족할 정도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곡선을 이해하는 건 더욱 진전이 없었다. 스승이 검을 들고 봐주기는 하였으나 조금만 신경을 놓치면 곡선이 아닌 직선의 검이 나왔다. 그렇게 반복하길 한 달이 지나 비무회 열리는 전날이 되었다.


하늘은 붉었다. 주위가 조금씩 어둠에 잠기면서 해는 점점 몸을 숨겼고 달은 숨긴 몸을 드러내고 있었다. 만월(滿月)이었다. 남궁현은 수련에 지쳐 바닥에 드러눕고 있었다. 둥근 해와 달이 서로 같은 위치 같은 높이에서 떠 있었다.


‘역시 두 길을 동시에 걷는 건 무리였을까. 차라리 외공에만 집중했더라면 이것보단 나았을지도 몰라.’


해와 달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하늘에 떠 있는 아름다운 풍경은 고민을 잠시 있기에는 충분했다. 그러나 고민을 완전히 잊기에는 무리였다.


‘해와 달은 둥글다. 그렇다면 원(圓)은 곡선인가? 세상 그 무엇보다 원이 가장 부드럽다. 그렇다고 원이 곡선인가?’


머릿속에 불현듯 생각이 스쳤다. 그러고는 자리에 벌떡 일어났다.


‘원은 부드럽다. 그러나 곡선은 아니다. 왜냐하면, 원은 둥글지 않으니까. 원은 바로 직선이다. 원은 둥글지 않다. 원은 직선이다. 원은 둥글지 않다. 원은 직선이다.’


계속 같은 말을 중얼거렸다. 누가 보면 미쳤다고 말했을지도 모른다. 그러고는 자신의 검을 들었다. 검이 부드럽게 움직였다. 그러나 굽지는 않았다. 내 눈에는 오직 검만이 보였으며 귀에는 검이 바람을 타는 소리만 들렸다.


스승님은 이 광경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녀석이 뭔가 감을 잡은 모양이군. 내일은 참 재미있는 날이 되겠어.”


다시 검을 손에 쥐었다. 달이 지고 다시 해가 뜰 때까지 검은 멈추지 않았다. 그러나 전혀 피곤하지 않았다. 그 어느 때보다 머리는 맑고 개운했다. 그리고 시간은 다가왔다.


스승님과 함께 비무회가 열리는 연무장에 도착했다. 무당의 장문인을 비롯한 모든 장로가 한자리에 모였다. 분위기는 사뭇 진지했다. 모두 자리에 도착한 걸 확인한 장문인 청명은 일어나 크게 외쳤다.


“지금부터 일대제자 간의 비무를 시작한다.”


선포와 동시에 북소리가 울리며 비무회가 시작되었다.


작가의말

‘원은 둥글지 않으니까’ 이 말은 영화 ‘비포 더 레인(Before the Rain)’에서 나오는 대사를 인용한 것입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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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2

  • 작성자
    Lv.99 park77
    작성일
    21.05.21 18:49
    No. 1

    긁적긁적....쥔공이 죽기 전에 화경이었고, 산전수전 다 겪었었고, 사저라는 이와 꽤 오랜 동안 함께 싸웠을 거라는 설정과 이번 화의 여러 내용(사저와의 강제 대련이나 그 과정 등)이 잘 맞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개인적으로는 좀 아쉽네요....

    재밌게 잘 보고 있습니다...건필!!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6 고이태
    작성일
    21.05.21 22:22
    No. 2

    첫 작품이라 그런 지 저 스스로도 쓰면서 아직 부족하다 느낍니다. 좋은 말씀 갑사합니다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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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독이 든 병 21.05.28 511 11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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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불청객 21.05.25 647 12 8쪽
16 달이 지는 자리 21.05.23 678 13 9쪽
15 황궁 21.05.22 709 14 10쪽
14 호환(虎患) 21.05.21 746 19 10쪽
13 초대장 21.05.20 801 15 10쪽
12 전야(前夜) +1 21.05.19 897 18 11쪽
11 명경지수(明鏡止水) 21.05.18 910 18 11쪽
10 자신만의 검 21.05.17 928 17 11쪽
» 직(直), 곡(曲), 원(圓) +2 21.05.16 979 18 9쪽
8 달빛 아래서 +3 21.05.15 1,030 22 12쪽
7 무당 +4 21.05.14 1,098 23 9쪽
6 집으로 +1 21.05.14 1,116 21 8쪽
5 징조 21.05.13 1,170 20 10쪽
4 흰 고래 +1 21.05.12 1,231 22 10쪽
3 만남 +1 21.05.12 1,346 19 10쪽
2 제갈세가의 망나니 +1 21.05.12 1,454 28 11쪽
1 귀환 21.05.12 1,925 35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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