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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이태 님의 서재입니다.

창궁귀환(蒼穹歸還)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판타지

고이태
작품등록일 :
2021.05.12 13:13
최근연재일 :
2021.06.03 17:17
연재수 :
2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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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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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5.12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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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만남

DUMMY

“네가 나한테 부탁을 한다고?”


제갈첨이 의아한 표정으로 날 쳐다보았다. 그럴 만도 하다. 이전의 나와 녀석의 관계는 최악이나 다름없었다. 누구도 따라오지 못할 재능을 가지고도 술이나 진탕 마셔댔다. 그 시절의 나는 조금이라도 강해지려고 안간힘을 부렸다. 사이가 좋아질래야 좋아질 수 없는 관계였다. 같은 오대세가의 소가주였기에 종종 만나기도 했지만, 예의상 인사만 나누는 정도에 그쳤다.


“그래. 너 지금 표행 중이지? 같이 온 자들은 분명 표사들이고. 나도 가는 길에 끼워줬으면 좋겠는데.”


“내가 어디로 가는 줄 알고 낀다는 거지? 거기다 이유는 뭐야? 남궁세가의 귀한 소가주가 굳이 우리랑 부대껴 가면서 간다라. 마음만 먹으면 최고의 명마(名馬)와 마차를 구해서 편하게 갈 수 있지 않나?”


언제나 그랬다. 조금이라도 의심 가는 구석이 있으면 계속 찔러댔다. 그런 성격 덕에 무림맹이 무너지지 않고 버틸 수 있었지만, 지금부터 이래서는 곤란하다.


“굳이 알아야 하나? 필요한 돈이라면 내겠어. 네가 손해 볼 일은 없지. 그럼 된 거 아닌가?”


“뭐, 좋아. 돈은 필요 없어. 대신 빚으로 달아두지. 나는 네 부탁을 ‘어쩔 수 없이’ 들어준 거야. 무슨 말인지는 알겠지?”


‘생긴 것과 다르게 뒤틀린 면이 있다는 건 알았지만, 이렇게 히죽대는 걸 직접 보니 기분이 나쁜데. 대체 나중에 뭘 요구하려는 거지.’


“알았어. 문제가 되지 않는 선에서 어떤 부탁이든 들어주지. 출발은 언제지?”


“여유롭게 며칠 쉬다가 출발할 생각이었지. 하지만 손님이 생겼으니 내일 아침에 바로 출발하도록 하지. 일부러 나를 찾아온 걸 보면 목적지가 어딘지는 알고 있겠지?”


“산동(山東).”


“맞아. 어떻게 알아냈는지는 묻지 않겠어. 아침 일찍 출발할 예정이니 준비나 제대로 해놔.”


제갈첨은 점소이가 다시 내놓은 술을 퍼마시기 시작했다. 난 녀석을 뒤로하고 내 방으로 돌아갔다. 내일을 위해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하루가 지났다. 아직 해가 완전히 뜨지 않아 주위가 어둑어둑했다. 아직 밤인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표사들은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그 와중에 제갈첨은 표사들의 대표로 보이는 자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어, 왔나. 소개하지. 이번 표행을 맡으신 은상표국의 국주 되신다.”


이제 사십 정도 되어 보이는 사내가 인사했다.


“반갑습니다. 저는 서백이라고 합니다. 남궁세가의 소가주님이라 들었습니다. 편히 모시겠습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좋아. 좁긴 하지만 마차에 타. 손님을 걷게 할 수는 없지. 준비되는 대로 출발한다.”


제갈첨은 마차에 올라탔다. 나도 녀석을 따라 같이 마차에 탔다. 서백은 주위를 확인하고 표행을 시작했다. 제갈첨은 움직이기가 무섭게 술병을 꺼내 마셨다.


“둘만 있는데 이야기나 나눠볼까. 나름대로 방음이 잘되니까 밖에선 들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돼.”


“이야기? 난 딱히 하고 싶은 말이 없는데.”


“아니, 내가 묻고 싶은 게 많지. 내가 다른 건 몰라도 사람 보는 것 하니만큼은 자신 있거든. 이렇게 하루 종일 취한 채로 있으면 좋은 점이 뭔 줄 알아? 안심하고선 자신의 본 모습을 쉽게 드러내. 그렇다고 대놓고 드러내는 건 아니지만, 벌어진 틈 속의 감정을 읽는 거지. 이 방식으로 꿍꿍이 있는 놈들을 계속 걸러냈어.”


“그래서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지.”


“날 이용해 먹으려는 건 진작에 눈치챘어. 중요한 건 그게 아냐. 예전의 너와는 너무나 달라. 자기 혐오에 스스로 바닥으로 가라앉는 멍청이, 바로 1년 전에 본 너였다. 그런데 지금은 어떻지. 확실한 목적을 갖고 앞으로 나아가려 불 속이라도 뛰어들 놈이 되었어. 내가 아는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아. 무엇이 너를 그리 만들었지?”


“불 속에 뛰어드는 게 오히려 나으니까. 바뀌지 않으면 불 속이 아니라 지옥 밑바닥으로 뛰어들어야 하니까.”


“알 수 없는 말만 하는군. 제대로 말해 줄 생각도 없어 보이고. 좋아, 더는 캐묻지 않겠어. 다만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말해줬으면 좋겠어. 난 나름대로 널 친구로 여겼거든. 넌 아닐지도 모르겠지만.”


‘입을 열 수가 없었다. 아무도 믿지 못할 이야기다. 섣불리 말했다가 미래가 바뀔지도 모른다. 나 혼자 짊어지면 된다. 아무리 외롭고 고통스럽다 하여도 그래야만 한다. 그것이 내가 걸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니까.’


“내 질문은 여기까지야. 너는 뭐 하고 싶은 말 없나?”


“음, 이번 표행의 목적은 뭐지? 네가 이런 귀찮은 일을 할 놈은 아니잖아.”


“돈 때문이지. 좋은 거래가 있다고 아버지가 강제로 보내버렸어. 20년 전 전쟁이 언제 다시 일어날지 모른다면서 미리미리 준비해야 한다나.”


“전쟁··· 네 생각은 어때?”


“빠르면 10년, 흑사련주의 나이를 생각해보면 아무리 늦어도 20년 안에는 무조건 일어난다.”


“근거는?”


“그럴 수밖에 없기 때문이지. 현 무림맹과 흑사련의 차이는 백중세(伯仲勢),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무게추는 무림맹에 기운다. 현 균형은 흑사련주 때문이니까. 그가 죽으면 흑사련은 바로 무너져. 싸우지 않으면 진다? 그럼 당연히 크게 한판 벌여야지. 흑사련주가 평화를 바랄 성격도 아니잖아.”


‘역시 방울뱀이라 이건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여도 앞으로의 일을 정확히 예측하다니.’


“굳이 10년이라 예상한 근거는?”


“사실 10년은 불가능하다. 구파일방이나 오대세가도 아직 전쟁의 피해를 완벽히 복구하지 못했어. 그런데 기반도 불안한 흑사련이 그럴 리는 없지. 물자의 비축까지 생각하면 10년은 이론상으로나 가능하다.”


‘그러나 흑사련주는 불가능한 일을 해냈다. 대체 어떻게 된 거지?’


다시 생각해보니 의문이 더욱 커졌다. 전쟁에서 흑사련은 부족한 것이 없었다. 식량, 무기, 약재 온갖 것이 넘쳐났다. 그러나 우리는 달랐다. 먹을 게 없어 벽곡단 몇 개로 하루를 견뎠다. 무기가 없어 맨손으로 싸웠다. 싸구려 금창약(金瘡藥)이 없어 상처가 썩어들었다. 그들은 대체 무슨 수로···?


달리던 마차가 멈췄다. 서백이 밖에서 문을 두드리며 말했다.


“공자님들, 내리시죠. 오늘의 야영지에 도착했습니다. 식사를 곧 준비하겠으니 잠시만 기다려 주시죠.”


우리는 마차에서 내렸다. 이름 모를 산의 중턱이었다. 해가 지기 직전 붉은 하늘이 맞이하고 있었다. 표사들은 천막을 치고 하룻밤을 넘길 준비를 하였다. 그런데 멀리서 험상궂게 생긴 무리가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우두머리로 보이는 자가 서백에게 말을 걸었다.


“헤헤헤. 은상표국의 서백 국주님이군요. 늘 주시는 만큼만 받겠습니다.”


“자 여기 있네. 평소보다 조금 더 넣었어. 대신 알지?”


산적처럼 보이는 그자는 서백이 던진 주머니를 열어보았다. 그는 만족한 듯 웃었다.


“물론 입죠. 내일 아침까지 별문제 없을 겁니다. 헤헤”


그는 주머니를 챙기고 등을 돌렸다. 함께 온 무리와 왔던 길로 돌아가던 그는 갑자기 멈추고 말했다.


“아 참! 꽤 챙겨주셨으니 중요한 걸 알려드리죠. 요 근처 산에 최근 위험한 자가 있습니다. 참고하시길”


“위험한 자라니? 그게 누구지?”


“그건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저도 입장이란 게 있지요.”


말을 끝내곤 그는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나는 서백에게 물었다.


“방금 온 그들은 누구죠?”


“이 산에 자리 잡은 산적들입니다. 적당히 돈만 쥐여주면 물건을 건드리지도 않고 오히려 산의 맹수들을 쫓아내거나 길을 깨끗이 정리해주죠. 산적치고는 의외로 괜찮은 놈들입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 사이에 요리가 완성되었다. 모두 한 자리씩 자리 잡고 준비된 음식을 먹었다. 밖에서 먹는 것 치고는 맛이 나쁘지 않았다.


다들 다 먹은 그릇들을 치우는 중이었다. 풀숲 속에서 갑자기 웬 백발의 노인이 나타났다. 노인은 한 손에 검을 들고 있었다. 서백은 그를 보자마자 칼끝을 겨누었다.


“어르신은 누구십니까?”


“이거 실례했네. 노부는 무당파의 도사인데 산길을 가는 중에 불빛이 보여서 말이야. 혹시 같이 불 좀 쬘 수 있겠나?”


“무례함을 무릅쓰고 말씀드립니다. 어르신께서 무당파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습니까? 도명(道名)은 어찌 되십니까?”


“내 사정이 있어서 도명은 말하기 그렇고 무당의 무공을 보여주겠네. 한 번 와 보게나.”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가겠습니다.”


서백은 검을 빼 들고 곧바로 달려들었다. 초절정의 고수가 마음먹고 달려드니 빠르기가 가히 바람 못지않았다. 주위의 평범한 무인들은 그의 움직임을 눈으로 따라가지도 못했다.


노인은 가만히 바라보았다. 공격이 자신에게 닿기 직전 자신의 검을 사선으로 그었다. 두 검이 서로 부딪혔다. 서백은 균형을 잃고 검을 손에서 놓쳤다. 검이 바닥에 닿자마자 노인의 반대 손이 가볍게 서백의 가슴에 닿았다.


“커헉!”


서백은 겨우 쓰러지지 않고 버텼다. 그는 자세를 다잡으며 공손히 말했다.


“손속에 사정을 두신 것에 감사드립니다. 방금 권은 무당의 태극권(太極拳)이군요.”


“뭐 됐다. 너희들의 모습을 보아하니 표국인 듯 헌데 어디로 향하는 길이냐?”


“저희의 목적지는 산동(山東)입니다.”


“마침 잘 됐군. 혹시 너희와 같이 가도 되겠느냐?”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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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죽은 자의 매장 21.06.03 347 7 7쪽
21 참(斬) 21.06.01 386 9 7쪽
20 위협 +1 21.05.29 499 10 7쪽
19 독이 든 병 21.05.28 511 11 7쪽
18 아름답다 21.05.26 602 10 7쪽
17 불청객 21.05.25 648 12 8쪽
16 달이 지는 자리 21.05.23 678 13 9쪽
15 황궁 21.05.22 709 14 10쪽
14 호환(虎患) 21.05.21 746 19 10쪽
13 초대장 21.05.20 802 15 10쪽
12 전야(前夜) +1 21.05.19 897 18 11쪽
11 명경지수(明鏡止水) 21.05.18 910 18 11쪽
10 자신만의 검 21.05.17 928 17 11쪽
9 직(直), 곡(曲), 원(圓) +2 21.05.16 979 18 9쪽
8 달빛 아래서 +3 21.05.15 1,030 22 12쪽
7 무당 +4 21.05.14 1,098 23 9쪽
6 집으로 +1 21.05.14 1,116 21 8쪽
5 징조 21.05.13 1,170 20 10쪽
4 흰 고래 +1 21.05.12 1,231 22 10쪽
» 만남 +1 21.05.12 1,346 19 10쪽
2 제갈세가의 망나니 +1 21.05.12 1,455 28 11쪽
1 귀환 21.05.12 1,925 35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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