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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이태 님의 서재입니다.

창궁귀환(蒼穹歸還)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판타지

고이태
작품등록일 :
2021.05.12 13:13
최근연재일 :
2021.06.03 17:17
연재수 :
2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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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7
추천수 :
381
글자수 :
92,643

작성
21.05.12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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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제갈세가의 망나니

DUMMY

하루가 지나고 새로운 아침이 밝았다. 나는 적당한 시간에 맞춰 아버지를 찾아갔다.


“무슨 일이냐, 평소엔 말도 안 거는 녀석이?”


“출발일을 예정 보다 앞당길까 합니다.”


“네 동생 생일은 보고 가기로 하지 않았느냐. 성주(省主)님과 따님께서도 오시는 자리다.”


“생각해보니 미리 자리를 잡아야 할 듯합니다. 혹시라도 늦으면 큰일이니까요.”


“흠, 네 뜻이 그렇다면 알겠다. 그럼 여비를 좀 더 챙겨주마.”


“감사합니다. 그럼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목적을 이루고 나는 여정을 떠날 준비를 했다. 생각해둔 일을 이루기 위해선 최대한 빨리 움직여야 했다.


*


“저 아이가 평소랑은 좀 다르군. 어제부터 이상하긴 했지만, 오늘은 더욱 그래.”


의문이 가시기도 전에 또 다른 손님이 찾아왔다.


“가주님, 저 강운입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들어오게.”


남궁세가의 무력을 상징하는 창검대를 이끄는 강운이 찾아왔다.


“찾으셨다 들었습니다.”


“간단한 질문을 하려고 불렀지. 솔직하게 대답해주게. 현이와 휘, 둘은 어떤가?”


“냉정하게 말해서 소가주님은 아직 부족합니다. 반면에 작은 도련님은 대단하단 말밖에 할 수 없습니다.”


“그래? 그럼 둘 중에 누가 남궁세가를 이끌어야 한다 생각하나?”


“제 생각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창검대의 대주로서 말하자면 가주님의 뜻이 곧 저의 뜻입니다.”


“그럼 내 생각을 말해볼까. 강함으로는 휘를 세우는 것이 맞겠지. 그러나 사람을 이끄는 데 있어 힘으로는 할 수 없는 것이 있다. 그런 면에서 휘는 부족해. 그러나 현이는 달라. 현이에게는 사람을 이끄는 강함이 있다.”


“그러나 세가의 대부분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에게도 가주님을 설득해달라는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무엇을 걱정하는지는 나도 잘 안다. 20년 전 전쟁의 악몽에 아직도 사로잡혀 있어. 나 역시 그렇지. 아버지를 비롯해 너무 많은 사람이 죽었다. 모두 힘을 원하고 있어. 태풍에 쓰러지지 않을 정도로 강한 힘을···.”


강운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자신 역시 그랬다. 아직도 눈을 감으면 싸우다 죽어간 전우들이 꿈속에 아른거렸다.


“현이가 당장은 부족할지 몰라도 언젠간 크게 피워낼 거야. 그러니 그대가 도와주게. 가주가 아닌 벗으로서 부탁하지.”


강운은 숨을 한 번 고르고 말했다.


“남궁일, 너는 그 아이를 많이 아끼는군. 그 이유가 뭐지? 단순한 부정(父情)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어.”


“어찌 아끼지 않을 수 있겠나. 제 어미를 잃고 슬퍼하는 나를 위로했지. 제 눈에 흐르는 눈물마저 참고선 말이야. 나는 그날의 일을 잊을 수가 없어.”


*


“준비는 끝났다.”


소혜가 준비해둔 짐에다가 옛날에 읽었던 경전(經典)을 몇 권 넣었다. 향시를 칠 생각은 없지만 챙겨두면 눈속임이 되겠지. 합비(合肥) 근처에 있는 산에서 진귀한 약초가 발견되었다. 무슨 사정인지 약초꾼은 시세보다 훨씬 싼 가격에 팔았지. 그걸 내가 미리 사놓으면 내공에 큰 도움이 될 거야.


새벽 일찍 출발하기 위해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해가 아직 산허리에 걸쳐있을 때 눈을 떴다. 짐을 어깨에 메고 대문으로 나섰다.


“벌써 가는 거냐?”


“네, 아버지.”


“네 동생에겐 말도 안 했더구나.”


“곧 있으면 생일인데 굳이 신경 쓰이게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앞으로 영영 못 볼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그렇긴 하지. 다 필요 없으니 몸 상하지 말고 돌아오거라.”


나는 아버지께 절을 올렸다. 아버지는 떠나는 내 모습을 계속 보고 계셨다.


“그냥 보내시는 겁니까. 아직 성년(成年)도 아니신데 괜찮겠습니까?”


“강운, 너도 있었나. 그리 먼 거리도 아닌데 괜찮겠지. 말 그대로 앞으로 영영 못 볼 것도 아니지 않나.”


막 떠오르는 해가 긴 그림자를 만들었다. 두 사람은 떠나는 이의 등이 사라질 때까지 움직이지 않았다.


*


걸었다. 계속 걸었다. 발이 점점 아파졌다. 그래도 좋았다. 이전의 삶은 그저 달리기만 한 인생이었다. 강해지기 위한 발버둥과 전쟁으로 여유란 것이 없었다. 그래서 걷기만 하는 이 순간이 너무도 좋았다. 기분 좋게 불어오는 봄바람이 좋았다. 이름 모를 꽃의 내음이 좋았다. 너무 걸어서인지 혀에서 피 맛이 났다. 그 비릿함 마저 좋았다. 계속 걷다가 한 마을에 도착했다. 나는 거기서 제일 큰 객점을 찾았다.


“어서 오십쇼.”


“간단한 식사랑 창가에 가까운 방을 부탁하지.”


“넵. 여기 앉으시죠.”


‘내 기억이 맞는다면 분명히 이 마을이다. ‘그 망나니 자식’이 표행을 가다 약초를 구했다 했었지. 그 와중에 잠시 머문 마을이 분명 여기였고. 그 자식 성격에 분명 제일 비싼 객점을 갔을 테고. 돈은 아깝지만 올 때까지 나도 잠시 머물기로 할까.’


*


남궁현이 떠나고 며칠 후 남궁휘의 생일을 기념하는 잔치가 열렸다.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남궁세가의 잔치답게 매우 성대하고 화려했다. 근처의 명가와 이름난 인물들을 넘어 왕족까지 쉴 새 없이 몰려들었다. 모두 하나같이 진귀한 물건을 들고 남궁휘의 생일을 기념했다.


서로 간에 술잔이 오가고 웃음꽃을 피우고 있었다. 몸종과 시비들도 저들끼리 모여 즐기고 있었다. 그러나 그중에서 한 명만은 잔치를 제대로 즐기지 못하고 있었다. 남궁일은 가주로서 참석한 손님들을 접대하고 있었다.


“성주(省主)님도 오셨군요, 거기다 공주님까지. 바쁘신 와중에 참석해주시다니 감사드립니다.”


“자네와 내가 안 지 얼마나 오래되었는데 이런 중요한 날에도 못 오겠는가. 자 이건 내 마음일세.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군.”


현 황제의 동생이자 안휘성을 이끄는 성주는 자신의 몸종을 불렀다. 그는 상자 하나를 들고 있었다. 상자를 여느 그 안에는 독특한 윤기가 도는 검은 돌이 들어있었다. 남궁일은 돌을 잠시 만져보고는 말했다.


“이건 운철(隕鐵)이군요. 보통 귀한 물건이 아닌데 이런 걸 받아도 되겠습니까.”


“계속 같은 말을 하게 하는군. 자네와 나 사이에 겨우 돌 하나가 뭐가 대수라고. 이번 잔치의 주인공이 검에 재능이 있다고 들어서 말이야. 이걸로 괜찮은 검을 만들면 그 아이 맘에 들 것 같아서 준비했지.”


“하하하. 감사합니다. 제 아들놈도 좋아하겠군요. 검이 완성되면 제 아들놈과 같이 한 번 성주님 댁에 방문하겠습니다.”


“그러면 몇 달 뒤에 내 딸 생일이니 그때 다들 오게나.”


“저기, 가주님. 현이는 어딨나요? 걔 것도 준비했는데 주위에 보이지 않네요.”


성주의 딸인 공주가 물었다. 남궁일은 공손히 답했다.


“죄송합니다, 공주님. 아들놈이 향시 때문에 얼마 전에 떠났습니다. 잔치에는 참석하고 가랬는데 굳이 떠나더군요.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을 테니 돌아오면 제가 전해드리겠습니다.”


“괜찮아요. 다음에 만나면 제가 직접 주면 되죠.”


실망한 공주를 뒤로하고 둘은 술을 마셨다. 신분의 차이는 있었으나 친우나 다름없는 둘은 옛 추억을 안주 삼아 술을 마셨다. 강운은 취한 주인을 곁에서 지키며 혹시 모를 일에 대비해 휘하 인원들과 순찰을 돌고 있었다.


*


지금쯤 세가에선 잔치가 벌어지고 있을 터였다. 나는 며칠간 계속 밖을 보았다. 너무 일찍 온 탓인지 그 녀석의 흔적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날이 저물 무렵 멀리서 흙먼지가 날리고 있었다.

‘왔나.’


열 명 조금 넘는 인원이 객점에 들어왔다. 산전수전은 다 겪은 것으로 보이는 무사들 사이에 호리호리한 청년이 어색하게 끼어 있었다. 그들은 셋씩 짝을 맞춰 자리를 잡았다. 점소이는 쏟아지는 주문을 받느라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야 이, 씨발놈아. 이걸 술이라고 준 거야!”


호리호리한 청년이 술을 마시더니 갑자기 소리를 꽥꽥 질렀다. 옆자리의 무사는 당황하며 청년을 말렸다. 주문을 받던 점소이는 난데없는 소란에 말을 걸었다.


“손님,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오, 마침 잘 왔다. 내가 분명 제일 좋은 술을 달라고 했지. 근데 이 거지 같은 술은 뭐냐?”


“손님, 말씀이 심하십니다. 최근 사천(四川)에서 들여온 최고급 죽엽청(竹葉靑)을 마시고 그러시면 안 되죠.”


“죽엽청? 지랄하고 있네. 이게 죽엽청이면 나는 황제다, 이 새끼야.”


청년과 점소이는 주위는 신경 쓰지 않고 큰 소리를 내며 싸웠다. 무사는 차마 뭐라 할 수 없는지 옆에서 옴짝달싹하지 못한 채 서 있었다. 위층에서 가만히 보고 있던 나는 밑으로 내려갔다.


“오랜만이야.”


“넌 뭐야?”


나는 녀석의 뒤통수를 잡았다. 그리고 바로 탁상에 박아버렸다.


“큭, 진짜 뭐 하는 놈이야.”


“성질머리는 여전하군. 그리고 죽엽청이라···.”


나는 녀석이 먹다 남긴 잔을 들이켰다.


“죽엽청은 맞네. 비슷한 색의 싸구려 술을 섞은 것만 빼면 말이지.”


“멀리서 온 물건이다 보니 맛이 좀 변했나 봅니다. 그걸 그리 느끼시는 게 아닌지?”


“아직도 변명하나. 어머니가 사천 출신이라 자주 마셨지. 그걸 단순한 착각으로 취급하다니. 너는 나랑 이 녀석이 누군지는 알고 이따위 장난질을 치는 건가. 네 생각은 어떻지, 제갈첨?”


“흐흐. 누군가 했더니 너였나, 남궁현.”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술에 찌들어서 행패나 부리는 게 제갈세가의 소가주라고. 거기다 훗날에는 영웅이라 불렸다. 방울뱀(響尾蛇), 이 녀석의 별호였다. 그 이름에 걸맞은 책략으로 흑사련에 의해 초토화된 무림맹을 이끌고 모두에게 승리를 안겨주었다.


“제갈첨? 남궁현? 설마 오대세가의···. 죄송합니다. 큰 실례를 범했습니다. 새로 음식을 내어오겠습니다. 제발 용서만 해주십시오.”


이전까지 당당한 표정은 어디 갔는지 점소이는 창백한 표정으로 빌었다. 나는 붙잡은 손을 풀고 마주 보며 앉았다. 제갈첨은 고개를 들고 쏘아붙이듯 말했다.


“술이나 다시 내놓고 당장 꺼져.”


“알겠습니다.”


점소이는 재빨리 술과 안주를 가져왔다. 불똥이 또 튈까 싶어 서둘러 자리를 떠났다.


“남궁현, 네가 여기 왜 있지?”


“우연이야. 이왕 만난 김에 부탁 하나 하지.”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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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독이 든 병 21.05.28 511 11 7쪽
18 아름답다 21.05.26 602 10 7쪽
17 불청객 21.05.25 647 12 8쪽
16 달이 지는 자리 21.05.23 678 13 9쪽
15 황궁 21.05.22 709 14 10쪽
14 호환(虎患) 21.05.21 746 19 10쪽
13 초대장 21.05.20 801 15 10쪽
12 전야(前夜) +1 21.05.19 897 18 11쪽
11 명경지수(明鏡止水) 21.05.18 910 18 11쪽
10 자신만의 검 21.05.17 928 17 11쪽
9 직(直), 곡(曲), 원(圓) +2 21.05.16 979 18 9쪽
8 달빛 아래서 +3 21.05.15 1,030 22 12쪽
7 무당 +4 21.05.14 1,098 23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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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징조 21.05.13 1,170 20 10쪽
4 흰 고래 +1 21.05.12 1,231 22 10쪽
3 만남 +1 21.05.12 1,346 19 10쪽
» 제갈세가의 망나니 +1 21.05.12 1,455 28 11쪽
1 귀환 21.05.12 1,925 35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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