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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 님의 서재입니다.

왕따 이등병의 1차 대전 생존기

웹소설 > 일반연재 > 전쟁·밀리터리, 대체역사

dirrhks404
작품등록일 :
2020.11.21 18:30
최근연재일 :
2024.05.10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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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0.11.25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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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운수 좋은 날

DUMMY

한스는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았다. 낡은 집이었지만, 참호가 아닌 곳에서 이렇게 누워 보는 것이 얼마 만인가.


‘지금 휴가 몇 시간 지났지···’


휴가는 총 8일이었다. 적군이 탱크라는 엄청난 신무기로 공격해오고 있다는 것을 몰랐다면, 일주일을 알차게 보내고 전선에 복귀했을 것 이다. 하지만 지금 한스는 그 거대한 철갑 괴물을 전쟁에서 맞이할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죽음이 빗발치는 전쟁터에서 한스는 생존을 위해 그렇게도 노력했건만, 막상 안전한 곳에 오니, 무기력감과 함께 이 모든 것에서 도피해야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권총이 있었지.’


한스는 8일간 먹고 싶었던 것도 실컷 먹어보고, 참호 밖의 생활을 즐긴 이후에 권총으로 깔끔히 자살하기로 마음 먹었다. 부대에서 보급받는 술은 오줌 맛이 나거나 쓴 맛이 났지만, 식당에서 먹는 술은 맛이 좋았다.


시간이 남으면, 종이로 비행기를 접어서 언덕 위에서 날리고 싶었다. 어릴 때 아버지를 피해 도망간 한스는 언덕 위에서 그렇게 혼자 놀고는 하였다. 비행기가 날아가는 것을 볼 때면, 자신을 때리는 아버지, 지긋지긋한 학교로부터 자유로이 탈출하는 것 같았다.


문득 한스는 기차역에서 가족과 상봉하는 수 많은 병사들을 떠올렸다. 그들 모두 총알 한 발로 지옥 같은 전쟁에서 탈출하고 싶은 충동을 느낄 것이다. 하지만 지켜야 하는 가족이 있어서 그들은 태연한 척, 전쟁터로 돌아가야 하는 것 이다. 그들에게 가족은, 자살도 못 하게 발목을 잡는 족쇄나 다름 없었다.


‘아버지, 어머니, 저를 강하게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병사들은 가족들에게 후방에서 안전하게 취사병과 같은 일을 하고 있다고 거짓말 할 것 이다. 대부분의 여자들은 자신의 아들, 남편이 취사병으로 근무하고 있다고 철썩같이 믿고 있겠지. 죽음의 고통 속에서도 아내와 어머니를 안심시키기 위해 거짓말까지 해야 하는 병사들의 삶이라니. 한스는 진심으로 자신을 학대했던 아버지에게 감사하다고 느꼈다.


그 순간, 덜컥 문이 열리고 엠마가 들어왔다.


"물 받아놨으니 좀 씻어!"


"뭐? 뭐라고?"


"우리 집에서 쉬는건 좋은데, 미안하지만 냄새가 너무 난단 말이야. 박박 안 씻으면 쫓겨낼 거야."


'뭐 저런 여자가 다 있어...'


한스는 엠마가 넘겨 준 수건을 들고 따뜻한 물이 담긴 목욕통에 몸을 푹 담갔다.


'하아..좋다....'


뜨뜻한 목욕을 하니, 꽤나 기분이 좋아졌다.


'저 여자는 왜 저렇게 잘해주는 거지? 나한테 관심있나?'


한스는 또 쓸데없는 망상을 시작했다. 그러다 한스는 자신의 손톱에 묻은 때를 바라보고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돈 때문이겠지. 귀찮은 여자 같으니라고.'


한스는 내일부터는 여관에 가서 자기로 마음먹었다. 다음 날, 한스는 오전 11시가 되어서야 일어났다. 문을 열어보니, 엠마는 군용 빵에 잼, 버터를 바르고, 버섯과 함께 제법 그럴듯한 식사를 요리하고 있었다.


"얼마 전 숲에서 버섯을 따왔어. 혼자 먹기 곤란했는데, 손님이 와서 다행이야."


엠마가 자랑스럽게 말했다.


"휴가 며칠까지야? 같이 먹기 충분하겠다."


'내가 계속 있어주길 기대하는 건가?'


"일주일 남았어."


한스는 거짓말도 못하고 툭 사실대로 털어놓았다.


"잘 됐다. 잼도, 버섯도, 딱 일주일 치 분량이 있거든."


엠마는 뛸듯이 기뻐했다. 한스는 마음은 점점 무거워졌다. 같이 점심을 먹다가, 엠마가 한스에게 물었다.


“시장 가서 빵이랑 고기 좀 사줄 수 있어?”


“응.”


한스가 대답하자 엠마는 한스의 두 뺨에 쪽 뽀뽀를 해주었다. 그렇게 둘은 같이 시장에 가서 고기와 빵을 사 와서 저녁을 차려 먹었다.


“너 덕분에 오랜만에 고기 반찬 먹었어.”


엠마는 웃으며 한스에게 다가왔다.


“여자친구는 있어?”


“아니.”


한스가 대답했다. 엠마는 양 팔로 한스의 목을 끌어안았다.


“이렇게 어린데 전쟁에 나가야 된다니···군인들은 참 불쌍해.”


‘내가 불쌍하다고?’


한스는 순간 화가 났다. 엠마의 손목은 어찌나 가늘었던지, 이런 손으로 소총을 쏘는 순간 반동에 총이 날라갈 것이 분명했다. 수류탄을 던져 봤자 3m밖에 못 던질 것 이다. 행군도 못 버티겠지. 한스는 엠마의 가녀린 품 안에 안겼다. 골격도 가늘고, 근육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나마 남아 있는 것은 말랑한 지방 뿐이었다.


참 웃기는 일이었다. 참호전에서 하루도 못 버틸 나약한 여자가 자신을 걱정하다니. 그렇지만 한스는 엠마의 품 안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그렇게 한스는 6일간을 엠마의 집에서 보냈다. 6일째 되는 날, 한스가 엠마에게 말했다.


“나, 하루 일찍 가 보아야 할 것 같아.”


“응. 그래.”


엠마가 대답했다.


“엠마, 장교를 만나면 나보다 더 좋은 음식을 사 줄 수 있을 거야.”


한스는 일부러 엠마를 떠보기 위해 이런 말을 하였다.


“전쟁터에서 다치지 말고 힘 내.”


엠마는 한스의 말에도 화를 내지도 않고, 서운한 기색도 없었다.


“그럼 나 가볼게.”


“잘 가.”


한스가 대문을 닫을 때까지, 엠마는 단 한 번도 한스를 잡지 않았다. 한스는 마을 근처에 있는 숲으로 걸어가며 생각했다.


‘필요 없어. 어차피 죽을 건데.’


커다란 나무 옆에 한스는 기대어 앉았다. 그리고 권총을 꺼내어 입에 물었다. 한스의 손에서 식은 땀이 흘렀다.


‘자, 방아쇠만 당기자.’


뇌는 손가락에게 방아쇠를 당기라고 명령하였다. 하지만 한스의 모든 세포, 감각이 그것을 방해하고 있었다. 이 저주받은 육체는 죽음을 거부하고 있는 것 이었다. 숲에서 나는 새 소리, 바람에 낙엽이 흔들리는 소리, 바람 소리, 숲에서 나는 내음, 손에서 흐르는 땀, 방아쇠의 감촉이 너무나도 생경하게 뇌에 전달되고 있었다.


‘젠장···다른 새끼들은 쉽게 죽는다던데!’


잔인한 세상은 한스를 놓아주지 않았다. 한스는 문득 엠마가 떠올랐다.


‘엠마! 한 번만 더 안아보자.’


한스는 권총을 가방에 집어넣고 다시 마을로 달렸다.


‘어쩌면 내가 가지 않기를 바랬을 수도 있어. 용기가 없어서 날 잡지 못했을 거야.’


한스는 구불구불한 마을 길을 헤매며, 엠마의 집을 찾았다.


‘젠장 시간이 없어···식당에서 맥주랑 슈니첼이라도 사 주고 가야지. 엠마!’


한스는 생각보다 빨리 엠마를 찾았다. 엠마는 젊고 잘생기고 외향적인 장교와 팔짱을 끼고 자신의 집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장교는 집에 들어가면서 엠마에게 키스를 했다. 한스는 순간 멍해지는 것을 느꼈다.


한스는 힘없는 발걸음으로 서서히 반대 방향으로 걸어갔다. 저 쪽에 여관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이 났다. 하룻밤 자고 다시 내일 전선으로 가는 기차를 타기로 계획했다. 문득 한스는 발걸음을 돌렸다. 그리고 돌맹이를 하나 집어 들고, 엠마의 집으로 향했다.


엠마 집에 불은 꺼져 있었다. 한스는 있는 힘껏 돌맹이를 엠마의 집 창문에 던졌다.


“쨍그랑!”


“꺄악!!!”


“뭐! 어떤 놈이야!”


한스는 미친 듯이 도망쳤다. 엠마의 집 대문이 급하게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다행히 골목길은 비좁고 꾸불꾸불했다. 한스는 있는 힘껏 달려서 여관 간판이 보이는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한스는 휴가의 마지막 날을 보내고, 전선으로 가는 기차에 올라탔다.


기차역에는 수 많은 사람들이 병사들을 배웅하기 위해 나와 있었다. 병사들은 마지막까지 가족의 얼굴을 보기 위해서 창문에 매달려서 손을 흔들었다. 한스만이 자리에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전선에서도 다들 가족으로부터 편지, 소포를 받을 것 이다. 오직 한스만이 편지를 줄 사람도, 받을 사람도 없었다.


‘왜 나만 이렇게 좆같이 살아야 하지?’


한스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왼 손으로 가방 속에 있는 권총을 만지작거렸다. 권총에는 탄환이 여러 발 남아 있었다. 한스는 핀의 가증스러운 얼굴을 떠올렸다. 아마 그 자식도 어머니의 편지를 받을 것 이다.


‘오늘 밤에 그 새끼도 죽이고, 나도 도망가야지.’


학생 때 자신을 괴롭히던 자식들한테 아무 보복도 못 한 것이 너무도 억울하였다. 전쟁 때문에 대학은 꿈도 못 꾸는 상황이 올 것이라는걸 알았다면 절대 한스는 당하고만 있지 않았을 것 이다.


몇 시간 뒤, 한스는 참호에 도착했다. 익숙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다들 어디 있는 거야?’


“여어! 한스! 휴가는 잘 보냈나?”


요나스, 니클라스, 안톤 모두 커다란 삽을 들고 얼굴과 손에 잔뜩 흙이 묻은 채로 참호에 복귀하고 있었다. 한스가 물었다.


“너네 뭐 하냐?”


안톤이 대답했다.


“탱크가 건너오지 못 하도록 무인지대에 구덩이를 파는 거야.”


요나스가 투덜대며 말했다.


“뮐러 병장이 제대로 깊게 파야 한다고 난리야. 대충해도 될 걸.”


니클라스가 주위를 슬쩍 돌아보고 말했다.


“쉿 조용히 해. 영창 가고 싶냐?”


동료들은 탱크에 대해 전혀 공포심이 없어 보였다. 한스가 진지하게 말했다.


“이봐. 전우들. 자네들이 탱크를 직접 안 봐서 모르나 본데, 그것은 정말 위험하다고. 제대로 파는 것이 좋을 거야.”


한스의 말에도 여전히 요나스는 투덜거렸다.


“우리도 제대로 하고 싶다고.”


한스는 한숨을 쉬며 동료들한테 말했다.


“핀한테 이야기 안 들었어? 그것이 얼마나 커다란지? 양 쪽에 벨트가 달려서 전진하기 때문에 어지간한 구덩이는 빠져도 다시 나올걸?”


한스가 핀의 이름을 입에 올린 순간, 요나스, 니클라스, 안톤은 모두 입을 다물었다.


“자네들, 왜 그래?”


니클라스가 대답했다.


“핀은 죽었네.”


“뭐?”


“구덩이를 파다가 저격수 총에 맞았어.”


‘이게 왠??’


한스는 혼란스러웠다. 핀에 대해 증오심을 품었지만, 이런 소식을 들으니 막상 기분이 좋지 않았다.


‘젠장···왜 기분이 좆같지? 난 그 자식을 증오했고 죽이려고 결심했는데···내가 직접 안 죽이게 되어서 다행인가···.’


한스의 표정이 굳어지자, 안톤이 말했다.


“너무 침울해하지 말게. 그 친구는 고통 없이 갔다네. 머리를 맞았거든.”


요나스가 중얼거렸다.


“그렇게 단 번에 죽다니, 운이 좋은 거지.”


동료들의 말이 맞았다. 핀은 정말 운이 좋은 놈이었다.


‘젠장! 부러운 놈···’


“적군 저격수는 죽지 않은 건가?”


“영국놈들이 새로운 저격수를 뽑은 건지도 모르지. 아무튼 머리 조심하라고.”


한스는 동료들을 따라 대피호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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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수 좋은 날 +9 20.11.25 4,761 109 11쪽
11 탱크, 그리고 엠마라는 여자 +10 20.11.24 4,663 110 11쪽
10 천재 전략가 롬멜 소위 +12 20.11.24 4,683 114 11쪽
9 반갑지 않은 친구 +9 20.11.23 4,880 114 11쪽
8 연락병 아돌프 히틀러 +11 20.11.23 5,036 121 11쪽
7 도려내기 작전 +7 20.11.22 5,238 123 11쪽
6 보복 +3 20.11.22 5,474 125 12쪽
5 방심하는 순간 +5 20.11.22 5,648 128 11쪽
4 참호전의 생존 기술 +12 20.11.21 6,051 112 12쪽
3 기관총에 왜 오줌이 필요하지? +11 20.11.21 6,476 129 11쪽
2 첫 전투 +12 20.11.21 7,541 124 11쪽
1 왕따 한스 1차 대전에 참전하다 +27 20.11.21 11,577 16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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