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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 님의 서재입니다.

왕따 이등병의 1차 대전 생존기

웹소설 > 일반연재 > 전쟁·밀리터리, 대체역사

dirrhks404
작품등록일 :
2020.11.21 18:30
최근연재일 :
2024.05.10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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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0.11.22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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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
글자
12쪽

보복

DUMMY

“으아악!”


한스와 요나스도 서둘러 참호 안으로 몸을 던지려는 순간, 총알이 한스의 머리 위를 스치고 지나갔다.


“허억!”


그 직후 한스는 요나스와 함께 참호 안으로 안전하게 떨어졌다. 뮐러 병장이 헬멧을 벗어보니, 헬멧에는 커다란 총알 자국이 패여 있었다.


“병장님, 괜찮으십니까?”


요나스가 물었다.


“저격수를 조심해야겠군. 상당한 실력자야.”


뮐러 병장이 말하고는 보고를 하러 떠났다. 한스는 요나스와 함께 대피호에 들어가서 안톤, 니클라스에게 오늘의 일을 이야기했다.


“불발탄이 생각보다 많고, 깊은 참호 구덩이가 너무 많아. 얕은 구덩이 속에는 몸을 숨겨서 총알을 피하기에 좋아 보이지만, 어떤 구덩이는 너무 깊어서 혼자서는 빠져 나오기 힘들어 보이니까 주의해야 할 거야.”


‘이렇게 유용한 정보도 주었으니 나한테 함부로 못 하겠지.’


“적군 기관총은 몇 정이 있어?”


“내가 본 것만 양 쪽에 두 정이 있었어. 돌격할 때는 그 기관총의 사정거리에서 벗어나기 힘들어 보여. 한 쪽이 장전을 하고 있다고 해도 다른 기관총이 있으니까 피하기가 힘들 거야. 적당한 구덩이에 들어가서 기관총이 있는 쪽으로 수류탄을 던지는 것이 좋아 보여.”


한스의 말을 듣고 안톤, 니클라스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돌격 명령이 내려지면 거의 죽는다고 볼 수 있으니까.


“기관총은 소총보다도 총기 불량이 나는 경우가 많아. 총소리가 더 들리지 않을 때 재빨리 그 쪽으로 수류탄을 던지면 승산이 있을 거야.”


한스가 안톤, 니클라스에게 이야기했다. 그런데 갑자기 소름끼치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슈타이너 상병과 자신이 다루는 기관총이 불량이 난다면? 그런 순간에는 적군이 역으로 자신의 전략을 쓸 수도 있을 것 이다. 기관총은 강력한 무기이지만 적군은 분명히 기관총 사수에게 가장 먼저 수류탄을 던질 것이 분명했다.


“아, 그리고 저격수 조심해.”


한스가 말했다.


“내 옆으로 총알이 스치고 지나갔어.”


아직도 하얗게 질려 있는 얼굴로 요나스가 말했다.


“보초 설 때 실수로라도 머리 내밀지 않는 것이 좋을 거야. 뮐러 병장이 일어선 순간 정확히 머리를 조준해서 맞췄어.”


“모리츠 상병은 보초 설 때 머리를 내밀고 제대로 정찰하라고 했는데?”


안톤이 말했다.


“그랬다간 머리에 구멍이 뚫릴 거야.”


요나스가 이야기했다. 한스는 문득 모리츠 상병이 의심쩍었다. 신병인 자신들이야 모를 수 있었겠지만, 보초를 설 때 머리를 내밀다가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상병인 그가 모를 리 없었다.


“왜 모리츠 상병은 그런 말을 한 걸까?”


한스가 불쑥 내뱉었다.


“경계를 철저히 하는 것이 중요하니까 그랬겠지?”


멍청한 안톤이 말했다.


“아, 배고프다.”


니클라스가 이를 잡아서 촛불에 태우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한스는 멍청하고 눈치 없는 동료들을 보면서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는 것을 느꼈다. 모리츠 상병이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챈 것도 한스 뿐 이었다.


혹시 찜찜한 상병이 있다면 같이 머리를 모아서 전략을 짜야 하는데, 모리츠 상병에 대해 이야기를 꺼냈다간 오히려 한스만이 이상한 사람으로 몰릴 것이 뻔했다. 비스킷이나 양말, 설탕 등을 교환하는 것 외에는 이 덜 떨어진 자식한테 앞으로 도움을 받을 것도 없어 보였다.


‘모리츠 상병은 아무래도 찝찝한 놈이야. 포탄 파편이라도 맞고 빨리 뒈지면 좋을텐데···


한스는 쥐로부터 얼굴을 보호하기 위해, 모포를 머리까지 덮고 푹 잠이 들었다. 다음 날, 한스는 뒷간에 가던 중, 모리츠 상병, 뮐러 병장, 슈타이너 상병이 하르트만 중사의 명령을 받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모리츠 상병은 통나무 두 개를 십자가 모양으로 포갠 후, 그 위에 군복을 입히고 위에 철모를 씌운 허수아비를 들고 있었다. 철모에는 0부터 12까지의 숫자가 시계처럼 빙 돌아가며 쓰여져 있었다. 피가 묻은 군복은 아마 사상자의 것으로 보였고, 그 흉물스러운 괴기한 물체로부터 한스는 눈을 때지 못하였다.


“자, 그러면 시작해 보자고.”


하르트만 중사가 명령하자, 모리츠 상병이 조심스럽게 허수아비를 위로 들어 올렸다.


“잠깐만, 더 올리지 마.”


하르트만 중사가 말했다. 모리츠 상병, 뮐러 병장, 슈타이너 상병은 모두 긴장한 채로 허수아비를 바라보고 있었다.


‘도대체 뭘 하는 거지?’


한스는 장교나 부사관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거의 없었지만, 하르트만 중사는 최전방에서 혁혁한 공로를 세운 것으로 유명했다. 한스는 참호를 정비하는 척 하며, 가급적 그들의 눈에 띄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상황을 엿보았다.


“좀 움직여 보는 게 어때?”


슈타이너 상병의 말에 모리츠 상병이 허수아비를 천천히 왼 쪽으로 움직여 보았다. 그러나 아무 일이 벌어지지 않자, 모리츠 상병이 심드렁하게 말했다.


“밥이라도 먹고 있나 보군.”


“카앙!!!”


“으아앗!!!”


금속이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허수아비가 쓰고 있던 철모가 바닥으로 내동댕이쳐졌다. 모리츠 상병도 놀라서 손에서 허수아비를 놓아 버렸다. 하르트만 중사는 재빨리 철모를 주워서 총알 자국을 확인했다.


“저격수 확인. 2시 방향으로 포격 실시!”


하르트만 중사의 명령은 포병에게 즉시 전달되었고, 저격수가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쪽으로 집중 포격이 이루어졌다. 기묘한 휘파람 소리 다음에 터지는 맹렬한 포격음. 포병대가 형편 없는 실력으로 괴상망측하게 오케스트라를 연주하는 것 같았다.


이것이 아군이 아닌, 적군 진지를 향한 것 이라는 게 퍽이나 마음이 놓였다. 한 시간 가량의 집중 포격이 쏟아지고, 독일군 포병은 잠시 포격을 멈추었다.


“이 정도면 죽었겠지?”


슈타이너 상병이 긴장한 얼굴로 말했다.


“글쎄.”


모리츠 상병이 대꾸했다. 그 순간 멀리서부터, 공기를 찢어발기는 듯한 휘파람 소리가 들려왔고, 그들은 본능적으로 참호 바닥에 납작하게 엎드렸다.


“허억 왜 그러지?”


라고 한스가 생각할 즈음, 엄청난 굉음과 함께 독일군 참호 근처에 포탄이 떨어져서 커다랗게움푹 파인 자국을 만들었다.


“으아아악!!! 엄마!!!!!”


한스는 비명을 지르며 그 때서야 뒤늦게 참호 구석에 몸을 웅크리고 엎드렸다. 귀에서는 아무 것도 들리지 않고, 진동은 한스의 두개골 안 쪽까지 뒤 흔들고 있었다. 아마 귀가 먹어버렸나 보다, 라고 생각했다. 저 앞에서 뮐러 병장이 입을 크게 벌리고 한스를 바라보고 있었다.


‘왜 저렇게 소리치지?’


한스가 멍 때리고 있는 순간, 청력이 서서히 돌아왔고, 뮐러 병장이 손가락으로 대피호를 가리키며 소리가 지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대피호로! 대피호로!”


지축이 흔들리고, 참호에 작은 흙 알갱이들이 이리 저리 흔들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스는 여전히 멍한 상태로 양 손으로 바닥에 흙을 세게 쥔 채로 참호에 엎드려 있었다. 그렇게 쥐고 있으면 진동에도 무사할 것 같았다.


그러나 다시 한 번 포탄이 근처에 떨어졌고, 어찌나 힘이 강렬했던지, 참호를 보호하기 위해 위 쪽에 쌓아놨던 모래 주머니 하나가 참호 안 쪽으로 툭 떨어졌다. 이제 흙 알갱이들은 양 쪽으로 흔들리는 것을 넘어서 통통 튀어 오르고 있었다. ‘여기 있으면 넌 죽을 거야.’ 라고 한스를 조롱하는 것 같았다.


고개를 들었더니, 뮐러 병장, 하르트만 중사, 슈타이너 상병, 모리츠 상병 모두 보이지 않았다. 이미 다들 대피호로 들어간 것 이었다. 한스는 허리를 숙이고 머리를 손으로 감싸 안은 채로 대피호로 향했다. 적군은 정확히 이 쪽을 향해 포격을 내리 꽂고 있었다. 한스는 귀를 틀어 막고 겨우 대피호에 도착했다.


“으아아아 으아아아 으아아아 으아아아”


니클라스는 무릎을 꿇고 귀를 막은 채로 마치 고장 난 인형마냥 규칙적으로 비명을 질렀다. 뮐러 병장도, 다른 상병들도 니클라스를 막으려는 시도도 하지 않고 자신의 총을 쥔 채로 가만히 앉아 있었다. 요나스와 안톤은 구석에서 훌쩍거리고 있었다.


니클라스의 비명은 마치 포격 소리에 박자를 맞추는 메트로놈 같았다. 포탄이 떨어질 때마다 비좁은 대피소의 천장이 흔들리며 사방에서 흙이 떨어졌다. 그렇게 몇 시간에 걸쳐 흔들리는데도 불구하고 무너지지 않는 것이 참으로 신기했다.


“으허엉···”


훌쩍거리던 안톤이 참지 못하고 울음을 터트렸고, 요나스도 같이 울기 시작했다. 한스만이 하얗게 질린 상태로 꼼짝도 안하고 소총을 쥐고 있었다. 어찌나 소총을 세게 쥐었던지, 손톱이 하얗게 변했다. 한스의 몸 속에서는 공포가 사방 팔방으로 요동을 치고 있었지만, 평생 동안 입을 다물고 있는 것에 익숙했던 한스는 울 수도 비명을 지를 수도 없었다.


가슴 깊은 곳에서 찢어지는 듯한 비명이 미친 듯이 울렸지만, 목구멍으로 도달하지도 못하고 안에서만 메아리 쳤다. 한스는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소총을 쥐고 가만히 주저 앉아 있었다.


“쉬우우웅 쿠왕!!!!!!!!!”


기묘한 휘파람 소리 이후에 들리는 커다란 포격 소리는 5시간 넘게 이어졌다. 한스와 다른 병사들은 무기력하게 대피호 안에서 귀를 막고 포격이 멎기를 기다리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한스는 6살 때부터 주먹을 휘두르는 아버지를 피해 집 밖으로 도망 나가는 일이 많았다.


술에 취한 아버지는 한스를 좇다가 곧잘 넘어지고는 했기 때문에 재빠른 한스에게, 도망치는 일은 누워서 떡 먹기였다. 있는 힘껏 마을을 가로질러 달려갈 때마다 한스는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자유로움을 느꼈다. 아무도 오지 않는 숲 속 잔디밭에 가서 누워 있으면 밤 하늘에 무수한 별이 한스에게 친구가 되어 주었다.


도망 갈 때마다 늘 기대어 앉는 나무에게 한스는 ‘핀’ 이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 한스는 문득 ‘핀’이 생각났다. 어쩌면 핀은 포격으로 인해 부러졌을 지도 모른다. 아니면 땔감으로 잘렸을지도 모르고. 그 마을에 어느 것도 그리운 것은 없었지만, ‘핀’ 은 한스에게 있어서 유일하게 그리운 존재였다.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니···.’


거대한 강철 포탄 앞에서 인간은 무기력했다. 한스는 전혀 모르고 있었지만, 사실 한스의 먼 조상은 아내와 자식을 위해 사냥을 나갔다가 늑대 무리에 쫓긴 적이 있었다. 그는 있는 힘껏 달리며 자신에게 닥친 죽음을 피하려 노력했다. 그러나 늑대 무리는 놀랄 만큼 지능이 높은 아주 노련한 사냥꾼이었다.


그는 자신의 궁지에 몰리고 있음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직감은 그를 만류했지만, 그는 유일한 탈출구로 보이는 방향으로 냅다 방향을 바꿨고, 기다리고 있던 알파 늑대에게 목을 물린 채로 쓰러졌다. 늑대의 아가리는 강철로 만든 덫마냥 절대로 그를 놔주지 않았고, 숨통을 끊기 위해 힘껏 흔들었다.


그러나 인간의 목숨은 쉽사리 끊어지지 않았다. 한스의 조상은 그렇게 산 채로 늑대 무리에게 물어 뜯기며 자연의 섭리에 체념하고 고개 숙였다. 나약한 인간은 이 숲 속에서 자신보다 살아남을 자격이 있는 늑대 무리에게 기꺼이 자신의 살을 내어 주었다. 훗날 그의 아들은 늑대를 덫으로 사냥하였고, 자신도 방심하다가 늑대에 의해 아버지와 같은 죽음을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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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데뷔 전투 +6 20.11.25 4,435 111 11쪽
12 운수 좋은 날 +9 20.11.25 4,757 109 11쪽
11 탱크, 그리고 엠마라는 여자 +10 20.11.24 4,660 110 11쪽
10 천재 전략가 롬멜 소위 +12 20.11.24 4,678 114 11쪽
9 반갑지 않은 친구 +9 20.11.23 4,875 114 11쪽
8 연락병 아돌프 히틀러 +11 20.11.23 5,029 121 11쪽
7 도려내기 작전 +7 20.11.22 5,231 123 11쪽
» 보복 +3 20.11.22 5,467 125 12쪽
5 방심하는 순간 +5 20.11.22 5,639 128 11쪽
4 참호전의 생존 기술 +12 20.11.21 6,041 112 12쪽
3 기관총에 왜 오줌이 필요하지? +11 20.11.21 6,465 129 11쪽
2 첫 전투 +12 20.11.21 7,530 124 11쪽
1 왕따 한스 1차 대전에 참전하다 +27 20.11.21 11,550 16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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