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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 님의 서재입니다.

왕따 이등병의 1차 대전 생존기

웹소설 > 일반연재 > 전쟁·밀리터리, 대체역사

dirrhks404
작품등록일 :
2020.11.21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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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10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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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21 2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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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호전의 생존 기술

DUMMY

한스는 구역질이 날 것 같았다. 슈타이너 상병 옆에 있던 나이 많은 병사가 웃으며 이야기했다.


“이봐. 오줌은 독가스가 올 때도 꽤나 유용하다고.”


“그래. 독가스 공격이 있을 때 방독면이 없으면 천에 오줌이라도 묻혀서 입과 코를 틀어막고 있어야 하네. 독가스는 무거워서 바닥에 쌓이니 가능하면 고개를 위로 들고 있고.”


훈련소에서는 생전 들어보지도 못했던 생존 팁들을 그들은 잘 알고 있었다.


“의무병이 없을 때는 상처를 소독할 때 쓸 수도 있다네.”


나이 많은 병사가 낄낄거리며 말했다.


“아, 기관총 옆에 있으면 아주 시끄러우니 귀마개를 준비하게.”


슈타이너 상병이 한스에게 조언했다. 한스는 그 날 대피소에 가서 헝겊을 뭉쳐서 두 개의 작은 귀마개를 만들었다. 그런데 왠지 쉽게 잃어버릴 것 같아서 몇 개 더 만들었다. 그 때 옆에 있던 니클라스가 말을 걸었다.


“한스, 너 기관총 부사수 역할을 하게 되었다며?”


“응. 뮐러 병장님이 나를 뽑으셨어.”


한스는 우쭐한 기분이 들었다.


“기관총은 적군이 자주 노리니까 위험할 텐데 용기가 대단해.”


“맞아. 적군은 기관총이 있는 쪽으로 수류탄을 갈기잖아.”


그때 지나가던 모리츠 상병이 잠시 멈추더니, 씨익 웃으며 이야기했다.


“내가 뮐러 병장한테 한스, 자네를 추천했네. 지난번 전투 때 매우 용맹했고 동료들을 구했으니 말일세. 부사수로 이등병은 잘 안 뽑는데 내 덕 인줄 알게나.”


모리츠 상병은 한스의 어깨를 두드리며 조롱하는 듯한 미소를 보이고는 자리를 떴다. 모리츠 상병과 동료들의 말에 한스는 충격을 받았다.


‘기관총 부사수가 안전한 자리가 아니었어?’


한스는 모리츠 상병을 두들겨 패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 새끼, 내 권총을 빼앗아 놓고 일부러 나를 위험한 자리에!’


한스는 모리츠 상병이 자신의 권총을 빼앗았기 때문에, 나중에 자기한테 보복을 당할 까봐 일부러 뮐러 병장한테 자기를 위험한 자리에 꽂아 넣은 것이라고 확신하였다. 한스는 모리츠 상병이 포탄 파편에 맞아서 고통스럽게 몸부림치다가 뒈지기를 진심으로 기도하였다. 안톤이 한숨을 푸욱 쉬며 말했다.


“난 하필 박격포를 다루게 되었어. 최악이지.”


“박격포? 그게 왜?”


한스가 물었다.


“박격포가 잘못 미끄러지면 내 손이 날라갈 수도 있어. 그렇게 해서 손 한 쪽이 포탄에 날라간 병사가 있었대.”


안톤의 말을 들으니 한스는 기관총 부사수 자리가 그렇게 나쁘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걱정 마. 자네는 잘 해낼 거야.”


한스는 기분이 다소 좋아졌기 때문에 안톤을 위로했다.


“난 자네들이 부러워. 기관총이나 박격포로는 적군을 수십 명은 죽일 수 있잖아. 나도 독일을 위하여 열심히 싸우고 싶은데, 아직 한 명도 못 죽인 꼴이라니..”


니클라스가 말했다.


“이봐 전우, 살아남았으면 된 거야.”


요나스가 니클라스를 위로했다.


“내가 힘이 세거나 민첩했으면 좋았을텐데···고향에 독일을 위해 입대한다고 큰소리는 땅땅 쳤는데, 적군 한 명도 못 죽이고 짐만 되는 내 꼴이 한심해.”


니클라스는 계속해서 투덜거렸다. 잠시 뒤, 한스는 요나스와 함께 보초를 서게 되었다. 요나스가 말했다.


“한스 넌 정말 대단해. 몇 명이나 죽였어?”


“세 명 죽였어.”


“우와 대단해. 나는 죽을 뻔 했는데 병장님이 날 도와줘서 겨우 살았어.”


“별 거 아냐. 그냥 운이 좋았지.”


한스는 그렇게 대답하면서 우쭐한 기분이 들었다.


“한스, 혹시 잘 맞추는 방법이라도 있어?”


요나스는 잔뜩 기대하고 동경하는 듯한 눈빛으로 한스를 쳐다보았다. 한스는 잠시 고민하다가 전방을 소총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영국놈들 보통 철조망 찢긴 쪽으로 들어오거든. 옆에 동료들이랑 제각기 찢겨진 부분들을 하나씩 맡고, 그 쪽을 조준하고 있어.”


한스가 소총으로 가리킨 곳에는 철조망이 너덜너덜하게 찢어져 있었다.


“저런 부분으로 보통 뚫고 오거든.”


“우와. 그렇구나.”


요나스가 감탄하였다. 한스는 단 한번도 학교에 다니면서 이런 동경 어린 시선을 받아본 적이 없어서 우쭐해졌다.


“아, 무인지대에서는 가급적 뭉치지 않는 것이 좋아. 기관총은 여러 명이 뭉쳐있는 곳을 주로 공격하거든.”


지난 번 철조망 작업 때 적의 기관총을 피해 달아날 때, 요나스, 안톤, 니클라스가 자신의 꽁무니를 쫓던 것을 생각하면 아직도 한스는 뒷골이 당겼다.


“난 동료랑 같이 있어야 안전할 것 같았는데.”


멍청한 요나스가 대답했다. 그렇게 지루한 야간 보초가 끝나고 잠을 잘 수 있는 휴식 시간이 되었다. 잘 수 있는 시간은 길지 않기 때문에 가능하면 푹 자야 했지만, 한스는 도무지 잠에 들 수 없었다.


억지로 눈을 감았지만, 아까 전에 총검에 사타구니가 박힌 적군의 모습이 자꾸 떠올랐다. 아드레날린이 심장의 펌프질을 하고 있었고 아직도 가슴을 진정시킬 수 없었다.


‘전쟁이 끝나면 집에서 독립해서 대학을 다닐 수도 있을 거야. 월급이 얼마였더라···6개월만 모으면···전쟁은 아무리 길어도 7개월 정도 걸릴 테니까···그 때까지만 잘 버텨야지..’


상사들은 맨날 잠도 안 자고, 카드를 치며 도박을 했지만, 한스는 그 돈을 꾸준히 저축하기로 결심했다. 다른 병사들은 월급 대부분을 집에 보내고, 나머지는 도박, 매춘에 탕진했다. 한스에게 월급이란 지옥 같던 집을 탈출할 수 있는 동앗줄과도 같았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병사들처럼 그렇게 헛되이 낭비할 수는 없었다.


‘난 살면서 단 한 번도 좋았던 적이 없어. 조금만 더 버티고 살아남으면, 그 때부턴 내 인생이 다시 시작되는 거야.’


매일같이 아버지가 집안을 때려부수는 소리와 어머니의 눈물 소리가 들려왔던 집에서는 한스는 제대로 공부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공부는커녕 단 한 순간도 마음이 편했던 적이 없었다.


희망찬 미래를 꿈꾸던 한스는, 갑자기 아까 전에 자신이 죽였던 병사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앞으로 어떤 좋은 일이 일어나더라도, 자신의 마음 속에는 칙칙한 흑백의 톤으로 남은 인생이 이어질 것 같았다.


예전에 한스가 미래를 꿈꾸면 희망이 부풀어올랐지만, 뭔가 마음 속에서 감정을 느끼는 부분이 툭 끊어진 것 같았다. 처음 이 곳에 왔을 때, 신병들을 제외하고 모든 군인들은 다들 무미건조하고 음울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지독하게 더러운 곳에서 살아서 그럴 거라고 생각했는데, 한스는 이제서야 왜 그런 표정을 짓게 되는지 알 수 있었다.


‘그건 내 잘못이 아니잖아. 그렇지 않았다면 내가 죽었을 텐데? 난 명령 받은 대로 했을 뿐이야.’


한스는 자신의 총검에 사타구니가 찔려 꾸웨웨웩 소리를 지르던 병사의 모습이 뇌에서 잊혀지지 않았다.


‘그렇게 오래 고통 받지는 않았을 거야. 더 고통 받은 병사들도 많은걸.’


아무리 스스로 위안을 해 보려고 해도 한스는 자신의 마음이 울적했기 때문에 문득 화가 나기 시작했다.


‘내가 죽인 게 루카스나 막스였다면 좋았을 텐데···그렇다면 이런 더러운 감정은 좀 느껴도 괜찮았을 거야. 왜 나한테 잘못한 게 전혀 없는 엉뚱한 사람을 죽여야 하지? 죽어야 하는 건 루카스, 막스, 율리안 그 자식 들인데···’


한스는 루카스, 막스, 율리안을 총으로 쏘고, 검으로 찔러 죽이는 상상을 하였다. 그렇게 하니 마음이 조금 편해지는 것 같았다.


‘슈미트 선생 그 작자도 징집될까?’


혹시나 슈미트 선생을 운 좋게 전선에서 만나게 된다면, 같은 반이었던 막스, 루카스, 율리안보다도 훨씬 잔인하게 죽이고 싶다고 한스는 생각했다. 그냥 죽이는 것 보다는 다리 하나를 부러뜨려서, 평생 불구로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다. 근데 그렇게 되면 한스도 군법에 회부될 것 이다.


‘그 자식들 때문에 내 인생을 망칠 수는 없지···그냥 포탄 맞아서 병신이나 되어 버려라.’


한스의 머리 속에서 온갖 잡다한 생각이 꼬리를 물었고, 한참이 지나서야 겨우 선잠을 잘 수 있었다. 잠을 자면서도, 한스는 무의식 속에서 알 수 있었다.


아무리 지옥 같은 유년기를 보냈지만, 한스에게도 동정심, 따뜻함을 느끼는 기능이 아예 없지는 않았던 것이다. 길을 가다가 어린 아이가 넘어져 있는 것을 보면 자신의 어린 시절이 떠올라서 도와주기도 했었다. 특히 부모한테 맞고 있는 어린 아이를 보면 못내 마음이 아팠고 동정심을 느꼈다.


한스는 자신을 괴롭히는 새끼들에게 복수를 하는 상상을 하고는 했지만, 한스는 어린 아이들한테는 꽤나 마음이 여렸던 것 이다.


이것은 한스 깊은 마음 속에서 죽지 않고 꿈틀거리며, 언젠가 집에서 독립을 하고, 직업을 갖고, 가정을 꾸리면 아내와 자식을 사랑하고 돌보며 행복하게 살아갈 수도 있다는 아주 작은 희망으로 자리잡아 있었다.


하지만 그 것이 오늘 완전히 죽어버렸고, 한번 죽은 것은 살아날 수 없다는 것을 한스는 잘 알고 있었다. 한스는 자기 자신을 증오하게 되었고, 길거리에서 울고 있는 어린 아이를 보아도 다시는 동정심을 느끼지도, 도와주지도 못할 것 이다.


한스는 아버지가 왜 그렇게 자기 자신과 어머니를 때리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자신한테 아무 이득도 되지 않는 행동을 하면서 기분을 잡치게 하는지, 매우 이성적이지 못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한스는 아버지가 그렇게 행동한 메커니즘, 심리 상태를 알 것 같았다. 박살 난 쿠키는 다시 붙일 수 없는 것처럼, 동정심을 느끼는 뇌에 한 부분이 파괴되고 나니까, 자신의 폭력성은 언덕 비탈길에서 패달을 밟지 않은 자전거처럼 미친 듯이 폭력을 향해 질주하게 되는 것 이었다.


오늘 전투를 겪지 않았더라면, 어쩌면 한스는 아버지와 다르게 행복한 가정을 꾸릴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늘 한스는 그 꿈이 완전히 박살 났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애국심? 독일이 나한테 해준 것이 뭐가 있다고···좆 같은 새끼들···아버지는 평생 동안 편하게 살았는데···왜 하필 내 시대에···’


온갖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가, 결국 한스는 잠에 들었다.


“으음?으아악!!”


한스가 비명을 지르자, 대피소에 있던 다른 장병들도 놀라면서 일어났다.


“뭐야! 무슨 일이야!”


한스의 얼굴에는 긴 꼬리에 커다랗게 살찐 통통한 쥐가 기어갔던 것 이다. 한스가 비명을 지르자 그 쥐는 순식간에 어딘가로 사라져 버렸다.


“쥐!!!쥐가!!!”


“겨우 쥐 가지고 소란이야! 시끄러워!”


슈타이너 상병이 자신의 얼굴을 가리고 있던, 철사로 만든 그물 같은 얼굴 가리개를 들어올리며 말했다.


“쥐들이 시체 맛을 봐서 그래. 얼굴은 가리고 자는 게 좋아. 놈들은 눈알 맛을 제일 좋아하거든."


“눈알 맛이요?”


“신병이라 아직 못 봤나 봐.”


모리츠 상병이 낄낄거리며 말을 이었다.


“쥐들은 눈알을 제일 좋아한다고. 죽은 지 하루만 지나도 눈알만 다 파 먹혀 있다니까.”


“흐이익···”


요나스가 그 말을 듣고 기겁했다.


“뭘 그리 놀라? 쥐들은 부상병들도 공격한다니까.”


슈타이너 상병의 말에 한스는 모포를 머리까지 덮어썼다. 모포 속에는 벌써부터 이가 드글거려서 얼굴이 가려운 느낌이 들었다. 내일이면 분명 이에 물려서 얼굴 이곳 저곳이 벌겋게 부어 오를 것 이다. 그래도 쥐에 얼굴을 갉아 먹히는 것 보다는 나을 것 같았다.


다음 날, 한스는 요나스, 니클라스, 안톤과 함께 참호를 정비하는 작업을 했다. 말이 참호 정비이지, 사실은 적군의 시체를 멀리 버리는 작업이었다.


“우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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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데뷔 전투 +6 20.11.25 4,435 11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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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연락병 아돌프 히틀러 +11 20.11.23 5,029 121 11쪽
7 도려내기 작전 +7 20.11.22 5,231 123 11쪽
6 보복 +3 20.11.22 5,467 125 12쪽
5 방심하는 순간 +5 20.11.22 5,639 128 11쪽
» 참호전의 생존 기술 +12 20.11.21 6,042 112 12쪽
3 기관총에 왜 오줌이 필요하지? +11 20.11.21 6,465 129 11쪽
2 첫 전투 +12 20.11.21 7,530 124 11쪽
1 왕따 한스 1차 대전에 참전하다 +27 20.11.21 11,550 16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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