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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 님의 서재입니다.

왕따 이등병의 1차 대전 생존기

웹소설 > 일반연재 > 전쟁·밀리터리, 대체역사

dirrhks404
작품등록일 :
2020.11.21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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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10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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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22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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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도려내기 작전

DUMMY

포탄 소리는 적의 보이지 않는 증오를 담고 있었고, 공격을 받았으면 기꺼이 그만큼 돌려주겠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 같았다. 5시간에 걸친 폭격이 끝나고, 더 공포스러운 적막이 찾아왔다. 병사들은 재빨리 대피호를 나가서 디딤판에 발을 디디고 적군을 향해 총을 겨냥했지만, 이번에는 적군은 공격해 오지 않았다. 무인지대에는 사방에 포탄 자국이 났지만 철조망은 멀쩡했다.


“포탄은 철조망을 부수지도 못하는데 적군은 왜 저렇게 포탄을 쏘아 대는 겁니까?”


요나스가 물었다.


“영국놈들은 유산탄을 주로 쓰는데, 그것은 철조망을 부수는 것에는 효과가 없다네. 순전히 살상용이지.”


슈타이너 상병이 말했다. 유산탄 안에는 작은 탄알이 가득 차 있었고, 폭발하는 순간 그 탄알이 사방으로 뿜어져 나갔다. 그 탄알은 아주 작았지만, 단 한 개로도 사람을 죽이기에 충분했고, 커다란 포탄보다도 살상 범위가 넓었기에 가장 공포의 대상이었다. 요나스는 그토록 독일군에게 살의를 갖고 있는 적군을 생각하며 몸서리쳤다.


“유산탄이 날아올 때 어떻게 하면 되나요?”


한스가 물었다.


“그냥 엎드리는 거 말고는 방법이 없어. 소리가 들리면 바로 엎드리게.”


슈타이너 상병이 말했다. 한스는 요나스, 안톤, 니클라스와 함께 이리저리 땅에 떨어진 모래주머니를 다시 쌓으며 참호를 정비했다. 폭격이 끝나자 니클라스는 진정이 되었지만, 아직도 넋이 나간 것처럼 보였다. 혼자 실실 웃기도 하고, 초점이 없어 보였다.


“이봐. 이등병! 자네!”


뮐러 병장이 니클라스를 불렀다.


“안녕하세요. 저 말입니까.”


니클라스는 병장 앞에서 실실 웃으며 대답했다. 뮐러 병장은 한스, 요나스, 안톤을 불러놓고 말했다.


“저 친구 상태가 안 좋아지면 즉시 보고하도록.”


“네.”


한스는 대답하면서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한스는 고등학교에서 자신이 당한 것처럼 군에서도 왕따를 당하지 않을까 걱정했다. 하지만 니클라스가 관심 병사가 된 덕분에, 다들 한스에게는 신경을 쓰지 않을 것 이다.


‘나는 10년 넘게 두들겨 맞아도 버티는데, 고작 몇 시간 포격에 정신이 나가다니 나약하고 병신같군..’


한스는 속으로 니클라스를 경멸하고 싫어했지만, 니클라스를 챙겨주는 척 하면서 붙어 있으면, 자질구레한 일을 안 할 수 있어서 좋았다. 며칠 뒤, 불행인지 다행인지 니클라스는 실실거리며 웃는 것을 멈추었고, 눈에 초점이 돌아왔다. 다만 예전보다 표정이 없어졌고, 확연히 말이 없어졌다. 한스가 보초를 서다가 대피호로 들어왔을 때, 니클라스가 1인치 밖에 남지 않은 촛불 앞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니클라스는 전쟁이 끝나면 역사 선생이 되어 자랑스러운 독일에 대해 학생들에게 가르칠 거라고 입버릇처럼 말하곤 하였다. 그래서 다른 병사들이 음담패설을 하거나 카드 게임을 할 때에도 니클라스는 손 때가 잔뜩 묻은 역사 책을 읽고는 했었다. 한스는 니클라스를 신경쓰지 않고 모포를 머리까지 덮고 눈을 붙였다. 그런데, 대피호 안에서 종이가 찢어지는 소리가 났다.


“찌이익 찌이익”


한스는 모포를 살짝 내리고, 니클라스가 무엇을 하는지 곁눈질했다. 니클라스는 책을 한 페이지를 찢고는, 그것을 다시 길게 찢어냈다. 그러고는 촛불로 종이에 살짝 불을 붙였다. 종이는 순식간에 타들어 갔고, 니클라스는 그것을 참호 바닥에 떨어트리고 발로 밟아 불을 껐다.


니클라스는 그렇게 책장을 다시 길게 찢어내서 촛불로 종이에 불을 붙이고, 그것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바닥에 떨어트리고 발로 불을 끄기를 반복했다.


“이봐! 니클라스!”


한스는 최대한 니클라스를 자극하지 않으려는 조심스러운 태도로 말했다.


“위험하니까 그만해.”


니클라스는 한스의 말에 책을 덮고는 대답했다.


“한스, 자네였군.”


괜히 상병이나 병장을 깨우다가 니클라스를 자극해서 큰 사고로 이어질 지도 모른다고 한스는 생각하였다. 그래서 한스는 계속해서 니클라스에게 말을 걸었다. 한스의 손에서는 식은 땀이 났다.


“내가 도와줄 거라도 있나?”


“나는 괜찮네.”


니클라스는 참호 벽에 기대어 느릿하게 말을 시작했다.


“나는 독일을 위해 싸울 거라고 마을에 호언장담했었지. 하지만 나는 하루라도 포탄 소리를 안 들어도 된다면, 독일 따위는 이제 상관 없네.”


니클라스는 생각보다 정신이 멀쩡해 보였기에, 한스는 안심했다.


“다들 똑같이 생각할 거야. 나도 전쟁 따위 잊어 버리고 맥주나 실컷 마시고 싶어.”


그리고 한스는 니클라스의 눈치를 살피며 물었다.


“힘들면 뮐러 병장에게 말해서 고향에 돌아가는 것은 어떤가?”


“난 독일은 버릴 수 있지만, 내 전우들을 버릴 수는 없네.”


그리고 니클라스는 한스를 힐끗 쳐다보고는 말했다.


“특히나 자네는 나한테 유난히 친절했어.”


한스는 속으로 뜨끔했지만, 니클라스를 계속 진정시키려 말을 이었다.


“그래. 니클라스, 혹시 휴가 가게 되면 같이 맥주나 마시자고.”


니클라스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모포를 덮고 잠에 들었다. 그제서야 한스는 손을 군복에 비벼 식은 땀을 닦고는 모포를 머리 끝까지 둘러 썼다. 한스는 장기간 근무로 매우 피곤했었지만, 한참이 지나서야 겨우 잠이 들었다.


다음 날, 하르트만 중사는 뮐러 병장, 슈타이너 상병, 모리츠 상병을 불러서 소수 병력으로 적군 참호를 습격할 계획을 이야기했다. 하르트만 중사는 이를, ‘도려내기 습격’이라 불렀다.


적군 참호의 취약해 보이는 곳을 소수 병력이 급습하고, 근처에 있는 적이 증원부대를 보내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표적 구역 근처에는 집중적으로 포격을 하는 전략이었다. 돌격 자체가 무모한 것은 물론이거니와, 돌격대가 아군의 폭격에 맞을 수도 있는 정신 나간 작전이었다.


“연대 단추, 급료 장부 등은 모두 두고 가게. 그 외에도 적군에게 정보를 줄 수 있는 물품은 가져가지 말도록.”


하르트만 중사가 말했다.


“참호에 수류탄을 던질 이등병도 하나 데려가도록 하게.”


하르트만 중사가 이등병을 하나 데려가라고 했던 이유는, 최초로 적진에 가서 수류탄을 던지는 병사는 적군에게 죽을 확률이 매우 높았기에, 총알 받기로 쓰기 좋은 이등병을 데려가라고 조언했던 것 이다.


경험이 많은 상병, 병장 보다는 이등병이 죽는 것이 군사적으로 덜 손해였다. 이등병이야 아무리 죽어도 보충하면 그만이었다. 또한 위험한 임무였기 때문에, 총알받이가 없으면 병장이나 상병 입장에서 전투를 제대로 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었다.


“알겠습니다.”


뮐러 병장이 대답하고는 참호를 정비하고 있는 한스, 니클라스, 안톤, 요나스에게 가서 이야기했다.


“조만간 적군 참호 기습 장전이 시행된다네. 아주 위험한 작전이니, 임의로 지목하지는 않겠네. 혹시 지원자 있나?”


당연히 한스, 니클라스, 안톤, 요나스 모두 뮐러 병장의 눈을 피하며 아무도 지원하지 않았다. 뮐러 병장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제비 뽑기로 정하겠네.”


뮐러 병장은 종이 네 개 중에 한 종이에만 O표시를 그리고, 나머지에는 X표시를 그렸다. 그리고 종이를 접은 다음에, 자신의 철모에 넣었다. 한스는 속으로 생각했다.


‘4명 중에 1명만 가는 거니까, 75프로는 안전하다···설마 내가 걸릴 일은 없겠지···.’


뮐러 병장이 철모를 내밀며 말했다.


“자, 하나씩 뽑게나.”


순진한 안톤이 먼저 종이를 집어 들었다. 안톤은 떨리는 손으로 종이를 조심스럽게 펼쳐 보았다. X표시였다. 안톤의 얼굴에는 화색이 돌았지만, 다른 동료들은 모두 표정이 굳어졌다.


‘3명 중에 1명이니까, 아직도 확률은 적어. 제발···.’


요나스가 눈치를 보다가 쪽지를 집었다. 그리고 눈을 감은 채로 종이를 펼쳤다.


‘젠장!’


요나스의 종이에는 X표시가 적혀 있었다. 요나스는 감정을 숨기지 못하고 함박 웃었다. 니클라스는 망설이지 않고 쪽지를 하나 골랐다. 한스가 침을 꿀꺽 삼키고, 니클라스를 쳐다보았다. 그러자 니클라스가 대답했다.


“자네 먼저 확인하게.”


철모 안에 하나 남은 쪽지를 한스가 쥐었다. 한스의 손에 묻은 땀으로 인하여, 쪽지는 오돌토돌해졌다. 천천히 쪽지를 펼쳐 보았다. 동그란 곡선의 일부분이 보였다. O였다.


“미안해 한스···”


요나스가 미안해하는 기색을 보이며 말했으나, 기쁨을 숨길 수는 없어 보였다.


“무운을 비네.”


니클라스가 말했다. 한스는 지금 이 순간이 믿기지 않았다. 멍한 상태로 뮐러 병장의 뒤를 따라나섰다.


‘왜 항상 나한테만 이런 일이···젠장!!!!!!!!!!’


군대에 입대한 이후로도 항상 한스는 위험한 임무를 맡아 왔다. 이번에는 심지어 제비 뽑기로 결정했음에도 불구하고, 한스는 단 한 시라도 편하게 빠져나올 수가 없었던 것 이다. 한스는 앞서 가는 뮐러 병장의 뒷 통수를 노려 보았다.


‘혹시나 내가 죽을 지도 모르는 상황이 되면···나 혼자서 뒈질 수는 없지···’


혹시나 부상을 당해서 돌아오지 못하는 상황이 된다면, 한스는 뮐러 병장과 모리츠 상병을 죽이기로 결심했다. 슈타이너 상병에게는 별다른 악감정은 없었다. 그는 꽤나 친절했고, 좋은 정보들을 가르쳐 주고는 했다. 하지만 뮐러 병장과 모리츠 상병을 죽이는데 걸림돌이 된다면 그도 죽여버리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한스는 이번 작전에서 살아남는다면 탈영하기로 결심했다.


‘이번에 살아남는다고 해도 분명히 또 좆 같은 일이 생기겠지.’


한스는 자신의 살의를 들키지 않기 위해, 태연한 척 하며 뮐러 병장을 따라갔다. 뮐러 병장은 한스에게 막대형 수류탄 5개, 권총, 새 소총을 주었다. 이전까지 쓰던 한스의 소총은 지난 번에 흙이 들어간 이후에 잘 작동할지 확신이 서지 않던 참이었다. 한스는 자신의 권총이 퍽이나 마음에 들어서, 좆같던 기분이 조금은 풀렸다.


“불필요한 짐은 모두 두고 가게.”


하지만 뮐러 병장의 말에 한스의 신경은 다시 곤두서기 시작했다.


‘포로가 되거나 죽을 가능성이 높으니 두고 가라는 거겠지···’


한스는 만족스럽게 자신의 무기들을 챙겼다. 어쩌면 이 무기는 영국군이 아니라 독일군을 죽이는데 쓰일지도 모른다고 한스는 생각하였다.


“혹시나 위험한 상황이 오면, 바로 도망가게.”


뮐러 병장은 목소리를 낮추고 한스에게 조언했다.


“나와 다른 상병들이 모두 죽거나 부상당하면 도망가란 말일세.”


“네? 그럴 수는 없습니다.”


한스는 뮐러 병장이 이런 말을 하는 저의를 알 수 없었기에, 속마음과 반대되는 대답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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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말

삽화는 당시 방독면을 쓴 독일 병사의 모습입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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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기관총에 왜 오줌이 필요하지? +11 20.11.21 6,465 129 11쪽
2 첫 전투 +12 20.11.21 7,530 124 11쪽
1 왕따 한스 1차 대전에 참전하다 +27 20.11.21 11,551 16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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