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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 님의 서재입니다.

왕따 이등병의 1차 대전 생존기

웹소설 > 일반연재 > 전쟁·밀리터리, 대체역사

dirrhks404
작품등록일 :
2020.11.21 18:30
최근연재일 :
2024.05.10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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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21 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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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첫 전투

DUMMY

한스는 요나스와 미친 듯이 달리기 시작했다. 저 쪽에서 철조망을 설치하고 있던 안톤과 니클라스도 달리기 시작했다.


“으아아악!!!! 으아아악!!!!”


공기를 찢는 듯한 불쾌한 포탄 소리가 계속해서 이어졌다. 돌고래 때가 화살을 맞고 울부짖는 것 같았다. 발을 땅에 디딛을 때마다 지축을 흔드는 듯한 진동이 두개골까지 전달되었다. 포탄이 하나씩 떨어지면서 공기뿐 아니라 한스의 고막마저 찢어놓고 있었지만, 지금은 귀를 막을 시간이 없었다.


한스의 바지가 철조망에 긁혀 찢어지고, 피가 흘렀다. 손등에도 철조망에 긁힌 자국이 났고 그 곳에서 피가 소매를 적셨다. 그렇지만 한스는 어떤 생각도 하지 않고 그저 몸이 움직이는 방향으로 미친 듯이 달리고 있었다. 얼굴에 부딪치는 밤 공기는 전혀 몰랐던 자신의 감각을 일깨우고 있었다.


한스는 학교나 집에서 폭행을 당할수록 움츠려 들었고 운동도 하지 않고 공부에만 열중했다. 그렇지만 한스의 몸은 어디로 달려야 하는지, 발을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수만 년 전 한스의 조상이 수렵을 하면서, 혹은 동물에게 쫓기면서 발달했던 감각을 한스의 온 몸에 세포 속에서 다시 깨어나고 있었다.


왼발을 잘못 디뎌 진흙탕 범벅의 참호에 빠질 뻔 했지만 가까스로 균형을 잡고 다시 질주했다. 다리 한 쪽이 절단된 부상병을 보면서 가엾게 여기면서도 자기가 그렇게 된다면 차라리 권총으로 자살을 하겠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지금 한스는 설령 양팔과 다리가 절단되고 두개골 반쪽이 날라가더라도, 기어서라도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온 기력을 써서 달렸으리라.


뒤에서는 두다다다 기관총 소리가 들려왔지만 한스와 동료들의 위치를 모르는 것이 분명했다. 이 쪽으로는 총알이 전혀 날라오지 않고 있었으니. 잔뜩 약이 오른 적군이 조명탄을 쏘자, 새까맣던 밤하늘에는 두 개의 달이 떠올랐다. 하늘로 올라가던 조명탄은 포물선 형태의 꾸불꾸불한 연기를 하늘에 남기면서 천천히 땅으로 떨어졌다.


잔인한 조명탄은, 한스와 동료들의 모습을 훤하게 비추었고, 참혹한 무인지대의 실상은 더욱더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철조망에 걸린 채로 죽어 있는 아군인지 적군인지 모를 시체가 눈에 보였다. 팔을 축 늘어뜨리고 있는 그 시체는 한스에게 조만간 너도 나처럼 될 거라고 저주하는 것 같았다. 무수한 총알이 한스의 옆을 스치고 지나갔다.


이제 그들은 한스의 위치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 한스는 철조망에 걸려 있는 시체를 밟고 재빨리 뛰어 넘었다. 한스의 발자국이 등에 묻은 가엾은 시체에는 몇 발의 총알이 박혔다. 적군은 노련한 실력으로 정확히 한스를 조준하고 있었다. 겁에 질린 한스는 더욱 더 미친 듯이 달아났다.


“이봐! 도와줘!”


한스가 뒤를 돌아보니, 요나스의 한 쪽 발이 철조망에 걸려 있었다.


‘젠장···’


한스는 그냥 가고 싶었지만, 왠지 그냥 갔다가 요나스가 살아 돌아오면 자신을 고자질하고, 지긋지긋한 따돌림이 시작될 것 같았다. 그래서 재빨리 요나스에게 달려간 이후에, 철조망 속에서 요나스의 다리를 빼내주고 달리기 시작했다.


“으아아! 앞에 구멍!”


한스의 앞에는 이미 포탄으로 커다란 구멍이 파여 있었고, 한스는 재빨리 옆으로 우회하여 달렸다. 요나스, 안톤, 니클라스는 어느새 한스의 뒤를 따라오고 있었다.


‘젠장 왜 나 따라오는 거야. 으아아!!!’


어리석은 동료들은 여러 명이 뭉칠수록 기관총에 의해 다 같이 죽을 확률만 높아진다는 것을 모르고 한스의 꽁무니만 쫓아오고 있었다. 포탄이 떨어질 때마다 흙탕물이 하늘 높이 치솟았다가 분수처럼 떨어졌다. 어둠 속을 미친 듯이 달리던 한스는, 조명탄이 터지자, 자신이 달려가고 있는 곳 바로 앞에 철조망이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여기 철조망!”


한스는 자기 뒤를 쫓아오는 동료들에게 철조망, 포탄 구멍이 있을 때마다 소리치고는 오른 쪽으로 우회해서 계속해서 달렸다. 한스는 자기 뒤만 쫓아 오는 동료들이 너무나도 거추장스러웠다. 다들 어디 콱 구덩이에나 빠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어느덧 참호가 보였고, 한스는 순식간에 그 곳으로 뛰어 들었다.


“으아악!!!!”


“으아아!!!”


한스의 위로 요나스, 안톤, 니클라스가 엎어졌다.


“아이고 아파!”


한스의 얼굴 위로 요나스의 궁둥이가 떨어졌다. 그런데 왠지 축축하고 지린내가 나는걸 보니 오줌을 지린 것 같았다.


“으아악 저리 치워!”


하지만 포탄 소리에 한스의 말은 요나스에게 들리지 않았다. 천지가 흔들리는 듯한 굉음과 진동은 여전했으며 참호는 끊임없이 진도했다. 한스는 있는 힘껏 요나스의 엉덩이를 밀치고 아까 전에 대피소로 달려갔다. 요나스도 정신을 차리고 니클라스와 같이 달려왔다. 그런데 안톤이 보이지 않았다.


“젠장! 왜 안 와?”


한스가 호기심에 뒤를 돌아보니, 안톤은 마치 죽은 듯이 기절해있었다.


“헉···죽은 건가?”


한스가 있는 곳도 진동과 폭음이 어마어마했지만, 포탄은 이 쪽 참호로는 떨어지지 않고 있었다. 전방에 철조망을 파괴할 목적으로 포격을 하는 것 같았다. 한스는 안톤을 발로 쿡쿡 찔러 보았다. 그리고 코 밑에 손가락을 갖다 대어 보았다. 놀랍게도 안톤은 살아 있었다.


“젠장 내가 어떻게 해야 해?”


안톤은 키가 매우 크고 덩치가 있었다. 안톤을 엎고 달리다 보면 20m도 못 갈 것 같았다. 한스는 안톤을 버리고 가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그런데 대피호 쪽으로 고개를 돌려 보니, 요나스와 니클라스가 한스와 안톤을 보고 있었다. 한스는 재빨리 손짓을 해서 요나스와 니콜라스를 불렀다.


“살아있어!”


그 말에 요나스와 니클라스는 안톤을 양쪽에서 부축하고 대피호로 데리고 갔다. 한스는 앞장서서 대피소로 들어갔고 요나스, 니콜라스도 안톤을 데리고 대피호로 들어왔다. 모리츠 상병이 어안이 벙벙해진 얼굴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자네들 살아있었구만.”


“한스가 우릴 구했습니다.”


요나스가 말했다. 한스는 속으로 뜨끔했지만 굳이 반박을 하지는 않았다. 포격이 떨어질 때마다 참호 전체가 덜컹거리며 진동하고 천장에서는 흙먼지가 떨어졌다. 다른 구역에 비해 썩 정교하게 만들어진 참호였지만 이러고 있다가 무너져 내리지 않을까 한스는 걱정되었다.


계속되는 소음에 귀가 멀어버릴 것 같아서 한스는 귀를 막고 구석에 계속 쭈그러져 있었다. 영원히 끝날 것 같지 않던 포탄 소리가 며칠간 지속되다가, 갑자기 사방이 일순간 고요해졌다. 적군이 포탄 공습을 멈추었다는 것은, 이제 돌격이 시작될 것 이라는 의미였다.


“빨리! 빨리!”


“나가! 준비해!”


“모두 총 준비해!”


고참들이 외치자, 일병들은 재빨리 총을 챙기고 대피호 밖으로 나갔다. 이윽고 공포의 호루라기 소리가 들렸다. 모든 병사들이 재빨리 방어를 위해 참호 디딤판 위에 올라가서 소총을 겨누었다. 아직은 적군이 보이지 않았지만, 저 멀리서 함성이 들려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으히익!”


아까의 포격에도 오줌을 싸지 않았던 한스의 바지가 이윽고 축축해졌다. 사실 똥도 조금 지렸지만 한스는 그것을 모르고 있었다. 이윽고 저 편에서 적군의 함성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으아아악!!!”


옆에 있던 요나스가 비명을 지르며 허공을 향해 총을 쏘았다.


“멍청아! 적이 오면 쏘란 말야!”


모리츠 상병이 요나스에 귀에 대고 소리쳤다.


“빨리 장전해! 총알 낭비하지 말고!”


요나스는 떨리는 손으로 소총을 재장전하였다.


“온다! 쏴라!”


뮐러 병장이 소리쳤다. 사방에서 적군이 총을 들고 달려왔고 한스도 그들을 향해 몇 번 총을 쏘았지만 도무지 맞지를 않았다. 정지되어 있는 타겟을 쏘는 것과, 실제 움직이는 사람을 비교적 먼 거리에서 쏘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몇 번 허탕을 쏜 이후로 한스는 이 정도 거리에서는 맞추기가 힘들다는 것을 알았다.


한스는 재빨리 막대형 수류탄을 꺼내 들었다. 격발끈을 꺼내 잡아 당기면 5초 후에 폭발하는 이 막대형 수류탄은, 현대의 수류탄과는 다르게 안전 장치가 없었기 때문에 사용에 더욱 주의가 필요했다. 한스는 수류탄을 집어 들었지만 손에 땀이 나기도 하고 멀리 던질 용기가 나지 않았다.


“젠장···그냥 총으로 쏘자.”


그런데 한스가 수류탄을 내려 놓으려는 순간, 손가락에 걸려 있던 격발끈이 당겨져 버렸다.


“으아아! 으아아악! 엄마!”


한스는 무의식적으로 수류탄을 있는 힘껏 적이 오고 있는 방향을 향해 던지고는 고개를 숙여서 귀를 막았다.


“퍼어엉!”


한스가 슬며시 머리를 들어보니, 수류탄으로 인하여 달려오던 적군 몇 명이 산산조각 난 것을 확인했다. 수류탄의 위력을 본 근처에 있던 이등병들은 제각기 수류탄을 적군을 향해 던지기 시작했다.


“퍼어엉!”


지층이 흔들리는 듯한 엄청난 진동과 굉음이 몇 차례에 걸쳐 이어졌다. 한스는 귀를 막고 싶었지만 근처에 뮐러 병장이 있었기에 소총을 쏘는 척 했다. 왠지 머리를 내밀면 총을 맞을 것 같아서 머리를 참호 밑으로 내린 상태에서 허공을 향해 소총을 겨누었다.


“보고 쏴라! 이 얼간이야!”


모리츠 상병이 한스에게 소리쳤다. 한스는 얼간이라는 말에, 고등학교에서 자기를 괴롭혔던 친구들이 떠올랐다. 그래서 두렵지만 고개를 살짝 들어 적군이 오는 방향을 보았다.


“으아아아!”


한스는 두려움을 잊으려 소리를 지르며 고개를 조금 들었고, 저 쪽에서 달려오는 적군을 무의식적으로 겨냥하여 방아쇠를 당겼다.


“타앙!”


적군은 가슴팍에 한스의 총알을 맞고 쓰러졌다.


‘내···내가 해냈어?’


원래 참호전은 방어하는 입장에서 상당히 유리한 전투였지만, 한스는 순간적으로 자신이 전쟁 영웅이라도 된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심장에서 아드레날린이 솟구치는 것 같았다. 한스는 다시 소총을 들고 달려오는 적을 겨냥했다. 그 순간, 왼쪽에 있던 다른 일병이 참호 바닥으로 퍽하고 떨어졌다.


“왜···왜 그래?”


바닥으로 쓰러진 일병의 얼굴에서는 피가 흥건히 흘렀다. 머리를 맞은 것 이다.


“우아아악!!!!!!!!”


한스는 처음으로 근처에서 죽음을 목격했다. 머리를 위로 올렸다가는 자신도 죽을 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온 몸을 감쌌다. 하지만 이러고 있으면 적군이 들어와서 칼로 찌를 것이 분명했다.


“으아악! 젠장!”


한스는 머리를 내밀지 않은 채로 허공을 향해 착검한 소총을 들고 대기하였다. 머리를 내밀어야 한다는 것은 알았지만, 너무나도 두려웠다. 그 순간, 무언가가 참호 안으로 뛰어들어와서 한스의 총검에 박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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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운수 좋은 날 +9 20.11.25 4,757 109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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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도려내기 작전 +7 20.11.22 5,232 123 11쪽
6 보복 +3 20.11.22 5,467 125 12쪽
5 방심하는 순간 +5 20.11.22 5,639 128 11쪽
4 참호전의 생존 기술 +12 20.11.21 6,042 112 12쪽
3 기관총에 왜 오줌이 필요하지? +11 20.11.21 6,465 129 11쪽
» 첫 전투 +12 20.11.21 7,531 124 11쪽
1 왕따 한스 1차 대전에 참전하다 +27 20.11.21 11,551 16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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