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di******** 님의 서재입니다.

왕따 이등병의 1차 대전 생존기

웹소설 > 일반연재 > 전쟁·밀리터리, 대체역사

dirrhks404
작품등록일 :
2020.11.21 18:30
최근연재일 :
2024.05.10 16:21
연재수 :
1,017 회
조회수 :
731,957
추천수 :
21,437
글자수 :
5,647,234

작성
20.11.22 00:09
조회
5,641
추천
128
글자
11쪽

방심하는 순간

DUMMY

모리츠 상병의 말이 맞았다. 가슴에 총을 맞고 엎드려 있는 시체를 들어올리려고 하다가 실수로 뒤집었는데, 그 시체의 얼굴에 눈알은 양쪽 다 이미 쥐에 먹혀 있었다.


“으악! 이건 뭐야!”


시체 옆에는 엄청나게 배가 부풀어오른 쥐가 죽어 있었다. 모리츠 상병이 태연하게 말했다.


“너무 많이 먹어서 죽은 거라네. 팔자도 좋군.”


모리츠 상병은 시체에 다가가서 가방을 열어서, 깨끗한 내의와 양말을 꺼냈다. 그러고는 흙탕물로 더러워진 자신의 양말을 벗고, 새 양말로 갈아 신었다. 신병들이 기겁한 표정으로 가만히 있자, 모리츠 상병이 일침했다.


“발이 썩어 문드러지지 않으려면 어쩔 수 없다고.”


그러고는 모리츠 상병은 술을 마시면서 대피호로 돌아갔다. 한스, 요나스, 니클라스, 안톤은 구역질을 참아가며 참호 정비 작업을 시작하였다.


“그래도 우리가 위생병들보단 처지가 나아.”


순진한 안톤이 말했다.


“개네는 똥오줌 통 치워야 하잖아.”


“으윽···”


“그냥 포탄 구멍에 싸는 게 낫지 않나?”


“비 오는 날 똥물을 마시고 싶으면 그렇게 하던가.”


니클라스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렇게 넷은 참호 근처에 있는 포탄 구덩이에 시체를 묻고는 불을 붙일 준비를 했다. 한스는 속으로 생각했다.


‘태우기 전에 가방을 뒤져봐야 하는 거 아닌가···’


속옷 같은 생필품이 아니더라도 권총이 있다면 정말 유용할 것 이다. 물론 쓸만한 것들은 이미 다른 병사가 가져갔을 가능성이 높지만 가방을 잘 뒤져보면 뭔가 있을 수도 있다.


“잠깐만, 태우기 전에 쓸만한 거 있나 뒤져 보자.”


한스가 말했다. 그러자 성냥을 들고 있던 니클라스가 머뭇거렸다. 안톤도 요나스도 아무 말이 없었다.


“백병전에서는 권총이 있는 게 유리해. 하지만 권총은 장교들만 지급받잖아.”


“좋은 생각이야.”


니클라스가 대답하고는 성냥을 훅 불어 껐다. 넷은 그렇게 시체가 매고 있는 가방, 주머니를 조심스럽게 뒤져보았다. 권총이나 칼같이 무기로 쓸만한 것은 전혀 없었고, 쿠키 한 상자, 술 한 병, 빗, 비누가 나왔다. 넷은 시체를 불태우고, 쿠키를 먹으면서 술로 목을 축였다.


“생각보다 쓸만한 건 없네.”


“당연하지. 짐을 많이 싸면 싸울 때 불편하니까.”


“잠깐 뭐가 있는데?”


안톤이 시체의 주머니를 뒤적여보니, 그 안에는 병사의 아내로 추정되는 여자의 사진이 있었다.


“아···.”


안톤은 다시 그 사진을 시체의 주머니에 넣었다. 니클라스, 요나스는 아무 말이 없었다. 한스는 시체를 뒤져보자고 했던 것을 후회했다. 죽은 병사에 대한 미안함보다는, 동료 병사들이 자신을 잔혹하다고 생각하고 따돌릴 까봐 걱정이 되었다.


“미안. 내가 괜히 뒤져보자고 해서.”


한스가 재빨리 사과했다.


“아니야. 모리츠 상병도 그렇게 했는걸.”


요나스가 말했다.


‘앞으로는 애네가 안 볼 때 나 혼자 뒤져야지. 지들도 쿠키랑 술은 쳐먹으면서 착한 척이야.’


한스는 어리버리한 동료들이 성가시다고 생각하며 속으로 불평하고는 슬쩍 비누와 빗을 챙겼다. 이가 너무 많아서 빗은 꽤나 요긴하게 쓰일 것 같았다. 죽은 자의 빗을 쓰는 것이 찝찝하기는 했지만, 씻고 쓰면 괜찮을 것 이다. 문득 요나스가 동료들에게 물었다.


“너희들은 왜 입대한 거야?”


“이 덩치 때문에, 마을 사람들 전부 내가 당연히 입대할 거라고 생각했어. 난 사실 입대하기 싫었는데 어쩔 수 없었지···”


덩치는 크지만 순박하고 겁이 많은 안톤이 말했다.


“난 독일을 위해서 입대한 거야. 나라를 위해서라면 죽음 따위는 두렵지 않아.”


니클라스가 비장한 표정으로 이야기했다. 한스는 문득, 포탄 소리에 귀를 막고 몸을 웅크린 채로 벌벌 떨던 니클라스의 모습이 떠올라서, 웃음을 참기 힘들었다. 언제나 넷 중에서 가장 겁이 많고 전투를 못하던 병사는 니클라스였다.


“혹시 펜이나 종이 남는 거 있어? 이따가 어머니한테 편지 써야 해. 난 쿠키 있으니까 교환하자.”


요나스가 말했다.


“아, 나도 양말 좀 보내달라고 해야지. 지난번에 엄마가 치즈만 잔뜩 보내줘서 다 먹느라 고생 좀 했어.”


안톤이 말했다.


“나 종이 있으니까 이따 줄게. 자네가 다 써.”


한스가 요나스에게 말했다. 그러자 요나스가 물었다.


“정말? 너도 편지 써야 하잖아.”


문득 요나스의 말에 한스는 말문이 막혔다. 사실 부대에서 유일하게 가족에게 편지를 쓰지 않는 것은 한스 뿐이었다.


“난 이미 썼어.”


한스는 애써 동료들 앞에서 거짓말을 했다. 도대체 가족이 뭐가 그리 중요하다고. 귀중한 음식을 아무 쓸 곳도 없는 종이, 펜 따위와 교환을 하는 것인지 한스는 화가 났다. 그렇게 한스와 일행은 좆 같은 작업을 마치고 대피호로 돌아와서 앉아서 잠시 휴식을 취했다. 잠시 뒤, 어김없이 뮐러 병장이 와서 한스와 요나스를 보며 말했다.


“정찰을 하고 오라는 명령이 내려왔네. 자네 둘 따라오도록.”


“이봐 저 녀석은 내 부사수라고. 죽으면 곤란해져.”


슈타이너 상병이 뮐러 병장에게 말했다. 한스를 기껏 교육시켜 놨는데, 위험한 정찰을 가서 죽기라도 한다면 번거로워진다는 뜻 이었다.


“상부 명령일세.”


뮐러 병장이 한마디로 일축하고는 한스와 요나스를 데리고 갔다. 한스는 속으로 욕을 퍼붓기 시작했다.


‘저 새끼는 나를 싫어하는 것이 분명해.’


아무도 안 볼 때 뮐러 병장을 죽일 수 있다면 총으로 쏘아 죽여버리고 싶다고 한스는 생각했다.


‘요나스 이 멍청한 새끼만 없으면···’


뮐러 병장은 궂은 일이 있을 때마다 한스를 꼭 지목해서 시키고 있었다. 앞으로도 이런 위험한 임무에 계속 한스를 투입한다면, 생존할 확률이 줄어들 것 이다.


‘병장이라고 해도 총알 한 방이면···’


순간 뮐러 병장이 뒤를 돌아봐서 한스는 흠칫하며 자신의 상상을 멈추었다.


“이번 임무는 첫 번째 목표가 생존이고 두 번째 목표가 정찰이네. 가급적 전투는 피하게나.”


“알겠습니다.”


‘젠장, 기관총이나 맞고 뒈져 버려라!’


그렇게 뮐러 병장, 한스, 요나스는 조심스럽게 참호 밖으로 나와서 적진을 향하여 엉금엉금 기어가면서 천천히 적진으로 향했다. 참호와 참호 사이에 이 공간에는 살아있는 사람이라고는 아무도 없었고 중간중간에 뜯어진 철조망과 시체를 뜯어먹는 쥐들로 가득했다.


참호 속에서 나는 구리 구리한 냄새가 차라리 좋았다는 것을 한스는 알고 있었다. 그나마 똥오줌 냄새가 시체 냄새를 가려주고 있었던 것 이다.


뮐러 병장이 제일 먼저 앞서 가면서, 가위로 철조망을 조심스럽게 잘라가며 앞으로 전진했다. 지금은 포격이 없어서 너무나도 고요했기 때문에, 철조망을 자르는 소리마저 크게 느껴졌다.


혹시 적군의 눈에 발각된다면 즉시 기관총 소리가 울려 퍼질 것이 분명했다. 뮐러 병장이 조심스럽게 작업을 마치고, 한스와 요나스는 몸을 바짝 땅에 붙이고 천천히 기어서 철조망 밑으로 기어들어갔다.


“달그락”


정적이 깨졌다. 요나스가 기어가다가 발로 깡통을 건드린 것 이었다. 깡통이 1m정도 굴러갔을 뿐이지만, 그 소리는 무인지대 전체에 울려 퍼졌다. 뮐러 병장, 한스, 요나스 모두 극한의 공포심을 느끼며 숨을 죽였다. 시체 냄새에 긴장감까지 더해져서 한스는 땅바닥에 구역질을 할 것만 같았다.


1년 같은 1분이 지났지만 적군의 참호에서는 아무 소식이 들리지 않았다. 셋은 천천히 다시 앞으로 가기 시작했다. 오른쪽에 시체 옆에 있던 쥐가 찍찍거리며 순식간에 어디론가 사라지는 모습이 보였다. 등에 매고 있는 가방이 철조망에 살짝 걸려서 속에 있는 잠망경 장비가 속에서 구르며 달그락거리는 소리를 냈다.


한스는 조심스럽게 가방을 움직여 철조망에서 빼내고 앞으로 나아갔다.


그러다가 한스는 무언가가 발에 걸린 것 같아서 흠칫 살펴보니, 박격포에서 쏘아 올렸을 것이 분명한 불발탄이 있었다. 한스는 질겁하며 발을 조심스럽게 치웠다. 다행히도 불발탄은 터지지 않았지만 한스는 심장이 미친 듯이 쿵쾅거리며 뛰었다.


앞서가던 뮐러 병장은 근처에 있는 포탄 구덩이에 한스, 요나스와 몸을 숨겼다. 요나스는 두려움에 기진맥진해 있었다. 뮐러 병장은 기다란 막대가 달린 거울을 살짝 들어올려서 전방을 살폈다. 정찰을 마친 뮐러 병장이 한스, 요나스에게 말했다.


“정찰 완료. 불발탄만 조심해서 복귀한다.”


뮐러 병장은 기다란 막대가 달린 거울을 한스, 요나스에게도 차례로 빌려주며, 돌아갈 길을 알려주었다.


“2시 방향으로 우회해서 돌아간다.”


한스는 뮐러 병장을 따라서 포탄 구덩이 밖으로 기어나가서 2시 방향으로 기어갔다. 이 쪽 방향에는 불발탄은 없었지만 오른쪽에는 시체의 발이 보였다. 한스는 가능하면 그 시체의 얼굴을 보지 않으려고 얼굴을 다른 쪽으로 돌리면서 서둘러 기어갔다.


한스가 있는 독일군 쪽 참호는 비교적 고지대라 흙이 이렇게 무르지는 않았지만, 이 쪽은 흙이 죽처럼 물렀다. 적군의 참호 생활은 상상 이상으로 지옥일 것이 분명했다.


‘왜 물을 적군 참호 쪽으로 퍼다 내린 것인지 알 것 같군···.’


비가 오는 날 독일군 참호에서는 적군 참호 쪽으로 물을 퍼내면, 그 물은 전부 저지대인 적군 참호 쪽으로 갔던 것 이다. 비가 오는 날 적군 참호는 어떤 꼴이 될지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근처 커다란 참호 구멍 안에는 질퍽질퍽한 물이 가득했다.


돌격을 하다가 저런 곳에 빠지면 동료의 도움 없이는 빠져 나오기 힘들 것이 분명했다. 실제로 어떤 구덩이 안에는 등만 둥둥 떠 있는 시체도 있었다.


‘돌격할 때 저런 곳은 주의해야겠군···’


한스는 머리 속으로 정보를 수집하였다. 얕게 파인 참호는 기관총으로부터 몸을 피하기에는 제격으로 보였다. 어쩌면 죽은 척하고 몸을 숨기고 있다가, 전투가 끝나고 슬쩍 복귀하는 것도 괜찮을지 모른다. 누가 참호 속으로 들어오더라도, 미리 준비하고 있던 칼로 찌르면 될 것 이다.


‘이제 거의 다 왔군.’


조금만 더 가면 아군의 참호에 도착할 것 이다. 한스는 이번 정찰에 참여한 것이 운이 좋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포탄 구덩이에 대해서도 살펴볼 수 있었고, 이번에 알게 된 정보는 다음 전투 때 요긴하게 쓸 수 있을 것 이다. 어쩌면 이 정보를 동료들에게 말해주고 신임을 얻게 될 지도 모른다.


“허억!”


앞서 가던 뮐러 병장이 갑자기 손을 들고 멈추라는 신호를 보냈다. 그리고 뮐러 병장은 오른쪽으로 우회하기 시작했다. 곧이어 한스는 왜 뮐러 병장이 우회하게 되었는지 알 수 있었다. 그 곳에는 제법 큰 불발탄이 있었다. 한스와 요나스는 뮐러 병장보다도 더 불발탄에서 멀리 거리를 두고 우회하였다. 뮐러 병장이 참호 근처에 도착해서 암호를 말했다.


“복숭아 통조림”


“확인”


뮐러 병장이 참호 안으로 들어가려 일어서는 순간, 갑자기 공기를 가로지르는 무언가와 함께 경쾌한 소리가 났다.


“캉!”


“저격이다!”


적군 저격수의 총알이 정확히 뮐러 병장의 헬멧을 맞춘 것 이었다. 뮐러 병장은 재빨리 참호 안으로 굴러 떨어졌다.

1744971_1605953422.jpg


작가의말


삽화는 겨울날 추운 참호에서 휴식을 취하는 독일 병사들의 모습입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5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왕따 이등병의 1차 대전 생존기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4 지옥 +7 20.11.26 4,328 101 11쪽
13 데뷔 전투 +6 20.11.25 4,436 111 11쪽
12 운수 좋은 날 +9 20.11.25 4,758 109 11쪽
11 탱크, 그리고 엠마라는 여자 +10 20.11.24 4,661 110 11쪽
10 천재 전략가 롬멜 소위 +12 20.11.24 4,679 114 11쪽
9 반갑지 않은 친구 +9 20.11.23 4,877 114 11쪽
8 연락병 아돌프 히틀러 +11 20.11.23 5,030 121 11쪽
7 도려내기 작전 +7 20.11.22 5,234 123 11쪽
6 보복 +3 20.11.22 5,470 125 12쪽
» 방심하는 순간 +5 20.11.22 5,642 128 11쪽
4 참호전의 생존 기술 +12 20.11.21 6,044 112 12쪽
3 기관총에 왜 오줌이 필요하지? +11 20.11.21 6,467 129 11쪽
2 첫 전투 +12 20.11.21 7,532 124 11쪽
1 왕따 한스 1차 대전에 참전하다 +27 20.11.21 11,552 162 1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