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선거가 시작되다
“중요한 건 당신이 어떻게 시작했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끝내는가다.”
- 앤드류 매튜스 -
D-14 23:00
“차량 인수했어요.”
“수고하셨습니다.”
“주의 사항이 있을까요?”
“불을 켜거나 운행하시면 안 됩니다.”
“12시 이전에 말이죠?”
“예. 그리고 오전까지도 운행하지 마십시오.”
“예. 그렇게 할게요.”
홍만의 연락을 받고 김지혁이 말했다.
그리고 캠프에 남아있던 강태현에게 말한다.
“가자.”
“스티커는요?”
“내가 나머지는 업체에 한 번에 줄게.”
“예. 형.”
각자 구역으로 나뉘어서 차를 몰고 캠프를 나섰다.
김지혁은 기정 사거리를 지나 1동 쪽으로 가는데 예상했던 대로 불야성에 시끌벅적하다. 어디서 재난 신고를 받고 온갖 트럭이 출동한 것 같다.
아무래도 기정 사거리는 이 지역의 센터다.
그러니 더하다.
홍만에게 모두 맡기고 김지혁은 이동한다.
가는 중에 강태현의 전화.
“형. 여기 싸움 났네요. 벌써.”
“2동 1구역이지?”
“예.”
“무슨 싸움이 난 거지?”
“자리죠. 뭐.”
김지혁이 말한다.
“너는 반대 대각선에 알박기했지?”
“예. 형 말대로 여기는 안 거네요.”
“곧 네 쪽으로 몰릴 거야.”
김지혁은 2동의 1구역에 대해서 사전 실사를 다녀왔었다. 그리고 특이점을 바로 파악했고 그걸 홍만과 상의했었다.
거대한 가로등 2개가 있는 사거리.
그러나 그 가로등이 한쪽 도로에만 있다.
구조상의 문제였다. 인도가 넓기에 그 위치에는 가로등이 있을 수 있었다. 그러나 반대 대각선에는 낮은 가로등이었다. 건물이 가까워서 높은 가로등은 건물 입주자들의 민원이 잦아 설치가 안 되는 경우가 많다.
높은 곳이 무조건 좋을 것이라는 생각은 어쩌면 당연하다. 높으면 높을수록 잘 보이고 더 드러날 것이라고 무심코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문제는 5월에는 기상 이변도 많다.
이른 장마나 돌풍이 자주 분다.
높은 곳에 있으면 떨어질 확률이 높다.
게다가 차량에서도 먼거리에서 잘 보인다.
먼 거리에서 잘 보인다는 것은 글씨가 작게 보인다는 것을 의미한다. 김지혁은 이 점을 놓치지 않았다. 기정 사거리를 관통하는 외지 차량도 많기 때문이다.
걷거나 인도에 서 있거나 신호등의 신호를 기다리는 시민들을 주 타겟으로 낮은 높이의 현수막 설치를 계획했다.
강태현이 말한다.
“서로 위에 달려고 할텐데.”
“굳이 싸우지 마라.”
“우리는 어떻게 할까요?”
“달기만 하면 돼.”
강태현이 묻는다.
“못 다는 사람도 있나요?”
“당연하지. 위치 가지고 난리 난다.”
강태현이 다시 묻는다.
“가로등 없는 쪽은 한가한데.”
“거기는 절대 가면 안 된다.”
“왜요?”
“초저녁에 아예 안 보여.”
“아···.”
문제는 이 지역 최대의 선거인 수가 있는 1동.
지금 김지혁이 도착한 곳이다.
운이 좋게 원했던 곳에 김지혁은 주차했다.
차를 남기고 자리를 비켜 커피숍으로 갔다.
아직 빨라아 2~30분이 지나야 이곳에 현수막 업체가 도착한다.
지금 시각은 11:45.
15분 후 본선거 개시일이다.
공원과 시청을 지나는 길목인데 늦은 시각이라 지나가는 차도 적고 사람도 없다.
강태현으로부터 전화.
“형. 자리 잡으셨어요?”
“응. 나는 24시간 하는 카페.”
“크게 별 탈은 없을 것 같네요.”
“초보들이 많아서 그래.”
“초보요?”
“첫 출마자들.”
강태현이 묻는다.
“이걸 모르나요?”
“아니 업체가 후 순위로 하는 거지.”
“아. 업체 숫자가 한계가 있으니까.”
“지금 전국이 이 난리잖아.”
“그렇겠네요.”
강태현이 묻는다.
“그런데 우리는 후 순위가 아닌가 봐요.”
“선계약했고 몰아서 계약했다.”
“몰아서?”
“캠프 현수막이랑 동별 현수막 전부 한군데.”
“그래도 우리를 선 순위로 해주는 이유가···.”
강태현의 질문은 당연했다.
그냥 해줄 리가 없다.
김지혁이 말한다.
“송 후보 이미지 좋아졌나봐.”
“좋아져요?”
“그동안 열심히 움직였잖아.”
“소문이 날 때도 되긴 했네요.”
강태현이 묻는다.
“그래도 그것만 가지고는.”
김지혁이 웃는다.
“역시 너는 촉이 좋구나.”
“하하. 형 이유 없는 선의가 어딨어요?”
“하긴 그건 그렇다.”
“정말 이유가 뭐죠?”
“결제 그리고 서류.”
강태현이 말한다.
“입금 바로 하고 서류 주니까?”
“그렇지.”
“그게 최고죠.”
“철거도 있기에 더 해.”
강태현이 신기한 듯 묻는다.
“설치. 철거. 모두 서류가?”
“응. 선거 회계는 꼼꼼하다.”
“생각보다 그러네요.”
강태현이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다는 생각에 묻는다.
“대부분 기초는 혼자 하는데 가능해요?”
“엉망진창인 곳이 많지.”
“그런데요?”
“어영부영 넘어가는 경우도 많을 거야.”
“워낙 많으니까? 후보가?”
“그렇지.”
강태현은 갑자기 머리가 띵해진다.
지방선거를 우습게 보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권자로서 말이다.
이렇게 많은 자원과 시간 노력과 행정이 투입되는 선거인데 그것도 유권자의 돈으로 하는 선거인데 투표를 안 하거나 대충 투표한다면 정말 이건 미친 짓이라는 생각이 더 들었다.
강태현도 이렇게 깊이 알기 전까지는 그냥 선거는 선거라고 생각할 뿐이었다.
홍만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지금 시각 00:15.
D-13.
“기정 사거리 현수막 설치했어요.”
“수고하셨습니다.”
“단톡방에 사진 올릴까요?”
“예. 올리시면 좋습니다.”
“캠프 방에만 올리면 되죠?”
“가급적 캠프 방만 올리시면 됩니다.”
“예. 저는 위치 고수해 놓고 가겠습니다.”
김지혁이 말한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눈 좀 붙이시고 새벽에 뵙겠습니다.”
“예. 대표님은 언제 끝나시죠?”
“아마 별일 없으면 3시 전에는···.”
“그렇게 늦게요?”
“첫날은 원래 그렇습니다.”
본선거의 첫날은 누구라도 극한이다.
한번 쯤은 선거를 겪어 볼 만한 일이다.
단지 한 번은.
***
이런저런 소란이 있었지만.
현수막 설치는 끝났다.
“형 캠프에서 봐요.”
“끝났어?”
“예.”
“고생했어.”
캠프에 도착한 둘은 커피를 마신다.
“형 오늘 철야 하시려고?”
“6시까지 나와야 하는데···.”
“하하. 또 사우나네?”
“같이 가야지. 하하.”
“형이 가자면 가야죠. 어서 가죠?”
“마무리하고.”
“마무리할 게 있어요? 지금?”
“응.”
“정말?”
김지혁이 웃는다.
“내일 구미라 회책이 할 것들을 미리 챙겨야지.”
“현수막 사진들?”
“응.”
“철저하네.”
“안 그러면 첫날부터 일이 밀린다.”
한숨을 돌리고 있는데 송 후보로부터 전화가 왔다.
“수고하셨어요.”
“아직 안 주무셨습니까”
“잠이 잘 안 오네요.”
“어떻게든 주무셔야 합니다.”
“그러게요···.”
잠이 오면 정상이 아니다.
잠이 올 리도 없다.
사실상 선거는 시작된 것이니까.
김지혁은 담담하게 말한다.
“내일 만약에 피곤하시면 낮에 주무십시오.”
“예?”
송선자는 김지혁의 느슨한 말에 갑자기 놀란다.
놀랄만했다.
그토록 강하게 조였던 김지혁의 압박이 너무 느슨하다. 그도 그럴 것이 2주간 후보는 아파도 아프면 안 된다.
김지혁이 단호하게 말한다.
“낮에 한 시간 정도는 오히려 좋습니다.”
“정말 그래도 될까요?”
“피곤해 보이는 후보 좋아할 사람 없습니다.”
김지혁은 결국은 후보를 걱정하는 것이 아니다.
선거 자체를 걱정하는 것이다.
잔인한 말이지만 선거가 그렇다.
김지혁이 말한다.
“와 닿지는 않겠지만 마음 편하게 먹으십시오.”
“예···.”
“후보님만큼 현장에서 스킨십 좋은 후보 없습니다.”
“정말 그런가요?”
“장담합니다.”
김지혁이 이어서 말한다.
“게다가 캠프 구성도 좋습니다.”
“그건 저도 알아요.”
“그냥 하는 얘기가 아닙니다.”
“예···.”
“홍만 선생님이 큰일 할 겁니다.”
송선자가 의아한 듯 묻는다.
“정말 홍만 씨가 그 정도예요?”
“생각한다고 해도 실행할 사람이 없어서 못 하는 게 전략입니다. 그런데 그 전략을 수행하고도 남습니다.”
“왜요?”
잠이 안 와서 그런지.
불안해서 그런지.
송선자는 계속 묻는다.
김지혁도 눈이 감기기 시작하지만 후보를 안심시켜야 내일 선거 운동에 지장이 없음을 알기에 참고 달래기 시작한다.
하지만 거짓을 얘기할 수는 없으니 있는 그대로 말한다.
“유세차를 대충 생각하면 캠프랑 별개로 그냥 노래나 틀고 다니는 자동차로 씁니다. 그런데 홍만 선생님은 지역에 택배를 오래 했기 때문에 구석구석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요?”
“아시다시피 운동원과 후보를 결합해서 종합적인 동선을 진두 지휘할 능력이 있는 사람입니다.”
“아···.”
김지혁이 말한다.
“후보님. 저희도 이제 좀 자야 합니다.”
“아. 제가 실수했네요.”
송선자가 이어 말한다.
“지금까지 도와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해요.”
“두 번 다시 그런 말씀 하지 마십시오.”
“···.”
“시작도 안했습니다.”
김지혁이 큰 소리로 말한다.
“전 이기러 온 거지 도우러 온 게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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