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호 수령증으로 압도한다
“남들과 똑같이 해서는 살아남을 수 없었다. 완벽주의는 내게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 박지성 -
“너무 빠른 거 아닐까요?”
“아닙니다.”
“직접 배송 안 하셨죠?”
“예. 해본 적이 없어요.”
김지혁이 말한다.
“공보물 받는 분들도 유권자가 있습니다.”
“아···. 주민센터라 그럴 수 있겠네요.”
“선관위 아르바이트도 있습니다.”
“아···. 그렇죠.”
김지혁은 빠진 빈틈이 존재하지 않도록 어떻게든 후보를 곳곳에 알릴 책임이 있다. 그것이 캠프 전략가의 임무니까.
벽보와 공보물을 납품하는 것.
이걸 후보들이 안 하는 경우도 많다.
후보에게 공보물과 벽보가 얼마나 소중한가?
자신의 모든 게 담긴 것이다.
이걸 직접 납품하는 후보고 있다?
사람들은 그 행동에서 진정성을 보는 것이다.
말로만 ‘진정성’을 이야기하는 것은 구라다.
행동으로 실천하는 진정성이 진짜다.
송선자가 묻는다.
“그렇다고 공보물 너무 빠른데요?”
“1번으로 배송해야 합니다.”
“1번이요?”
“안 해보셔서 모르는 겁니다.”
“예?”
김지혁이 말한다.
“수령증을 주는데 번호가 있습니다.”
“정말요? 그런 게 있었나요?”
“기정시 전체 연번입니다.”
송선자가 말한다.
“1번이면 의미가 있겠네요.”
“맞습니다.”
“이것도 홍보로 쓰실 생각이군요!”
김지혁은 후보의 작은 움직임도 놓치지 않고 선거 홍보에 쓴다. 선거는 극단적인 홍보 전쟁이니까.
1번 수령증은 성실함과 진정성을 동시에 전달할 수 있는 실천의 메시지다. 유권자들은 이런 사실들을 몰라서 평가를 못 하는 것이다. 알게 되면 후보를 높이 살 수밖에 없는 지표다.
이걸 알도록 하는 것.
알려지게 하는 것.
그것이 선거전략가의 궁극적인 일이다.
게다가 선관위에도 소문이 난다. 1호이기 때문에 잘 검수까지 끝났을 때 수령증을 받는 것이다.
선관위의 말단 직원들 사이에 진상의 후보로 낙인이 찍히지 않아야 한다. 그런데 여기서 더 나아가 호의적인 후보로 인정받으면 후보는 이미지는 더 좋아진다.
정해진 기일은 엄수 한다.
서류가 완벽하다.
진정성까지 있다.
이 3가지를 선관위에 선제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벽보와 공보물 납품 1호 수령증’.
이 ‘꿀템’을 놓친다면 그건 선거전략가가 아니다.
그냥 선거 쟁이다.
억지로 선거 콘텐츠를 만들어서 SNS를 하는 것은 유권자를 기만하는 것일 뿐 아니라 콘텐츠 제작의 효율도 떨어진다.
게다가 스토리텔링도 없다.
개연성은 물론이다.
그렇다면 후보와 홍보의 내용이 따로 놀기에 전달력도 떨어진다. 결국 선거에서 아마와 프로의 차이는 간명하다.
‘진정성’
송선자가 묻는다.
“공약도 공약이지만···.”
“그런데요?”
“내용이나 문구가 걱정이에요.”
김지혁이 웃으며 말한다.
“그건 제 몫입니다.”
“정말요?”
“오해하시면 안 됩니다. 캠프의 몫입니다.”
“저는 아무것도 안 해도 되나요?”
김지혁이 크게 웃으며 말한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그러면요?”
김지혁은 명확히 말한다.
“후보님의 생각을 편하게 늘어놓으면 됩니다.”
“늘어놓아요?”
“다듬고 호소력이 있게 만드는 건 다음입니다.”
김지혁은 늘 일을 쉽게 한다.
남들이 보기엔 말이다.
그 비결은 ‘쪼개기’
김지혁은 일을 쪼개는 것을 좋아한다.
절대적인 이유는 검증이 쉽기에 그렇다.
[쪼개서 공약 만들기]
1. 후보가 편하게 생각을 늘어놓는다.
2. 우선순위를 정한다.
3. 기조에 따라 가감한다.
4. 다듬고 어휘를 정한다.
5. 글자 수를 맞추고 디자인을 고려한다.
처음에 슬로건부터 잡는 것은 가장 멍청한 짓이다. 모든 발언과 의견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고 그중에서 흐름을 이끌 수 있는 기조를 잡고 일관성을 만들어 내야 한다.
마지막에는 간결하게 유권자들에게 호소력이 있게 전해질 수 있는 내용을 뽑아내면 된다.
이름부터 짓다 보면 내용은 뭉개지고 내용이 이름에 억지로 맞춰지게 된다. 일이 더딜뿐더러 결과물도 산뜻하지 못하다.
송선자가 묻는다.
“언제부터 공약을 잡을까요?”
“이진우 씨 만나야 하죠?”
“아. 맞다. 기정축구회!”
“거기서 듣다 보면 하나 잡을 것 같습니다.”
“그렇겠죠?”
김지혁이 말한다.
“억지로 틀에 들어가지 마십시오.”
“물 흐르듯 편하게 하고 싶은 거 하셔야 합니다.”
“그럴까요?”
“후보님의 인생을 건 일입니다.”
그렇다.
김지혁은 본질을 얘기해 준다.
모든 책임과 영광은 후보의 몫이다.
누구 눈치를 볼 일이 아니다.
스스로 길을 정했다면 거침없이 뛰어야 한다.
***
구미라로부터 전화가 왔다.
“후보님 친구 찾아왔어요.”
“그렇습니까?”
“후보님 전화 바꿀게요.”
“예.”
송선자가 묻는다.
“친구 누구요?”
“간보나 선생님이요. 저번에 오셨던.”
“보나요?”
“예.”
“캠프 돕기로 했다고 하시던데···.”
“저번에 하지 말기로 했는데.”
송선자가 묻는다.
“저희 식사해야 해요.”
“어떡하죠?”
“이쪽으로 보내세요.”
“예.”
“같이 밥 먹으면서 얘기하게요.”
“예. 후보님!”
전화를 듣던 김지혁은 또 울화가 치민다. 간보나는 분명히 저번에 황당한 입장을 얘기해서 캠프 도울 필요 없다고 결론을 지었다.
다시 또 왔다.
김지혁이 묻는다.
“후보님 어떻게 된 거죠?”
“저도 잘 모르겠네요···.”
“후보님이 모르시면 어떡합니까?”
“···.”
“저는 제 기준대로 행동하겠습니다.”
“예. 그래 주세요.”
식당 근처로 간보나가 왔다.
김지혁과는 두 번째다.
“국밥 먹으러 가자. 보나야.”
“난 물에 빠진 고기 안 먹어.”
“아···.”
음식 투정이 시작되었다.
군대 제대한 아들이 있을 만큼 나이를 먹을 만큼 먹은 아줌마가 알러지가 있는 것도 아니고 이런 표현을 한다.
전형적인 ‘나르시스트’
간보나가 말한다.
“다른 거 먹자.”
“뭐?”
“햄버거.”
“···.”
송선자는 말문이 막혔다.
예상했다는 듯 김지혁은 말한다.
“저는 캠프로 들어가겠습니다.”
“그러세요.”
간보나가 아무 생각 없이 말한다.
송선자는 난감한 채 결정을 못 짓는다.
김지혁이 결론을 낸다.
“후보님 알아서 판단하십시오.”
“예?”
“저는 이런 시간 쓸 여력 없습니다.”
“···.”
“얘기 나누시고 이따가 말씀해 주십시오.”
김지혁은 웃으면서 결정할 때는 결정을 해야 한다고 송선자에게 열쇠를 던졌다. 열지 잠글지는 송선자의 몫이다.
김지혁은 나르시스트를 많이 목격해 왔다.
자기애만 강한 것은 나르시스트가 아니다.
상대를 누름으로 자기를 돋보이게 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이들이 음식 투정을 하는 이유는 식사 주도권으로 자신을 높이려고 하는 것이다 보니 상대의 입장이나 기호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친구 덕을 본 후보를 본 적이 없다.’
김지혁은 친구 때문에 망한 후보들만 즐비하게 많이 보아왔다.
점점 시간의 압박이 온다.
김지혁은 이런 하찮은 일에 신경 쓸 겨를이 없다.
***
캠프로 왔다.
여전히 구미라 혼자.
구미라 회계책임자는 혼자서도 분주하다.
첫 선거라 배워가며 일해야 하니 할 일이 많다.
본선거 이후에 할 일이 많다.
아직은 빡빡한 정도는 아니다.
김지혁이 말한다.
“앞으로 일정을 잘 봐주십시오.”
“일정을요?”
“아마 후보나 제가 실수가 생길 겁니다.”
“대표님이요? 후보님이라면 몰라도.”
“무조건 생깁니다. 하하.”
구미라가 말한다.
“잘 상상이 안 갑니다.”
“예를 들어 드릴까요?”
“시간 되시면 전 좋아요!”
“하하. 재미는 없습니다.”
김지혁이 묻는다.
“지금 회책님 만나는 사람이 어떻습니까?”
“어떻다니요?”
“하하.”
구미라는 지금 김지혁과 후보.
그리고 캠프 비상주 인원들.
선관위와 지역위 비서들.
어쩌다 오는 정치업자들.
이게 전부다.
하지만 본선거가 시작되면 모든 게 복잡해진다.
가장 큰 것이 업체들.
인쇄.
현수막.
명함.
선거 용품.
식당 등.
다음은
선거 운동원.
유세차 기사.
후보.
캠프.
선관위 직원 등.
모든 인적 자원과 물적 자원은 회계의 흐름을 타지 않을 수 없다. 그 중심에 구미라 회계 책임이 있는 것이다. 귀결을 회계 서류로 해내지 못하면 모든 문제가 생긴다.
민주주의의 꽃은 선거라고 하지만 선거 행정의 꽃은 ‘회계’다. 선거 회계를 모르는 자가 선거를 하면 캠프는 엉망이 된다.
구미라가 설명을 듣고 말한다.
“이제 알겠네요. 각오 단단히 해야겠어요.”
“지금처럼 하시면 됩니다. 하하.”
김지혁이 묻는다.
“왜? 제가 선거 비용을 줄이려고 하겠습니까?”
“혈세를 낭비하지 않으려고?”
“그 이유도 있지만 결정적 이유가 있습니다.”
“뭐죠?”
김지혁이 답한다.
“회계 서류가 간소해집니다.”
“예를 들면요?”
김지혁이 웃으며 말한다.
“지역 신문 광고 안 하지 않습니까?”
“그렇죠.”
“30만 원씩 열 곳을 하면 서류가 몇 개일까요?”
견적서.
계약서.
입금표.
광고 증빙서 (광고화면 이미지 등)
구미라가 말한다.
“40개나?”
“문제는 기레기가 제때 서류 못 줍니다.”
“왜죠?”
“걔네도 한두 군데 줘야 하는 게 아니니까.”
“아···.”
선거는 안 주고 안 받는 게 최선이다.
주려면 유권자에게 진심을.
받으려면 유권자에게 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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