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습을 역습으로 꺽다
“유능한 지휘관은 능동적인 위치에서 적을 끌어들이지, 피동적으로 적에게 끌려가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승리란 인위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 손자 -
“후보님 계십니까?”
한 남자가 캠프에 들어섰다.
김지혁이 대답한다.
“지금 밖에 계십니다. 전화해 보셨습니까?”
“전화를 안 받아서요.”
김지혁이 자세히 보니 계진상이었다.
“전화를 받을 리가 없지 않습니까? 하하.”
“예? 왜요? 같은 당 후보인데?”
뻔뻔한 계진상이 찢어진 입이라고 아무 말이나 내뱉는다. 김지혁은 당황하지 않았지만 구미라는 황당해한다.
구미라가 김지혁에게 말한다.
“미친놈이 어디라고 여길 오죠?”
“미친놈이라 오는 겁니다. 하하.”
김지혁이 말한다.
“오신 용무가 뭡니까?”
“일하는 애들한테 말할 게 아니야.”
“어디서 개가 짖네.”
김지혁이 말한다.
“나가 이 새끼야.”
계진상보다 구미라가 더 놀란다. 가끔 김지혁이 꼭지가 돌아버리면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니까 구미라는 늘 불안했다.
‘어휴 또.’
계진상이 화를 내며 짖는다.
“너 뭐야. 이 자식이.”
“난 사람이고 넌 개지. 후보 없으니까 나가.”
“기다릴 거야. 이 새끼야.”
“맘대로 해.”
구미라는 어쩔 줄 몰라 하고 있다. 이러다가 무슨 싸움이라도 날까? 걱정이다. 김지혁에게 작은 목소리를 말한다.
“대표님 왜 그러세요?”
“일부러 화 좀 돋우고 있습니다.”
“왜요?”
“알게 되실 겁니다. 단톡방 보세요.”
계진상은 씩씩대며 앉아 있고 곧이어 계진상의 아버지도 들어오고 와이프도 들어온다. 역시 비열한 놈이라 혼자 다니지 않는다.
캠프는 일을 할 수 없는 분위기다.
[송선자 캠프 단톡방]
김지혁 : 서연이 핸드폰으로 유튜브 라이브 준비해.
한서연 : 어디서요?
김지혁 : 캠프
강태현 : 형 뭔일이에요?
김지혁 : 곧 알게 돼. 서연이 언제 와?
한서연 : 10분이면 돼요.
김지혁은 잠시 캠프 밖으로 나간다.
송 후보에게 전화한다.
“후보님. 캠프 오지 마십시오.”
“예? 왜요?”
“밖에서 선거 운동 열심히 하십시오.”
“무슨 일 있으세요?”
“계진상이 왔습니다. 애비랑 마누라도.”
“예? 미쳤네···.”
송선자가 말한다.
“제가 가야 하지 않을까요?”
“안 계시는 게 낫습니다.”
“그렇게 할게요.”
“우리 단톡방 시간 날 때 보십시오.”
“예.”
계진상은 사또의 총애를 받아 4명의 후보 중에 유일하게 단수공천을 받아 경선도 치르지 않은 후보다. 그러니 호랑이 후광을 업고 누르면 다 눌릴 것이라는 생각으로 선거판에 들어왔다.
그러나 허위사실 유포와 지역위의 여성위원회와의 모략이 들통나서 선관위로부터 조사를 받고 있다. 사실상 당선이 되어도 어떻게 될지 모른다.
이런 행실의 소유자라면 아마 당선이 돼서 1년도 채 못되어 사퇴할 일이 생길 수도 있다. 실제 그런 기초의원들이 많다.
김지혁이 이 선거판에서 만만치 않은 이유는 간단하다. 두려울 게 없고 잃을 것도 없기 때문이다.
돈을 받고 무언가를 얻으려는 욕심으로 선거판에 들어온 사람들은 용병과도 같다. 김지혁은 의병에 가깝다.
의병 VS 용병.
김지혁은 대의명분이 중요한 의병인 셈이다.
그러니 당연히 전투력이 강해질 수밖에 없다.
전투력은 무기로만 강해지는 것이 아니다.
김지혁은 판을 뒤집는 순간을 포착하는 남다른 것이 있다.
‘영상으로 망한 자 영상으로 또 망한다.’
계진상의 식구들은 남의 캠프를 점령하다시피 하고 있다.
김지혁은 무얼 하려는 것일까?
***
‘역습(逆襲)’
상대편의 공격을 받고 있던 쪽에서 거꾸로 기회를 보아 급히 공격함.
계진상은 공격만 즐겨 했다.
사또인 정경구 의원의 보좌관 추한견이 매번 말렸지만 소용없었다. 굳이 ‘가’ 번 단수공천을 받고 뭐 하려고 여기저기 들쑤시냐는 것이 추한견의 생각이다.
추한견이 맞다.
가만히 있어도 당선이다.
계진상은 왜 그랬을까?
답은 간단하다.
‘이미 당선된 후보다.’
즉 계진상은 이미 후보가 아니라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다. 이미 당선되었으니 거들먹거리는 것이다.
계진상으로서는 당연하다.
유권자들이 알면 정말 소스라치게 놀랄 일이다. 소위 말하는 ‘콘크리트 지지층’은 과연 콘크리트가 맞을까? 노예가 맞을까?
한서연이 도착했다.
[송선자 캠프 단톡방]
김지혁 : 촬영 시작해.
한서연 : 예.
김지혁 : 그냥 세워놔. 뒤에.
한서연 : 예.
강태현 : 뭘 촬영하는 거?
김지혁 : 보면 알아.
김지혁이 계진상에게 말한다.
“후보님 전하실 말씀이?”
“이 새끼 태도가 왜 이래? 갑자기.”
“후보는 언제 와?”
김지혁이 계속 말한다.
“아버님이랑 사모님은 왜? 오셨죠?”
“오든 말든 네가 무슨 상관이야?”
“허락하지 않은데 들어오시면 무단 침입 아닙니까?”
“내 발로 내가 걸어 오는데 무슨 상관이야?”
김지혁이 묻는다.
“왜 허위 사실을 떠들고 다니셨습니까?”
“그 얘기를 하려고 하니까 후보 오라해.”
“직접 전화하십시오.”
“이 새끼 봐라.”
계진상이 말한다.
“그냥 농담으로 말한 거 가지고 뭘.”
“농담이요? 장난으로 출마하셨습니까?”
“장난? 난 이미 당선된 거나 마찬가지야.”
“선거 중인데 무슨 말씀입니까?”
“‘가’ 번은 보지도 않고 찍어.”
김지혁이 묻는다.
“유권자가 바보입니까?”
“바보나 되는 줄 아네? 하하.”
“예?”
“유권자는 무슨 유권자.”
김지혁은 어쨌든 팩트를 끌어냈다.
농담이든 진담이든 상관없다.
계진상이 떠들고 다닌 것을 자인했다.
김지혁이 묻는다.
“지금 캠프 업무를 방해하고 있는 것 아십니까?”
“이 새끼 말투가 왜 이러지?”
이상한 걸 감지했지만 딱 거기까지다. 안하무인이 사람을 어디까지 눈을 멀게 하는 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김지혁은 말한다.
“해석하기에 따라 다르겠지만.”
“뭘 해석해요?”
갑자기 계진상의 마누라가 말한다.
상관없다는 듯 김지혁이 말한다.
“제237조 선거의 자유 방해죄.”
“뭐라고요?”
“제246조 다수인의 선거방해죄.”
“뭐라고 하는 거예요?”
김지혁이 못을 박는다.
“지금 여러분이 하는 행동 말입니다.”
“뭐라고 이 새끼가!”
계진상이 폭주하기 시작했다.
김지혁이 말한다.
“선관위 직원분이 보고 계시면 이거 그냥 넘어가면 직무 유기일 수도 있겠습니다.”
[송선자 캠프 단톡방]
강태현 : 이 작은 선거에 무슨 지랄인가.
김지혁 : 서연아. 라이브 꺼.
한서연 : 또 난리가.
마휘찬 : 저거 사람 맞아?
이때 계진상이 전화를 받는다.
추한견의 전화다.
“너 미쳤어? 가만히 있으라니까!”
“예?”
“너 유튜브로 다 중계됐어.”
“예?”
김지혁은 일부러 단톡방에 뿌리지 않았다.
왜냐하면 간첩들이 단톡방에 더 많으니까.
계진상이 떠나면 뿌릴 계획이다.
숨만 쉴 때까지 패야 진짜 패는 것이다.
계진상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뭔지도 모르고 따라나선 늙은 애비는 정신을 못 차리고 작부처럼 몸에 주렁주렁 뭘 달고 온 마누라는 어리둥절해 있다.
계진상이 말한다.
“지금 나가자.”
“왜?”
“가자면 가자. 얼른.”
“어디로?”
“의원님 사무실로.”
“알았어.”
여태 김지혁은 무대응 기조를 일관되게 유지했다.
이번만큼은 순간적으로 판단했다.
판단의 근거는 간명했다.
‘빼박’ 이니까.
모략에 맞서는 기지로 책략을 펼쳤다. 악랄함에는 잔인할 정도로 더 악랄해지는 사람이 김지혁이다.
계진상은 기습을 노렸지만.
김지혁은 역습을 만들었다.
김지혁이 한서연에게 말한다.
“단톡방에 뿌리고 태현이 보고 돌리라 해.”
“예.”
***
이제는 시스템이 갖추어졌다.
송선자 호는 어떤 하나의 일을 제대로 쳐내는 일류(一流)로 거듭나고 있다.
‘김지혁의 일류(一流)’
First-Class의 의미가 아니다.
One-Flow의 의미다.
최고일 필요는 없다.
단지 조직은 하나의 흐름을 가져야 한다.
하나의 흐름을 가지면 그 조직은 최고가 아니더라도 어떠한 과업을 이루어 내는 것에 있어서 ‘최선’을 할 수 있는 기틀을 가지기 때문이다.
캠프의 조직력은 표를 끌어모으는 데에 있어서 보이지 않는 ‘포스’로 작용한다.
조직 내부에서 자신들도 모르는데 하나의 미션이 마치 물 흐르듯 흘러간다. 이 흐름을 김지혁은 만들려고 여태 노력한 것이다.
하지만 아직 선거 운동원과 유세차가 합류 직전이다. 이 합류만 제대로 이루어진다면 막강한 화력을 본선거에서 뿜어낼 것이다.
구미라가 말한다.
“내일 점심 때는 오셔야 해요.”
“저 말입니까?”
“후보님도 오셔도 좋고.”
“내일 뭐가 있습니까?”
“운동원들이요.”
“아. 3동과 4동?”
“예. 맞아요.”
김지혁이 묻는다.
“아직 운동복 발주 전입니까?”
“내일 4분이 확정되면 발주하려고요.”
“서두르셔야 합니다.”
“예.”
김지혁이 당부한다.
“보전 못 받아도 되니까 여분도 하세요.”
“그럴까요?”
“옷을 분실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아이고 그럴 수 있겠네요.”
구미라가 한 마디 한다.
“든든해요. 대표님.”
“제가 드릴 말씀입니다.”
조직은 시련과 과업을 통해서 탄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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