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보물을 위한 혈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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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이기고 싶어 하는 것이 중요하다.”
- 빈스 롬바르디 -
홍진철이 안타까운 듯 말한다.
“꼬리 자르기 냄새가···.”
“집단 린치?”
“자살을 당한 게 확실해 보여요···.”
“자살을 당해?”
“죽도록 몰았겠죠.”
김지혁이 말한다.
“좀 더 알아봐. 일단 내일 보자.”
“예.”
썩은 냄새가 전화에서도 날 지경이다.
박분자는 송선자 옆 지역구의 단수 공천을 받은 기초의원 후보다. 계진상과 더불어 정경구의 애첩이 아니냐는 소리까지 돌 정도로 정경구의 극진한 보살핌을 받는 개.
단수 공천을 받은 사또의 개중 하나다. 개중의 개가 얽혀 있다면 사건의 중심에는 ‘견주’가 있지 않을까?
***
D – 24
“이거 큰일 났어요!”
“뭐죠?”
“예상대로 중철이···.”
“몰렸군요.”
“계획대로 해야 하시죠?”
“무조건 해야 합니다.”
김지혁은 인쇄소 전민식 사장의 급한 전화에 딱 잘라 말했다.
어쩔 수가 없었다.
하나씩 틀어지면 다 틀어진다.
선거판에서 급박하다고 해서 어물쩍 넘어가는 일이 하나둘 생기면 으레 그래도 되는 줄 알고 대강대강 일이 흘러간다.
무리가 있는 줄 알지만.
절박하니 어쩔 수 없다.
김지혁이 말한다.
“방법은 있지 않습니까?”
“있긴 있는데 좀 도박인데.”
“밀어 넣으십시오.”
“예···. 대표님이 원하면 해야죠.”
“부탁드립니다.”
전민식 사장은 지게차부터 부른다.
전민식 사장이 말한다.
“일단 밀어 놓고 전화드리겠습니다.”
“예.”
“늦게 전화드려도 될까요?”
“24시간 언제라도 전화 받습니다. 하하.”
“예···. 지독하긴. 하하.”
전민식이 말한다.
“도대체 왜 매번 이렇게 절박하세요?”
“선거가 원래 그렇지 않습니까?”
“그래도 그렇지.”
김지혁이 웃으며 말한다.
“전 세상을 바꾸는 작은 일을 하는 사람이니까.”
“아이고. 나부터 구해주쇼. 하하.”
“잘 부탁드립니다!”
공보물과 벽보의 인쇄가 끝났다.
이 두 인쇄물은 동시에 납품된다.
벽보는 수량이 몇 백장도 안 된다.
그러니 일도 아니다.
그런데 공보물이 문제다.
5만 부가 넘는다.
40만 페이지. 20만 장이 넘는다.
초짜들은 절대 모르는 것이 있다. 중철하는 곳이 수배가 안 되면 무작정 대기한다. 대부분 물량이 많아서 들고 다닐 수도 없고 을지로는 그야말로 포화 상태다.
게다가 수량이 적다면 개 취급을 당한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진퇴양난.
김지혁과 전민식은 ‘밀어 넣기’를 선택했다. 막연하게 순서를 기다리다가 도미노식으로 일정이 밀리면 끝이다.
일단 중철집에 공보물을 가지고 전민식이 도착했다.
밤 12시.
“대표님. 일단 안으로 쌓아놨습니다.”
“이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대기를 타야죠.”
“밤새?”
“그러라면서요? 참나. 하하.”
“저도 대기하겠습니다. 하하.”
“당연한 거 아니에요? 하하.”
이렇게 된 이유는 기정시장 후보의 공보물 작업이 변경되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민진당 후보 조공갈.
이 자는 도움이 안 된다.
선거법 위반에 애매한 여지가 있어서 중간 인쇄를 다시 했는데 그 몇 시간이 밀리고 밀려서 송선자 후보의 인쇄 일정에 까지 영향을 주었다.
인쇄소는 다르지만 중철 하는 곳은 거의 인쇄소의 1/20도 안 된다. 그러니 결국 ‘중철집’에서 모두 병목 현상을 겪는다.
김지혁이 단톡방에 메시지를 입력한다.
[송선자 캠프 단톡방]
김지혁 : 밤샐 수 있습니다.
송선자 : 캠프에 계셔야 해요?
김지혁 : 저는 오늘 여기서 철야하겠습니다.
강태현 : 형! 제가 이따 야식 가지고 갈게요.
김지혁 : 좋지. 부탁이 하나 더 있어.
강태현 : 말씀만 하세요.
김지혁 : 너 방수포 좋은 걸로 하나 사서 중철집에 주고 와.
송선자 : 그거 거기 있지 않을까요?
김지혁 : 이중으로 해야 합니다. 하나는 위험합니다.
김지혁은 아쉬운 사람이 더 철저하게 준비해야 한다는 사고방식이다. 결국 이 공보물은 송선자의 처음이자 끝이다.
공보물 따위 유권자가 잘 보지도 않는다.
중요한 건 송선자의 역사이고 기록이다.
전민식은 중철 집에서 사투를 벌인다. 만두며 김밥이며 있는 대로 사서 중철집 사장의 비위를 맞춘다.
전민식도 처절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김지혁에게 마음의 빚이 있다.
김지혁은 커미션을 요구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적정마진을 감안하라 했다.
게다가 디자인 마저 직접 준다.
세상에 이렇게 선거 인쇄물이 쉬울 거라고는 전민식은 생각지도 못했다. 고객이 꼼꼼하니 자신은 잘 따르기만 하면 되는 일이 늘 있었다.
보통 거들먹거리는 인쇄소 사장들이 선거 공보물 인쇄를 하는 줄 알았던 전민식은 많은 것을 김지혁을 통해 알게 되었다.
그런데 이번에 1호 납품을 하겠다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덜컥 배송도 하겠다고 했다.
이 얘기는 무엇일까?
선관위가 지정한 배포 장소마다 정확한 물량을 나눠줘야 한다. 초짜들이 가득한 캠프에서는 능구렁이 같은 인쇄 업자에게 당한다.
[초짜 캠프]
1. 인쇄소에서 5만 부를 캠프에 가져다준다.
2. 캠프에서 지정 장소 물량으로 나눈다.
3. 차량으로 별도 배송한다.
4. 수령증을 배부 받는다.
[송선자 캠프]
1. 인쇄소에 배포 장소별 묶음 처리한다.
2. 첫 장소에서 후보와 합류하고 납품한다.
캠프를 거치지 않는다.
다른 인력들은 일할 수 있다.
비교조차 되지 않는다.
프로와 아마의 차이는 당락을 가른다.
2시쯤 전화가 왔다.
“대표님. 우리 4시쯤 될 것 같아요.”
“작업시간은 얼마나 걸리겠습니까?”
“한 2~3시간 정도.”
“빡빡하겠습니다. 혹시 불량 잔여 물량은?”
중철 작업을 하다가 불량이 날 수도 있기에 김지혁은 늘 여분을 인쇄하도록 부탁했다.
전민식이 말한다.
“여분은 해 놨습니다.”
“역시!”
“그리고 디지털 POD도.”
“완벽합니다! 하하.”
“이렇게 안 하면 또 난리 칠 거면서. 하하.”
전민식은 디지털 인쇄도 할 수 있게 해서 유사시에 프린팅으로 대체할 수 있게 추가 인쇄소도 수배해 놨다.
전민식은 왜 이렇게 까지 열정적일까?
이유는 몇 가지가 있다.
인쇄업에 대한 자부심은 당연하고 선거 인쇄물을 한다는 긍지도 있다. 그리고 이번에는 특히
1호 수령증의 주역이 되고 싶은 마음이 컸다.
1호 수령증은 동기부여가 되었다.
김지혁조차도.
홍보 마케팅에 전문가가 아닌 사람들이 선거캠프에 즐비하다면 한낱 종이 쪼가리에 불과한 1호 수령증일 것이다.
그러나 마케팅 전문가 김지혁의 눈에는 보물로 보였다. 유권자들에게 알릴 능력이 없다면 무용지물이지만 SNS가 있지 않은가.
게다가 한서연은 홍진철의 도움을 받아 보도자료까지 낼 계획도 세웠다.
OSMU에 최적화된 캠프가 ‘선자호’다.
***
새벽 3시에 강태현이 캠프에 왔다.
이것저것 사 왔다.
늘 일이 바쁜 강태현은 햄버거를 입에 달고 살았다. 어김없이 햄버거도 20개를 사 왔다.
“형 눈 좀 붙여야죠.”
“중철 들어가면.”
“들어갈 수는 있데요?”
“전 사장 일 잘해. 하하.”
“오. 형이 일 잘한다고 얘기하네.”
“잘하니까. 하하.”
강태현은 사업 관련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늘 김지혁은 카운슬러였다.
김지혁의 이런저런 조언이 끝났다.
강태현이 말한다.
“이런 일들이 기록을 남으면 좋은데.”
“언젠가 남겠지.”
“누가 남겨요?”
“이겨도 저도 의미 있는 일들이야. 이번엔.”
강태현이 말한다.
“그래도 좀 알려지면 혈세도 줄겠는데.”
“시간의 문제일 뿐이다.”
“예?”
김지혁이 웃으며 말한다.
“우리는 이기는 방법을 증명할 거야.”
“증명이요?”
“이긴다는 계산이 선 것은 오래다.”
강태현이 묻는다.
“언제 확신하셨는데요?”
“알고 싶니?”
“말해봐요. 궁금해.”
김지혁이 콜라를 마시며 말한다.
“시원하다. 새벽의 콜라는. 하하.”
“이 형이. 또 말 돌리네.”
“알았다. 알았어.”
김지혁이 말한다.
“송 후보가 고립된 걸 보고.”
“고립?”
“표현이 거칠었어.”
김지혁이 말한다.
“유권자만 바라볼 후보가 필요했다.”
“아. 그래서 고립?”“다른 생각 없이 직진할 사람.”
강태현이 묻는다.
“처음부터 알고 있었어요? 그런 후보인 줄?”
“아니. 기대를 안 했는데.”
“그런데요?”
“첫 골목 선거 운동할 때.”
“왜요?”
“집중할 게 유권자밖에 없어.”
“후보가요?”
“응.”
정치판에 있지만 정치판에 설 수 없다.
시민들과 떨어져 있지만 시민들 곁에 있다.
그런 후보가 송선자였다.
유권자에만 기댈 수 있는 후보가 김지혁이 구상했던 ‘유권자를 향하는 선거 전략’을 실현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송선자가 선택한 것이 아니라.
김지혁이 선택한 것이다.
송선자는 유권자의 선택을 받아야 비로소 자신의 정치 행로를 선택할 수 있다.
그러나 김지혁은 이미 ‘유권자를 향하는 선거 전략’을 택했고 그 말로 ‘송선자’를 선택했을 뿐이다.
결과로 증명하는 일만 남았다.
“중철 들어갔어요!”
전민식의 전화가 드디어 왔다.
새벽 4시.
김지혁과 강태현은 찜질방으로 향한다.
선거판 찜쪄먹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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