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원령 회피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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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신도 악마도 믿지 않는다. 오직 나의 육체와 정신력을 믿을 뿐이다.”
- 노르웨이 명언 -
“오늘 지역위 행사 어떡하죠?”
“예? 왜요?”
“가야 하지 않나 싶어서요.”
“안 가기로 하시지 않았습니까?”
송선자는 본선거가 다가오자 정했던 원칙들도 까먹을 정도로 심하게 흔들리고 있다.
이렇든 저렇든 후보가 되었다.
이제는 후보의 시간이다.
이렇든 저렇든 사람으로 태어났다.
그렇다면 사람의 시간이다.
마찬가지 아닌가?
어차피 후보가 되었는데 누구의 눈치를 보아야 한다면 표를 거머쥔 유권자의 눈치만 보면 된다.
당선되면 대우받는다.
떨어지면 버림받는다.
단 2주간 개긴다고 달라질 것은 없다.
당선을 위한 유권자로 향하는 길은 멈추면 안 된다는 것이 김지혁의 생각이다.
기정시 민진당의 전체 집결 대회.
유권자나 시민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노동자들의 살기 위한 몸부림의 집회도 짜증을 내는 것이 일반 시민들이다. 그런데 자시의 영예를 위하여 출마한 후보들이 모여서 시끄럽고 교통 체증을 유발하는 것이 유쾌할 리는 없다.
심지어 시민들의 주머니를 털어 하는 선거다.
시각의 나침반을 돌려야 한다.
유권자의 시각으로 봐야 한다.
후보의 시각으로만 보니 후보의 세상이 전부 같지만 유권자들이 만들어 놓은 판에 뛰는 하나의 말에 지나지 않는 것이 후보다.
김지혁이 말한다.
“후보님. 누가 나오겠습니까?”
“민진당 후보들 다 나오죠.”
“후보들만?”
“국회의원, 전 시장, 당 최고위원도 나오고.”
김지혁의 눈앞에 모습이 선하다.
연단에서 말하는 순서는 이럴 것이다.
도지사 후보 연설
국회의원 찬조 연설
시장 후보 연설.
광역 후보 연설.
기초 후보 인사.
기초의원 따위가 연설할 시간이 있을까? 민진당 후보가 기정 시에만 30명에 가깝다.
대가리들 박수부대다.
존재감 제로다.
이것이 현실이다.
직시하지 못하자는 병풍으로 선거를 마감한다.
행사 시작하고 멀뚱히 뒤에서 2시간 가까이 서있다가 이름 한번 호명 받고 인사하는 것이 전부다.
누가 참석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두 시간을 허비한다고?
선거는 후보의 인생을 건 한 판.
잔인할 정도로 치밀해야 한다.
처절하게 절박하고 악랄하게 집요해야 한다.
무늬가 민진당이다.
안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송선자가 말한다.
“그래도 참석 안 하면 피곤할 텐데.”
“때로는 치사해야 합니다.”
“예?”
“장소가 우리 지역구가 아니지 않습니까?”
“예. 택시로 한 5분 정도 거리.”
“택시 타고 맞춰서 가면 되겠습니다.”
“가요?”
“가긴 갑니다.”
“?···.”
김지혁은 앞으로 닥칠 이 수많은 동원령에 대처할 방법을 구상해 놓았다. 몇 번을 후보에게 말했지만 ‘낙선 불안감’과 ‘당선 기대감’으로 이랬다저랬다 정신이 혼미한 ‘선거 뽕’을 맞은 후보는 늘 리셋되기 마련이다.
지선이 다가오면 국회의원의 시간이다.
지역구 조직으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으니까.
공천은 말할 것도 없고.
그러나.
총선이 다가오기 전에는 기초의원의 시간이다.
지역의 구석구석에 유권자를 잘 알고 있으니까.
지선은 총선의 전초전이고.
총선은 지선의 전초전이다.
지선에서 승리한 자는 총선을 앞둔 국회의원들에게 밟히기만 하는 잡초가 아니라 총선때 도움을 받아야 할 조력자가 되는 것이다.
그러니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지선에서 당선만이 살길이다.
이리저리 끌려다니다가 망칠 수 없는 지선.
윗사람들 눈치만 보고 자신의 실력과 인맥에 소홀한 자가 어떤 회사에서 힘을 가지고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을까?
결국은 ‘토사구팽’으로 귀결되지 않는가?
김지혁이 말한다.
“도지사 입 열면 사진 찍고 튑니다.”
“예?”
“말씀드린 그대로입니다.”
김지혁이 단호하게 말한다.
“기초의원을 누가 찾아서 확인합니까?”
“···.”
“거기서 몇 시간을 낭비할 만큼 여유 있습니까?”
“···. 아니요.”
“유권자에게는 곰처럼. 당에는 여우처럼.”
“예?”
“그것이 후보가 살길입니다.”
“예. 명심할게요.”
자동차 대시보드 인형처럼 끊임없이 흔들리는 후보의 정신을 잡는 게 캠프의 가장 큰 일이다. 후보만 흔들리면 다행이다. 실상은 캠프도 흔들린다.
***
김지혁과 송선자는 집결대회 장소에 도착했다.
앰프를 찢고 고함을 질러대는 로고송.
윙탑 트럭이 날개를 펴고 도로를 막았다.
경찰들까지 동원이 되었다.
당 관계자와 행사 업체 관계자들.
그리고 후보들과 ‘당파리’들.
김지혁이 말한다.
“도지사 후보 나왔습니다.”
“예.”
“자리 잡으십시오.”
“찍습니다.”
사진과 짧은 영상을 찍어 캠프 단톡방에 올린다. 그리고 알아서 작업이 되도록 현수막과 나눠준 피켓으로 나머지 스틸컷을 더 찍는다.
[송선자 캠프 단톡방]
김지혁 : 휘찬아. 그대로 영혼 없이 올려.
마휘찬 : 예!
김지혁이 송선자를 부른다.
“택시 잡았습니다.”
“예.”
택시기사가 묻는다.
“후보신가 봐요. 택시를 다 타시고.”
“자주 타요.”
“차로 안 다니시고?”
“예. 택시가 편해서요.”
“그렇긴 하죠. 어디로 갈까요?”
그러자 김지혁이 답한다.
“1동부터 5동까지 주민센터 들려주십시오.”
“내리셨다가 대기하시게요?”
“아니요. 기점 찍고 쭉 돌면 됩니다.”
“5동 주민센터에 내려드리면 되죠?”
“예. 기사님.”
송선자는 김지혁의 말에 약간 당황한다.
김지혁이 웃으며 말한다.
“확인시켜 드리고 싶어서.”
“뭐를요?”
“현실 말입니다.”
“예?”
“보여 드릴 게 있습니다.”
“어떤 거를요?”
“보시면 압니다.”
기정시는 민진당의 우세지역이다.
그러니까 다른 당은 절박하다.
지선에서 약진이라도 해야 다음 총선에 희망이 있다. 그러니까 절박한 후보들이 지선에서는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 송선자에게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김지혁은 생각했다.
택시는 행사로 인한 통제 지역을 벗어나자 곧바로 1동 주민센터 앞을 지난다.
지나가는 길목에 민진당 후보는 단 한 명도 없다.
당연하다.
모두 행사장에 동원되었으니까.
반면
절박한 한보당은 길목마다 인사하고 있다.
택시는 3동 주민센터를 지나 4동으로 들어가고 있다. 이 지역에는 한보당 뿐만 아니라 다른 당 후보들도 인사하느라 정신이 없다. 본선거가 임박하자 이제는 여유 부릴 틈이 없다.
5동 주민센터에서 하차했다.
송선자가 침울하게 말한다.
“이제 알겠어요···.”
“뭐를요?”
“행사를 가지 말아야 할 이유.”
“틀렸습니다.”
“행사를 가라고요?”
“아닙니다.”
김지혁이 말한다.
“지역을 사수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예. 확실히 알겠어요.”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뭐죠?”
“무리에 묻히지 말아야 합니다.”
“아···.”
김지혁은 기초의원이 무리에 묻혀 버리면 동원된 하수인에 불과한 이미지를 유권자에게 계속 심어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위가 어떻든. 지방 의회라는 입법 기관의 일원이 되고자 한다면 리더의 이미지나 결정권자의 이미지를 유권자에게 보여줄 필요가 있다.
그리고 후보도 그런 주체적인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당에 기대고.
지역 사또에 기대고.
기레기에 기대고.
다른 후보에 기대고.
이익 집단에 기대고.
기대고 기대는 후보에게 유권자는 불안해서 표를 던지지 못한다.
내 말을 듣지 않고.
더 힘센 놈의 말을 들을 게 뻔하니까.
‘기대려면 유권자에게 기대야 한다.’
***
“선자 아냐?”
“어머님!”
“민진당은 아무도 없던데? 혼자네?”
“행사가 있어서요.”
“선자는 거기 안갔어?”
“저는 골목에 있어야죠.”
“생각 잘했어.”
“예?”
송선자가 묻는다.
“무슨 말씀이세요?”
“선자 지역구도 아니잖아.”
“아. 행사장이요?”
“그래. 표는 우리가 주잖아.”
“맞아요. 어머님.”
“다들 한가해? 동네 선거인데?”
송화자 할머니.
미용실 앞 주차 싸움에서 송선자의 편을 들다가 모녀지간처럼 가까워진 유권자다. ‘선자. 화자. 화이팅’을 외쳐주던 몇 주 전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송선자는 화자 할머니의 말을 듣고 마음이 단단해질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단 1초라도 골목에 있어야 한다.
그것이 지선이다.
송화자 할머니가 김지혁을 알아본다.
“젊은이가 선자 빼 왔구만?”
“예. 어머님. 하하.”
“역시 우리를 알아. 젊은이는.”
“이 동네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하하.”
화자 할머니가 웃으며 말한다.
“젊은이는 사람 마음을 알아.”
“감사합니다. 어머님.”
화자 할머니가 송선자에게 묻는다.
“사람 마음은 어떨 때 열릴 것 같아?”
“밥 사줄 때요?”
“예끼. 선자 이 사람아.”
“성실하고 열심히 하면요?”
화자 할머니가 말한다.
“내가 살아 봐서 아는데. 그냥 공짜로 마음 열어 주는 사람은 없어.”
“그러면요?”
송선자의 손을 잡으며 말한다.
“나를 위해 애쓰는 사람에게 열려.”
“아···.”
“사람을 대하는 첫 태도가 중요해.”
“예···.”
“그러니까 진심으로 동네에 애써봐.”
유권자가 더 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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