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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금흔의 서재입니다.

무연무성(無硏武成)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일반소설

류금흔
작품등록일 :
2013.04.16 22:07
최근연재일 :
2013.12.27 17:37
연재수 :
50 회
조회수 :
265,085
추천수 :
2,361
글자수 :
281,912

작성
13.06.08 2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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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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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글자
19쪽

강호의 이단아들 -1

세상에 모든 행운을 다 가진 소년 홍무연. 세상에 모든 불행을 짊어진 소년 임무성. 세상에 모든 슬픔을 가지는 소녀 화소은. 세 남녀가 그려가는 무림이야기.




DUMMY

겨울임에도 불구하고 지독히도 비가 많이 내리는 날씨였다.

누군가에게는 흔적을 지우기에 최적인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지만 그 뒤를 쫓고 있는 자들에게는 최악의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었다.

"젠장, 이놈에 산은 대체 어떻게 되먹은 거야? 겨울 초입에 비라니……. 샅샅이 뒤져라. 작은 흔적이라도 발견한 자는 보고하도록……."

비를 피하기 위해 죽립이며 죽간까지 뒤집어썼지만 세차게 내리꽂히는 폭우에는 무용지물이었다. 명령을 내린 사내를 포함해 모두 아홉 명의 인원이 좁은 산길을 이리저리 뒤지고 있지만 이정도 비라면 흔적을 발견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괜히 짜증이 난 사내가 주먹으로 나뭇등걸을 한 대 툭 치며 푸념을 한다.

쿵. 우수수수

"이잌, 기룡단 자식들. 이 정도로 주도면밀했었나? 아니면 천운인가? 쳇! 근 이틀을 뒤 쫓아 겨우 따라잡았나 싶었더니……."

사내는 주변에서 흔적을 찾아 바닥을 헤집고 다니는 부하들을 보았다.

'하아, 이 녀석들에게도 못할 짓인가?'

사내는 잠시 그런 부하들을 쳐다보다가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 모두 철수한다. 각자 철회경로를 따라 본대에 합류할 것!"

"옛!"

사내의 명에 나머지 사람들은 왼쪽 주먹을 오른쪽 가슴에 대며 허리를 꼿꼿이 세웠다. 그리고 명을 내린 사내가 이동을 하자 모두 다른 방향으로 경공을 전개해 사라져 버렸다.

마지막 사내가 날카로운 눈을 빛내며 덤불이 우거진 곳을 주시하다가 이내 몸을 돌려 사라지자 숲에는 온통 빗소리가 사람이 있었다는 흔적을 지워나가고 있었다.

부스럭, 스스스스.

마지막 사내가 주시하던 덤불속에서 몇 개의 인영이 기어 나온다.

"의영아, 다친 데는 없어?"

"전 괜찮아요. 그보다……. 이 사람은 어떡하죠?"

덤불속에서 기어 나온 사람은 다름 아닌 무성과 의영이었다. 덤불속, 승천하는 용이 그려진 무복을 입은 사내 하나가 피를 흘리며 끙끙 앓고 있었다.

무성은 주변을 확인한 후에 의영을 돌아보며 말했다.

"일단 비를 피할 곳을 찾아보도록 하자. 내 기억으로는 아마 저쪽에 동굴이 있었던 것 같았는데……."

무성은 사내를 들쳐 업고 조심스럽게 숲속으로 걸음을 옮겼고 그 뒤를 의영이 연신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따라 붙었다.

간신히 동굴로 사내를 데려온 무성은 한참을 고생한 뒤에야 불을 피울 수가 있었다.

"후우우, 갑자기 이게 웬 날벼락이람?"

"그러게 말이에요. 그보다 오빠는 대체 무공을 익힌 사람이 어째 그리 경계가 허술한 거예요?"

"에? 무슨 말이야?"

"좀 전에 이 사람이 제 목에 칼을 들이대고 있는 데도 멍하니 손가락만 빨고 있었잖아욧?"

"으음... 미안."

"으음.. 미안이 아니라, 노인양반들 손에서 벗어났으면 자각을 좀 가지라구요. 자각을……!"

"으음... 미안."

"으이구, 증말!"

********

사흘 전, 무려 보름동안 감덕윤과 백운휘, 위지광을 안심시킨 무성은 야반도주를 감행했다. 아무리 어라계의 환술을 막았다고 해도 일전에 마을주민들에게 폭력을 휘두를 뻔한 일도 마음에 걸리는 데가 무엇보다도 진실을 알고 싶었다.

자신의 부모가 어째서 무림공적이 되었는지, 그리고 목걸이의 원주인이었던 갈치건의 죽음에 대한 규명이 더더욱 시급한 문제였다.

만일 그를 막지 못하면 자신으로 인해 강호에 혈겁이 일 테니까 말이다. 그러기 위해서 마냥 석가촌에서 손가락만 빨 수 없다 여겨 야반도주를 감행 하였는데, 무성의 일이라면 손바닥 보듯 훤한 의영이 이를 냅다 세 노인 중에 가장 성질이 더러운 위지광에게 알려 버린 것이었다.

"네, 이놈! 감히 무공의 무자도 완성하지 못한 놈이 야반도주를 감행해?"

석가촌의 송림을 벗어나 딱 일마장만에 위지광에게 덜미를 잡혔다. 그의 곁에는 의영이 혀를 배꼼 내밀고 있는 것이 보였다.

무성은 그런 의영이 얄미워 대뜸 버럭 호통을 친다.

"너, 대체 왜 그런 거야?"

"흥, 오빠가 강호에 나가서 죽을까봐 그런다. 왜?"

의영이 받아치자 위지광도 팔짱을 낀 채 무성을 노한 눈으로 내려다보며 말했다.

"의영이 말이 맞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고, 그간 무공이 좀 늘었다 싶더니 강호에 나가 칼침받이나 하려는 것이냐?"

무성은 왠지 위지광의 말에서 분노보다는 걱정과 염려가 느껴져 대답했다.

"아니……. 아닙니다. 어르신, 저는 그저 진실을 알고 싶었을 뿐입니다. 이곳에서 어르신들께 좀 더 많이 가르침을 받고 싶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보다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들어 보도록 하지."

"제가 비록 배운 것도 미천하고 어르신들이 보기에는 모자랄지 모르지만 사리분별은 할 줄 압니다. 제가 가진 목걸이가 다시금 제 주변사람들에게 피해를 끼는 꼴은 보지 못할 것 같습니다."

무성의 말에 위지광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지만 여전히 눈꼬리를 치켜 올린 채 말했다.

"고작 그딴 이유 때문이야? 네가 무슨 착각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네가 아무리 그 어라계의 힘을 빌린다 쳐도 석가촌에서 네 일 권을 받지 못할 사람이 없다는 것도 모르는 게냐?"

"압니다. 그래서 더더욱 가려는 것입니다. 석가촌 여러분이 저에게 베풀어 주신 호의는 백골난망이지만 이건 저 혼자 짊어져할 짐입니다."

"그러냐?"

위지광은 잠시 무성을 노려보았다. 무성도 지지 않고 위지광을 쳐다본다.

'허허, 참. 처음 형문산에 왔을 때만 해도 어리숙하기 그지 없던 녀석이 언제 저런 패기를 갖춘 것이지?'

하지만 감탄하고 있을 만큼 위지광의 성질은 좋지 못했다.

"지랄하고 있네. 지랄도 네가 하니까 아주 개지랄이로군. 좋다 정히 네가 이곳을 떠나야겠다면 보내주마."

위지광의 의외의 대답해 무성의 표정이 환해졌다.

"저.. 정말이십니까?"

"대신 내 삼검을 받아내면 보내주도록 하마."

"커헉! 그... 그럼……."

한쪽 입 꼬리를 말아 올리며 이빨까지 보이는 위지광이 그렇게 얄미울 수가 없었다. 하지만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려면 그 방법 밖에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위지광이 대충 성격도 난폭하고 가끔 정신이상적인 행동도 서슴없이 하지만 자신이 내 뱉은 말을 꼭 지킨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좋습니다. 삼검입니다."

"흐흐흐, 일 검으로 끝내주마. 검을 뽑아라. 그리고 의영이 너는 방해만 되니 그만 돌아가거라."

"치잇, 알겠어요."

그 자리에서 멀어지는 순간 의영의 표정에서 장난스러움이 가득 담겼다는 것을 누구도 눈치 채지 못했다. 위지광은 의영이 송림으로 완전히 들어가는 것을 확인한 후에야 느긋하게 입을 열었다.

"흐흐흐, 내일 아침에는 의원에서 눈을 뜨게 될 것이다. 받아라!"

위지광의 몸이 움직였다. 무성의 눈에 잡히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그의 면전으로 이동한 위지광이 어느새 뽑아든 것인지 새파란 한광이 줄줄 흐르는 검을 무성의 가슴으로 직행시키고 있었다.

"허억."

무성은 헛바람을 들이키며 천강검식중에 패월엄성을 전개하며 뒤로 세 걸음이나 물러났다.

따라라라랑.

단 한 번의 칼질임에도 불구하고 무려 다섯 번의 부딪힘이 느껴졌다. 위지광은 자세를 바로하고 무성을 노려보며 말했다.

"놈, 언제까지 막을 수 있을 지 보도록 하지. 제 이초다."

이번에는 놓치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하며 위지광의 움직임에 집중을 했건만 어두운 밤인데다 원체 노련한 위지광의 움직임은 금세 무성의 눈 밖을 벗어나고 말았다.

무성은 아예 눈을 감아 버렸다. 그리고 천강검식의 후반 초식을 익히기 위해 감덕윤이 해줬던 말을 떠올렸다.

[낮에만 싸움을 하는 것은 아니다. 밤에도 싸움이 계속 되면 무슨 수로 대적을 할 테냐? 눈을 감고 상대를 느껴라.]

감덕윤은 직접 무성을 대적하며 무던히도 무성의 몸에 멍자국을 남겼었다.

'그에 비하면 위지어르신은 조금 무른 면이 있었지?'

정신을 집중하자, 위지광의 움직임 느껴졌다. 왼쪽? 아니 오른쪽? 분간하기 힘들 정도로 위치를 바꾸며 무성을 노리고 있었다. 마치 어둠속에서 먹이를 노리는 이리처럼…….

'온다!'

무성은 두 손으로 묵언을 꽉 움켜쥐고 천강검식의 별감추성을 전개했다. 무수한 별 가운데서도 옅지만 가장 오래 빛나는 별, 별감추성은 그 별을 본따 만든 것이라 했다. 전반 초식들을 무시하고 그대로 곧게 하늘로 향하는 검, 무성은 위지광의 움직임에 맞춰 묵언을 세차게 내리그었다.

슈아악, 챙!

위지광은 자신의 검이 보기 좋게 막히자, 눈꼬릴 잔뜩 추켜올리며 말했다.

"일성이가 제대로 가르치긴 한 모양이군. 마지막 이다. 이것까지 받아 내면 조용히 보내주도록 하마."

위지광은 뒤로 다섯 걸음 물러섰다가 검을 곧게 쳐들어 금계독립식을 취해 보였다. 무성은 그 동작에 정말 놀란 눈으로 방어 자세를 취했다.

패왕삼검식의 일검오시천하였다. 강한 내공이 필요한 덕에 무성은 아직도 형만 취하는 초식이었다.

위지광의 몸이 앞으로 쏘아지고 그 여파에 낙엽들이 비상한다.

팍, 팍, 팍.

단 세 걸음. 하지만 위지광이 공중에 새긴 예인 무려 아홉이었다. 무성은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검기를 노려보며 재빠르게 몸을 움직였다.

이때는 백운휘의 외공수련이 큰 도움이 되었다. 크게 공중제비를 돌아 다섯 개의 검기를 피하고 마치 눈이 달리 것처럼 자신을 쫓고 있는 검기를 향해 묵언을 박아 넣었다. 그리고 크게 기합 성을 내지르며 검을 휘게 휘돌리며 그에 따라 몸도 같이 휘돌렸다.

"하아아아압!"

쩡, 쩡, 쩌정.

검기에 튕겨 무려 삼십 장이나 밀려난 무성이었지만 상처 하나 없이 멀쩡하게 땅에 착지하는 것을 확인한 위지광은 검을 검집에 갈무리하며 말했다.

"가라, 더 이상 붙잡지 않으마."

무성은 묵언을 등 뒤로 돌리고 대뜸 바닥에 무릎을 꿇고 바닥에 머리를 찧었다.

"그간 보살펴 주신 은혜 반드시 갚겠습니다."

"쳇, 그 말 잊지 마라. 그리고 죽지마라. 죽으면 내가 널 죽이러 갈 것이다."

그 말만 남기고 홱 몸을 돌려 송림으로 들어가 버리는 것이었다.

"휴우우, 하마터면 정말 저승구경 할 뻔했네."

위지광이 완전히 모습을 감춘 뒤에야 일어서 형문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한참을 내려가다 무성은 왠지 뒤통수가 자꾸만 따끔거려 홱 뒤를 돌아보았다.

사사삭.

어두워서 잘 분간은 하지 못했지만 누군가가 급히 수풀 속으로 몸을 숨기는 것이 보였다.

'대체 누구지?'

분명 외부인은 아닐 것이라 판단한 무성은 조심스럽게 수풀 쪽으로 다가갔다. 수풀 속을 확인한 무성은 놀란 눈으로 몸을 숨긴 사람을 쳐다보았다.

"네가……. 왜? 어서 돌아가!"

"뭐? 기껏 지 생각해서 따라와 줬더니……. 그게 지금 나한테 할 소리야?"

수풀에 몸을 숨긴 사람은 다름 아닌 의영이었다. 무성이 위지광의 삼초식을 받아내는 동안 미리 싸둔 것인지 작은 봇짐을 메고 꾸역꾸역 무성의 뒤를 쫓아 온 것이었다.

"너 강호가 얼마나 무서운 곳인지 알고 날 따라가겠다는 거야?"

"흥, 이래봬도 오빠보다는 내가 더 경험이 많을 걸? 게다가 오빠는 내가 없으면 금방 죽을지도 모른단 말이야."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오빠가 다치면 누가 치료해줄 거냐구? 게다가 밥은 어떻게 해먹을 것이며, 옷이 헤지면 누가 꿰매 줄거냐구?"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붙여 바락바락 대드는 의영의 양쪽 어깨를 덥석 잡은 무성은 차근차근 말을 이었다.

"네가 없어지면 석가촌이 난리가 날거야. 감어르신은 물론이고 유숙부나, 위대형이 네가 날 따라 나섰다는 것을 알면 가만히 있으실 것 같아?"

"하지만... 하지만... 나도 저런 벽촌에 머물기 싫단 말야. 어차피 그 때 한 번 죽은 목숨 지금 죽더라도 상관없다고."

어떨 때 보면 딱 떼를 쓰는 어린아이 같다가도 뒷말을 들어 보면 세상 다 산 늙은이 같은 소릴 해대는 의영이었다.

"의영아, 이게 떼를 쓴다고 될 문제가 아니잖아."

그 때, 한참 전부터 모여들었던 먹구름에서 줄기줄기 물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무성은 비가 오니 더욱 의영을 돌려보내려고 설득을 했다.

"비까지 오기 시작하는데 감기 들지도 모르니까 어서 석가촌으로 돌아가."

하지만 의영은 비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그녀는 정말 무성이 자신이 없으면 금방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것인지 큰 소리로 외쳤다.

"싫어, 싫다구. 오빠랑 갈 거야. 자꾸 날 떼어 놓으려고 하면 그냥 이 자리에서 확 죽어 버린다."

그러면서 봇짐에서 작은 소도를 꺼내 자신의 목으로 들이미는 의영을 제지하기 위해 무성이 몸을 날렸지만 그보다 더 빠른 손놀림이 있었다.

"아직... 아직 죽으면 안 되지."

"헉, 누..누누.. 누구세요?"

복면의 사내가 어디선가 나타나 의영의 손에 들린 소도를 잡아채고 되레 그녀의 목에 칼을 들이밀며 무성을 지목했다.

"너, 움직이지 마라. 내가 지금 힘이 없어서 손이 미끄러질 지도 모르니 말이야. 크흑……. 그리고 어서 숨을 곳을 마련해라."

"저어, 지... 진정 하십시오."

"내 말 안들 리냐? 어서 몸을 숨길만 한 곳을 찾아. 되도록이면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을 정도면 더욱 좋겠지?"

근처 지리를 어느 정도 알고 있는 무성이었던지라 몸을 숨길만한 장소는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복면의 사내는 여전히 의영의 목에 소도를 겨눈 채 연신 불안한 눈으로 무성과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이윽고 여러 개의 발소리가 들리자, 복면인은 여전히 목에 소도를 겨눈 채 의영의 입을 틀어막았다. 하지만 피를 많이 흘려서 인지 어느 순간 시선이 흐릿해지더니 스르르 손아귀에 힘이 풀려 나가자 의영은 얼른 무성의 품으로 달려왔다.

"오빠, 죽은 걸까요?"

"너 의원이잖아. 진맥해봐."

"아 그랬지. 내 정신도 참……."

의영은 아무 거리낌 없이 복면인의 목에 손을 대어 보더니 싱긋 무성을 향해 웃어 보였다.

"히이, 아직 안 죽었어요. 그래도 이 상태라면 세시진도 넘기기 힘들겠는데요? 어서 치료를 하지 않으면……."

의영이 봇짐에서 무언가를 꺼내려 한때, 세 사람이 숨어 있는 덤불 가까이로 사람의 그림자가 어른거리자 무성은 얼른 의영의 손을 잡아 제지시켰다.

'이 사람은 좋은 사람일까? 나쁜 사람일까? 흐음……. 혼자서 이 많은 사람들에게 쫓기다니 대체 무슨 사연인거지? 저들에게 알리는 게 나을까? 혹시라도 저들이 나쁜 사람들이라면 살인멸구를 할지도 모를 일인데…….'

머릿속에서 수많은 생각이 오가고 수많은 선택지들이 존재했지만 문득 바닥에 정신을 잃고 쓰러진 복면인이 눈에 들어왔다.

"의영아, 일단 저 사람들을 보내고 생각해 보도록 하자. 지금은 여기 있을게 더 안전할 것 같아."

"응."

의영이 고개를 끄덕여 보이자 무성은 의영을 자신의 등 뒤로 돌리고 혹시나 모를 돌발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무상신도를 조심스럽게 뽑아 들었다.

***********

이런 여차저차한 이유로 무성은 의영의 동행을 허락하고 만 것이었다. 그리고 그 덕분에 기가 산 의영이 무성은 다그치고 있는 중이었고…….

무성은 연신 미안만 찾아다 문득 생각난 듯 의영에게 말했다.

"의영아, 너 저 사람 그냥 죽게 놔 둘 거야? 아까는 세 시진만 저대로 두면 죽을 거라 했던 것 같은데……."

"아, 참. 내 정신 좀바. 어서 치료를 해야……."

의영도 그제야 정신이 들었던지 주섬주섬 봇짐에서 금창약이니 침통이니 꺼내 놓기 시작했다.

"무성오빠, 그 사람 옷 좀 벗겨줘요. 일단 상처가 얼마나 심한지 좀 봐야겠어요."

의영의 지시에 따라 무성은 복면인의 옷을 차근차근 벗겨냈다. 의영은 흰색 천으로 얼굴의 반을 가리고는 복면인의 상처를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무성은 복면인의 상처를 보며 연신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지만 의영은 그런 것은 전혀 역겹지 않은 모양이었다.

"으음... 등에 자상, 이건 별로 대단한 건 아니고... 어디보자... 여기네요. 여기. 오빠 이 사람 옆으로 좀 눕혀 주세요. 그리고 이 강침을 좀 뽑아 주세요."

"의영아, 너는 이 상처들 보고 역겹지 않니?"

"응? 왜요? 이래봬도 내가 의원생활 벌써 팔년차라구요. 이 정도 상처는 지겹도록 봤는걸요?"

그녀의 말에 무성은 질린다는 표정으로 혀를 내둘렀다.

"으휴... 대체 어린 계집애가 얼마나 험하게 살아 온 것인지……."

"뭐라구요?"

"아.. 아니야."

의영이 도끼눈으로 쳐다보자 무성은 급히 시선을 회피하며 사내의 강침에 손을 얹었다. 그리고 힘을 주어 단번에 강침을 뽑아냈다.

옆구리에 박혀 있은 지 오래 되었는지 그리 많은 피는 흘러나오지 않았다. 아니면 너무 많은 피를 흘려서 더 나올 것이 없던가.

의영은 능숙한 손놀림으로 강침이 박혀 있던 곳에 몇 가지 약재를 붓고 침을 상처 주변이며 가슴부위에 몇 개를 꽂았다. 그리고 작은 함에서 바늘과 명주실을 꺼내어 사내의 상처를 봉합하기까지 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무성은 그저 감탄을 할 수밖에 없었다.

"와아, 너 정말 대단하구나."

무성이 칭찬하자 의영은 흰 천을 풀어 던지며 헤벌쭉 웃어 보인다.

"헤헤, 그렇게 칭찬해도 전혀 기쁘지 않네요. 헤헤헤헤."

눈은 반달을 그린 채 그리 말하는 의영이 밉지는 않았던지 무성도 마주 웃어보였다. 의영은 제 할일 끝났다는 듯이 모닥불로 가서 자리를 잡으며 무성에게 금창약과 붕대를 던져주며 말했다.

"멍청하게 웃지나 말고 그 사람 상처에 붕대나 감아줘요. 붕대감기 전에 금창약 뿌리는 거 잊지말구요."

"알았어."

무성은 낑낑거리며 사내의 등에 금창약을 바르고 붕대를 둘둘 감아 주었다. 축 늘어진 인간을 다루다보니 겨울임에도 불구하고 땀이 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붕대를 다 감고 모닥불 쪽으로 돌아보니 의영은 이내 무릎베개를 한 채 잠이 들어 있었다. 간혹 몸을 떠는 것을 보니 안쓰러워 진 무성도 그녀의 곁으로 가 의영의 머리를 자신의 어깨에 얼려 놓았다.

"으으음... 냠냠."

의영은 무슨 꿈이라도 꾸는 지 무성의 어깨에 기대자 부드러운 미소를 입가에 띠며 무성의 팔에 자신의 팔을 감아 왔다.

"훗, 녀석. 아직 애기라니까……."

무성은 그런 의영을 보며 피식 웃어보이고는 모닥불로 시선을 돌렸다.

위지광과 그런 일도 있었고 사내를 동굴까지 낑낑대며 끌고 오고 그것도 모자라 축 늘어진 사람의 붕대까지 감아주어서 인지 절로 눈꺼풀이 무거워 지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무성은 끝내 수마를 이기지 못하고 잠이 들어 버렸다.




감상평, 댓글은 언제나 환영합니다. 질타도 감사히 받아 들이겠습니다.


작가의말

게으른 작가의 변: 사흘동안 소스가 없어서...쿨럭! 그보다 변변한 얘깃거리가 더오르지 않아서... 흐음.. 아닌가? 사실은 어찌 연결을 해야 될지 망설였습니다.

다섯 가지 선택지를 두고 고심한 끝에 이렇게 나오는 걸로 결정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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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호의 이단아들 -1 +2 13.06.08 4,510 42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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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형문산의 은거고수-15 +3 13.06.01 4,434 46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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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형문산의 은거고수-6 +5 13.05.15 6,340 55 14쪽
23 형문산의 은거고수-5 +4 13.05.14 6,582 55 11쪽
22 형문산의 은거고수-4 +5 13.05.12 5,393 52 14쪽
21 형문산의 은거고수-3 +4 13.05.12 5,947 6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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