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류금흔의 서재입니다.

무연무성(無硏武成)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일반소설

류금흔
작품등록일 :
2013.04.16 22:07
최근연재일 :
2013.12.27 17:37
연재수 :
50 회
조회수 :
265,090
추천수 :
2,361
글자수 :
281,912

작성
13.05.17 21:14
조회
5,689
추천
46
글자
9쪽

형문산의 은거고수-8

세상에 모든 행운을 다 가진 소년 홍무연. 세상에 모든 불행을 짊어진 소년 임무성. 세상에 모든 슬픔을 가지는 소녀 화소은. 세 남녀가 그려가는 무림이야기.




DUMMY

기나긴 겨울, 거리를 걷는 사람들의 옷깃을 여미는 솜씨가 능숙해질 때쯤이면 어김없이 봄이 찾아온다.

언제 오나 싶어도 형문산의 봄은 불쑥 얼굴을 들이밀고 길게 이어진 전답들에 파릇파릇 새싹을 돋아내고 있었다.

감덕윤이 운영하고 임무성이 식객으로 있는 석가촌의 의원에도 봄이 찾아와 따스한 햇볕이 내리쬐고 있을 때, 감덕윤은 느닷없이 마당으로 무성을 불러낸다.

"임식충이는 당장 나오너라."

감덕윤의 불호령에 놀란 무성이 우당탕 소리를 내며 별당에서 뛰쳐나와 감덕윤 앞에 섰다.

"예, 임무성 대령했습니다."

"너, 겨울도 다 지나갔는데 아직도 빈둥거리며 무공이나 후벼 팔 것이냐? 밥값을 해야 할 것 아니냐? 밥값을……!"

"에? 제가 무얼 하면 되겠습니까?"

"가서 일 해라. 요 옆에 유건에게 말해 놓았다."

"그리 가면 됩니까?"

무성이 멍청한 소리를 하자 감덕윤은 곰방대를 번쩍 치켜들며 위협을 한다.

"지금 기다리고 있을 테니 어서 가보 거라."

무성은 움찔하며 서둘러 의원을 나와 보았다. 주위를 두리번거리자 감덕윤의 말대로 장정 열댓이 모여 있는 곳이 눈에 들어왔다.

"안녕하십니까? 감의원님 명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오오, 자네가 임무성이군. 감의원께 얘기는 많이 들었네. 어서 오게."

장정들 중에 머리에 청색 두건을 쓴 사십대 중반의 사내가 환한 미소로 무성을 맞이했다. 사내는 무성을 소개하고 서둘러 사람들을 이끌고 밭으로 내려갔다.

자신을 유건이라 소개한 사내는 무성에게 쟁기를 쥐어주며 말했다.

"자네는 이곳에서 저기 보이는 저쪽 밭까지 쟁기질을 좀 해주게. 처음 해보는 일일 것이니 모르는 것이 있으면 주변에 있는 아무에게나 물어 보면 될 걸세."

"예, 알겠습니다."

유건이 제 할 일을 하러 가버리자 홀로 남겨진 무성은 자신이 맡은 드넓은 밭을 둘러보았다.

'과연 오늘 내로 다 할 수 있을까?'

농사일에는 초보자인 무성이 받은 할당량은 꽤 넓어 보였기 때문이었다. 혹시나 하여 근처 밭에서 일을 하고 있는 사람에게 물었다.

"저, 대형, 저곳을 대형처럼 이렇게 파 뒤집어 놓으면 되는 것입니까?"

"응, 그러면 될 걸세. 거름이 잘 스며들도록 하려는 것이니 말이야."

친절하게 대답을 해준 사내를 뒤로하고 낮게 한숨을 쉰 무성은 쟁기질을 시작했다.

농사일이 체질에 맞았는 지 무성은 꽤 농사꾼의 소질을 보이고 있었다.

유건이 첫 날 무성을 골려 줄 요량으로 꽤 많은 양의 밭을 할당했음에도 불구하고 해가 질 무렵까지 모두 끝내고야 말았다. 이를 확인한 유건의 말,

"자네 보기보다 농사에 소질이 있었나 보군. 그저 삼분지 일이라도 하면 합격이라 생각했는데 말이야. 하하하."

그리고 날리는 멋쩍은 웃음에 무성이 맹한 표정을 지어 보인 것은 말 안 해도 알 것이다.

수일 후, 유건은 소 한 마리를 끌고 와 쟁기를 씌워주며 말했다.

"자네 소질이 있어 보이니 이번에는 논을 헤집어 보겠나?"

"예, 해보겠습니다."

유건은 무성이 응낙하자 소를 모는 법에 대해 이것저것 알려준다. 제 아무리 소가 쟁기를 끌더라도 논을 헤집는 일은 꽤나 힘이 많이 드는 작업이었다. 무거운 쟁기를 땅에 박아 넣는 일부터 쟁기를 끄는 소가 딴 길로 가지 않도록 고삐를 잘 잡아주어야 했고 쟁기가 균일하게 땅을 헤집을 수 있도록 신경을 써주어야 하니, 유건이 맡기기에 일을 하고는 있지만 무성은 새삼 농사꾼들이 대단하다고 느끼고 있었다.

완연한 봄기운이 석가촌을 감싸자 무성의 주경야공(晝耕夜功?)이 시작되었다.

말 그대로 낮에는 논밭에 나가 일을 하고 밤에는 감덕윤의 혹독한 수련을 받으며 평화롭게 지내던 어느 날이었다.

아침나절 열심히 논에서 일을 하고 새참을 먹고 있을 때, 그것은 그 때와 마찬가지로 느닷없이 찾아왔다.

[혈향이 짙다. 끈적한 피가 그리워.]

"예? 뭐라구요?"

오로지 자신의 귀에만 들린 다는 것을 모른 무성은 저도 모르게 옆에 앉은 유건에게 대뜸 질문을 하자 유건은 뜬금없는 무성의 행동에 실소를 터드리며 말한다.

"허, 이 친구 아무 소리 안 했네."

"아, 그런가요? 저는 유대형께서 무슨 말씀을 하신 줄 알고……."

[죽여라. 이 세상에 있어서는 안 될 자들. 모두 죽여라.]

'아윽, 또 시작인가?'

무성은 느낄 수 있었다. 갑자기 찾아온 두통을 동반한 목소리는 오직 자신에게만 들린다는 것을…….

그리고 목소리는 이전처럼 무성의 의식을 잠식해가기 시작했다.

[어떠냐? 너도 피냄새가 그립지? 어서 죽여라.]

'싫어, 이렇게 좋은 사람들을 왜 죽여야 하나? 물러가라. 잡귀야!'

이번에는 무성도 끈질기게 맞섰다. 하지만 목소리는 무성의 의지보다 수십 배는 단수가 높았다.

[죽여라. 죽여라. 죽여라. 세상에 필요 없는 것들.]

마치 수십 명이 무성의 귀에 대고 말하는 듯 생생이 들리는 목소리에 점점 무성의 눈에 혈광이 비쳐들기 시작했다.

앞에 앉아 무성을 보고 있던 차성준이라는 청년이 무성의 상태가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았던지 유건에게 말했다.

"유대형, 무성이 상태가 조금 이상합니다."

그의 말에 유건이 무성을 쳐다보며 물어간다.

"이보게, 무성이. 왜 그러나? 체하기라도 한 것이야?"

유건이 불러 보았지만 무성은 손에 들고 있던 먹다만 감자를 무릎위에 올려놓은 채 고개만 푹 숙이고 있었다.

차성준은 처음 무성이 유건에게 뜬금없는 질문을 했을 때부터 보고 있었다.

"아닙니다. 유대형, 제가 착각을 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무성이의 눈에서 혈광이 살짝 비쳤던 것 같습니다."

"뭣이라? 혈광? 설마, 주화입마인가?"

차성준의 말에 놀란 유건이 서둘러 주변의 아낙들을 대피시키려했다.

"한진평, 오관형, 추태진, 차성준만 남고 모두 무성이 곁에서 떨어져라."

유건의 말에 이름을 불린 사람들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이 멀찌감치 물러서려 했지만 조금 늦고 말았다.

"크아아악, 죽어라. 버러지 같은 것들아."

이미 목소리에 잠식당해 버린 무성은 마치 피가 뚝뚝 떨어질 것 같은 눈빛으로 유건을 위시한 네 사람이 손 쓸 틈도 없이 도망치려는 사람들을 습격했다.

그런데 무성의 움직임 조금 이상했다. 마치 조종자를 잃은 혈강시와 같은 움직임이었다.

처음 사람들에게 쏘아져 나갈 때는 쏜살과 같더니 막상 사람들을 공격하려 권을 내지를 때는 여러 번 멈칫거리는 것이었다.

유건은 그 틈을 타 한진평과 차성준에게 지시를 내렸다.

"진평, 성준. 가서 무성의 팔을 막아라."

한진평과 차성준은 날랜 동작으로 무성의 양옆에 내려서서 무성의 팔을 붙들었다. 하지만 점점 의식이 잠식당해 가면서 힘도 강해지는 것인지 무성을 붙들었던 두 사람은 얼마 버티지 못하고 튕겨져 나갔다.

"감히 어딜 만지는 것이냐? 너부터 죽여주마."

무성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는 절대 무성의 그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무성은 표적을 사람들에게서 한진평으로 바꾸었다.

무성의 힘에 못 이겨 튕겨져 나간 한진평이 다시 몸을 가누기도 전에 무성은 득달같이 달려들어 권을 내지른다.

턱.

한진평의 가슴에 권이 꽂혀들기 직전 누군가의 손이 무성의 손목을 덥석 잡아챘다.

"무성아, 정신 차려라."

유건은 무성의 손목을 강한 힘으로 맞서며 타이르려 했지만 이미 이지를 완전히 제압당한 것인지 무성은 짐승의 소리만 입으로 흘렸다.

"크르르르, 너도 세상에 필요 없는 것이로군."

무성은 다시 표적을 바꿔 유건에게 달려들었다.

한편, 무성의 상태가 점점 심각해지자 멀찍이서 이를 지켜보던 사람들이 우르르 감덕윤에게로 달려갔다.

"의원님, 감의원님. 어서 나와 보십시오."

"왜들 이리 호들갑인가?"

감덕윤이 느긋한 걸음으로 의원 문밖으로 나오자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말을 시작했다. 그렇다보니 감덕윤은 대체 무슨 소리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분명 무성이가 어쩌고 하는 것 같았는데…….

더는 듣기 힘들었는지 감덕윤이 인상을 팍 쓰며 소리쳤다.

"알아듣게 말들을 해라. 자네, 위군호. 자네가 대표로 말해보게."

감덕윤이 사람들을 진정시키고 위군호를 지목하자 얼른 감덕윤앞으로 나와 말했다.

"어르신 무성이가 주화입마에 빠진 것 같습니다."

"뭐라? 주화입마? 무공수련을 하던 것도 아니고 논밭에서 일을 하다가 주화입마? 대체 말이 되는 소린가?"

"아니 저도 믿기 어렵지만 유대형이 하는 말로는 확실히 주화입마의 증상이라고 했습니다."

"그래? 지금 어디에 있나?"

"지금 유대형께서 무성이를 상대하고 계신 중입니다."

"안내하게."

감덕윤은 위군호를 앞장세우고 무성과 유건이 격투를 벌이고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감상평, 댓글은 언제나 환영합니다. 질타도 감사히 받아 들이겠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3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무연무성(無硏武成)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50 남무성, 북무연-1 +4 13.12.27 1,445 41 16쪽
49 강호의 이단아들 -15 +1 13.12.19 1,576 35 15쪽
48 강호의 이단아들 -14 +7 13.07.14 2,215 38 12쪽
47 강호의 이단아들 -13 +5 13.07.11 1,552 40 13쪽
46 강호의 이단아들 -12 +5 13.07.09 1,811 41 17쪽
45 강호의 이단아들 -11 +3 13.07.07 3,147 32 9쪽
44 강호의 이단아들 -10 +4 13.07.06 2,176 29 16쪽
43 강호의 이단아들 -9 +1 13.07.03 1,708 31 12쪽
42 강호의 이단아들 -8 +5 13.07.01 2,124 33 14쪽
41 강호의 이단아들 -7 +4 13.06.27 1,905 39 14쪽
40 강호의 이단아들 -6 +5 13.06.24 2,379 38 16쪽
39 강호의 이단아들 -5 +2 13.06.19 2,663 33 17쪽
38 강호의 이단아들 -4 +3 13.06.16 2,851 37 21쪽
37 강호의 이단아들 -3 +3 13.06.13 2,820 39 17쪽
36 강호의 이단아들 -2 +2 13.06.11 2,900 34 14쪽
35 강호의 이단아들 -1 +2 13.06.08 4,510 42 19쪽
34 형문산의 은거고수-16 +2 13.06.04 4,021 42 22쪽
33 형문산의 은거고수-15 +3 13.06.01 4,434 46 14쪽
32 형문산의 은거고수-14 +7 13.05.30 3,782 49 15쪽
31 형문산의 은거고수-13 +3 13.05.28 4,515 54 16쪽
30 형문산의 은거고수-12 +1 13.05.26 5,024 54 10쪽
29 형문산의 은거고수-11 +4 13.05.25 4,578 44 17쪽
28 형문산의 은거고수-10 +1 13.05.25 4,190 46 7쪽
27 형문산의 은거고수-9 +3 13.05.22 6,435 48 12쪽
» 형문산의 은거고수-8 +3 13.05.17 5,690 46 9쪽
25 형문산의 은거고수-7 +1 13.05.16 4,725 50 12쪽
24 형문산의 은거고수-6 +5 13.05.15 6,340 55 14쪽
23 형문산의 은거고수-5 +4 13.05.14 6,582 55 11쪽
22 형문산의 은거고수-4 +5 13.05.12 5,393 52 14쪽
21 형문산의 은거고수-3 +4 13.05.12 5,947 60 10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