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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금흔의 서재입니다.

무연무성(無硏武成)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일반소설

류금흔
작품등록일 :
2013.04.16 22:07
최근연재일 :
2013.12.27 17:37
연재수 :
50 회
조회수 :
265,086
추천수 :
2,361
글자수 :
281,912

작성
13.05.26 19:28
조회
5,023
추천
54
글자
10쪽

형문산의 은거고수-12

세상에 모든 행운을 다 가진 소년 홍무연. 세상에 모든 불행을 짊어진 소년 임무성. 세상에 모든 슬픔을 가지는 소녀 화소은. 세 남녀가 그려가는 무림이야기.




DUMMY

무성이 손을 들어 올리자 유건은 무언가 각오라도 한 듯 두 눈을 지그시 감으며 말한다.

"네 부모의 원한을 풀고 싶다면 이 자리에서 나를 죽여라."

조용히 눈을 감고 유건이 말을 하자, 무성은 무심코 탁자위에 올려져있던 무상신도를 내려다보았다.

'금강불괴도 뚫을 수 있다는 무상신도……. 그런데 왜 내가 유숙부님을 죽여야 하지? 그는 아무 잘못이 없는데……. 단지 그 장보도를 넘겨주었다는 것이 죄가 되는 것일까?'

무성이 아무 말도 어떤 행동도 하지 않자, 유건은 감았던 눈을 뜨며 무성을 바라보았다.

미간을 잔뜩 일그러뜨린 채, 탁자위에 놓인 무상신도만 내려다보고 있는 그의 눈에 슬픔과 알 수 없는 광기가 엿보였다. 유건은 뭐라 말을 걸 수 없어 가만히 그를 쳐다보았다.

한참을 탁자와 별이 총총히 뜬 하늘을 번갈아 보더니 깊은 한숨을 쉬어 내린다.

"하아아, 숙부님. 제 어머니도 종남의 제자셨다고 하셨습니까?"

"맞다. 그녀도 종남의 제자였다."

"그랬군요. 여태 몰랐던 사실이었습니다."

그 사실이 좋았던 것인지 무성은 가볍게 미소를 지어 보인다. 그러나 다시 얼굴을 굳히더니 낮은 한숨과 함께 말했다.

"휴우, 숙부님. 잠시 혼자 있게 해 주시겠습니까?"

그제야 유건은 상태를 확인할 수 있었다. 깊게 가라앉은 눈빛은 마치 상처 입은 야수의 그것과 닮아 있었기에…….

유건은 순간 술이 확 깨는 것을 느끼며 말한다.

"아.. 알겠다. 부디 몸 상하게 하지는 말거라."

"……."

무성은 대답 없이 고개만 숙여 보였다. 유건은 그런 무성이 안타까웠지만 이는 자신이 어찌해 줄 수 있는 문제도 아닌지라 조용히 애처로운 눈으로 그를 한 번 돌아 본 뒤에 의원 별채를 빠져 나갔다. 자신이 타당하다 여기고 자위를 하며...

'내가 괜한 소리를 지껄인 건 아닌지 모르겠구나. 아니야. 어차피 알게 될 일 나는 그저 그 시간을 조금 앞당긴 것 뿐이야.'

홀로 남겨진 무성은 유건의 축 쳐진 어깨를 한 채 별채를 빠져나가자 조용히 별채의 문을 걸어 잠갔다.

그리고 소리 없이 묵언을 꺼내들었다.

그제야 비로소 자신이 왜 종남에서 그런 대우를 받을 수밖에 없었는지 이해가 되었다.

자신의 부모는 종남의 수치였다.

세상의 그 누구도 원치 않았던 결말…….

그것이 무성과 그의 부모를 옥죄고 지금은 세상에 없는 그의 부모를 대신해 무성 혼자서 짊어지고 가야할 짐이었다.

무성은 그렇게 한참동안 어찌할 바를 몰라 묵언을 휘둘렀다.

지치도록 연공을 하면 모든 생각을 잊을 수 있을 거라 믿으며…….

그 일이 있고서 며칠이 지났다. 무성은 여전히 별채에 틀어박힌 채 식음을 전폐하고 묵언을 휘둘러 대고 있었다.

감덕윤은 당장에 유건을 불러들여 따지고 들었다.

"대체 자네는 무슨 생각으로 저 아이에게 그 이야기를 꺼낸 것인가?"

"면목 없습니다. 저는 그 아이가 제 부모에 대해 어느 정도 아는 줄 알고……."

"종남에서 쉬쉬하며 덮어 두려던 것을 저들이 애물단지로 여기는 아이에게 말을 했을 거라 생각했나?"

감덕윤이 거칠게 나오자 유건도 발끈해서 대들었다.

"하지만 지금 종남의 장문인이 검황어른의 제자라 하셨지 않습니까? 그런 분이라면 충분히 무성이에게 소식을 전했을 거라 믿고 그랬던 것입니다."

"아무리 그래도 중도에 그 아이가 아무것도 모른 다는 것을 눈치 챘을 것 아닌가? 그랬다면 당연히 그만 두는 것이 옳지 않았냐는 말일세. 자네가 아무리 원규의 친우였다 손 치더라도 해서 될 말과 해서는 안 될 말이 있는 법일세. 이번에는 자네가 너무 앞서 간 듯하다는 생각이 드는구먼."

"죄송합니다. 그날 위군호의 결혼 때문에 기분이 좋은 나머지 술이 너무 과했던 모양입니다."

"에이잉, 물러가게. 두 번 다시 무성이에게 실없는 소릴랑 말고!"

감덕윤이 단호히 선언을 하자 유건은 그저 머리만 조아릴 뿐이었다. 유건이 빠져나가자 감덕윤은 수심에 빠졌다.

'못난 사람 같으니 라구……. 제 부모가 사문의 수치였다는 사실을 알면 저 아이가 다른 아이들처럼 네, 그렇습니까? 하고 수긍할 줄 알았나? 하아, 큰일이구나. 사문에 대한 애정이 넘치는 아이인데 그런 소리를 들어 버렸으니 어찌 받아들이게 될지 나도 도저히 상상이 되질 않는구먼. 허허, 대체 하늘은 저 아이에게 얼마나 더 큰 짐을 주려하는 것인지…….'

*********

"아이, 정말 장숙부, 이번에는 또 어디서 이렇게 다친 거예욧?"

"아야야야, 의영아. 나 좀 살려주라. 너도 알다시피 내가 낫질이 조금 서투르지 않냐?"

장숙부라는 사내가 엄살을 부리며 헤벌쭉 웃어보이자 소의영은 왠지 얄미운 생각이 들어 그의 다친 부위에 잔뜩 약을 뿌리며 심술을 부렸다.

"으이그, 정말. 여기 오신지 몇 년째인데 아직도 그 모양이시냐구요?"

"으아아아, 아구구구. 나 죽어. 살살 좀 해주면 안 되겠니?"

요즘 소의영은 신경이 날카로웠다.

감덕윤은 근자에 무성과 어라계 때문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상태여서 말 붙이기가 힘든데다가, 그간 무성과 마치 친남매처럼 친해진 의영은 무성이 별채의 문을 걸어 잠그고 식음을 전폐한 채 칼만 휘둘러대자 짜증이 났던 것이었다.

그것이 어느새 벌써 나흘째로 접어들고 있었다.

무성이 별채에 틀어박혀 버린 첫날, 의영은 여느 때와 같이 별채의 문을 열고 무성을 깨우러 가려했지만 단단하게 빗장을 질러놓은 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무성오빠, 안에 있어요? 이거 문은 왜 잠가 놓은 거예요? 어서 열어봐요."

한참을 두드려도 무성은 코빼기도 비치지 않는다. 은근히 화가 난 의영은 발끈해서 소리친다.

"야, 임무성. 오늘 일 안 나갈 거야? 당장 나와. 안 나오면 죽을 줄 알아."

꽤 큰 소리로 소리를 쳤다. 그 덕에 요양을 하던 다른 사람들은 놀라 우르르 뛰쳐나왔지만 별채의 빗장을 걸어 잠근 무성은 요지부동이었다.

씩씩대며 다시 자신의 거처로 돌아 온 의영은 그래도 그동안 쌓인 정이 얼만데 하며 무성을 챙길 거라고 음식을 준비해 별채 문 앞에 두고는 조심스레 문을 두드렸다.

"무성오빠, 아까는 미안했어요. 먹을 거 가져왔는데, 문 좀 열어봐요."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말했건만 무성은 대답도 없는 것이었다.

"이씌, 야 임무성, 당장 나오지 못해? 나오기만 해봐라 내가 가만히 두나."

의영이 그렇게 혼자 씩씩대며 난동을 부리고 있을 때, 외유를 나갔던 감덕윤이 돌아와 물었다.

"의영아, 대체 무슨 일이기에 이 난리를 부리는 것이냐?"

의영은 감덕윤을 보자 화색이 돌며 쪼르르 달려가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글쎄, 무성오빠가 오늘 하루 종일 일도 나가지 않고 별채에 틀어박혀 꼼짝도 하지 않고 있어요. 가져다 준 음식도 먹지 않고 말이에요. 의원님이 가서 따끔하게 야단 좀 쳐주세요."

열심히 설명- 혹자들은 고자질이라고 부르는 -을 했건만 그녀에게 돌아온 반응은 그다지 환영할 만한 것이 아니었다.

"흐음... 내버려 둬라. 배가 고프면 기어 나오겠지."

그 말만 남기고 감덕윤이 휘적휘적 자신의 거처로 돌아가 버리자, 의영은 일순 멍해지고 말았다.

'에? 오늘은 분위기가 조금 이상한데? 평상시 같으면 못 잡아 드셔서 들들 볶을 텐데……. 무슨 일이 있는 것인가?'

의문이 충천했지만 당사자들이 이야기하지 않는 것을 의영이 어찌 알리오.

그렇게 의문이 가득한 하루가 겨우 지나가고 이틀째도 똑같은 상황이 벌어지자 의영은 덜컥 겁이 났다.

'이러다 무성오빠가 굶어 죽기라도 하면 어쩌지? 설마 귀신이 되어서 날 잡으러 오는 것은 아닐까? 굶어 죽은 귀신은 보기 흉하다는데……. 에엑, 그럴 수는 없어.'

망상도 이런 망상이 있을까? 의영은 쓸데없는 망상을 하며 몸서리를 한 번 치고는 별채의 문을 세차게 두드렸다.

"무성오빠, 살아 있어요? 죽으면 안 돼요. 어서 이 문 좀 열어봐요. 네? 네?"

꽤 다급하게 불렀건만 문 안쪽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이씌, 이게 정말. 야, 임무성 당장 나와서 나랑 한 판 붙어. 보자보자 하니까 보자긴줄 알아? 야! 당장 나와!"

하루 종일 별채의 문 앞에 붙어서 어르고 달래고 윽박지르고 심지어 협박까지 해 보았지만 무성은 정말로 코빼기 한 번 비쳐주지 않았다.

오죽 답답했으면 감덕윤을 찾아가 하소연을 한다.

"잉잉, 의원님. 훌쩍, 무성오빠가 이상해요. 하루 종일 대꾸도 하지 않고 제가 가져다 놓은 음식은 손도 대지 않아요. 어쩌면 좋죠?"

감덕윤은 의영을 가만히 쳐다보다가 나직이 말했다.

"그냥 냅둬라. 죽으면 송장이나 치우면 그만인 것이지. 그리 호들갑 떨 것 없다."

감덕윤의 말에 의영은 충격을 받았는지 마구 말을 쏟아내며 눈물을 주르르 흘린다.

"대체, 대체 뭐가 의원님을 이렇게 변하게 만든 것인가요? 전에는 그토록 무성오빠를 아끼시더니 이제는 애정이 식으신 건가요? 어쩌면 그렇게 무정하게 말씀 하실 수가 있나요? 대답해 보세요. 무성오빠가 대체 무슨 잘못이라 한 것인가요? 네? 네?"

그런 식으로 울다 대들다가를 반복하니 감덕윤도 끝내 인내심의 한계가 왔다.

감덕윤은 의영을 끌어 등을 토닥여 주며 말했다.

"미안하구나. 내 속도 너만큼 시커멓게 재가 되었다는 것을 모르느냐? 지금 무성이에게는 시간이 조금 필요할 것 같으니 그냥 조용히 보아 주지 않은련?"

감덕윤이 좋게 말하자 영특한 의영은 그의 말을 금세 알아듣고 풀 죽은 목소리를 낸다.

"네에, 알겠어요. 더 이상 무성오빠를 귀찮게 하지 않을게요."

그리고 한 동안 별채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게 되었는데 그것도 작심 열 두시진(?) 도 버티지 못했다.

"아우, 생각할수록 열 받네. 임무성 이 자식, 나오기만 해봐라. 내가 가만히 두나."

그녀 혼자 부엌 구석에서 고사리 같은 손을 쥐어 보이며 열의를 불태우는 의영이었다.




감상평, 댓글은 언제나 환영합니다. 질타도 감사히 받아 들이겠습니다.


작가의말

의영이를 밖으로 데리고 나가려다 보니 이야기가 조금 길어 지네요.

얼른 넘어가야 겠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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