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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페구 님의 서재입니다.

폐교에서 다시 시작하는 신혼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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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새글

페이소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4.05.23 12:46
최근연재일 :
2024.06.27 18:00
연재수 :
4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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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82,290

작성
24.06.11 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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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2쪽

25. 교육하는건 내가 아닐테니까

DUMMY

“오빠 괜찮아? 무슨 일이야?”

“밖이 꽤 소란스러운데 보안 직원 더 부를까요?”


도진이 본관으로 들어오자 기다렸다는 듯이 도희와 승완이 달려 나왔다.

누가 봐도 자신을 걱정하고 있는 두 사람 덕분에 마음이 조금 풀린 도진이 차분하게 답했다.


“난 괜찮아. 승완씨도 그럴 필요 없어요. 제가 이미 오면서 은섭씨한테 말했으니까 지금쯤이면···그쵸?”


도진의 말에 밖을 바라본 승완이 고개를 끄덕였다.

학원 부지 곳곳에 흩어져있던 보안 요원들이 전부 다 놀이터로 향하고 있는 게 보였다.


그 수만 무려 16명

거기에 임야에서 야외 훈련하고 있던 20명도 곧 내려올 테니 그녀가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촬영 스텝이라고 해봐야 연기자 포함해도 10명이 안팎이니 

보안 요원들 손에서 충분히 정리할 수 있었다.


그녀의 예상대로 얼마 안 가 보안 요원들의 손에 이끌려 세끼 하우스 밖으로 쫓겨나는 스텝들이 보였다.


웃긴 건 보안 요원 둘에게 들려 나간 감독이었다.

뭐가 그리 분한지 씩씩거리던 그는 들고 있던 확성기를 들고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너 이 새끼들! 내가 가만 안 둬! 내가 누군 줄 알고! 내가 아버지한테 얘기해···]


“아, 뺏겼나 보다. 아쉽다. 재밌는데 그냥 두지”


사무실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던 도희가 입맛을 다셨다.

그 모습에 승완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은근 니가 제일 사악해”

“응? 내가 왜?”

“그걸 모른다는 점에서 악마력 +10이야”

“엥?”


자기 말에 도희가 멍한 표정을 짓고 있을 때 승완은 도진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나저나, 괜찮으시겠어요? 조 연출, 지인이라면서요?”

“그랬는데 아니더라고요. 저쪽에서 저를 호구 취급하는데 그대로 있을 수는 없잖아요. 이제 저 혼자도 아닌데. 그치, 또랑아?”


멍!


“녀석, 너도 그렇게 생각하는구나? 이럴 줄 알았으면 장소 협찬 같은 거 안 하는 건데. 괜히 너희만 사람들 눈치 본다고 여기에 며칠 동안 갇혀 있었네. 미안해?”


헥헥


도진의 말에 방석에 있던 또랑이가 다가와 도진의 손을 핥았다.

흡사 도진을 위로하는 듯한 모습에 승완은 신기하다는 듯이 도진을 바라보았다.


‘정말 동물 조련사 자격증이라도 있으신가?’


세끼 하우스에 들어온 동물은 평범한 반려동물들이 아니다.

고양이는 가족 전체가 길냥이 출신이고 개는 주인에게 버림받은 들개 출신이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사람 손을 피해야 할 녀석들이 도진 앞에만 가면 순한 양이 되어 버렸다.


‘애들이 사람을 잘 따르는 건... 아니고’


지금도 또랑이는 도진이 주는 간식이 아니면 먹지 않는다.

그나마 사료는 도진이 승완과 도희를 많이 각인시켜 준 덕분에 줄 수 있지만 그 외 다른 사람은 접근을 불허하는 것이다.


보리 가족들도 상황은 비슷했다.

또랑이에 비해 좀 더 나을뿐이지 도진이 없다면 승완과 도희에게 관심도 없으니 말이다.


아무리 다른 원인을 찾아와 봐도 그저 도진이 특이한 것이다.


“뭐, 그러면 지인은 됐고. 감독은 어쩌죠?”

“감독이 왜요?”

“그놈, 재벌 3세거든요. 개망신당하고 쫓겨났으니 가만히 안 있을 거 같은데요?”

“재벌 3세요? 왜 그런 사람이 독립영화를 찍는데요?”

“말이 재벌 3세지 대기업 오너가는 아니고요. 중견 기업 중에서 오래된 곳이 있는데 그곳 손자래요. 그래서 그런지 가업을 잇기보다 자기만의 커리어를 쌓고 싶어 해요.”

“그런데 승완씨는 어떻게 그렇게 잘 알아요? 감독이 지인이에요?”


자신이 어떻게 감독을 쫓아냈는지 깨달은 도진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승완의 지인이라면 그녀가 곤란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승완의 대답은 지인과는 전혀 다른 내용이었다.


“제가 예전에 BJ 편집자 했다고 했잖아요? 그때 방송 매니저도 잠깐 같이했는데, 그때 저 자식이 회장이었어요”

“회장이요?”

“진짜 회장은 아니고 후원을 제일 많이 하는 사람에게 주는 일종의 명예 호칭 같은 거에요. 아무튼 그때 저놈이 회장을 달자마자 자기가 영화감독 준비 중인 재벌 3세라고 밥 한번 먹자고 하더라구요. 차기작 오디션 겸해서요”

“아, 뭐야! 대충만 들어도 엄청 구리구리해.”


승완의 말을 들은 도희가 정말로 냄새가 난다는 듯이 코를 손으로 막았다.

그 모습에 어깨를 한번 으쓱한 승완이 말을 이었다.


“당연히 제가 결사반대했죠. 저놈이 영화감독인지도 모르겠고 감독들은 이런 식으로 캐스팅 제안하지도 않을 거라고. 그런데 그 얘기를 어디서 들었나 봐요. BJ 메일로 자기 신분증을 보냈더라고요. 이상한 사람 아니라고. 하도 어이가 없어서 그때 이름이랑 얼굴을 기억해 놨는데···.”

“그게 저기 저놈이었다?”

“네. 사진을 뽀샵했는지 얼굴이랑 좀 다르긴 한데 확실해요”

“···"


승완의 말에 도진은 어처구니가 없어 입을 다물었다.

장범수가 장소를 빌리러 왔을 때 자기 감독 이야기를 얼마나 많이 했던가?


“우리 감독님이야 최고지. 글 잘 쓰고 배우들 케어 잘하고, 무엇보다 영화를 바라보는 세계관이 달라. 지금은 독립영화를 주로 찍으시지만 난 확신하고 있어. 우리 감독님이 상업 영화에 관심을 가지시는 순간 한국은 또 한명의 천만 감독을 얻게 될 거라고”


피식


“천만 감독은 무슨. 천풍이나 쏘라고 하지”

“응? 오빠 뭐라고?”

“아니야. 예전에 들었던 헛소리가 떠올라서. 아무튼, 그래서 그 뒤는 어떻게 됐나요? 설마 캐스팅됐나요?”

“아뇨? 제가 길길이 반대해서 식사 얘기가 사라졌죠. 당시까지는 그래도 제 입김이 강했거든요. 그랬더니 캐스팅 얘기도 쏙 들어가던데요? 결국 그게 목적이었던 놈이었던거죠”


승완의 말에 도진 또한 동의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전에 봤던 감독의 모습을 떠올리니 그녀의 말이 더 신뢰가 갔던 것이다.


작품을 위해 배우를 직접 구하러 다니는 열정적인 감독이 아니라 감독 타이틀로 편하게 살려는 한량에 더 가까웠으니까


그런데 그 한량이 영향력이 생각보다 더 강했다.


* * *


사건은 언제나 갑자기 터진다고 했던가?

도진은 왜 그런 말이 존재하는지 확실하게 깨달았다.


[너튜버 T씨, 갑질 파문]

[독립영화판의 현실? 너튜버에게도 무시당하다]

[독립영화연합, 너튜버 T씨를 상대로 명예훼손 검토]

[3편의 독립 영화를 만들었지만 현실은 너튜버만도 못한 감독의 독백]


“이... 게, 다 뭐죠?”


기사 제목을 보고 충격을 받은 도진과 달리 답하는 승완의 음성은 담담했다.


“인터넷 신문사들 중심으로 퍼지고 있는 기사들이에요. 대부분 10만원에서 20만원 정도 지불하면 기사를 올려주는 찌라시 언론사인데 문제는 그 수죠”


말과 함께 승완은 찍어놓은 스크린 샷을 보여줬다.


“보시는 거와 같이, 현재까지 총 23개의 찌라시 언론에서 같은 기사를 올리는 중이에요. 이 중에 이름만 다르고 실상은 같은 언론사를 제외하면... 이렇게 총 16개가 남네요”

“승완씨는 어떻게 그렇게 잘 아세요?"


도진은 이제 겨우 존재를 확인한 기사였다.

그런데 승완은 벌써 계열사별로 분류까지 끝내 놨다니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말씀드렸잖아요. 그 감독 새끼에 대해서는 제가 좀 안다고. 예전에도 이런 비슷한 일이 있었거든요. 저 때문에 BJ랑 식사가 무산되니까 갑자기 찌라시 언론에서 인신공격을 엄청 해대더라고요. 전화해서 따졌더니 객원기자에게 받은 기사라 자기들은 모르는 일이라고 꼬리나 자르고”

“그래서 어떻게 하셨는데요? 


승완의 말이 끊기자 도진이 재빨리 물었다.

자기도 모르게 그녀의 말에 집중한 것이다.


그런데 이어지는 승완의 대답은 도진의 기대와는 달랐다.


“그냥 가만히 있었어요”

“···가만히요?”

“네. 당시 BJ가 하꼬를 갓 벗어난 시점이었거든요. 당연히 기사를 살 정도의 재력은 없었죠.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그냥 기사에 맞으면서 버텼어요. 간간이 방송에서만 아니라고 해명하고”

“그게 끝인가요? 그렇게 맞다 보니 기사가 끝났어요?”

“아뇨. 버티니까 점점 더 강도가 올라가더라고요. 기사를 올리는 찌라시 언론도 늘어나고. 아마 우리가 버티니까 그 감독 새끼가 약이 많이 올랐나 봐요.”

“···"

“만약 그때 미투 운동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결국 방송을 접거나 그 감독이랑 만났을 거예요. 그 새끼가 달마다 계속 밥 먹을 생각 있냐고 연락했거든요”


승완의 말을 들은 도진이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결국 더 큰 이슈가 터져서 운 좋게 넘어갔다는 말이 아닌가?


결론적으로는 잘 해결되었다지만 도진에게 도움이 되는 말은 아니었다.


‘잠깐만? 나는 그 BJ랑 상황이 다르지 않나?’


조금 전에 승완이 그랬다.

당시 BJ는 인지도도 낮았고 기사를 살 재력도 없었다고


하지만 도진은?

인지도는 애매할지 몰라도 재력은 확실히 있었다.


게다가 도진과 그 BJ 사이에는 확실한 차이가 있었다.


“혹시, 우리도 기사를 의뢰할 수 있나요? 가능하면 우리를 공격하는 언론사들 말고 다른 쪽들이면 좋겠는데”


씨익


도진의 말에 승완의 얼굴에 진한 미소가 맺혔다.

그 모습에 도진은 이 또한 승완이 미리 준비했음을 알았다.


“당연히 있죠. 당시에 조사한 리스트가 있으니까 거기서 찾으면 될 거예요.”


아니나 다를까, 도진의 예상대로 승완은 이 또한 준비하고 있었다.

다만 도진은 승완의 말에서 그녀가 준비한 규모가 자신의 예상보다 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리스트가 있어요?”

“네. 하도 열이 받아서 사비라도 털어서 기사를 낼까 했거든요. 근데 이게 생각보다 비싸요. 건당은 얼마 안 해도 최대한 많은 업체가 한꺼번에 기사를 내야하고 또 지속해서 후속 기사도 내야 해서 직장인이 처리하기엔 부담되더라고요”

“예상 금액이 얼만데요?”

“대략 한 번에 최소 500 정도는 각오하셔야 해요. 거기에 2차, 3차로 후속 기사를 낸다면 마찬가지로 그 정도가 더 들어가겠죠”


500만원


공장을 다닐 떄라면 쉽게 상상하기 힘든 금액이었다.

고작 기사 한번 터트리는데 두 달 치 월급을 쏟아부어야 한다니 말이다.


그게 끝이 아니고 연달아 몇번이나 더 지불해야 한다면?

억울하고 화가 나도 참을 수밖에 없었을 거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그 리스트에 적힌 곳에 모두 의뢰하죠. 우리가 갑질을 한 게 아니라 오히려 저쪽에서 계약을 깨고 갑질을 했다고. 거기에 영상 편집해서 같이 첨부해주세요”

“영상이요?”


고개를 갸웃하는 승완의 말에 도진이 자신의 액션 캠을 가리켰다.


“우리한테는 확실한 증거가 있잖아요.”

“아”


도진의 말에 승완이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도진이 항상 차고 다니는 체스트 캠 외에도 세끼 하우스에는 카메라가 아주 많았다.


보안용으로 설치한 CCTV도 있었지만, 세끼 하우스에 보안 요원들이 상주하기로 한 이후, 그들도 모두 체스트 캠을 착용하고 있으니 말이다.


“재밌겠네요”


승완의 미소가 조금씩 비틀리더니 곧 사악하게 변했다.

도진이 그녀를 안 이후로 가장 무서운 미소였다.


드디어 과거의 악연을 갚아줄 때가 온 것이다.

승완은 서둘러 도진의 액션 캠과 CCTV, 그리고 보안 요원들의 카메라에서 영상을 복사해 편집하기 시작했다.


* * *


기사를 의뢰하면서도 사실 도진은 그다지 결과를 기대하진 않았다.

일단 그조차도 뉴스를 거의 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외뢰가 접수되고, 약속된 시간이 되자 도진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왜 사람들이 기사 하나에 그렇게 매달리는지


ㄴ 거봐 내가 뭐라고 했음? 세끼 하우스가 갑질은 말이 안 됨

 ∨ 답글 71개

ㄴ 이럴 때 필요한 게 중립 기어라는 거지 ㅋㅋㅋ 

 ∨ 답글 114개

ㄴ 이야, 저 감독 새끼 저거, 되게 악질이네 ㄷㄷ 저런 놈도 감독한다고 깝치는 대한민국 클라쓰

 ∨ 답글 323개

ㄴ 솔직히 아직 모르지 않음? 주장이 서로 다른데? 난 솔직히 감독쪽 말이 더 신빙성 있던데

 ∨ 답글 44개

ㄴ 에궁···또랑이 아버님 많이 힘드셨겠네요... 힘내세요. 응원합니다

 ∨ 답글 42개


“여론이 확 바뀌었네요”


반박 기사를 내기 전까지만 해도 거의 욕설과 비난으로 도배되던 댓글 창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싹 깨끗해졌다.

물론 아직은 간간이 더러운 댓글이 남아있긴 했지만, 그조차도 시간이 지나면서 빠르게 지워지고 있었고


“그쵸? 이런저런 말이 많긴 해도, 아직 사람들은 여론에 많이 휩쓸려요”


옆에서 같이 댓글창을 확인하던 승완이 만족스럽다는 듯이 웃었다.


“우와, 승완쓰! 엄청 대단해. 이게 사회생활의 클라쓰? 나도 고객센터 말고 뭔가 오빠 일에 도움이 되는 일을 했으면 좋았을 텐데”

“무슨 소리야? 도희도 얼마나 나를 도와주는데?”

“...정말?”

“그럼. 도서관 만들떄도 그렇고 영화관 만들 때도 도희가 거의 감독했잖아. 나랑 승완씨는 그런 거 잘 몰라”

“맞아. 너 아니었으면 그것도 사람 써서 해야 했을 텐데 너도 알지? 원래 인테리어 쪽이 눈탱이가 심하잖아. 너 때문에 도진씨가 예산을 절약한 거야”


승완을 칭찬할 때까지만 해도 밝던 도희가 뒤로 갈수록 시무룩해지자 도진과 승완이 서둘러 그녀를 달랬다.


“정말? 히힛, 기분 좋네. 역시 내 남친과 친구밖에 없어.”


다행히 둘의 진심을 느낀 건지 도희도 원래의 밝은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셋이 평소와 같이 투덕거리고 있을 때였다.


띠리링~


“응? 잠깐만 나 전화 좀”


영진에게서 전화가 왔음을 확인한 도진이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삼촌, 어쩐 일이세요?”


[어쩐 일이긴, 뉴스 봤다. 뭔가 안 좋은 일이 있던 거 같은데 잘 해결된 거 같더구나?]


영진의 말에 도진의 얼굴에 씁쓸한 미소가 어렸다.

찌라시 언론에서만 올라온 기사라 모를 줄 알았는데 영진이 이것까지 알고 있다는 사실이 민망했다.


자신을 위해 이것저것 챙겨주는 영진에게 못난 모습을 보인 거 같아서 살짝 미안하기도 했다.


“아, 삼촌도 보셨구나. 별거 아니었어요. 그냥 이상한 진상한테 잘못 걸린 거죠 뭐”


[그래? 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네. 별거 아니니까 원장님께는 비밀로 해주세요. 괜히 또 걱정하실까 봐 오히려 걱정이네요”


[그건 걱정하지 말거라. 내가 알아서 할 테니. 그럼 다른 문제는 없는 거니? 혹시라도 내가 도와줄 거라든지?]


“아니에요. 이제까지 받은 것만 해도 충분한데요 뭘. 다음에, 정말로 필요한 게 있으면 그때 말씀드릴게요”


[원, 녀석도. 알겠다. 별일 없는 것 같으니 이만 전화 끊으마]


“네, 들어가세요”


전화를 끊은 도진은 통화가 끊어진 휴대폰을 한동안 바라보았다.

뭔가 영진의 상태가 평소와 다르게 부드러웠다.


‘그러고 보니, 어쩐 일로 삼촌이 먼저 연락했지?’


보통 그가 연락하는 경우는 하나뿐이었다.

원장이 도진에게 용무가 있을 경우


그런데 이번에는 원장의 이야기도 꺼내지 않고 자신의 안부만 묻고 끊었으니 조금 이상했다.

하지만 그런 도진의 생각은 오래가지 못했다.


“오빠. 누구 전화야?”

“어? 아, 영진이 삼촌이라고. 며칠 전에 오셨던 원장님 비서”

“아, 그 무뚝뚝한 아저씨? 근데 왜?”

“기사를 보셨나 보더라고. 걱정되어 전화하셨데”

“오! 생긴 거랑 다르게 자상하셔!”


또랑이 마냥 도진의 옆에 붙어서 말을 거는 도희와

인상을 찌푸리면서도 맞장구를 치는 승완과의 대화에 금세 방금 했던 통화가 잊혔던 것이다.


* * *


“흘흘, 뭐라고 하나?”

“예상대로 별일 아니라고 합니다.”

“흘흘, 도진이라면 그렇게 얘기할 줄 알았지. 실제로 그 녀석에게는 별일 아니기도 할 테고”


전화 통화를 끝낸 영진에게서 도진과의 통화 내용을 들은 혜석은 뭐가 그리 좋은지 웃음을 잃지 않았다.

오늘만 그런 것이 아니고 요새 매일이 이런 상태였다.


‘도진이 때문이겠지’


웃음이 적은 건 아니었지만 나이가 들고, 자식들이 말썽을 일으키면서 평소에는 거의 웃지 않게 된 혜석이었다.

그런 그녀가 다시 웃음을 되찾은 건 도진이 연락을 하고 난 이후부터였다.


정확하게는 도진이 돈을 교장실에서 아들이 숨겨둔 비자금을 찾았으면서도 돌려주겠다는 말을 했을 때부터였다.


“왜? 내가 이러는 게 이상해?”

“아닙니다. 저도 도진이라면 자격은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흘흘, 그렇지. 돈 앞에서 자신의 소신을 지킨다는 건 쉬운 게 아니야. 어렸을 때부터 부족함 없이 자랐던 그놈들도 하지 못한 걸 두 손에 아무것도 없던 도진이는 해냈단 말이지”


그녀가 말한 그놈들이 누구를 말하는지는 뻔했다.

혜석의 아들로 태어났으면서도 욕심에 눈이 멀어 인생을 망가트린 아들들


셋 중에 둘은 잘못된 판단으로 목숨을 잃었고 그나마 남은 한명의 아들마저도 교도소에 장기수로 들어가 있었다.


“도진이가 장소를 빌려준 이유가 범수, 그 녀석 때문이었지?”

“네. 아무래도 같은 고아원 출신이기도 하고, 범수 그 녀석이 워낙 집요하게 부탁을 한 모양입니다”

“쯧쯧, 못난 놈 같으니라고”


도진을 말할 때는 한없이 따뜻했던 혜석의 표정이 범수를 말할 때는 더없이 차가워졌다.

그녀에게 범수라는 아이는 그런 존재였다.


“우리가 그 녀석을 도와준 게 몇번이지?”

“총 네 번입니다. 전세 보증금, 대학교 등록금, 장학금, 그리고 중고차까지요. 나중에 녀석이 입봉하게 되면 회장님이 투자를 해주겠다는 약속은 뺐습니다.”


혜석은 자신이 관리하는 고아원을 졸업한 아이들을 그냥 방치하지 않았다.

사회인이 되기까지 필요한 지원을 꾸준히 해왔다.


이 정도만 해도 일반적인 부모가 자식에게 해주는 지원은 충분히 해준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지원을 해줬음에도 고아원을 나온 아이 중에 제대로 살아가는 아이들은 10%도 되지 않았다.


“참 이상해. 분명 고아원에 있을 때는 남부럽지 않게 지원을 한 거 같은데 말이지. 먹는 거 입는 거 자는 곳도 모두 신경 써줬고 공부하고 싶다면 그것도 다 지원해줬는데 왜 우리 애들은 하나같이 자격지심을 지니고 있을까?”


그들은 자신들이 고아라는 이유로

도와줄 부모가 없다는 이유로 스스로를 위축시켰다.


취업은커녕 다니던 대학도 제대로 졸업한 아이들이 드물 정도였다.

대학을 졸업하고 조연출로 들어간 범수나 일찍부터 공장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한 도진이 오히려 특별한 케이스였다.


하지만 둘은 비교할 수가 없었다.

도진은 졸업하자마자 혜석이 뭔가를 지원하기도 전에 공장에 취업을 해버렸지만 범수는 온갖 지원을 받고도 남을 이용해 먹기만 하는 어른이 되어버렸다.


그것도 같은 고아원 출신들을 찾아서 말이다.


“범수 그 녀석에게 했던 지원들은 전부 회수하거라. 이제 더는 내 새끼가 아니야.”

“네, 회장님”


그 말 한마디가 끝이었다.

형제처럼 지내던 고아원 출신들을 이용하던 그는 욕심에 눈이 멀어 자신이 가지고 있던 복도 걷어차 버렸다.


흡사 혜석아 아들들처럼 말이다.


“범수에게 회수한 것들은 도진이에게로 돌릴까요?”


영진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회장의 심중이 도진에게로 향해 있음을 알고 있지만 이런 말은 항상 조심해야 했다.


자기 생각을 어림짐작했다고 오해할 수도 있었으니까

하지만 원장은 가볍게 고개를 돌렸다.


“아직···아직 아니야."

“···"

“조 실장, 자네도 봤잖아. 도진이 그놈은 우리가 도와주는 걸 부담스러워해. 우리가 뭘 해주고 싶어도 그럴만한 명분이 없으면 받을 놈이 아니란 말이지 흘흘”


말로는 놈 놈 거리면서도 혜석의 얼굴에는 또다시 따뜻한 미소가 어렸다.

자신의 철학과 좌우명을 자식들보다 훨씬 철저하게 지키는 도진이 기특했다.


어쩌면 그래서 더더욱 뭐라도 더 주고 싶어지는지도 몰랐다.

지금 그녀에게 도진은 자식보다 더 자식 같은 아이니까


“이번처럼 도진이 놈이 해결하기 힘든 일 정도만 막아주면서 기다려 보자고 흘흘흘”


혜석의 말에 영진의 시선이 테이블 위로 향했다.

그곳에는 금원 건설 회장의 명함이 올려져 있었다.


도진은 모르겠지만 이번 일이 고작 기사 몇줄로 끝난 이유는 혜석이 반일식 회장에게 직접 제동을 걸었기 때문이었다.


[아니, 왕 회장님! 어쩐 일이십니까?]


“흘흘흘, 어쩐 일이긴. 그냥 안부차 전화했지‘


[저, 저야 회장님 덕분에 잘 살아 있죠. 회장님도 건강하시죠?]


“나야 뭐 오늘내일하는 늙은이 아니겠나? 그래서 그런지 요새 눈도 많이 침침하고 걱정도 많은 게, 갈 때가 됐나 싶어”


[아이고 이런, 사실 저도 요새 눈이 침침하고 많이 깜빡깜빡합니다. 하하]


“흘흘 자네도? 하긴 그러니 손자 관리가 그렇게 허술하겠지?”


[네? 그게 무슨···]


“이번에 내가 이뻐하는 아이 집에 와서 갖은 깽판을 쳤다고 하더라고. 반 회장이 일이 바빠서 가정 교육은 소홀했나 봐? 예의가 조금 없는 거 같던데”


[···죄송합니다. 제가 알아보고 따끔하게 훈육하겠습니다]


“흘흘, 그렇게 말하면 내가 자네 가정사에 이래라저래라하는 것 같지 않은가? 난 그냥 아이들 싸움이 어른들 싸움이 되지 않았으면 해서 하는 말일세”


[네? 어른들 싸움이라면···?]


“말했잖은가? 내가 아끼는 아이라고”


통화 너머에서 순간 숨 참는 소리가 들렸다.

그제야 혜식이 왜 전화했는지 깨달은 것이다.


무려 주식 20%를 지니고 있는 1대 주주의 협박이었다.


[제가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그냥 가만히 지켜보게. 단, 자네의 손주가 회사의 힘을 쓰려고 할 때는 막는 게 좋겠지? 아니면 나도 체면 상 움직여야 할 테니”


[네···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다만, 조금만 살살 부탁드립니다. 철이 없긴 해도 제 하나밖에 없는 손주 녀석이라...]


“흘흘, 걱정 말게. 그 아이를 교육하는 것은 내가 아닐 테니까”


말을 하는 혜석의 머릿속에 도진의 얼굴이 떠올랐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도진이라면 한 대 맞으면 그대로 갚아줄 게 뻔했으니까


그리고 그녀의 예상대로 도진은 훌륭히 카운터 펀치를 날렸다.


며칠 뒤 뉴스란에는 새로운 뉴스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도진이나 반일식이 돈을 주고 의뢰한 언론사들이 아니라 메이저 언론사들의 기사였다.


[반시원 감독이 제작한 독립영화 전부 표절 시비. 시나리오 도용당했다 밝힌 후배들 나서]

[반시원 감독 스텝 , 스텝 폭행에 갑질 심했다 폭로]

[최저시급도 안 주고 열정페이 강조한 독립영화판 충격]

[독립영화협회, 반시원 감독 영구 제명]

[전 독립영화감독 B씨, 투자금 횡령, 폭행, 성희롱으로 입건]




작가의말

이따 저녁에는 축구를 봐야 해서 미리 올리는 연재분!

어제도 그렇고 오늘도 분량이 많지만 이런 내용으로 연재분을 많이 잡아먹고 싶지 않아 그냥 통으로 올립니다!


PS : 연재시간도 빠르고 양도 많은데... 시간되시면... 추천..? 댓글? 선독?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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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38. 난 이런거 안 샀는데? +6 24.06.24 1,810 90 12쪽
38 37. 밖은 지옥이야 +8 24.06.23 1,976 88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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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35. 흰둥이 +2 24.06.21 2,124 93 13쪽
35 34. 멸종위기종의 위엄 +6 24.06.20 2,155 90 16쪽
34 33. 잘 차려진 뷔페 +4 24.06.19 2,111 72 17쪽
33 32. 귀신의 정체 +7 24.06.18 2,167 77 19쪽
32 31. 이이제이 +2 24.06.17 2,165 77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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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29. 어그로의 효과가 너무 쎄다 +2 24.06.15 2,319 80 14쪽
29 28. 버그 하우스 +3 24.06.14 2,417 84 14쪽
28 27. 세끼 하우스의 도둑 +3 24.06.13 2,519 87 16쪽
27 26. 청룡이와 잠보 +6 24.06.12 2,611 87 15쪽
» 25. 교육하는건 내가 아닐테니까 +8 24.06.11 2,680 91 22쪽
25 24. 좋은 말로 할때 꺼져 +1 24.06.10 2,742 89 20쪽
24 23. 운동장 폐장 +5 24.06.09 2,757 91 16쪽
23 22. 사라진 세번째 소원 +12 24.06.08 2,721 84 15쪽
22 21. 새로운 연적 +4 24.06.07 2,783 88 15쪽
21 20. 또랑이 +3 24.06.06 2,781 93 14쪽
20 19. 도서관과 영화관 +1 24.06.05 2,921 90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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