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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페구 님의 서재입니다.

폐교에서 다시 시작하는 신혼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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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소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4.05.23 12:46
최근연재일 :
2024.06.23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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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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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4.06.05 2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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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9쪽

19. 도서관과 영화관

DUMMY

“이 책들은 어디로 옮겨놓을까요?”

“잠시만요···아, 올해의 청소년 추천 도서들은 여기 추천 코너로 넣어주세요”

“잠시만요, 이 선반은 어디에다 두면 될까요?”

“그건 저쪽 벽에 붙여주세요. 그 앞에 슬라이드 책장이 들어갈 예정이니까 작업 공간 참고해주시고요”

“실례합니다, 이 교구장은 어디로 가져다 두면 될까요?”

“아, 그건...”

“···"

“···"


끊임없는 질문이 날아오지만 도희는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작업 지시를 이어 나갔다.

그런 도희의 모습을 도진과 승완이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평소에는 보지 못한 낯선 모습에 너무 놀란 탓이었다.


“...도진씨 여자친구 새로 사귄 거 아니죠?”

“그러는 승완씨는 절친이 언제 바뀐 건가요?”


평소에는 두 사람끼리 잘 하지 않는 만담을 할 정도로 그들은 이 상황이 믿기지 않았다.

도희가 의외로 똑소리가 난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지만, 지금의 모습은 완전 딴 사람이 아닐까 싶은 정도로 달랐으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직장을 잘못 선택했어”

“제 생각에도 그래요. 마침 무급 휴가도 받았겠다, 이참에 직종을 옮겨도 괜찮을 거 같네요”


도진의 혼잣말에 승완이 수긍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안 그래도 도희의 직장이 마음에 들지 않는 그녀였다.


고객센터 상담원을 낮게 보는 게 아니라 친구가 하는 일에 비해 회사의 대우가 너무 안 좋았기 때문이었다.


그 생각은 도진 또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도희가 직장을 바꾸려고 하지 않겠지’


그녀가 상담원을 하는 이유는 그 일이 그녀에게 적당한 방패가 되기 때문이었다.


업무 강도에 비해 적은 연봉과 낮은 복지, 높은 퇴사율까지

남들이 들으면 하나같이 부정적으로 여기는 조건들이 가족들조차 착취를 꺼리게 만들어주고 있었다.


‘문제는 그런데도 등골을 빼먹는다는 거지만’


같이 살면서 고백한 내용에 따르면 아직도 한 달에 한번은 가족들이 찾아와 돈을 뜯어 간다고 했었다.

집인지 하수구인지 헷갈리는 곳에서 살며 겨우 최저 임금을 버는 딸, 동생에게도 한 달에 한 번씩 돈을 갈취하는 것이다.


만약 그녀가 조금 더 안정된 직장, 집으로 옮기기라도 한다면 얼마나 방문이 잦을지는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이전 생에서는 내가 그걸 많이 당했지’


직장이 없는 아내 대신 자기 직장에 찾아와 돈을 요구하거나 공장에서 행패를 부리던 처가 식구를 떠올린 도진이 이를 악물었다.

도희의 행복, 더 나아가 함께 일궈나갈 새로운 가정을 위해서라도 그들과는 어떤 식으로든 마무리를 지을 생각이었다.


‘그래도 원장님이 보내주신 사람들 덕분에 당분간은 안심이네’


생각을 이어가던 도진이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운동장에서 놀이기구를 즐기는 사람들 사이에 새로운 얼굴들이 끼어있었다.


왕 원장이 말했던 보안 직원들로 그들이 온 이후로 도진 일행이 마음 편히 다른 일에 집중할 수 있었다.

이전까지는 아무래도 책임자로서 셋 중 하나는 자리를 지키고 있어야 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보안 직원들이 안전 체크는 물론, 방역 예방과 외부인의 출입까지 감시하고 있어서 마음 놓고 다른 일을 할 수 있었다.


“휴, 일단은 큰 건 끝났네”

“수고했어”

“커피라도 줄까?”

“고마워 오빠, 승완쓰~ 커피 컴온!”


일이 얼추 마무리되자 도희는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순식간에 변하는 그녀의 모습에 피식 웃은 승완이 커피를 가지러 간 사이 도진이 물었다.


“나 때문에 우리 여친님이 고생이네. 그런데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는데”

“무슨 소리야? 애들용 도서관을 만든다며? 그게 얼마나 중요한 건데”

“그, 그 정도야?”


도진으로서는 단순하게 있으면 좋겠다 싶어 만든 것인데 도희의 반응은 그게 아닌 듯했다.


교구장의 배치가 독서에 미치는 영향이 어떻고

최근 트랜드의 책들이 어떻고


여러 가지를 고민한 도희는 최종적으로 휴식과 독서를 동시에 즐길 수 있는 형태의 도서관을 추천했다.

그녀의 말로는 스톡홀름의 유명한 도서관으로, 세계에서도 유명한 곳이라고 했다.


“분위기만 흉내 낸 거야. 이곳도 넓긴 해도 아무래도 원조에 비하면 크기나 시설이 열악한 건 사실이니까”


그들이 있는 곳은 본관 2층으로 기존에 도서관이 있던 공간이었다.

원래도 도서관이던 장소라 충분히 공간이 넓었지만 도희의 기준에서는 모자란 모양이었다.


‘옆의 교실을 하나 더 틀 걸 그랬나’


어차피 남는 곳이라 상관은 없었다.

하지만 곧 도진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사실, 그들의 사정을 생각하면 지금도 필요 이상으로 컸다.


‘애들도 없는 마을에 아동도서관을 만든다는 것 자체가 사치지’


지금이야 임시로 아이들이 살고 있지만 몇 달 지나면 다시 이곳은 노 키즈 존이 될 곳이었다.

도진도 왕 원장의 제안이 아니었다면 굳이 도서관을 지을 생각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의 머릿속에 며칠 전 차에서 나눴던 원장과의 대화가 떠올랐다.


* * *


“대관이요? 세끼 하우스를요?”


갑작스러운 원장의 말에 도진의 얼굴이 살짝 굳었다.

대관이라고 하지만 계약 내용에 따라서 주도권을 뺏길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원장님이 그럴 것 같지는 않지만’


애초에 그럴 사람이라면 경매에 올라갔을 때 방치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선물이라는 지원은 더더욱 하지 않았을 것이고


도진도 그녀가 세끼 하우스를 탐낸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다만 다른 누구도 아닌 왕 원장이었기에 가볍게 생각할 수가 없었을 뿐이다.


“도진이 너도 내가 후원하는 고아원이 몇 곳 있다는 건 알고 있지?”

“...네”


도진 자신이 그 고아원 중에 한곳 출신이니 모를 리가 없었다.

심지어 공장에서 만든 물품을 직접 고아원에 배달하기도 했기에 그곳들에 대해서도 꽤 잘 알았다.


“강원도에 있던 청솔이 곧 문을 닫게 됐구나.”

“네? 청솔 고아원이요? 그곳이 왜···? 거기 규모가 꽤 크지 않았나요?”


도진이 기억하기로 작년에 원생 수가 50을 넘었었다.

그 정도 규모의 고아원은 전국에서도 손을 꼽기에 웬만하면 문을 닫지 않는다.


나라와 지자체에서도 이런저런 지원을 해주니 말이다.


심지어 그곳은 왕 원장이 후원하는 곳

말이 후원이지 실질적으로 그녀가 운영하는 곳이 문을 닫는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하지만 이어지는 원장의 말을 듣는 순간 도진도 이해할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이 마을을 다 떠났다고 하는구나. 남은 사람이라고는 이사를 준비 중인 노인 몇몇과 청솔에 사는 사람밖에 남지 않았어”

“그러면... 어쩔 수 없네요. 그러면 다른 곳으로 이사를 하는 건가요?”

“그렇지. 청솔에서 데리고 있던 애들을 한꺼번에 받아줄 만한 곳도 없고, 그렇다고 애들을 뿔뿔이 흩어지게 하는 것도 영 그러니 말이다”


원장의 말에 도진은 필사적으로 웃음을 참았다.

말로는 어쩔 수 없다고 하지만 그녀가 고아원을 폐원할 리가 없었으니까


방금 말한 ‘닫는다’라는 말도 말 그대로 강원도에 있는 고아원이 문을 닫는다는 소리였을 것이다.

새로운 곳에서 자리를 잡는다면 ‘열었다’라고 표현할 테고 말이다.


‘그냥 이사라고 하면 안 되나’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깜짝 놀랐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제 와서 말버릇을 바꾸기엔 그녀의 나이가 너무 많았으니까


‘요즘은 고아원 말고 보육원이라 쓴다고 백번을 말했는데 안 고쳐졌지’


오히려 주변 사람들이 그녀에게 물들어 고아원이라고 말할 정도였다.


“그러면 세끼 하우스를 청솔고아원으로 쓰시려고요?”

“흘흘, 내 건물도 아닌데 그래서야 쓰나. 그래서도 안 되고, 그러고 싶지도 않아. 내가 바라는 조건은 2주에 하루씩, 한 달에 총 이틀을 빌리는 거란다”

“이틀이요? 상관은 없긴 한데···뭐 하시려고요?”


원장이 빌려달라고 한다면 2일이 아니라 2주도 빌려줄 수 있는 도진이었다.

그랬기에 지금의 질문은 그저 순수한 호기심이었다.


방금까지 청솔을 이야기해놓고 기껏 한 달에 2일만 빌리겠다니?

세끼 하우스의 주인이자 원장의 지인으로서 물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듣게 된 답변은 생각지도 못했던 말이었다.


“고아원 아이들에게도 네가 산 놀이기구를 경험하게 해주고 싶어서 말이다. 일종의···간이 수학여행이라고 할까? 도진이 너도 기껏 산 놀이기구를 이대로 방치하는 게 아깝잖누”

“아···그거라면”

“흘흘, 무료라느니 더 있다 가라는 흰소리를 할 거면 꺼내지도 말거라.”

“네? 아니, 그래도...”


어떻게 알았는지 중간에 자기 말을 막는 원장의 모습에 도진이 황급히 말을 이어 나가려 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원장이 한 발 더 빨랐다.


 “에잉, 어찌 이리 건방지누. 내가 이때까지 살면서 남의 돈 한 푼도 허투루 받아본 적 없는데 이 나이 들어서 네 녀석의 코 묻은 돈을 뜯으란 게냐? 흘흘흘”

“···"

“그치?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아니지 싶지? 흘흘, 알아들었으면 계약서에 사인이나 하려무나.”


말과 함께 원장은 가방에서 미리 뽑아놓은 계약서를 내밀었다.


“내용 읽어보면 알겠지만 매월 둘째 주, 넷째 주 금요일을 통으로 임대하는 게야. 그런데 쉽지는 않을 게다. 당일 점심, 저녁, 다음 날 아침까지 제공해야 하거든”

“네? 삼시 세끼를 다요?”


원장의 말에 깜짝 놀란 도진이 계약서를 살폈다.

확실히 계약 내용에는 방금 말한 내용이 들어가 있었다.


임대 이야기가 나온 이후로 처음으로 도진의 얼굴에 걱정이 떠올랐다.


‘곤란하네. 애들 숫자가 꽤 많을 텐데’


청솔은 물론이고 원장이 운영하는 고아원은 하나같이 인원이 많았다.

원생을 빼고 어른들만 꼽아도 최소 15명은 될 정도


그에 비해 세끼 하우스 직원은 고작 셋

그들로는 원장이 말한 이들의 삼시세끼를 챙겨주기는 무리였다.


그런데 그런 도진의 고민을 눈치챈 것일까?

원장이 슬쩍 웃으며 말을 보탰다.


“물론, 공짜로 달라는 건 아니다. 식비는 당연하고 전기세와 수도세 같은 관리비, 거기에 놀이기구 이용료도 따로 지불할 생각이니까?”

“네?”

“계약서를 확인해봐라. 방금 내가 말한 내용이 들어있을 테니”


원장의 말에 계약서를 읽던 도진이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계약 내용은 확실히 원장의 말대로였다.

다만 그 비용이라는 것이 말도 안 되게 높게 측정이 되어 있었다.


“워, 원장님. 이거 오타죠? 실수로 단위 하나가 더 올라간 거 맞죠?”

“왜? 거기에 뭐라고 적혔길래 이리 놀랐누?”

“하, 하루 숙박료가 2천만원으로 나와 있어요. 거기에 식비랑 각종 부대시설 이용비가 천만원. 한 달로 치면 총 6천만 원인데 이건 누가 봐도 이상하잖아요”


말을 하는 도진의 얼굴이 점차 절박하게 변해갔는데 그 모습이 흡사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는 사람과 비슷했다.


정작 그 계약서를 만든 당사자는 너무나 평온한데 말이다.


“흘흘, 제대로 본 게 맞는데 왜 그렇게 놀랐누? 아 혹시 임대료가 너무 낮아서 그런게야?”

“아, 아니. 원장님”

“흘흘흘, 너무 그렇게 놀란 표정 짓지 마라. 굳이 네가 아니더라도 어디를 가도 항상 그 정도는 지불했으니”

“네?”

“세상은 말이다 도진아. 생각보다 잔인하고 비참하단다. 처음에는 좋아하던 펜션 사장도 고객이 고아들이라는 걸 알게 되면 태도가 싹 바뀌지. 다른 곳은 다를까? 모델도, 리조트나 호텔도 마찬가지야. 뭐 하나만 없어져도 애들을 도둑으로 몰고 가지” 

“···"

“그런 세상에서 차별받지 않는 방법이 뭐라고 생각하니? 억울함에 맞서 싸우는 거? 나중에 보복하는 거? 전부 아니란다. 제일 쉽고 깔끔한 방법은 일반인들보다 비싼 요금을 지불하면 돼. 그것도 월등히 많은”


원장의 말에 순간적으로 도진의 머릿속에서 한 가지 기억이 떠올랐다.


그가 고등학생이 된 이후, 처음으로 제주도로 여행을 간 적이 있었다.

무려 고아원 전 인원이 함께한 여행이었다.


태어나 처음으로 탄 비행기에 한창 들떠 있던 도진은 호텔 로비에 도착하자마자 기분이 상했다.

호텔 프런트 직원의 표정을 본 탓이었다.


[무시, 천시, 멸시, 경멸]


고아들이라면 누구라도 알 수밖에 없는 표정이었지만 직원은 그마저도 숨기려는 노력을 보이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일행 중에 제일 앞서 있던 덕에 유일하게 도진만 직원을 볼 수 있었다는 것이었다.


그때 도진의 옆에 있던 원장이 나섰다.


“여기 스위트룸 전부 주세요”

“네? 스위트···룸 말씀이십니까? 고객님?”

“네. 남아있는 스위트 룸이 몇 개나 있죠?”

“현재···공실은 다섯곳입니다”

“음, 아직 좀 부족하네. 그럼 나머지는 그 아래 등급의 룸으로. 스위트룸은 나와 교사들이, 그 아래 등급은 아이들이 2인 1조로. 가능할까요?”

"네, 네. 가능합니다. 그, 계산은 어떻게..“

“이 카드로. 일시불로 부탁해요”

“네, 네! 결제 도와드리겠습니다”


그 이후로 도진은 더 이상 직원들의 표정을 신경 쓰지 않았다.

만나는 직원들마다 한결같이 공손함과 예의를 갖춰왔기 때문이었다.


원장의 말을 들어보니 이미 그녀는 그때부터 돈으로 아이들의 자존심을 세워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겠누? 그럼 그냥 사인하려무나. 여기서 도진이 네가 가격을 깎는다면 그만큼 내 아이들의 자존심도 깎이는 게야”


이렇게까지 말한다면 도진이 할 수 있는 대답은 정해져 있었다.


“···네 알겠습니다”

“흘흘흘, 옳지. 역시 우리 도진이가 배려심이 넓다니까 .” 


그 말이 끝이었다.


1박에 3천만원

1달에 무려 6천만원짜리 계약은 그렇게 마무리가 됐다.


* * *


‘그래도 2주에 한 번씩이면···책만 대여해줘도 도서관의 기능은 하겠네’


도진이 원장과의 대화를 떠올리며 도서관을 살피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그의 눈앞에 검은 물체가 나타났다.


“도희만 주기 뭐해서요”

“어? 감사합니다”


승완의 말에 아아를 받아든 도진이 한 모금 마시자 기다렸다는 듯이 그녀가 물었다.


“그런데, 갑자기 리모델링이 너무 많은 거 아니에요?”

“네?”

“아니, 아동용 도서관도 그렇고 그 옆에 미니 영화관도 그렇고. 너무 갑작스러워서요”

“아···곧 필요해질 거 같아서요”

“도서관이랑 영화관이요?”


도진의 말에 승완이 믿기 힘들다는 얼굴로 물었다.

사실 그녀로서는 당연한 반응이었다.


아이들도 없는 동네에 아동용 도서관을 만들고 청년들이 없는 마을에 미니 영화관을 만들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도진도 나름의 생각이 있어 만든 것이다.


‘원생 중에는 책을 좋아하던 애들도 있었으니까.’


처음에야 새로운 장소와 새로운 놀이기구를 즐기느라 정신이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경험이 쌓이고 나면 놀이기구는 시들해질 수밖에 없었다.


도서관은 그때를 위해 미리 준비한 장소였다.

원장의 교육 철학 덕분인지 원생들은 대부분 독서를 좋아했고 고등학생쯤 되면 놀이기구에 별 관심이 없을 테니 말이다.


그에 비해 영화관은 철저하게 이 지역 노인들을 위한 시설이었다.

이른바 지역 문화 사업이었다.


‘예전 영화를 보고 싶어 하시는 분들이 꽤 계셨으니까’


자식도 없고 손주도 없는 노인들이 보고 싶은 영화를 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이제는 거의 마을회관이 되어버린 운동장을 돌아다니다 보면 그런 얘기들을 자주 듣는 도진이었다.


“에이, 뭐니 뭐니 해도 프리티우먼이 제일이지”

“그게 뭐야? 난 그딴 거 모르겠고 영화는 람보지”

“어허, 이래서 땅깨들이란. 영화는 모름지기 탑건이라니까? 그 전투기 운전을 보고도 느끼는게 없어?”


이렇게 시작된 영화 이야기는 곧 


“어? 그때 대사가 뭐였지?”

“으휴, 얘 또 까먹었다. 하긴, 그 영화 본 지가 언젠데”

“나도 탑건 내용이 요새 가물가물해. 한 번만 더 봤으면 좋겠는데”


이는 할아버지들뿐만 아니라 할머니들도 비슷했다.

심지어 과거 뮤지컬이나 드라마에 대한 이야기도 종종 나오는 걸 듣고 영화관을 만들기로 결심한 것이다.


“뭐···저야 또 새로운 영상 나와서 만족스럽긴 하지만··· 그래도 계획적인 소비 부탁드릴게요"

“···네 걱정 마세요”


도진은 승완이 뭘 걱정하는지 잘 알았다.

한 회사의 사장이, 친구의 남편 될 사람이 기분에 취해 과소비하는걸 경계하는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도진의 자금은 그녀가 걱정할 수준이 아니었다.

이런저런 일로 자신을 지원하는 원장 덕분에 이번에 꽤 크게 지출했음에도 오히려 자금이 더 늘어나 있었으니까


도진이 괜히 지역 문화까지 신경 쓰는 게 아니었다.

다 그럴만한 여유와 능력이 생겼으니 할 뿐


그렇게 도진이 승완과 완공된 도서관을 둘러볼 때였다.


“선생님! 선생님!”


밖에서부터 들린 앳된 목소리에 고개를 내민 도진의 눈에 익숙한 실루엣이 보였다.


“한길이? 너 한길이 맞지?”


잠겨있던 세끼 하우스의 문을 두드린 최초의 아이

한길이가 밑에서 도진을 부르고 있었다.


그런데 한길이를 부르던 도진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었다.


한길이의 상태가 이상했다.

처음 봤을 때는 잘 몰랐지만, 자세히 보니 옷에 피까지 묻어있었다.


“한길아, 너 잠깐만 거기서 기다려. 선생님이 내려갈게”


그 말과 함께 도진이 달려 나갔다.

계단을 세 개, 네 개씩 달린 덕분에 순식간에 1층으로 내려온 도진이 곧바로 한길이가 있던 곳으로 향했다.


“흑흑”

“한길아, 무슨 일이야? 너 괜찮아?”


1층에 도착했을 때부터 들리는 울음소리에 심장이 터질 것처럼 놀랐던 도진의 긴장이 순식간에 풀렸다.

생각보다 한길이의 상태가 나쁘지 않았다.


아니, 옷에 묻은 피를 제외하고는 아무 곳도 이상이 없었다.


“후아, 한길아 무슨 일이야? 이 피는 다 뭐고?”

“흑흑! 선생님···선생님···어떻게 해요? 흑흑”


도진의 말에도 한길이는 울기만 할 뿐 제대로 말을 잇지 못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도진은 그저 한길이를 토닥였다.

이런 때 다그쳐봐야 아무 도움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도진의 예상대로 몇분 지나지 않아 한길이의 상태가 정상으로 돌아왔다.


“···흑!”

“이제 좀 진정됐니?”

“···네”

“자, 그러면 이제 말해줄래? 큰일이 났다는 게 뭐야?”


도진의 말에 기억이 떠올랐는지 다시금 한길이의 눈에 눈물이 차올랐다.


그러나 이번에는 조금 전과 달랐다.

울먹이면서도 끝끝내 할 말을 했으니까


“또랑이가··· 차에 치였어요. 지금 영수 할아버지 밭에 쓰러져 있는데 빨리... 도와줘야 해요. 피를 너무 많이... 힝···흘리고···있어요.”


한길이의 말을 들은 도진이 황급히 주머니를 뒤졌다.

차 열쇠를 찾은 것이다.


다행히 키는 그의 오른쪽 주머니에 있었다.


“선생님···도와주세···흐앙!”

“걱정 마, 선생님이 또랑이 꼭 살릴게”


끝내 울음을 참지 못하고 터져버린 한길이를 뒤로 한 채 도진은 주차장을 향해 전력 질주를 하고 있었다.







작가의말

연참을 하면 선독과 추천, 댓글이 늘어난다는 말이 있다.

난 이 말을 참 좋아한다


그러니까.... 무슨 말인지 아시죠? (찡긋!)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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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11. 이걸로 해주세요 +2 24.05.29 2,574 72 15쪽
11 10. 부적 +1 24.05.28 2,623 75 13쪽
10 9. 청혼하다 +3 24.05.28 2,755 71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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