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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셔냐옹은 체셔냐옹이라 체셔냐옹

검은머리 던전 대장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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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체셔냐옹
작품등록일 :
2024.05.08 12:13
최근연재일 :
2024.06.10 11:30
연재수 :
36 회
조회수 :
8,165
추천수 :
707
글자수 :
198,121

작성
24.05.10 11:55
조회
302
추천
28
글자
12쪽

1장 던전의 속삭임 (6)

DUMMY

“무서워서 오금이 다 저려라. 날 상대로 협박? 대단한 자신감인데. 그래서 어떻게 할 셈인가? 궁금해 미치겠는데?”


“검을 만들 겁니다. 당신에게 계속 돈을 줄 마음은 없으니 설비는 회수해도 됩니다.”


“내 설비 없이 검을 만들겠다고? 무슨 수로?”


“대장장이답게 해야지요.”


대장간 설비를 처음부터 제작하는 건 귀찮고 힘든 일이지, 어렵고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지향은 고향에서 필요한 장비를 직접 만들어 쓴 경험이 있었다.


철은 알렉스를 통해 융통한다. 연료는 난방용 숯을 쓰면 된다. 불편하고 까다롭지만, 풀무질만 제대로 하면 제련할 온도는 나왔다.


한동안 장사를 접어도 버틸 만큼의 현금도 모아 뒀다. 협상이 결렬되면 실제로 행동할 수 있었다.


“노점 대장간 거리를 전부 고용할 겁니다. 당신에게 계속 빚질 필요도 없겠지요. 안 그래도 임대료가 과하다고 생각하던 참이었고.”


“허 참. 그 거지 떼를 데리고 뭘 할 건가?”


“함께 검을 만들 겁니다. 사람이 조금만 더 있으면 그 정도 검을 빠르게, 많이 만들 수 있어요.”


“뭐, 뭐?”


“물론 내게 붙지 않는 대장장이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장담하죠. 당신 휘하의 대장장이는 단 한 푼도 못 벌 겁니다. 그런 검을 은화만 받고 팔 거니까요.”


“제정신인가?”


실라스는 물론 알랭마저 입을 떡 벌렸다. 지향은 아랑곳하지 않고 차분한 얼굴로 계속 말했다. 그의 눈이 빛을 받아 파랗게 반짝였다.


“내가 못 할 거 같습니까?”


지향이 차갑고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옆에 있는 알랭이 필사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연합에서도 가만 있지 않을 텐데.”


“연합 따위가 어떻게 생각하든 알 바 아닙니다. 놈들은 이미 시장에서 통제할 수 있는 건 모두 통제하고 있으니까 더 뺏길 것도 없어요.”


실라스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오싹함이 그의 등골을 타고 흘렀다.


사채업자로서 긴 세월 동안 여러 인간 군상을 만났다. 악에 받쳐 욕하고 고함치는 인간은 이제 우스웠다.


그런데 뭘까? 이 서늘함은.


마치 목에 닿은 칼날 같았다. 그동안 축적한 인간 군상의 데이터가 경보를 울렸다.


“그런 짓을 해봤자 돈은 못 벌 거야. 당신 수준의 솜씨는 당신 하나뿐이고 나머진 쭉정이 같은 노점 대장장이니까. 그런데도 굳이 손해 볼 짓을 하겠다고?”


“그러니 당신의 착취를 인정하고 일방적으로 당하라? 하나가 착취하고 다른 하나가 손해 보는 것보다는 둘 다 손해 보는 게 훨씬 낫다고 생각하는데.”


실라스가 마른침을 삼켰다. 자기도 모르게 소파의 등받이에 기대어 있었다. 그걸 깨달은 실라스는 고개를 젓고 허리를 반듯하게 세웠다.


“그 계획을 굳이 내게 설명하는 이유는, 여전히 협상의 여지가 있다고 생각해서인가?”


“사업은 서로에게 이익이 되어야지요. 실제로 이익이 되는 길이 있는데 마다할 필요가 있나요?”


“웃기는군.”


사업체를 경영한다고 늘 합리적으로 판단하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 장기적인 이익보다 당장 편함이나 제 기분을 추구하는 자가 태반이었다.


지향은 고향에서 이런 인간을 종종 만났기에 이해했다. 그리고 그런 인간을 알았기에 그들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도 알았다.


“그런 말을 다 해놓고 여기서 무사히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실라스가 손짓하자 경호원이 몸을 풀었다. 얼굴에 잔뜩 힘을 주고 눈을 부라리는 모습이 사뭇 난폭해 보였다.


여기서 겁먹은 티를 내선 안 된다. 지향은 차분히 차를 한 모금 마시고 최대한 조용히 찻잔을 내려놨다.


“반대로 내가 힘에 호소할 걸 예상도 못 했으리라고 생각하는지?”


“아까부터 정말 성질을 살살 잘도 긁는군. 붙잡아. 어디 한 군데 부러뜨려도 괜찮아.”


“예, 사장님!”


경호원이 움직였다. 그와 동시에 지향이 손을 들었다. 싸움을 시작하려는 건 아니었다. 대신 더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지향과 실라스 사이의 공간이 갈라졌다. 손바닥 두 개 크기의 어둠이 두 사람 사이에 떠 있었다.


그 모양새는 무척 기괴했다. 실라스는 벌떡 일어나 뒷걸음질 치다 소파 뒤로 벌렁 넘어졌다. 경호원이 그런 실라스를 감싸서 물러섰다.


어둠으로부터 칼자루가 튀어나왔다. 지향이 칼자루를 잡자 어둠이 앞으로 이동하며 칼날을 뿜었다.


어둠에서 나온 칼은 70센티미터 남짓한 짧은 한 손 검이었다. 칼자루의 끝에는 둥근 고리가 붙어 있고 한쪽에만 날이 선 칼이었다.


칼의 표면에는 이국의 문자를 음각하고 금을 채워 상감했다. 반짝이는 금색 문자를 본 실라스는 저도 모르게 소리쳤다.


“마법!”


“서로에게 이익이 되는 것도 싫고, 내가 독립하는 것도 막겠다. 게다가 그걸 위해 폭력을 쓰겠다면 이젠 죽고 죽여보는 수밖에.”


갈라진 공간이 도로 닫혔다. 찬란하게 빛나는 검을 들고 지향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경호원은 실라스를 몸으로 가리며 주춤주춤 물러났다.


“그만! 내가 졌으니 이제 그만하지.”


“놀랄 정도로 쉽게 물러서는군. 한두 명 썰고 나서 그만둬도 괜찮은데.”


“진심으로 사과하겠네. 미안하니 제발 그만둬 주게.”


“좋아.”


지향이 실라스에게 겨눴던 검을 회수했다. 허공이 열리더니 검이 그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모두가 그것을 홀린 듯이 바라봤다. 지향이 큰 소리로 손뼉을 쳐서 분위기를 돌렸다.


“자, 사업 이야기로 돌아가지. 자리에 앉으시죠?”


지향이 주인처럼 자리를 권했다. 실라스는 여전히 하얗게 뜬 얼굴로 숨을 몰아쉬었다.


마른침을 억지로 삼킨 그는 이내 고개를 끄덕이고 자기 자리로 돌아왔다. 지향은 그런 실라스에게 빈손을 내보였다.


“서로에게 이익이 되는 방법이 있어요. 쓸데없이 강짜 부려 봤자 손해나 더 보지 않겠습니까?”


“그, 그렇네. 아니, 그렇지요.”


실라스가 자세와 함께 말투를 고쳤다. 그걸 본 지향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진짜 협상을 시작하죠. 추가 설비와 마법 장비를 포함해 어느 정도의 비용을 생각합니까?”


“바라시는 건 제가 전부 드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입이 툭 튀어나왔으면서도 이죽대는 실라스를 보고 지향이 싱긋 웃었다. 다 내놓으란다고 내놓을 사람도 아니면서 말은 쉬웠다.


“그러다 잘 밤에 칼 맞으려고. 몇 번씩 말하지만, 서로에게 이익이 되는 길을 놔두고 굳이 어려운 길을 갈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제시해 보세요.”


지향의 말에 실라스가 숙고했다. 잠시 뒤 그는 완전히 빈 새 종이를 꺼냈다.


“지금까지처럼 평범하게 대여하고 임대료를 받고 하는 식은 이제 필요 없겠습니다. 대신 전면적인 사업 투자로 계약을 바꿔 보죠.”


“구체적으로는?”


“당신이 바라는 장비, 소재를 일체 제공하겠습니다. 대신 수익 분배를 요구합니다.”


“그거 괜찮은 얘기로군요.”


제시하는 내용은 좋았다. 그러나 협상의 완성은 수익 분배 비율에 달려 있었다.


“수익 분배는 그러면 어느 비율로?”


“당연히 5대 5로.”


“매출의?”


“물론이죠.”


“터무니없는 소리를. 재주는 내가 부리는데 수수료로 수익도 아니고 매출의 50퍼센트는 말이 안 되지.”


이 세계에서 대장장이 기술은 현대 사회의 반도체 생산이나 정보통신 기술과 같은 고부가가치 사업이었다. 그렇기에 대장장이 연합에서 기술과 설비를 독점하는 거다.


달리 말하면 지식과 기술을 보유한 지향은 적절한 장비와 소재만 있으면 돈을 갈퀴로 쓸어 담을 수 있다는 뜻이었다.


지향은 노점 대장간을 운영하며 그걸 확인했다. 지금이야 몇 푼 안 되는 돈을 긁어모아 생활하지만 자리를 잡고 나면 금이 쏟아질 게 뻔했다.


“선투자 비용에 이율까지 생각하면 썩 말이 안 되진 않을 텐데요.”


“연합이 통제하는 장비를 구했다는 명목으로 웃돈을 받을 수도 있겠지만, 난 장비를 스스로 만들 수 있단 걸 명심해요. 난 그 웃돈을 들일 필요가 없는 사람입니다.”


“장비 자체가 아니라 시간을 사는 셈 치시죠. 그 장비 구하려고 노력하는 시간만큼 바로 사업을 시작할 수 있지 않습니까? 6대 4까진 양보하겠습니다.”


“8대 2. 그것만 해도 그쪽에 많이 남을 겁니다. 아, 혹시 시장이 좁나요? 연합에 견제당해서?”


“시장은······.”


실라스가 말을 골랐다. 한참 고민하던 그가 이내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시장은 그리 작지 않습니다. 저 정도 검이라면 매달 열 자루 이상 팔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난 열 자루 이상 만들 수 있지요. 이것만 해도 그쪽이 벌 액수는 지금과 비교가 안 될 텐데요.”


“그렇지만 시장을 만들고 유지하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닙니다. 사실 설비나 소재를 구하는 것보다 이쪽이 진짜 큰일이니 그 점은 인정해 줘야죠!”


“그도 그렇군요.”


확실히 실라스의 말에도 일리가 있었다. 지향이 턱을 쓰다듬으며 고민했다.


“7대 3. 서로 만족할 만한 비율이라고 생각합니다.”


“난 조금 불만족스럽습니다만? 뭐, 좋습니다. 일단 그렇게 하고 성과에 따라 계약을 연장할지 고민해 보죠.”


“하하하. 난 어디 만족스러워 보이나요? 성과에 따라 계약을 연장할지 고민하는 건 오히려 내가 할 말입니다. 뭐, 계약은 유지해도 비율은 달라질 수 있겠죠. 지금은 이대로 하지만.”


“그럼 계약하기로 정한 겁니까?”


“물론이죠.”


실라스가 빈 종이에 계약서를 슥슥 써나갔다. 알랭이 옆에서 계약서 내용을 읽고 혹시 이상한 조항을 넣진 않았는지 확인했다.


“내가 마법사 상대로 계약 사기를 칠 만큼 멍청하진 않아.”


“혹시 모르잖아, 사장.”


협상 타결이었다. 지향은 계약에 따라 추가로 필요한 설비 일체를 실라스에게 알렸다.


폐쇄형 화로, 집게와 망치를 종류별로, 회전식 연마석, 숫돌과 사포, 기타 등등.


“내일까지 배달하지요. 대신 수익 분배는 확실하게 부탁합니다. 이게 어디 한두 푼도 아니니.”


“그쪽에서 이상한 짓만 안 하면 태업하진 않을 테니 안심하세요. 서로 이득을 보고자 온 거니.”


“좋습니다. 그럼 살펴 가시죠.”


지향은 마지막으로 실라스와 악수하고 그의 사무실을 나섰다. 텐트로 돌아가는 길에 알랭이 조심스럽게 지향의 뒤를 따라 걸었다.


“왜 그래?”


“그, 마법사님이셨습니까?”


“안 어울리게 왜 존댓말이야? 하던 대로 해.”


“아무리 그래도 마법사님을 상대로 그건 좀······.”


영 조심스러운 알랭의 태도에 지향이 ‘풋’하고 소리 내어 웃었다. 아무래도 이 세계에서 마법사는 지향의 생각보다 더 무서운 존재인가 보다.


“걱정 안 해도 돼. 그런 마법사 아니니까.”


‘애초에 마법보다는 저주에 가까운 거고.’


지향이 속으로 자조했다. 약점이나 다름없는 사실을 굳이 알릴 이유는 없었다.


“그런 마법사가 뭔지······.”


“몰라. 모르지만 그렇게 벌벌 떨 대상은 아니라고. 난 마법사가 아니라 대장장이니까.”


“지금까지 검을 만들던 걸 보면 마법 같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마법사 대장장이라서?”


“정작 거기엔 마법을 하나도 못 썼단 말이지. 자동으로 망치질하는 마법 같은 게 있으면 편하겠다는 생각은 하는데.”


“그런 게 있으면 정말 편하겠군!”


한바탕 웃은 지향이 숨을 돌렸다. 마법 같은 능력이 있긴 하지만, 전투에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만약 실라스와 직접 충돌이 벌어졌으면 어찌 됐을지는 명약관화였다. 죽거나, 죽을 만큼 다쳤겠지.


허세가 잘 먹혀 다행이었다. 하지만 허세만으로는 오래 버틸 수 없었다.


능력을 갈고닦아 허세 없이도 제 한 몸 건사해야 했다. 지향이 마석을 토대로 추측하건대, 그 해답은 던전에 있었다.


“내일부터 다시 바빠지겠군.”


“설비를 보충했으니 모험가 의뢰는 그만두고 검을 만드는 데 더 집중하는 건?”


“지금까지 찾아온 고객을 그렇게 매몰차게 버릴 순 없지. 검을 만들 시간이 필요한 것도 맞지만.”


“그럼 어떻게?”


알랭의 질문에 지향이 미소 지었다. 거기에 대해선 이미 생각해둔 바가 있었다.


“일단 사람이 먼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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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1장 던전의 속삭임 (15) +1 24.05.19 205 2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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