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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셔냐옹은 체셔냐옹이라 체셔냐옹

검은머리 던전 대장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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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체셔냐옹
작품등록일 :
2024.05.08 12:13
최근연재일 :
2024.06.10 11:30
연재수 :
3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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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15
추천수 :
720
글자수 :
198,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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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06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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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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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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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2장 장인의 발걸음 (14)

DUMMY

지향이 잠깐 얘기하고 물 마시고 쉬는 10분 사이에 에드릭은 연마 작업을 마무리하고 있었다.


“대단한 손놀림입니다.”


“뭘 이 정도 갖고. 곱게 마감할 것도 아니고 이 접합 흔적만 갈아서 없애면 충분한 거 아닌가.”


“그렇습니다. 다행히 안쪽까지 잘 붙은 거 같군요. 적어도 검을 휘두른다고 접합부가 탈락하거나 검이 부러지지는 않겠습니다.”


지향은 그렇게 말하며 검을 가볍게 두드려 봤다. 혹시라도 겉면은 접합됐으나 내부에 공동이 발생했을 가능성도 0은 아니었다. 원체 거칠게 용접했으니까.


돌아오는 반응으로 봐서는 적어도 돌발 파손이 발생할 정도의 문제는 없을 거 같았다. 정밀 검사를 못 하는 이상 한계는 명확하지만, 집에 돌아갈 딱 하루만 버티면 충분했다.


“놀라웠어. 용의 숨결에 그런 응용 방법이 있을 줄이야. 던전이 아니라 대장간이나 공장에서도 충분히 쓸 수 있겠어.”


“충분히 가능하지요.”


지향은 검을 들어서 앞뒤를 확인했다. 표면이 거칠지만 용접 비드는 거의 없앴다. 단조해서 균형을 잡고 열처리를 가하면 완성이었다.


지향은 검에서 나오는 마력을 느끼려고 노력했다. 한참 동안 검을 쏘아봐도 특별하게 느껴지는 건 없었다.


‘아직 부족해서 그런가? 내 능력으로는 지금 로타처럼 강력하게 발산하는 마력이 아니면 느끼기 힘든가? 설마 벌써 마력이 다 빠진 건 아니겠지?’


“지향? 왜 그러는가?”


“아뇨. 다시 단조하죠.”


검을 달구고 두 사람이 번갈아 망치질했다. 평소 메질꾼과 함께 작업할 때와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박자 감각이 좋다거나 타이밍이 완벽하다 정도로는 다 설명할 수 없었다. 마치 서로의 마음을 꿰고 있기라도 한 듯이 움직였다.


지향이 다음으로 어디를 쳐야 하겠다고 생각하면 어김없이 에드릭이 그 자리를 때렸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였다.


지향이 때리는 속도를 바꾸면 에드릭도 그에 맞춰 따라왔다. 지향이 때리는 각도를 바꾸면 에드릭은 거기서 생기는 철의 변형을 보완했다.


‘완벽하다. 저쪽에서 리드하는 게 더 나을 수도 있는데 정작 그럴 생각은 없이 내 보조만 맞추고 있어.’


두 사람은 공히 달인의 영역에 있었다. 굳이 말로 지시하지 않아도 다음은 무엇일지 익히 알고, 그렇기에 대화 없이도 자기 역할을 잘 알았다.


말이 없어도 망치질 자체가 즐거웠다. 두 사람은 한동안 무아지경으로 철을 두드렸다.


“여기서 나가면 이제 그 다음은 무얼 계획하고 있는가?”


먼저 침묵을 깬 건 에드릭이었다. 에드릭의 말에 지향은 잠시 고민했다.


“크게 바뀌진 않을 겁니다. 던전의 폐쇄가 풀리고 모험가가 오면 다시 모험가 대상으로 장사를 해야겠지요.”


“그대가 머무는 대장간은 말할 필요도 없이 성황일 거야.”


“실제로 꽤 잘 나갔지요. 손 둘로는 부족하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으니까요.”


지향의 너스레에 에드릭이 소리 내 웃었다. 지향도 마주 미소 지었다.


“그래 손 둘로는 모자라겠지. 그럼 이건 어떤가?”


“무엇 말이죠?”


“연합에 들어오게. 우리는 손이 아주 많으니까. 그리고 누군가는 두 손에 머리까지 있어야 하지.”


왔다. 지향이 기다리던 기회였다.


마침 집 안에는 공작 가문의 직계 후손이 있다. 눈앞에는 대장장이 연합의 장인이 있고.


“그대의 솜씨는 광야에 홀로 두기에 너무나 뛰어나네. 연합은 모험가의 무기만 만드는 게 아니야. 작게는 가정집에 쓸 못과 경첩부터 크게는 제왕의 왕관, 대신전의 첨탑 골조까지 모든 걸 만들지.”


“그거 대단하군요.”


대장장이 연합의 독점은 이미 들을 만큼 들었다. 일부 국가는 국왕이나 대영주 직속의 대장간을 일부 운영하고 있지만, 그 규모는 연합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당연히 장인의 숙련도에서도 큰 차이를 보였다. 스승의 숫자와 경력, 경험치에서 연합이 압도적으로 유리했다.


“대단해야지. 그 대단함을 유지하기 위해 엄청난 비용을 들이고 있는데 대단해야 하고말고.”


“그렇게 대단한 곳에 아무나 들이면 안 되는 거 아닌가요?”


“그대는 ‘아무나’가 아닐세. 내가 장담하지. 연합의 어떤 장인과 견주어도 그대는 절대 뒤떨어지지 않아.”


“실력만 중요한 게 아니잖습니까?”


“그것도 적당한 실력일 때나 통하는 말일세. 그대는 그대의 출신, 배경, 신분 따위는 무시해도 좋을 만한 실력이 있네. 내가 보장하지.”


에드릭이 그렇게 말하며 망치를 내렸다. 검의 뒷면을 다듬을 차례였다. 지향은 검을 뒤집고 용의 숨결로 골고루 달궜다.


“나도 그리 신분이 대단한 처지는 아니라네. 연합에 들어가기 전에는 평범한 농부의 아들이었지.”


“내가 범죄자나 도망 노예면 어쩌려고요?”


“상관없네. 연합 내에서 사고만 안 치면 문제없지. 도시의 공기는 자유를 준다는 말이 있지 않나? 연합의 공기는 목이 칼칼한 대신 더 큰 자유를 준다네.”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니었다. 에드릭은 진지하게 지향을 영입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그의 열의는 지향도 충분히 느꼈다. 그리고 이 기회를 놓칠 마음도 없었다.


“정말로 감사한 말씀입니다. 거절할 이유가 없지요. 오히려 먼저 청하고 싶어질 만큼이요.”


“훌륭한 선택이라네.”


“단지 걱정되는 점이 몇 있습니다.”


“그게 무엇인가?”


“에드릭 님은 그렇다 치더라도 다른 사람이 과연 거기에 동의하겠습니까? 가뜩이나 연합에서 배척하는 노점 대장간 출신인데.”


“하하하. 그대도 다른 사람의 시선을 신경 쓰는가?”


에드릭이 껄껄 웃었다. 지향은 그런 에드릭의 말에 작게 피식 웃었다.


다른 사람의 시선? 다른 거면 몰라도 야장 일에서 타인의 시선 따위 지향은 신경 쓰지 않는다.


이 세계에는 철과 불이 있고 만들어야 할 형상이 있다. 지향은 철과 불을 다룰 줄 알며 목표하는 형태로 성형할 줄 안다. 거기에 남의 시선 따위가 낄 자리는 없다.


그러나 세상은 대장간 밖에도 있다. 더군다나 다른 사람이 실제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하면 그 시선을 무시할 수도 없었다.


에드릭의 추천을 비토하는 누군가 정도는 있을 터였다. 그리고 그 의견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이도 반드시 있을 거다.


“무얼 걱정하는지는 알 거 같군. 그 걱정은 안 해도 좋네. 내 자랑 같아 말하지 않았지만, 이래 봬도 이 도시의 수석 장인은 나와 같이 수학한 동문에 동기라네.”


“두 분 사이에 친분이 있더라도 수석 장인 정도 위치면 개인적인 친분만으로는 인사를 짤 수 없지 않을까요?”


“보통은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 친구라면 내 부탁을 들어줄 거야. 그동안 동기로서가 아니라 장인 대 장인으로서 빚을 쌓아뒀거든.”


“빚이라고요?”


“나는 조용한 장인이었네. 일부러 그런 건 아니고 그냥 성격이 그랬던 거지. 그래서 제자도 내가 고른 게 아니라 그 친구가 골랐고 담당 업무도 그 친구의 부탁대로 했지.”


정치적 부채였다. 지향은 에드릭의 말을 이해했다. 이것은 단순히 에드릭과 수장 사이의 부채가 아니라 에드릭과 연합 사이의 부채였다.


“과연 그렇군요.”


“설령 그대를 싫어하는 놈이 있더라도 실력으로 찍어 누르게. 장인이라면 그 정도는 보여 줘야지.”


“그거야 전문 분야지요.”


실력으로 입을 막아라. 얼마나 단순하고 명쾌한가? 외압 문제만 없으면 나머진 지향의 독무대였다.


“나가면 곧장 나와 함께 연합으로 가세. 이야기는 내가 할 테니. 혹여 아직도 걱정되는 점이 더 있는가?”


“실은 몇 가지가 더 있지요.”


“기탄없이 말해보게.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걸 할 테니까.”


“지금 대장간에서 책임지고 있는 사람이 몇 있습니다.”


인연이 있는 자를 버리고 나아가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누군가는 쉽게 해낼 수도 있지만, 적어도 지향은 그렇지 못했다.


“그거라면 어려운 일이 아니라네. 연합의 수습공으로 받아주겠네. 당연히 책임자는 여전히 그대야. 그대의 제자로서 받아들여야 할 테니까.”


“감사합니다.”


“더 걸리는 건 이제 없겠지?”


“굳이 따지자면 노점 대장간 거리에 관한 처우 정도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쪽에서도 일을 벌이다 보니 자칫 연합을 향한 공격으로 오해하지 않았으면 해서요.”


오해가 아니라 명백한 시장 경쟁이었다. 하지만 일단 오해라고 말하지 않으면 나중에 꼬투리 잡힌다.


그리고 꼬투리를 잡히면 짓밟힐 수도 있었다. 적어도 상대는 그럴 만한 힘이 있었다. 그럴 만한 의지를 갖지 않도록 해야 했다.


“그런 걸 걱정한단 말인가? 허허 참. 아니, 아주 없을 법한 일도 아니군. 최근 노점 대장간을 성토하는 숙련공이 늘었으니.”


에드릭의 혼잣말이 참으로 섬찟했다.


“나는 그런 쪽 일은 영 몰라서. 그것도 일단 수석 장인에게 말해두겠네.”


“감사합니다.”


지향이 보기에 에드릭은 아무래도 정치 같은 것과 연이 먼 사람 같았다. 무기를 수리할 때도 느꼈지만, 역시 그는 우직하게 한 작업만을 고집해 온 장인이었다.


역으로 이런 민감한 정치적 사안에는 어떤 소리를 내거나 공론장으로 끌고 오기 힘들 수도 있었다. 설령 정치 자산이 풍부하더라도 본인이 그걸 견인할 실력이 필요했다.


‘내가 연합에 들어가서 행동하면? 아니, 무리지. 기반이라고는 에드릭 한 사람이 전부인데 나도 정치에는 영 소질이 없으니. 아군을 더 끌어들여? 누가 있는 줄 어찌 알고. 우선 연합에 들어가서 판단해야겠구나.’


“그나저나 그대는 참으로 인연을 소중히 여기는군. 연합에 들어오면 연합도 그리 여기겠는가?”


“마땅히 그래야지요.”


“그래. 그렇게 인연을 계속 소중히 여기게. 인연이란 게 나중에 어떻게 돌아올지 모르니까.”


두런두런 이야기하는 사이 검의 정돈도 얼추 마무리됐다. 힘차게 내리치던 두 사람이 훨씬 작고 섬세하게 움직였다.


“이제 우려는 없어졌으니 더 궁금한 건 없나?”


“연합의 체계가 궁금하군요. 수습공, 숙련공, 장인은 알겠습니다만, 계급 체계가 정확히 어떻게 되고 어떻게 승급하는 거지요?”


“그 정도면 거의 다 아는 걸세. 처음 연합에 입문하면 장인을 스승으로 모시며 수습공부터 시작하네. 이따금 숙련공부터 제자를 둘 때도 있지만 보통 장인이 되어야 둘 수 있지.”


“그렇군요.”


“수습공은 이름처럼 실무를 배우는 짧은 기간의 지위야. 2년 정도 수습공을 하고 나면 직공이 되지. 연합에서 가장 수가 많은 계급이기도 하네.”


“그 뒤에 숙련공, 장인이 되는 거군요.”


“그렇지. 장인은 다시 책임 장인과 수석 장인으로 나뉘네. 둘은 상하 관계가 아니라 수평 관계지만 세간에서는 정치 업무 따위를 맡은 수석 장인을 더 높게 보는 경향이 있네.”


‘대장장이만 모아 놓은 곳을 보면서도 데스크 업무를 더 높이 치는 게 사람 사는 곳은 참 똑같구나.’


에드릭은 혼잣말로 뭔가 투덜거리더니 이내 고개를 털고 지향에게 집중했다.


“본래 장인이 되기 위해서는 숙련공으로 10년의 경력을 쌓고 다른 장인들이 보는 가운데 시험을 치러야 하지. 하지만 그대는 그럴 필요 없네. 중간 단계를 건너 뛰고 바로 장인 시험을 보게.”


“시험은 어떤 걸 봅니까?”


“시험을 치러야 한다는 사실 자체는 쉽게 받아들이는군.”


“실력을 보여서 입을 막으려면 시험을 보는 게 제일 빠르지요.”


“하하하! 내가 사람을 정확히 봤어! 그대는 정말 내가 바라는 말을 정확히 해주는군.”


에드릭이 망치를 내려놨다. 대화 때문은 아니었다. 단조 작업은 끝났다. 이제 열처리만 남았다.


“시험은 어렵지 않을 걸세. 그대의 실력은 분명하니까. 과제는 때마다 다르지만, 제한 시간 안에 주문서 사양의 철물을 만드는 게 전부일세. 건축물의 철물일 때도 자주 있지.”


“그거라면 익숙하군요.”


“정말인가? 이따금 스승이 응석을 너무 받아주는 바람에 숙련공 시절 내내 무기만 만들던 대장장이는 거기서 좌절할 때가 많은데.”


“시험이 기대되는군요.”


적당히 달군 검을 허공에 저으며 식혀서 담금질할 준비를 마쳤다. 용의 숨결을 높은 출력으로 바꿔 검이 빛날 때까지 달구는 사이 에드릭은 모루를 뒤집어 수조로 바꿨다.


연기와 함께 수증기가 치솟았다. 물이 기화되며 요란스러운 소리를 냈다.


“수리가 끝난 겁니까?”


딱 좋은 타이밍이 뤼시앙이 나왔다. 지향은 줄로 칼날을 긁었다. 걸리는 것 없이 매끄럽게 지나가는 줄이 아름다운 소리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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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2장 장인의 발걸음 (16) +3 24.06.08 113 15 12쪽
33 2장 장인의 발걸음 (15) 24.06.08 91 13 12쪽
» 2장 장인의 발걸음 (14) +1 24.06.06 119 12 13쪽
31 2장 장인의 발걸음 (13) +2 24.06.05 114 12 12쪽
30 2장 장인의 발걸음 (12) +2 24.06.04 128 14 12쪽
29 2장 장인의 발걸음 (11) +2 24.06.03 128 17 12쪽
28 2장 장인의 발걸음 (10) +1 24.06.02 140 16 11쪽
27 2장 장인의 발걸음 (9) +2 24.06.01 137 18 11쪽
26 2장 장인의 발걸음 (8) +3 24.05.31 137 18 12쪽
25 2장 장인의 발걸음 (7) +1 24.05.30 144 18 12쪽
24 2장 장인의 발걸음 (6) 24.05.29 146 19 12쪽
23 2장 장인의 발걸음 (5) +1 24.05.28 149 18 12쪽
22 2장 장인의 발걸음 (4) +4 24.05.27 160 18 12쪽
21 2장 장인의 발걸음 (3) +3 24.05.26 151 14 12쪽
20 2장 장인의 발걸음 (2) +2 24.05.25 160 18 12쪽
19 2장 장인의 발걸음 (1) +1 24.05.24 161 19 11쪽
18 1장 던전의 속삭임 (완) +3 24.05.21 210 21 13쪽
17 1장 던전의 속삭임 (16) +4 24.05.20 188 20 14쪽
16 1장 던전의 속삭임 (15) +1 24.05.19 206 20 13쪽
15 1장 던전의 속삭임 (14) +4 24.05.18 205 18 12쪽
14 1장 던전의 속삭임 (13) +5 24.05.17 205 21 13쪽
13 1장 던전의 속삭임 (12) +4 24.05.16 215 19 12쪽
12 1장 던전의 속삭임 (11) +2 24.05.15 231 21 13쪽
11 1장 던전의 속삭임 (10) +4 24.05.14 247 20 12쪽
10 1장 던전의 속삭임 (9) +6 24.05.13 271 21 12쪽
9 1장 던전의 속삭임 (8) +4 24.05.12 270 23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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