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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셔냐옹은 체셔냐옹이라 체셔냐옹

검은머리 던전 대장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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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체셔냐옹
작품등록일 :
2024.05.08 12:13
최근연재일 :
2024.06.10 11:30
연재수 :
36 회
조회수 :
8,167
추천수 :
707
글자수 :
198,121

작성
24.05.09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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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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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글자
12쪽

1장 던전의 속삭임 (5)

DUMMY

“역시 그 용도였군.”


“이 정도는 있어야 협상 테이블에 앉아 보기라도 할 거 같아서.”


“좋은 판단이야. 실라스 놈도 그걸 보면 눈이 홱 돌아갈걸.”


“고마워. 그럼 더 힘내서 완성해볼까.”


담금질을 마쳤으니 검은 8할 이상 완성됐다. 지향은 칼날을 다시 화로에 넣고 이번에는 훨씬 낮은 온도로 한 번 더 열처리를 거쳤다.


날을 세우고 표면을 마감하는 작업은 리안이 보기 쉽도록 배려했다. 칼날을 세우는 각도, 숫돌을 쓰는 손놀림 등 모든 게 중요한 가르침이었다.


“대장장이 씨는 오늘도 개인 작업인가?”


“이거 참, 오늘은 꼭 흉갑을 맡기고 싶었는데.”


“내일부터는 평소처럼 의뢰받을 겁니다. 급한 거면 옆에 알랭에게 맡기는 것도 한 방법이고요.”


“아무렴. 내가 이 친구만큼 잘한다고 말할 재간은 없지만 나도 나름 터줏대감이라고.”


“아, 알랭 씨야 잘 알죠. 하하하.”


알랭의 너스레가 분위기를 잘 풀었다. 지향은 주위 사람이 떠드는 소리를 배경 삼아 칼날을 다듬었다.


“칼코등이와 자루는?”


“처음 샀던 검에 달려 있던 걸 조금만 손 봐서 쓸 거야.”


검을 자유롭게 휘두르기 위해서 꼭 필요한 자루는 물론이고, 검을 쥔 손을 보호하기 위한 칼코등이도 무척 중요한 부품이었다.


원래는 두 부품을 만드는 데 며칠을 할애해야 했다. 그러나 지향은 기성품을 쓸 수밖에 없었다.


제 몸이 편해지고자 그러한 게 아니었다. 당장 적절한 소재가 없었다.


“나쁜 물건은 아니지만, 칼날에 비해 조금 딸리는 건 어쩔 수 없군.”


“기능성은 충분해. 사실 검을 고를 때도 칼날보다는 이 두 부품을 더 유심히 봤거든.”


황동제 칼코등이는 좌우로 길게 뻗은 단순한 형상이지만 투박하지 않고 맵시 있었다. 크기도 검에 끼웠을 때 딱 적당했다.


날카로운 각도로 치솟았거나 끄트머리가 뾰족하지도 않았다. 불필요한 장식도 없고 앞뒤로 볼록하지도 않아 검술을 펼치기에 좋은 형상이었다.


호두나무의 속을 파내 만든 칼자루에는 쇠가죽을 감싸 보강했다. 칼코등이와 마찬가지로 단순하면서 실용적이었다.


“보통 연합 대장간에선 누가 이런 부속품을 만들지?”


“글쎄? 부속품도 꽤 중요하니까 숙련공까진 아니어도 직공이 만들지 않을까? 그거 얼마짜리였지?”


“은화 마흔 닢짜리였지. 전투용 도검 중에선 중저가 보급형이었어.”


“아아, 그러면 아마 직공이 만들거나, 직공의 지도를 받는 수습공이 만들 거야. 숙련공의 손이 닿으면 가격이 확 뛰니까.


알랭이 대답하며 머리를 벅벅 긁었다. 그러고는 한숨을 푹 내쉬고 푸념했다.


“연합 놈들이 가격으로 장난질을 치고 있군. 그 정도 값을 할 검은 아니었던 거 같은데.”


“솔직히 내가 봐도 그 가격은 좀 아니더라.”


“독점이라 이거지. 노점 대장간에선 화살촉이나 단검 정도밖에 못 만드니까. 이젠 자네가 있지만.”


“나도 이런 설비로는 칼 한 자루 만들기 어려워.”


“그 한 자루가 대단하지. 이 칼은 말이야.”


알랭은 반짝거리는 검을 달빛에 비춰보며 감탄했다. 매끈한 칼날에 비치는 달과 구름이 마치 마법 같았다.


“대장장이 경력 20년이 넘는 내가 말하는데, 이건 명장의 명검이야. 노지에서 혼자 만들었다고는 절대 못 믿지.”


“천만에. 내가 보기엔 그럭저럭 괜찮은 수준일 뿐이야. 더 잘하고 싶은데 아쉬울 따름이지.”


“하하하. 대체 얼마나 더 대단한 걸 만들고 싶은진 모르겠지만, 뭐 좋아.”


알랭이 검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벌써 밤이 늦었다. 지향은 검을 마감하느라 시간 가는 걸 잊고 있었다.


“부속품까지 모두 결속해서 검을 완성하라고. 실라스한테 연락해둘 테니까.”


“좋아. 일단 자고 내일 해야겠어.”


지향은 잠자리에 들기 전에 칼날을 다시 살폈다. 별빛을 받은 칼날은 마치 신화의 시대를 마주하는 감성을 불러일으켰다.




* * *




“대단한 검이군. 주인장, 이 검은 얼마에 팔 거요?”


안 그래도 지향의 대장간은 늘 인산인해였다. 거기에 완성된 검을 전시하니 그걸 보겠다고 쉬고 있던 모험가까지 찾아와 발 디딜 틈도 없었다.


“아직은 팔지 않을 물건입니다.”


“왜? 완성된 게 아닌가?”


“이 검은 이미 용도가 정해져 있어요.”


이 문답만 벌써 수십 번째였다. 다들 공짜나 다름없이 명검을 얻은 알렉스의 얘기를 들어서 그런지 지향의 검에 군침을 흘렸다.


검을 숨겨둘 수도 있으나 지향은 그러지 않았다. 그저 차분히 기다렸다.


“실라스가 대답했어. 오늘 저녁에 보자네.”


“마침내 때가 됐군.”


손님과 구경꾼에게 치이며 버티는 사이 알랭이 낭보를 들고 왔다. 지향은 더욱 힘차게 쇠를 두드렸다.


이제 준비는 끝났으니 검을 계속 전시할 이유가 없었다. 지향은 잠시 짬을 내어 검을 수거해 텐트로 옮겼다. 구경꾼들이 탄식했다.


언제나 그렇듯 장내를 정리한 건 이번에도 알랭이었다. 쏟아지는 사람을 거리 곳곳에 흩어놓고 하는 김에 다른 대장간에 일감도 전해줬다.


덕분에 마음 편히 저녁까지 일한 지향은 평소보다 이르게 대장간을 정리하고 알랭과 함께 시내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의 품에는 천으로 감싼 검이 들려 있었다.


“긴장되네.”


“인제 와서?”


“각오해도 긴장하는 거 자체는 어쩔 수 없지. 게다가 난 대장장이지 사업가가 아니라고. 협상 같은 건 항상 불편할 수밖에.”


“그건 이해하지. 나도 벌써 10년째 얼굴 마주하지만 실라스랑 직접 만나는 건 영 껄끄러우니.”


“자네 경력은 20년 차 아니었어?”


“10년 전엔 다른 놈이었어. 그놈을 밀어내고 지금 자리를 차지했거든.”


불안감을 키우는 소리였다. 음지의 다툼이라니······.


그렇다고 돌아설 수는 없었다. 스스로 말했듯 어차피 언젠가는 마주해야 할 일이었다.


실라스의 사무실은 노점 대장간 거리와 가까운 교외에 있었다. 덕분에 오래 걷지 않아도 됐다.


입구부터 덩치 좋은 전직 모험가가 지향과 알랭을 맞이했다. 알랭과는 잘 아는 사이인지 가볍게 손 인사도 나눴다.


“아, 명성이 자자한 신인이로군. 지향. 나와 계약한 지 아직 한 분기도 안 지났을 텐데 벌써 이렇게 유명해지다니, 정말 대단해.”


사채업자 실라스 던컨. 짙은 갈색 머리와 세심하게 관리한 턱수염이 인상적인 30대 후반의 남성이었다. 가는 눈썹과 더 가는 눈매가 마치 뱀 같은 느낌을 줬다.


사무실에는 커다란 책상과 소파, 갑옷을 입힌 장식용 마네킹이 있었다. 그리고 실라스의 뒤로 경호원 둘과 사환이 대기하고 있었다.


“오랜만입니다. 대장간 설비는 여전히 잘 쓰고 있습니다.”


“당연히 잘 쓰고 있겠지. 매주 임대료를 그렇게 꼬박꼬박 잘 내려면 그냥 잘 쓰는 정도론 부족하니까. 우선 자리에 앉게.”


실라스가 자리를 권하자 사환이 차를 내왔다. 지향이 검을 무릎에 내려놓으며 자리에 앉자 실라스가 눈을 반짝였다.


“자, 그럼 우리 소문이 자자한 대장장이가 무슨 일로 나를 만나러 왔는지 들어볼까?”


“한 모험가 파티가 던전에 함께 가달라고 부탁하더군요. 그런데 던전에 들어가자니 대장장이로서 장비가 부족합니다.”


“뭐, 숫돌과 줄만 있으면 충분하지 않나?”


실라스가 능청스럽게 말했다. 지향이 고개를 저었다.


“내가 뭘 요구할지 이미 알고 있잖아요.”


“이봐 신입. 반대로 묻겠는데, 당신이 뭘 요구하는지 알아?”


“모릅니다. 그래서 묻는 거지요.”


“풉, 푸하하하하하! 아, 이 친구 이거 재밌군. 하하하하하!”


실라스가 시원하게 웃었다. 그는 한참이나 멈추지 않고 웃었다.


“하아. 좋아. 어이, 설명서.”


마침내 웃음을 멈춘 실라스가 사환에게 손짓했다. 사환이 종이 두 장을 가져왔다. 거기에는 그림과 설명이 있었다.


“던전에서 단조와 열처리를 하고 싶은 대장장이는 당신 혼자가 아니야. 여기 이 도구들이 그걸 가능하게 해주지.”


“<용의 숨결>, <숲의 제단>. 멋진 이름이군.”


지향 대신 알랭이 글을 읽어줬다. 지향은 글을 모르지만 그림을 보고 대강의 내용을 유추했다.


용의 숨결은 휴대용 토치였다. 숲의 제단은 접이식 탁자 같았는데, 그림으로 보아 땅에 내려놓으면 뿌리를 내려 단단히 고정되는 모양이었다.


“이름만 멋진 게 아니야. 들고 다니는 대장간이라고 해야겠지. 대장장이에게 가장 필요한 게 뭐겠나? 당연히 화로와 모루지. 망치는 뭐, 그냥 들고 다니라고.”


“둘을 빌려주시겠습니까?”


“사업 이야기로군. 요즘 떠오르는 대장장이기도 하니 파격적으로 투자해 주지. 대여료는 하루 은화 열 닢이고 투자 비용 회수로 던전 수익의 절반!”


지향이 말을 잇지 못했다. 순간 뭘 잘못 들었나 싶었다.


“계약서가 필요한가? 이거 참 꼼꼼한 친구야.”


“아니, 잠깐. 그 조건은 조금 과합니다.”


“과하다고? 이봐! 이 둘이 그냥 물건으로 보이나? 이건 마법이야, 마법. 돈이 있다고 만져볼 수나 있을 것 같나? 이런 걸 위험한 던전에 들고 들어가는 데 담보도 없이 빌려주는 거야.”


“담보 말입니까?”


기회가 왔다. 지향이 검을 감싼 천을 벗겼다.


“이건 어떻습니까?”


지향은 칼을 감싼 천을 벗겼다. 칼날이 샹들리에의 빛을 받더니 전구처럼 번쩍였다.


지향이 칼날을 잡고 자루를 실라스에게 넘겼다. 실라스는 그걸 받아 들고는 눈을 번쩍 떴다.


“칼날이 엄청나게 날카롭군. 면도를 해도 되겠어.”


칼날을 위아래로 움직이며 훑어본 그는 이내 뒤에 서 있던 경호원에게 칼을 넘겼다.


“날카로울 뿐만 아니라 단단하고 질깁니다. 철을 내리쳐도 이가 나가거나 칼날이 말리지 않지요.”


“시험해 봐도 되겠나?”


“물론입니다.”


실라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신호를 본 경호원이 검으로 있는 힘껏 장식용 갑옷을 내리쳤다. 장검이 철 투구를 찢고 안에 든 마네킹까지 파고들었다.


“어때?”


“연철로 만든 장식용 투구라지만, 그래도 철인데 완전히 뚫었습니다. 대장장이가 말한 대로 칼날이 상한 흔적도 없습니다. 여전히 단단하고 곧습니다.”


“훌륭하군.”


실라스가 검을 받아 들었다. 자루부터 칼끝까지 다시 살펴본 그는 이내 입맛을 다셨다.


“연합의 장인이나 만들 법한 칼이야. 만일 그랬으면 금화 스무 개는 너끈히 받았겠지.”


알랭이 입을 떡 벌렸다. 금화 스무 개는 알랭이 1년 내내 번 돈을 다 합쳐도 안 나오는 액수였다.


“가치를 이해하니 좋군요.”


“하지만 제작자 각인이 없는 노점 대장간에서 팔면 금화 두 개도 받기 힘들지. 아마 이 칼로 협상할 생각이었겠지만······.”


“던컨 씨라면 제작자 각인이 없어도 금화 열 개 이상은 받을 수완이 있을 테지요.”


지향의 말에 실라스가 실실 웃었다.


“당돌한 친구. 좋아! 난 친절한 사업가니까 이번에도 친절해야지. 이 검과 똑같은 가치의 검을 한 자루 더 가져오면 특별히 비용을 반으로 깎아주지.”


“여전히 터무니없는 조건이군요. 그 검은 선물이 아니라 담보로 맡기는 겁니다.”


“바보 같은 소리. 절반이나 깎아주는 것도 감사한 줄 알아야지!”


“당신 목적은 돈을 버는 겁니까, 아니면 대장장이를 괴롭히는 겁니까?”


“둘 다! 푸하하하하하하.”


지향의 관자놀이로 혈관이 툭 불거졌다. 지향이 천천히 호흡을 고르고 몸에 힘을 풀었다.


“계약은 없던 걸로 해도 좋습니다. 하지만 그 태도에 책임질 각오가 필요할 겁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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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1장 던전의 속삭임 (16) +4 24.05.20 184 20 14쪽
16 1장 던전의 속삭임 (15) +1 24.05.19 205 2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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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1장 던전의 속삭임 (13) +5 24.05.17 204 21 13쪽
13 1장 던전의 속삭임 (12) +4 24.05.16 212 19 12쪽
12 1장 던전의 속삭임 (11) +2 24.05.15 228 2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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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1장 던전의 속삭임 (9) +6 24.05.13 268 21 12쪽
9 1장 던전의 속삭임 (8) +4 24.05.12 269 23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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