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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셔냐옹은 체셔냐옹이라 체셔냐옹

검은머리 던전 대장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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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체셔냐옹
작품등록일 :
2024.05.08 12:13
최근연재일 :
2024.06.10 11:30
연재수 :
3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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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66
추천수 :
707
글자수 :
198,121

작성
24.05.08 16:18
조회
3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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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글자
12쪽

1장 던전의 속삭임 (3)

DUMMY

“갑자기 무슨 뜬구름 잡는 소리여?”


“그런 게 있어.”


지향은 마석을 돈주머니에 넣고 잘 봉했다. 마석도 흥미롭지만, 그보다 먼저 할 일이 있었다.


“알랭, 던전에 들어가 본 이야기를 좀 듣고 싶은데.”


“마석을 보니까 흥미가 동했나? 이 베테랑 대장장이만 믿으라고. 하지만 내 입은 꽤 비싸거든.”


“알았어. 오늘 저녁은 내가 살게. 사냥터지기의 쉼터에서 한턱낼 테니까 가능한 자세한 얘기 좀 부탁하지.”


“통 크게 쏘는군.”


지향이 시내 중심가에 있는 여관 식당 이름을 대자 알랭이 코를 벌름거렸다. 노점 대장간 거리의 터줏대감도 자주 갈 생각을 못 하는 곳이었다.


“은화 정도는 내줄 테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하하하하하! 자네 돈 쓸 줄 아는군! 그럼 기다릴 게 뭐 있어? 빨리 정리하고 가자고!”


“슬슬 모험가들이 몰려올 테니까 그 사람들 일까진 맡고 가야지.”


“성실하구먼! 좋아, 나도 돕지. 남은 작업 있으면 전부 맡기라고!”


“그러면 리안이랑 같이 녹 좀 제거해주겠어?”


“음, 이런 일은 생각 못 했는데. 까짓거 못할 것도 없지!”


알랭이 자기 숫돌을 들고 와서는 빠른 손놀림으로 칼날을 갈았다. 지향은 그러는 사이 찾아오는 손님을 응대하고 새로운 의뢰를 받았다.


해가 완전히 저물기 직전에 마지막 손님까지 떠났다. 지향은 대장간을 정리하자 알랭이 녹이 반쯤 사라진 칼을 지향에게 내밀고 길을 재촉했다.


“역시 베테랑은 베테랑이군.”


“뭐, 기교도 필요 없는 녹 제거에선 역시 힘 좋은 젊은 놈이랑 큰 차이를 보이기 어렵지만 그래도 요령이란 게 있으니까. 이제 됐으니 어서 가자고!”


“애가 다 됐군.”


“맛있는 요리 앞에선 누구나 애가 돼도 좋아. 아니, 애가 돼야 해! 좋은 요리를 앞에 두고 근엄한 척이나 하는 건 요리를 모욕하는 거니까!”


“대단한 철학이네.”


사냥터지기의 쉼터는 외곽에 있는 여관 식당과 달리 깨끗하면서 정갈한 분위기였다. 이용객도 수익이 안정된 중견 이상의 모험가나 시내에서 노동하는 고수익자들이 태반이었다.


자리를 잡고 앉은 알랭은 종업원에게 <오늘의 요리>를 설명 들으며 한껏 들떴다. 사냥터지기라는 이름에 걸맞게 육류 요리가 메인이었다.


“기대되는군.”


“솔직히 말해 나도. 요 며칠 동안 찌꺼기 샌드위치나 먹었으니 원.”


“어이어이. 나도 그 정도로 허리끈 졸라매고 살진 않는다고. 자넨 나보다도 벌이가 좋으면서 지나치게 아끼는 거 아니야?”


“오래 일하면서 어느 정도 여유가 생긴 그쪽이랑 달리 난 이제 이 동네에 막 적응했으니까. 그래도 앞으로는 생활에도 조금씩 더 써야지.”


떠드는 사이 수프가 나왔다. 사슴 고기가 들어간 진한 맛의 농후한 수프였다.


냄새를 맡자 지향의 배가 확 쪼그라들듯이 아려왔다. 오랜만에 맡는 제대로 된 요리의 향기는 굶주린 위장에 치명적이었다.


두 사람은 말없이 수프를 즐겼다. 수프를 모두 먹고 나서야 말할 정신이 돌아왔다.


“언제 와도 만족스럽군.”


“열심히 돈을 벌 이유가 하나 늘었네. 달에 한 번, 기왕이면 더 자주 오고 싶은 맛이야.”


“하하하. 열심히 일하자고. 그럼 주요리가 나오기 전에 적당히 떠들며 배라도 꺼뜨릴까. 던전 출장에 대해 알고 싶다고?”


“내가 아는 게 뭐 하나라도 있어야지 말이야.”


“좋은 자세야. 그럼 어디 보자, 궁금한 게 있어?”


“뭘 궁금해야 하는지도 몰라. 그러니 일단 경험 위주로 알려 줘.”


지향의 말에 알랭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랭은 수프 그릇의 바닥까지 싹싹 긁어먹고 입을 열었다.


“우선 던전 출장 중에는 대장장이라기보단 짐꾼이야.”


“짐꾼?”


“그래. 통상 모험가 파티는 네 명. 거기에 추가 보조 한 명. 합쳐서 다섯 사람분의 식량과 보급 물자, 기타 등등을 짊어지고 다녀야 하지. 원래부터 짐꾼 역할이 주다 이거야.”


꽤 고돼 보이는 말이었다. 더군다나 대장장이 기술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지 않나?


지향은 더 들어보기로 하고 알랭에게 손짓했다.


“원래는 짐꾼을 고용했어. 그런데 그냥 짐꾼이면 다른 일도 겸할 수 있는 게 좋잖아? 요리나, 지도 제작이나, 아니면 무기 정비 같은 일 말이지.”


“그렇군.”


“실제로 보조의 역할은 대장장이뿐만 아니라 여러 직업군에서 데려가지. 아예 짐꾼으로 특화된 사람을 찾기도 하고. 중요한 문제. 그럼 대장장이를 왜 찾을까?”


“아까 말한 대로, 무기 정비가 중요하겠지.”


“정답.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할 수 있는 게 많진 않아.”


알랭의 말에 지향도 고개를 주억거렸다.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던전 안에 가면서 화로와 모루를 들고 갈 수는 없었다. 화로는 너무 크고, 모루는 너무 무겁다.


기껏해야 줄이나 숫돌을 들고 가서 날을 가는 게 전부였다. 그런데 이건 대장장이가 아니더라도 할 수 있었다.


“그럼 실제론 정비가 아니겠네. 그보다는 무기의 현 상황을 먼저 파악하고 이탈할 때를 미리 알려주는 경보에 가깝겠어.”


“또 정답. 무기는 기본적으로 비싸니까 조심해서 다루기야 하지만, 일단 전투가 시작되면 앞뒤 잴 수 없을 때가 많거든.”


전투가 끝나고 무기를 보더라도 겉에 보이지 않는 내부 사정을 알 리가 없었다. 눈에 보이는 균열이나 결함이 없으면 무기 내부가 어떤 상태일지 주인도 몰랐다.


“한번은 내가 전사의 검에서 금을 찾았어. 실금인 줄 알고 슬쩍 갈아봤는데 안까지 이어졌더라고. 심지어 안이 더 컸어! 당연히 냅다 도망치자고 했지. 그대로 싸웠으면 칼이 부러졌을 거야.”


“위험했네. 그래서 무사히 나왔어?”


“그렇지! 그래서 대장장이가 중요한 거야. 물론 쇠 좀 만졌다고 내부 균열을 찾는 건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지. 그때처럼 갈아서 찾는 일도 항상 있는 행운이 아니고. 적당히 감으로 위험하다 싶으면 물러나자고 하는 거야.”


“아, 난 그거 할 줄 알아.”


“뭐를? 표면에 드러나지 않는 내부 균열을 찾을 수 있다고?”


“응.”


알랭이 눈을 가늘게 뜨고 지향을 바라봤다. 잔뜩 찡그린 그의 얼굴을 본 지향이 어깨를 으쓱였다.


“경험이 많아서. 두드려서 나는 소리나 진동으로 대강 어디가 이상한지 정도는 알 수 있어.”


“전부터 느꼈지만 정말 사람이 맞나? 경험이 많다고 되는 일이 아닌 것 같은데. 대체 어디서 뭘 하다 오면 그게 되는 거지?”


“과거가 화려하긴 한데, 말하기는 좀 힘들어.”


“됐네. 말할 필요 없어. 이 바닥에 말 못 할 사연 가진 놈이 어디 자네뿐이랴? 애초에 인종도 다른 사람이 여기까지 왔으면 대단한 사연이 있겠지. 굳이 탐색하지 않을 테니.”


“범죄 같은 건 아니야. 그래서 말하기 힘든 것도 아니고.”


“누구나 그렇게 말하겠지. 아니, 됐어. 말 안 해도 되니까. 탐색 안 한다니까 그러네.”


그쯤 얘기했을 때 주요리가 나왔다. 버섯 크림소스를 곁들인 사슴 안심 스테이크와 로즈메리를 올린 구운 당근이었다.


지향과 알랭은 요리를 한 번 보고는 서로를 마주 봤다. 말하지 않아도 알았다. 두 사람은 말 대신 포크와 나이프를 집었다.


눈물 나게 맛있었다. 음식을 목 너머로 삼키면 눈앞에서 사라지는 게 아쉬울 정도로 맛있었다.


최대한 맛을 음미하면서 천천히 먹고 싶었는데 목울대는 야속하리만치 부지런했다. 너무 부드러워서 씹질 않아도 술술 넘어가니 이거 참 참기 힘들었다.


“사슴 고기는 질기거나 냄새가 심할 거라는 편견이 있었어.”


“세상에, 왜 그런 이상한 편견을?”


“그냥. 가축이 아니니까? 소나 돼지보다 자주 접하기 힘들어서?”


“이제 편견이 사라졌겠군.”


“요리를 잘하면 뭘 먹어도 맛있다는 건 확실히 알았어. 여기는 버섯이랑 당근까지 맛있네.”


지향은 크림소스를 삼키고 숨을 내쉬면 목구멍으로 넘어오는 향이 너무 좋았다. 매일 이런 걸 먹을 수만 있으면 무슨 짓이라도 하겠다는 생각이 들 만큼.


“후우, 젠장. 좀 더 천천히 먹었어야 했는데.”


“자네도 쌍소리를 다 할 줄 아는군. 찌꺼기 샌드위치를 먹어도 얼굴만 찌푸리더니.”


“아래로는 어느 정도 참을 수 있는데 위를 경험하고 나면 다시 내려가긴 어렵단 말이지. 던전 얘기나 다시 하지. 음식 얘길 계속하다간 속이 터질 거 같아.”


지향의 말에 알랭도 동의했다. 지금은 좋은 음식을 만끽하고 포만감 속에서 대화하는 게 나았다. 내일을 생각하면 좋은 오늘의 기분이 어제로 달아나 버릴 거 같으니까.


“그러지. 아무튼 뭐 실제로 하는 일은 무기가 언제쯤 망가질지, 전투를 피할지 말지 정하는 거야. 그 이외엔 짐꾼이고.”


“전투 자체는 어때?”


“우린 생각할 필요도 없어. 애초에 우리가 전투에 나서면 모험가한테는 더 불리해. 우린 전투원이 아니니까.”


“비전문가가 나서서 좋은 꼴 보기는 힘들지.”


혹시나 던전 안에서 직접 싸워야 할 일이 생길까 걱정했는데 다행이었다. 한편으로는 그래도 사방이 마물인데 위험할 일은 없을지 걱정됐다.


“아, 표정 보니 무슨 생각인지 알겠네. 그건 걱정 안 해도 돼. 마물이 배후에서 나타날 일은 없으니까.”


“아무래도 그게 제일 무섭지.”


“심층으로 내려가면 모르지만, 알렉스는 그럴 실력도 아니잖아. 그건 걱정할 거 없어.”


“다행이군. 전투는 그럼 아예 생각도 안 해도 되는 건가?”


“파티가 전멸하지 않는 한 그렇지. 설령 전멸해도 표층엔 모험가가 많아서 여차할 땐 다른 모험가 파티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어.”


슬슬 뭘 물어봐야 할지 윤곽이 잡혔다. 지향은 던전에서 야영할 때 경험이나 요령 등을 물었다.


모험가는 짐을 줄여야 하니 텐트를 치거나 숙영지를 짓지 않았다. 침낭으로 때우거나, 그마저도 없으면 망토를 모포처럼 둘러 잠을 청했다.


“험하네.”


“험하지. 대신 요게 많이 벌리거든.”


알랭이 집게손가락을 모아 동그라미를 그렸다. 대단한 비법을 말해주겠다는 양 목소리를 낮췄다.


“수익 분배에서 우린 5에서 10퍼센트씩 받을 수 있어. 거기다 고용비는 또 따로 받거든.”


“그쪽은 얼마까지 받아 봤어?”


“3층에서 닷새 동안 싸우고 금화 한 개를 벌었지. 물론 그건 기록적인 수익이고 평균은 은화 마흔 개 안팎이야.”


닷새에 은화 마흔 개면 지향에겐 그다지 신통치 않은 수익이었다.


지향은 손이 빠르고 여러 의뢰를 한꺼번에 처리할 수 있었다. 당연히 다른 대장장이보다 훨씬 많이 벌었다.


“수익 분배에서 10퍼센트라고? 그거 현물로 받을 수도 있나?”


“보통은 안 그래. 현물을 팔 창구도 없으니까. 하지만 대장이랑 잘 협상하면 되지. 알렉스는 자네를 신봉하니까 말만 하면 될걸?”


지향이 뭘 노리는지 아는 알랭은 음흉하게 웃었다.


“어느 정도 윤곽은 잡혔어.”


“잘 됐군. 후식을 더 맛있게 즐길 수 있겠어.”


막 기대하는 찰나 두 사람의 식탁에 그림자가 드리웠다. 종업원이 후식을 가져온 줄 알고 기쁜 마음으로 고개를 돌린 알랭은 인상을 팍 찌푸렸다.


“긴가민가했는데 알랭이잖아. 덤불 장인이 여기엔 어떻게 온 거야?”


“아, 염병할. 무슨 볼일이야, 발터크.”


“그렌하임 씨겠지. 그냥 네놈 같은 덤불 장인이 무슨 수로 이런 고급 식당에 왔나 궁금해서 와 봤지. 며칠 굶으며 준비했나?”


발터크라 불린 이는 알랭과 비슷한 연배로 보이는 중년 남성이었다. 알랭보다 훨씬 피부도 좋고 살집도 붙어 잘 먹고 산다는 건 누가 봐도 알만했다.


“누구지?”


“그러는 그쪽은 누구지? 차림새를 보면 똑같이 덤불 장인 같은데.”


오늘 처음 들은 단어지만 의미는 알 수 있었다. 노점 대장간을 조롱하는 의미가 분명했다.


지향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지향은 발터크와 비슷한 키이나 어깨가 넓어 실제보다 더 커 보였다.


“노지향이다. 그쪽은?”


“크흠. 발터크 그렌하임. 연합의 숙련공이다.”


“그렇군. 반갑다.”


지향이 손을 내밀고 악수를 청했다. 손을 맞잡은 순간 발터크가 아귀에 힘을 주며 신경전을 벌였다.


“말이 짧군, 그래. 덤불 장인 주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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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1장 던전의 속삭임 (16) +4 24.05.20 184 20 14쪽
16 1장 던전의 속삭임 (15) +1 24.05.19 205 20 13쪽
15 1장 던전의 속삭임 (14) +4 24.05.18 203 18 12쪽
14 1장 던전의 속삭임 (13) +5 24.05.17 204 21 13쪽
13 1장 던전의 속삭임 (12) +4 24.05.16 212 19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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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1장 던전의 속삭임 (9) +6 24.05.13 268 21 12쪽
9 1장 던전의 속삭임 (8) +4 24.05.12 269 23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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