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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윤 님의 서재입니다.

연극(戀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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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윤
작품등록일 :
2012.02.13 16:20
최근연재일 :
2012.02.13 16:20
연재수 :
2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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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수 :
46
글자수 :
80,507

작성
12.02.13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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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3 곰돌이 인형극의 탄생 - (4)

DUMMY

그렇게 장사를 마치고, 우리는 간단한 식료품과 빵을 사고 마지막으로 잡화점에 들려서 그녀가 만들 물건들의 재료를 샀다. 한 바퀴 돌고 나니, 어느 샌가 우리들에겐 커다란 봉투가 하나씩 안겨져 있었다. 한쪽 팔로 목발을 짚고 한 쪽 팔로 짐을 들었기에 별로 문제 될 건 없었다.


석양을 등지며 걸어가는 그녀의 얼굴엔 미소가 그려져 있다.


“신 군. 혹시 바느질 할 줄 알아요?”


뜬금없는 그녀의 말에, 난 고개를 갸웃거리며 대답했다.


“바느질이라면… 옷을 꿰매는 그것을 말하시는 지요?”


“네! 바로 그거에요.”


반짝거리는 눈으로 나를 쳐다보는 그녀지만, 당연히 할 줄 모르는 나이다. 라이오네에 배속된 옷들은 전부 특수제질로 제작 된 옷들로, 왠만해선 상처하나 나지 않는 옷들이다. 그리고 수선을 하려고 한다 해도 전문 재봉사들이 해야하는 것이니. 할 줄 모르는 게 당연하지.


그렇기에 난 솔직하게 대답했다.


“할 줄 모릅니다.”


“음. 그래요?”


그녀는 내 말에 잠시 고민을 하더니, 손가락을 튕겼다.


“그래도 괜찮은 걸요. 자 빨리 가요!”


“예…”


무슨 일일까? 개의치 않아 하는 그녀지만, 일련의 이 문답들에서 왜 불안함이 느껴지는 거지…


이 의문에 대한 궁금증은 금방 풀 수 있었다.


집에 돌아오자, 어느덧 날이 저물어 셀레느와 루나가 떠올라 산맥 너머로 달빛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때늦은 저녁. 저녁을 먹고 나자 그녀는 늘 하던 대로 등불 아래에서 다음 날 팔 물건들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그 곁에 조용히 앉아, 칼을 닦곤 한다. 평소에는 그녀가 이것저것 말을 걸어준다. 말 수가 없는 나는 짧게 대꾸할 뿐이지만 그녀의 이야기를 듣는 게 좋았다. 하지만 오늘처럼 이렇게 조용히 있는 것도 나쁘지 않다. 아니 오히려 편안한 느낌이 들어서 좋았다.


“끝났다!”


그녀가 기쁨의 탄성을 지르며 만들고 있던 장식품을 내려놓는다. 끝났나? 그녀가 정리를 물건들을 정리하는 걸 보며, 나도 검 닦는 걸 멈췄다.


오늘은 조금 일찍 끝났군. 이제 그녀는 바닥에 깔린 물건들을 정리할 것이다.


하지만 내 예상과는 다르게 그녀는 뒤쪽의 서랍에서 다른 무언가를 꺼내서 늘어놓았다. 아까 사놨던 재료들 또한 늘어놓더니 그녀는 나를 앞으로 오라고 불렀다.


“이건 뭡니까…?”


“뭐긴요. 곰돌이 인형을 만들 재료들이지요.”


“그렇군요.”


“자 신 군도 이거 받아요.”


그러더니, 그녀는 나에게 널찍한 푸른색의 리넨 천을 건네주었다.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건네 줘서, 얼떨결에 건네받았지만, 난 곧 반문 할 수 밖에 없었다.


“이걸 왜 저에게?”


“자 그럼, 같이 만들어 봐요.”


이 리넨으로 무엇을 하라는 걸까. 앞에 가위나 바늘 그리고 뒤쪽에는 솜이 늘어져 있다.

이것으로 무엇을 만든 다는 거지.


“만들다니요. 무엇을?”


의아함에 되물어보지만, 그녀는 웃으며 뒤쪽에서 곰돌이 인형을 꺼내오더니, 나에게 보여주며 말했다.


“이 곰돌이 친구들을 만들 꺼에요. 그래서 오늘 재료도 잔뜩 사왔는걸요.”


인형 만들기라니. 바느질의 바자도 모르는 내가 이런 걸 수공예로 만들 수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재료만 날려먹을 게 뻔히 예측되기에 난 거부하기로 했다.


“하지만 전 바느질을 할 줄 모르는…”


그러나 역시 그녀는 내 말을 듣지도 않은 채, 내 말을 자르며 나에게 공구들을 건네주기 시작했다.


“제가 만드는 순서를 가르쳐 드릴 테니까. 따라만 해요. 이거 중요한 거니까 잘 만들어야 되요? 신 군도 이제 슬슬 집안일도 잘 하니까. 일의 영역을 넓혀야지요!”


“네…”


뭐 따라하라는 대로만 하면 되는 거니. 그리고 도울 일이 늘어난다면 그다지 나쁜 일은 아니다. 그렇기에 그녀의 말을 따라 곰돌이를 만들어보기로 했다.

곰에 본을 뜨고 밑 작업은 대강 따라할 수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바느질이었다.


“음.”


“괜찮아요?”


몇 번씩 바느질을 하다가, 바늘에 손가락을 찔리곤 했다. 그녀는 그 때마다 걱정스러운 눈빛을 보냈다. 하지만 안부를 물을 뿐. 그만 하라고는 해주지 않는다. 뭐 너무나도 박혀버린 굳은살로 인해, 피가 나거나 하진 않았지만, 고통이 없는 건 아니었다. 그래도 내 고통이 비례하는 만큼 곰돌이 인형이 조금씩 그 형체를 갖춰가고 있었다.


신기했다. 그녀가 말하는 일련의 과정을 따라함으로써, 눈으로만 보던 이런 인형을 만들 수 있다니.


내 손으로 이런 걸 할 수 있다고 생각해보지 않았다.


“이렇게 무언가를 만든 다는 건 즐거운 일이죠?”


그래.. 아픔보다도 분명 내가 느끼고 있는 건 즐거움이라는 기분일 것이다.


“그렇군요.”


내가 해왔던 것은 파괴.


오직 그 뿐이었으니까…


전쟁터에서 사람을 베며 살아남았던 일…


처음으로 받았던 암살 임무…


울베린의 대학살마저…


여태까지 내가 살아온 길. 무언가를 없애고 파괴하며 지나왔을 뿐이다. 원하건 원하지 않았던 간에 내게 주어진 길은 그것뿐이었으니까… 하지만 지금 내 손은 파괴하는 것이 아닌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있다. 아직 미숙하지만 말이다. 피로 물든 쓸모없는 손이라 생각했는데… 이런 것도 가능한 것일까.


“신 군, 그거 알아요?”


“무엇 말씀이신지요.”


“물건을 만든 다는 건, 생명을 만드는 거래요.”


“생명 말입니까?”


“네. 비록 제가 만든 곰 모양의 천으로 된 인형이지만, 이렇게 곰 인형이라는 형태가 되어 세상 속에서 살아가주는 걸요. 생명을 가지고요.”


“하지만… 생명은 살아있는 생물체에게만 있는 것 아닙니까?”


“움… 그렇게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전 그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신 군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생명체들은 뭐라고 생각해요?”


생명체라…


“숨 쉬고, 움직이는 유기체 들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요.”


생각해서 말을 해본 것이지만 그녀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움직이진 못하지만, 꽃도 나무도, 그리고 바위도 다 살아있는걸요.”


“하지만, 바위 같은 건 그저 돌덩이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닙니까?”


“아니에요, 그러니까 살아있다는 건 말이죠. 그 존재가 세상에 의미를 부여해서 변화시킬 수 있다면, 그것이 살아있는 거에요. 꽃도 나무도 바위도 강물도… 다 살아서 세상에 각자의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살아가는 거니까요. 가령 홀로 떨어져 있는 돌 같은 건 아무도 신경 쓰지 않고 아무에게도 어떤 영향을 주지 않죠. 이때는 그저 존재할 뿐. 살아있는 게 아닌걸요. 하지만 그 돌도 누군가 발견해서, 서로에게 의미가 생기는 순간 살아 있을 수 있어요. 그 돌에게 생명이 불어넣어졌다고나 할까요.”


그녀의 말의 의미를 조금씩 되새겨본다. 확실히 아까까진 천에 불과했지만… 분명 그녀의 손에 의해 곰 인형이라는 것으로 만들어진다. 그래… 누군가에게 팔려나간다면 그 곰돌이는 사간 사람에게 어떤 의미를 가진 존재가 될 것이다. 누군가에게 의미를, 존재를 각인시킴으로써 살아가는 것인가…


“맞아요. 존재는 말 그대로 존재하는 것 뿐. 살아있다는 것과는 달라요.”


그녀의 곰 인형은 이제 거의 완성이 되어간다.


“신께서도 저희를 만든 건 그런 이유에서 였을꺼에요. 완벽한 상태이지만 혼자만 존재한다면 그저 홀로 존재할 뿐, 살아있다고는 할 수 없으니까요.”


“그렇군요…”


“네. 그래서 뭔가를 만드는 건 작게나마 우리의 손으로 세상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소중하게 만든 물건을 좋은 사람이 사가 줬으면 해요. 그리고 제가 세상에 남길 수 있는 유일한 의미이니까요.”


순간 쓸쓸해 보이는 그녀의 표정을 본 것은 잘못 본 것이었을까? 그래 잘못 본 것이다. 저렇게 따스한 얼굴을 하는 그녀를 보고, 쓸쓸하다고 느끼다니. 그래서 그녀가 노점상에서 물건을 바라보는 시선이 그랬던 것인가.


“제가 만들고 있는 이 곰 인형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글쎄요. 그건 신 군이 직접 부여해야지요.”


아직 천 조각이 연결 된 것뿐이지만. 막연하나마 곰 인형이 완성된 것을 그려봤다. 누군가 이 곰 인형을 사가서 좋아해줄까… 파괴하는 것 밖에 할 줄 모르는 내 손으로… 처음 무언가를 만들어 낼 수 있을까… 이 세상에 생명을 부여하는 일을…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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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곰돌이 인형극의 탄생 - (4) 12.02.13 104 2 9쪽
21 #3 곰돌이 인형극의 탄생 - (3) 12.02.05 169 2 8쪽
20 # 3곰돌이 인형극의 탄생 - (2) 12.02.04 86 2 8쪽
19 #3 곰돌이 인형극의 탄생 - (1) 11.12.03 148 2 12쪽
18 #2 특이한 소녀와의 재회 - (10) 11.12.02 234 2 14쪽
17 #2 특이한 소녀와의 재회 - (9) 11.11.30 149 2 10쪽
16 #2 특이한 소녀와의 재회 - (8) 11.11.25 114 2 3쪽
15 #2 특이한 소녀와의 재회 - (7) 11.11.24 122 2 12쪽
14 #2 특이한 소녀와의 재회 - (6) 11.11.22 134 2 4쪽
13 #2 특이한 소녀와의 재회 - (5) 11.11.18 165 2 10쪽
12 #2 특이한 소녀와의 재회 - (4) 11.11.17 128 2 8쪽
11 #2 특이한 소녀와의 재회 - (3) 11.11.14 130 2 8쪽
10 #2 특이한 소녀와의 재회 - (2) 11.11.12 195 2 6쪽
9 #2 특이한 소녀와의 재회 - (1) 11.11.11 255 2 4쪽
8 #1 빛의 탑 공략 - (7) 11.11.10 228 2 13쪽
7 #1 빛의 탑 공략 - (6) 11.11.09 190 2 3쪽
6 #1 빛의 탑 공략 - (5) 11.11.08 174 2 6쪽
5 #1 빛의 탑 공략 - (4) 11.11.08 184 2 9쪽
4 #1 빛의 탑 공략 - (3) 11.11.08 214 2 9쪽
3 #1 빛의 탑 공략 - (2) 11.11.08 303 2 12쪽
2 #1 빛의 탑 공략 - (1) 11.11.08 380 2 9쪽
1 # 프롤로그 # +1 11.11.08 526 4 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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