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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윤 님의 서재입니다.

연극(戀劇)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미윤
작품등록일 :
2012.02.13 16:20
최근연재일 :
2012.02.13 16:20
연재수 :
22 회
조회수 :
4,440
추천수 :
46
글자수 :
80,507

작성
11.11.30 17:13
조회
148
추천
2
글자
10쪽

#2 특이한 소녀와의 재회 - (9)

DUMMY

이곳에서 머문 지도 어느새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몸의 내 외상은 대부분 회복이 되었지만, 다리가 나아질 생각을 하지 않는다. 영력만 돌아온 다면 금방 치료가 가능 할 텐데, 그 영력조차도 감감무소식이다.


몸만 회복되면 바로 떠날 생각이었는데…

그랬는데…


일련의 사건들이 나를 떠나지 못하는 몸으로 만들어 버렸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건 빨래 널어놓는 일.


그렇다.

젖은 빨래를 그저 기나긴 빨랫줄에 펼쳐놓기만 하면 되는 쉬운 일이다. 키가 181세리크(=1cm)였기에 너는데 별 어려움이 없었다. 옷감을 하나하나 펼쳐서, 빨래 대에 널어놓았다.


언제쯤 난 이 집을 떠날 수 있을까…


몸도 괜찮아진 지금, 조금 불편하지만 여행도 가능은 할 것이다. 다만 영력이 안 돌아 온 것이 문제이긴 하지만 수도로 돌아가는 데 까지는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에쉬오드 씨!!! 뭐해요! 빨래 쓰러지자나요!!”


음? 잠시 딴 생각을 하는 사이 널어놓은 빨래 무더기가 이쪽을 향해 쓰러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빨래는 나를 향해 돌진했고, 난 빨래 무더기에 묻혀버렸다.


“괜찮아요?”


어느새 다가온 그녀가 빨래더미를 헤집어서 나를 꺼내주었다.


“아… 죄송합니다.”


일단 자리에서 일어났지만 뻘줌했다. 그리고 눈앞에 있는 그녀의 표정이 심상치가 않았다.


“빨래를 널 땐, 균등하게 널어놔야죠. 한 쪽에다 몰아넣으니 당연히 한쪽으로 쏠리죠!”


그래 바로 이것이다. 나는 집안일을 돕다가 점점 살림살이를 말아먹는 일을 해내고 있었다.


돈으로 보상하고 떠나려고 했으나, 그 추락 당시에 난 빈털터리가 되어있었다.


“정말, 이게 벌써 몇 번 째에요. 애도 아니고, 아니 애들도 이런 일 정도는 할 수 있을 텐데. 이런 것도 못하는 거에요!”


그녀의 잔소리가 끝없이 이어진다. 난 고개를 숙이고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죄송합니다…”


이집에 와서 죄송하다는 말이 제일 많이 는 것 같다.


스프를 지켜봐달라기에 지켜보다가 홀랑 태워먹은 일이나…

그래 지켜보라고 해서 지켜봤을 뿐인데. 그녀는 그걸 가지고 나를 혼냈다.

빨래 감의 물을 짜낼 때도, 팍팍 힘써서 하라는 말에 최대한 힘을 주었더니 빨래가 구멍투성이의 걸레로 변해버렸다. 난 하라는 대로 했을 뿐인데…

그렇게 실수가 늘어날 때마다 그녀의 꾸중이 점점 늘어만 갔다.


한참을 화를 동반한 꾸중을 듣고 난 후에야 그녀는 드디어 말을 멈췄다.


“후, 저기 가서 쉬세요! 나머진 제가 할게요.”


“그렇지만…”


내 대꾸에 그녀의 눈이 획 돌아가며 ‘희번뜩’ 거렸다. 그 기세에 휘말려 작게 중얼거리고 마는 나.


“네…”


난 비루먹은 개처럼 터덜터덜 걸어가 마당의 한쪽구석에 자리 잡고 있는 한 그루의 느티나무의 그늘에 앉았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녀가 다시 빨랫대를 일으켜 세우고, 빨래를 넣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오늘도 꾸중 들었군.


‘하아’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온다. 허리에 메여있는 ‘빙검-히요우가‘는 왼쪽 가슴에 대고 하늘을 바라보았다.


내가 뭐하고 있는 건지. 장작패기에서 소기의 성과를 거두었다고, 자만해서 다른 일을 맡는 게 아니었는데… 이대로 떠난다고 하면 실수만 하다가 창피해서 튀는 것 같지 않은가.

새삼 싸우는 것을 빼고 나니, 내가 할 줄 아는 건 별로 없구나. 라는 생각을 여기 와서 절실히 느끼고 있다. 느낌이 이상했다. 늘 완벽에 가한 작전을 계획하고 수행해왔던 내가, 이곳에선 뭐든지 서툴러 시에라는 아가씨에게 늘 꾸중을 듣는다.


오랜만에 올려다 본 하늘. 푸른 바탕의 도화지에 위에 군데군데 하얀색 물감을 흩뿌려놓은 뭉게구름이 두둥실 떠있는 하늘 위로 태양 빛이 잘게 부서져 내린다. 유리처럼 반짝이는 파란 하늘 위로 이름 모를 새 두 마리가 정답게 짝을 맞추며 날아가고 있다. 천천히 조금씩 두둥실 떠가는 뭉게구름들.


새삼스레, 낯선 기분에 젖어든다.


언제나 바쁘게 살아온 내게 이렇게 여유롭게 하늘을 볼 날이 있었던가.


“에쉬오드 씨. 곧 점심시간이에요. 부탁해요!”


그녀의 외침에 난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를 일어났다. 집 안에 들어가, 부엌에서 미리 준비되어 있는 스프가 담긴 쟁반을 들고 작은 방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침대에는 그녀의 할머니가 누워있다. 꽤 오래전부터 그녀는 이 병든 노모와 함께 지냈을 뿐이라고 했다. 이미 60대 후반에 가까운 나이에 노환이 겹쳐져 쉽게 거동을 하시지 못하신다. 장작패기와 함께 그나마 이 집에서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세실 할머니의 식사 시중을 드는 것이었다.


“자아, 아 하세요.”


“아…”


내가 떠 드리는 것을 드시고, 삼킨다. 단순하지만 조금은 지루하기도 한 작업. 하지만 가장 쉽고 편안히 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세실 할머니는 늘 식사가 끝나고 나에게 고맙다는 말을 한다.


“고마워요. 에쉬오드군.”


난 고개를 가로 저었다.


“아닙니다. 식객으로서 도울 수 있는 건 도와야하니까요.”


그리고 천천히 냅킨으로 세실 할머니의 입가에 묻은 스프들을 닦아내었다. 할머니는 나를 보며 웃고 계셨다.


“에쉬오드 군이 온 후로 시에가 많이 밝아졌어요. 역시 내색은 안했지만, 외로웠던 모양이에요. 어렸을 때부터 쭉 저하고만 살아왔으니까요”


“그렇습니까…”


“그래요. 난 조금 더 시에가 많이 웃었으면 해요… 힘들게 자라온 아이니까… 신 군이 이 집에 와서 다행이에요.”


“아닙니다. 늘 신세만 지고 있을 뿐입니다.”


“후후… 편히 오래 머물도록 해요. 식사 고마웠어요.”


“예. 그럼…”


그리곤 난 할머니의 방을 뒤로 하고 빠져나왔다. 누군가를 도와주며 살아올 일 따위는 없었기에, 늘 고맙다는 말을 듣는 게 어색하기만 하다. 달리 내 태도가 변한 것도 아니었다. 무뚝뚝한 말투와, 냉정한 태도도. 이곳에서 나는 새로운 것만 경험하고 있다.


늘 혼자였는데… 주변의 사람들은 나에게 다가오길 꺼려하고 내가 밀어냈지만… 이곳의 사람들은 전혀 개의치 않아한다. 아니 오히려 나에게 다가오기만 한다. 이곳은 왜 이렇게 나에게 따스하게 대해주는 걸까.


하지만 나쁘지 않은 기분이 든다.


점심 메뉴는 야채스프와, 빵 몇 조각에 사과 두 개가 전부였다. 늘 군량으로 채워왔던 나이기에 어떤 메뉴건 상관은 없지만, 보통 사람이라면 늘 부족하다 할 만한 식사다. 하지만 시에는 늘 즐거운 얼굴로 식사를 하곤 한다. 이런 힘든 가정생활이라면 얼굴에 약간이라도 그늘이 있을 만하건만 그녀에겐 그런 면이 전혀 없다.


떠나야 된다는 생각과는 반대로, 내가 계속 있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건 그 때문인가…


점심식사가 끝나면, 그녀는 늘 만들던 수 공예품을 싸가지고, 마을로 향한다. 그리고 난 문 밖에서 그녀를 배웅한다.


“다녀올게요! 집 잘 봐요.”


“예. 몸 조심히.”


그리고 그녀는 언덕 너머로 사라질 때까지, 뒤를 돌아보며 손을 흔들곤 한다. 그녀가 떠난 걸 확인한 나는 느티나무 아래로 가 가부좌를 틀고 자리에 앉는다. 잠시 시원한 산들바람이 머리를 휘감고 지나가는 걸 느낀다.


난 눈을 감고 천천히 명상에 빠져들었다.


하루하루를 보내면서 내가 제일 힘쓴 건 영력의 회복이었다. 아무리 보아도 다리의 기능 자체에 문제가 있지는 않은 것 같다. 통증도 없고, 하지만 전혀 움직이지가 않는다. 무언가 막혀있는 느낌이랄까. 영력이 회복되면 해결 될 것 같지만… 영력 자체가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세상의 삼라만상(森羅萬象)을 이루고 있는 힘은 기(氣)와 마나(mana)로 양분되어 있다. 기라는 것은 보통 생명체의 내부에서 작용하는 힘으로 그 생명체가 가지고 있는 생체 에네지(energy)라고도 할 수 있다. 마나라는 것은 외부에서 작동하는 힘들. 세상을 뒤덮고 있는 힘이다. 대표적으로 이 힘들을 이용하는 클래스들이 기는 기사들. 마나는 마법사들인 것이다. 하지만 물질계와 정신계로 양분되는 이 세상의 중간층에 껴있는 것이 영계이다. 그런 영계의 힘을 빌려 쓰는 것이 우리 ‘라이오네’들. 중간층에 속해있기에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고, 어느 쪽의 힘으로도 변환 시킬 수 있다. 다시 말하면 마법적 효과를 내기도, 신체적 강화로도 이용된다. 그리고 각 영력 매개체의 특수성에 의해서 발현될 때에는 특별한 힘을 가진다. 예를 들어 나는 빙(氷)속성을 부여받았다. 그것이 우리 라이오네들을 최강의 존재로 군림할 있게 해주는 것이기도 하고.


집 앞의 느티나무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가끔 늦여름의 뜨거운 공기를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몸을 식혀준다. 이곳은 마나가 충만한 곳이기는 하지만, 영력 자체는 잘 느껴지지 않는다. 아니 내가 지금 영력을 느끼지 못하는 것일까… 가능성은 두 가지다. 그 중 하나라도 잡아보고자 최대한 명상을 해보는 것이지만. 늘 헛수고가 되어간다.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 채로 시간이 흐를 뿐이다. 예전엔 숨 쉬는 것만큼이나 자연스럽게 사용할 수 있었던 힘이 왜 이렇게 된 건지.


더 이상 성과 없는 명상은 집어치우고,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그녀가 없는 동안 해야 할 일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집안일. 다리가 움직이지 않아 그녀가 구해준 목발을 집고 하느라 불편하긴 하지만, 점차 조금씩 실력이 늘어가고 있기에… 이제는 그나마 할 만해져간다. 욕먹는 건 여전하지만.


석양이 지기 시작할 때쯤 다시 언덕으로 나가면,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그녀는 너무나도 환한 웃음을 짓고 있다. 그런 그녀를 맞이하며, 조금은 이 집에 더 머물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바보 같다는 것 인줄 알면서도…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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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3 곰돌이 인형극의 탄생 - (3) 12.02.05 169 2 8쪽
20 # 3곰돌이 인형극의 탄생 - (2) 12.02.04 86 2 8쪽
19 #3 곰돌이 인형극의 탄생 - (1) 11.12.03 148 2 12쪽
18 #2 특이한 소녀와의 재회 - (10) 11.12.02 234 2 14쪽
» #2 특이한 소녀와의 재회 - (9) 11.11.30 149 2 10쪽
16 #2 특이한 소녀와의 재회 - (8) 11.11.25 114 2 3쪽
15 #2 특이한 소녀와의 재회 - (7) 11.11.24 122 2 12쪽
14 #2 특이한 소녀와의 재회 - (6) 11.11.22 134 2 4쪽
13 #2 특이한 소녀와의 재회 - (5) 11.11.18 165 2 10쪽
12 #2 특이한 소녀와의 재회 - (4) 11.11.17 128 2 8쪽
11 #2 특이한 소녀와의 재회 - (3) 11.11.14 130 2 8쪽
10 #2 특이한 소녀와의 재회 - (2) 11.11.12 195 2 6쪽
9 #2 특이한 소녀와의 재회 - (1) 11.11.11 255 2 4쪽
8 #1 빛의 탑 공략 - (7) 11.11.10 228 2 13쪽
7 #1 빛의 탑 공략 - (6) 11.11.09 190 2 3쪽
6 #1 빛의 탑 공략 - (5) 11.11.08 174 2 6쪽
5 #1 빛의 탑 공략 - (4) 11.11.08 184 2 9쪽
4 #1 빛의 탑 공략 - (3) 11.11.08 214 2 9쪽
3 #1 빛의 탑 공략 - (2) 11.11.08 303 2 12쪽
2 #1 빛의 탑 공략 - (1) 11.11.08 380 2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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