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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윤 님의 서재입니다.

연극(戀劇)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미윤
작품등록일 :
2012.02.13 16:20
최근연재일 :
2012.02.13 16:20
연재수 :
22 회
조회수 :
4,425
추천수 :
46
글자수 :
80,507

작성
11.11.18 21:47
조회
164
추천
2
글자
10쪽

#2 특이한 소녀와의 재회 - (5)

DUMMY

더 이상 혼자는 싫었다.


주변에 아무렇게나 버려진 검, 하나를 집어 든다. 그리고 미친 듯이 달려갔다.


이 마을 멀지 않은 곳에 분명 있을 것이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지만, 참고 달리고 또 달렸다.


그렇게 발견한 한 무리의 인간들. 주변의 시체 근처에서 서로 장난을 치며 웃고 있었다.

저들이었다. 릴을… 막스를… 리나를… 아리사를 해친 그 자식들.

난 소리 없이 조용히 달려갔다. 검을 쥔 손에 점점 더 힘을 준다. 그리고 시체를 발로 차고 있던 그 사람의 등 뒤에 검을 찔러 넣었다.


‘푸욱'


내가 찌른 검은, 급히 몸을 튼 그 남자의 팔을 훑고 지나갔을 뿐이었다. 하지만 어린애의 몸으로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이… 자식은 뭐야. 감히 내 팔을..!!”


곧 한 대 맞고 검을 놓치며 땅에 구른 나는 그 녀석들에게 무참히 짓밟혔다.


계속되는 고통 속에 정신이 희미해져 간다. 어차피 별다른 의미 없이 행했던 일이다.


이제 나도 죽을 수 있겠지.


그러면 애들 곁으로 가는 거야…


하지만 내 바람은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희미해져 가는 정신 속에서, 난 짧은 단말마와 함께 점차 침묵하는 무거운 공기를 느꼈다. 나를 때리던 녀석들마저도, 무슨 일인가 하고 그 쪽으로 달려갔을 때, 본 것은 하늘에서 흩날리는 핏빛 꽃잎이었다. 난 바닥에 엎드린 채로 흐려져 가는 눈으로 그 광경을 보았다.


피를 흩날리게 만드는 거대한 낫.


사신의 낫 그 자체였다. 커다란 은빛의 곡선을 그리는 그 낫을 막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를 때리던 그 사람들마저도 썩은 풀잎을 베듯 순식간에 베어내 버렸다.


마지막… 한 사람.


그 사람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피가 내 몸을 적신다.


검은 로브의 실루엣 너머로 비치는 얼굴은 희미하게 웃고 있었다.


“어리석군요. 꼬마주제에, 칼 하나만 들고 이런 무모한 짓을 하다니.”

상대방의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다. 다만 차갑게 가라앉은 목소리만은 너무나도 고요하게 들렸다.


“하지만, 이렇게 살려주게 된 것도 인연이겠지요. 그럼.”


그 말을 끝으로 몸을 돌려 돌아 가버리는 그. 하지만 난 그대로 있을 수 없었다.


“기…기다려!”

내 외침에, 뒤돌아서 가던 그의 모습이 멈췄다. 그리고 나를 뒤돌아본다. 로브에 가려져 그의 시선을 바라 볼 순 없었지만 분명 날 의아하게 보고 있었을 것이다. 난 자리에서 힘겹게 일어나며, 그에게 말했다.


“난… 왜 죽이지 않는 거죠?”


여전히 차갑지만 차분한 어조로 그는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죽고 싶습니까?”


난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더 이상 살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또 다시 이대로 혼자 남긴 싫었다.


그러자 그의 입 꼬리가 올라갔다.


“안타깝군요. 저는 이유 없는 살인은 하지 않습니다. 그럼 이만.”


그는 다시 몸을 돌려, 다시 걸어가기 시작했다.


왜 나를 죽이지 않는 거지.


왜 나만 또 혼자 남겨두려 하는 거지!


“으으으….”


옆에 떨어진 검을 다시 집어 들고, 그에게 달려갔다. 점프해서 힘껏 그를 향해 내리찍어 보지만, 어떤 무형의 막에 막혀 내 검은 공중에 멈춰졌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엄청난 압력이 나를 날려버렸다.

“쿨럭…”


그대로 날아가 벽에 처박혀버렸다. 그는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천천히 걸어 가버린다.


“기…다..려.”


멀어져 가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난 다시 의식을 잃었다.


얼굴에 느껴지는 차가움에 눈이 떠졌을 때, 주변은 회색빛에 물들어 있었다. 얼굴에 점차 부딪혀 오는 작은 물방울들. 그 물방울들은 점차 굵은 빗줄기가 되어 내리기 시작했다.


“하하….”


핏빛의 물을 쓸어내리는 비의 강을 보며, 난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끊임없이 눈물이 흘러나왔다.


그래 난 다시 목숨을 구걸 받은 것이었다.


눈물이 흐르고 또 흐른다. 마구 울부짖어 보지만, 혼자만의 공허한 메아리가 되어 주변에 울려 퍼질 뿐이었다.


이젠 내 주변에 아무도 없다. 릴도 막스도… 리나도 아리사도…


아무도… 없어…


점차 거세지는 빗방울 속에서, 몸이 젖어간다. 그리고 비인지 눈물인지 모르듯 흘러대는 내 눈물.


“그래… 추울 꺼야. 다들… 헤헷,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걸까…”


춥지 얘들아 조금만 기다려…


릴이 있는 곳까지 무의식적으로 걸어갔다. 누워있는 릴은 언제라도 다시 밝게 웃으며 얘기를 해줄 것만 같다. 그리고 리나는 옆에서 핀잔을 주겠지… 그러면 막스가 괜히 난감해 하고… 나와 아리사는 그걸 보며 웃을 것이다.


하지만…


릴을 업고, 아리사가 늘 길러오던 그 꽃밭으로 향했다.


아리사 괜찮지…?


우리가 이곳에 쉬어도…


맨 처음에 릴을… 그리고 리나를…


힘겹게 꺼낸 막스를… 막스 미안해. 떨어진 다리 쪽은 꺼내질 못하겠어.


마지막으로 아리사를…


계속해서 내리는 빗줄기는, 붉게 물든 피를 강이 되어 흐르게 했다. 모두의 피가 그렇게 쓸려 내려갔다…


그리고 난 땅을 파기 시작했다.


약해 빠진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은 이것뿐이니까…


손으로 무작정 꽃밭 주변의 흙을 파냈다. 파내고, 파내다 보니 어느새 손은 붉게 물들어 있었다. 손톱이 어느 샌가 사라져있지만 난 그저 파내고 또 파낼 뿐이었다.


하나의 무덤에 릴을 눕히고… 그 옆의 땅을 파고 막스를 눕히고… 그 다음엔 리나를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리사를…


애들의 얼굴에 흙이 뿌려지고… 점차 덮여가며 이제 다시는 그들을 보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아직 까지 울 순 없었다. 빨리 모두를 쉬게 해주어야 했으니까…


모두의 무덤을 완성 시키고 나자, 새어나오던 눈물이, 마구 쏟아져 내렸다.


“미안해… 미안해 모두들… 흐윽…”


하나씩 모두의 얼굴이 흙에 닫히며, 이제 정말 그들과 이별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모두들… 안…녕…”


‘오라버니는 살아주세요…’


아리사가 남긴 마지막 말. 왜… 내게 그런 말을 남긴 거야… 도대체 왜!!!


“으아아아아앙!!!!”


비 내리는 폐허 속에서, 내 울음소리만이 구슬프게 메아리쳤다.


몇 번을 쓰러지고, 손에 감각마저 느껴지지 않을 때쯤이 되어 간신히 난 무덤을 다 만들 수 있었다. 너무나도 조잡한 무덤… 어리기만 한 내 자신이 너무나도 원망스러웠다. 여전히 내리는 폭우가 한 없이 나를 때리지만, 다른 느낌은 들지 않았다. 내 자신에 대한 자책만을 끝없이 되풀이하며, 난 멍하니 만들어진 무덤을 바라보았다.


‘뚜벅뚜벅’


그 비를 뚫고 걸어오는 한 사람이 있었다. 소리 없이 다가왔지만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그는 초점 없이 공허하게 무덤만을 바라보고 있는 내 옆으로 오더니, 내가 만든 조잡한 무덤을 바라보았다.


“당신의 친구들의 무덤인가요?”


난 고개를 끄덕였다. 내 옆에 온 것이 누군지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왜… 오신거죠. 이곳에.“


“솔직히 조금 놀랐습니다. 일개 꼬마가 제 옷자락을 베었을 줄이야. 제 옷을 벤 그 소년을 다시 확인하고 싶었달까요.”


“제… 친구들은 모두 죽었어요. 모두… 다들 착하고 좋은 아이들이였는데…”


“많은 사람들이, 이 전란에 휩싸여 죽어가고 있습니다. 이곳의 일도 그리 흔하지 않은 일은 아니지요… 누구도 탓할 수 없겠지요. 다만 탓할 수 있는 건 불운한 시대에 태어난 자신의 운명뿐.”


빗줄기가 더 강해져서 내린다. 내 친구들은… 시대를 잘못만나서 태어난 거라고? 아니야. 모두… 사람들이 나쁜 거다. 그저 내 친구들은 하루하루 즐겁게 살아갈 수만 있으면… 그저 따뜻한 밥과 함께 지낼 수 있는 공간만 있었으면 되었을 뿐인데.


“전 부모님도… 친구들도 똑같이 잃었어요. 하지만… 왜 모두들 이렇게 서로 죽여야만 하는 거죠…”


“인간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겠지요. 인간이기 때문에, 목적을 위해서 다른 사람을 죽일 수 있는 것.”


그리고 그는 나를 바라보았다.


“저 또한 사정이 생겨서 당신을 죽이기 위해 돌아왔습니다. 원하시던 일이시겠지요.”


그래… 분명 전에는 그랬다 하지만…


‘오라버니는… 살…아..주세…요.’


아리사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


“전, 죽을 수 없어요. 아리사가… 살라고 했으니까.”


난 어느새 다시 울고 있었다. 그래… 아리사가 살라고 한 이상 살아야 해. 죽을 순 없어. 아리사와의 마지막 약속이니까.


이 폭우 속에서도 전혀 젖지 않은 후드 속에, 그 검은 장막이 드려진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는 잠시 내 눈을 천천히 살펴보듯 바라보았다.


“전 당신보다 압도적으로 강합니다. 제가 당신을 죽이길 원한다면 당신은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전 그래도 죽을 수 없어요.”


난 확고한 의지를 담은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죽지 않는 다면 무엇을 하실 건지요. 아무것도 없는 당신이. 당신의 친구들을 헤친 사람은 이미 제가 해치웠습니다. 복수할 대상조차 남아있지 않을 텐데요.”


난 고개를 가로저었다. 무덤을 만들면서 수없이 했었던 생각을.


“틀려요. 복수할 대상은 남아있어요… 저를… 그리고 제 부모님을 그리고 제 친구들을 이렇게 만든 세상…”


난 눈물을 다시 닦아내고, 그에게 선언하듯 말한다.


“제 손으로 이 전쟁을 끝내겠어요.”


착각이었을까. 로브 속의 얼굴이 웃음 지었던 것처럼 느껴지는 건.


“하지만 당신은 힘이 없습니다. 힘 없인 아무것도 할 수가 없지요.”


그건 그랬다. 지금의 난 너무나도 힘이 없다. 그냥 평범한 꼬마일 뿐이니까.


“라이오네가 되시겠습니까? 당신에게 힘을 드리겠습니다.”


“라이오네…?”


“그렇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강한 힘입니다. 그 모든 것과도 싸워 이길 수 있는.”


“왜 그런 힘을 저에게?”


“그 의지가 마음에 들었다고 해두지요. 받겠습니까?”


망설일 필요는 없었다. 그는 일반적인 사람 이상으로 압도적으로 강했으니까. 그가 준다면 보통 힘이 아닐 것이다. 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날 이후로 난 라이오네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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