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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나이다
작품등록일 :
2023.12.01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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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21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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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8,8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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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28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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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128. 운천의 최후 1

DUMMY

1.


영광, 원전 4호기 안.


정신을 잃었던 일성이 눈을 떴다.


머리가 띵했다.


운천의 공격을 피하다 무언가에 부딪혀 강한 충격을 받았었다.


그리고 어딘가에 떨어졌던 것 같은데.


···그게 마지막 기억이었다.


바닥을 더듬더듬 짚고서 몸을 천천히 일으켜 보았다.


띵하던 기운이 사라지니 요란한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으으으···.”


뭐지 하는 생각에 양 귀를 감싸면서 좌우를 돌아보았다.


어둑한 공간.


손에 닿는 벽을 만져보았다.


차갑고 딱딱한 콘크리트···.


그런데 공기는 전혀 차갑지 않았다.


“후우우우···.”


정신이 들자 훅하고 달아오르는 열기가 예사롭지 않았다.


이대로 조금만 더 있으면 온몸이 삼겹살처럼 바짝 구워질 것 같은 기분이었다.


요란한 사이렌도 그렇고, 이 열기도 그렇고···.


이 안에서 뭔가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불길했다.


여기서 얼른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에 출구를 찾아보았다.


하지만 아무리 둘러봐도 밖으로 이어지는 통로는 보이지 않았다.


고개를 들어보았다.


깨진 구멍이 보였다.


아마도 저 둥근 천장을 뚫고 떨어진 게 틀림없었다.


그새 입안이 더 바짝 말랐고, 몸은 벌겋게 달아올랐다.


그리고 몸 여기저기에서 붉은 수포까지 오르는 게 보였다.


“아··· 이런···.”


어서 여기서 나가야 한다는 다급함에 한 발로 바닥을 힘껏 찼다.


경공으로 솟아 저 천장에 뚫린 구멍으로 나가려는 의도였다.


그런데 그의 몸이 막 바닥에서 떨어지려던 순간이었다.


“네 이놈!”


어디선가 우렁찬 괴성이 날아들었다.


동시에 우악스러운 손아귀가 일성의 발목을 붙들었다.


막 떠오르려던 일성이 붙잡히자 몸이 뒤뚱 기울면서 휘청였다.


그리고 바로 옆에서 시커먼 그림자가 불쑥 일어섰다.


운천이었다.


놀란 일성이 뒤로 물러나면서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비록 한 손밖에 없지만, 한 손만으로라도 운천의 공세를 막아야 했다.


어둠에 눈이 익으면서 운천의 모습이 서서히 드러났다.


그 역시 떨어졌을 때의 충격과 높은 온도에 상한 듯 온몸이 말이 아니었다.


열기에 덴 얼굴과 구석구석 돋은 수포들.


그리고 입고 있는 옷에선 연기가 오르고 있었다.


금세 불이라도 붙을 것처럼.


그 역시, 일성처럼 어서 여기서 달아나야 할 처지였다.


그런데···.


“어딜 달아나느냐? 여기가 네놈의 관짝인 줄 알아라!”


어두컴컴한 공간에서 운천의 안광이 발했다.


그건 마치 탈출은커녕 여기서 생을 마감하기라도 하겠다는 듯한 결연한 빛이었다.


그 눈빛에 질린 일성이 주춤주춤 뒤로 물러나며 길을 더듬었다.


하지만 운천은 조금도 틈을 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몸을 웅크렸다 솟으려던 시도, 벽을 딛고 떠오르려던 시도, 심지어는 운천을 넘어뜨려서 그 몸을 밟고 뛰려던 시도까지.


번번이 운천의 저지에 막혀버리고 말았다.


결국 일성은 운천을 제거하지 않고서는 여기서 나갈 수 없음을 깨닫고 이를 악문다.


운천의 얼굴이 깨진 천장 틈으로 들어온 달빛에 훤히 드러났다.


상처와 열기로 흉하게 일그러진 건 일성이나 운천이나 마찬가지였다.


일성은 더 이상 운천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말했다.


“비켜라! 죽기 싫으면···.”


운천이 비키지 않자 일성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콰과아아아앙!



2.


어둡고 뜨거운 공간 안에서 수인이 엇갈렸다.


일성의 손은 하나였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바쁘게 움직였다.


장풍에서 화집멸공으로, 염력에서 다시 전정술로.


누가 붙들지 않으면 이렇게 계속 살기 가득한 공격을 이어갈 것만 같았다.


“흐으으으압!”


그건 운천도 마찬가지였다.


일성이 살벌한 눈빛을 번뜩이자 운천도 사력을 다했다.


이제는 물러서거나 놓치는 실수를 범하지 않겠다고.


더는 청운당의 법사들이 희생될 수 없다고 외치기라도 하듯.


운천의 영기는 그 어느 때보다도 팔팔했다.


두 법사의 화공이 콘크리트 공간 안에서 부딪히자 불꽃이 튀었다.


양측 모두 정신을 바짝 차린 채 목숨을 걸고 하는 움직임이었기에, 공격과 수비 모두 진지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였던가.


바쁘고 거칠기만 하던 양쪽의 움직임이 서서히 느려진다.


그러면서 돌연 자신의 몸을 훑어보는 두 사람.


“어··· 이런!”

“아니, 이··· 이럴 수가.”


드문드문 보이던 수포는 어느새 온몸을 빼곡하게 채우고 있었다.


몸집은 스모선수처럼 심하게 부풀어 있었다.


게다가 그 크기는 계속 커지는 듯싶었다.


이대로라면 어느 순간 이 공간 안을 둘이서 꽉 채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놀란 두 법사의 얼굴이 동시에 일그러졌다.


흉하게 변해가는 자신들의 모습에 경악하는 것도 잠시, 충격적인 소리가 들려왔다.


“영광 주민 여러분··· 4호기 원전에서 방사능이 유출되고 있습니다. 현재 이곳은 위험하니 통제하는 군인들의 지시에 따라 안전한 곳으로 대피하시기 바랍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현재···.”


잠시 후, 두 사람의 몸은 더 커지고 더 팽창했다.


어느새 원전의 격납 방호벽 천장에 머리가 닿을락 말락 할 만큼 거대해진 두 사람.


일성이 먼저 고함을 지르며 난동을 부리기 시작한다.


그러자 운천은 언제 싸웠냐는 듯 일성을 붙들며 진정시키려 애쓴다.


“몸부림치면 안 된다. 그럼 여기가 무너지게 되고··· 무고한 시민들이···.”


하지만···.


쩍-!

투둑!

후두둑!


단단해 보이던 콘크리트 구조물 덩어리는 일성의 난동에 균열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두 사람의 머리가 천장에 꽉 밀착되는 순간,


콰광!


하는 폭발음과 함께 방호벽이 박살 나더니 사방으로 콘크리트 파편이 날렸다.


충만하게 차오른 도가의 기운인 영기!


또 날짐승의 잡기를 끌어 마셔 채운 사기!


그 두 기운의 덩어리가 방사능과 섞인 결과는···.


이처럼 끔찍한 비극이었다.


원전을 깨고 나온 두 법사의 몸이 바닥에 나뒹굴었다.


“아으으읔!”


실성한 일성이 비명과 함께 몸부림을 쳐댔다.


어느새 5층 건물 높이까지 커진 몸뚱이가 허우적대자 주변 시설이 깨지고 무너져 내렸다.


운천은 다시 일성에게 달려든다.


“진정해라! 이러면 모두가 위험하다!”


자기 모습 역시 끔찍한 건 마찬가지지만, 그래도 그 피해가 번지는 건 막아야 한다는 생각의 운천.


일성의 몸을 덮치는데 제어가 쉽지 않았다.


운천을 뿌리치고 벌떡 일어선 일성이 몸을 돌려 뛰려고 했다.


“크하아아아아!”


그걸 본 운천은 다시 몸을 날려 일성의 하반신을 붙들었다.


잠시 동안의 몸싸움에 또 주변 건물 여러 채가 무너져 내렸다.


이미 대피가 다 이루어진 듯해서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운천은 자기가 쓰러질 때마다 혹시 모를 피해를 줄이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일성! 내 말 잘 들어라! 우리 같이 소멸의 길을 택하자. 우리가 사라지면 위험은 더 이상 번지지 않는다.”


하지만 일성은 핏발이 선 짐승의 눈으로 운천을 노려보았다.


“너나··· 뒈져라!”


일성이 흉한 한 손으로 운천의 가슴팍에 장풍을 때렸다.


파방!


짐승의 잡기에 살기가 더해진 것도 모자라, 방사능까지 섞인 엄청난 에너지였다.


그 강하고 어두운 기운의 덩어리가 운천의 몸을 나가떨어지게 했다.


붕, 하고 솟구쳤다가 다시 떨어진 운천은 3호기에 몸이 닿자 필사적으로 웅크리며 거센 충돌을 피했다.


장풍의 파장이 꽤 오래갔다.


아무래도 내장에 손상이 간 건지 입에서 피가 쏟아져 나왔다.


운천은 일성이 어디론가 달아나는 걸 지켜보았다.


일성은 흉하게 변해버린 자기 모습을 되돌리고 싶었던 걸까.


몸 안에 숨겨 두었던 부적을 모조리 꺼내더니 몸에 붙이며 회복을 시도한다.


하지만 여의치가 않아 보였다.


운천은 흐릿하게 멀어져 가는 일성을 보며 겨우 상체를 일으켰다.


“흐으읍··· 흐으으으읍···.”


그러면서 천천히 공기를 빨아 마시기 시작했다.


운천의 입으로 공기 중에 퍼지고 있던 방사능이 빨려 들어왔다.


운천은 피눈물을 흘리면서 생각했다.


이 방법밖에 없구나, 이 방법밖에.



3.


파주 부근.


한적한 비닐하우스 농가 근처에서 갑자기 연기가 일었다.


펑-!

펑-!


은형술이 풀리자 정철과 건우는 허리를 꺾고 잠시 거친 숨을 내뱉었다.


이 상태로 조금 더 달아날 수 있었지만, 그러면 또 중간에 도술이 풀릴 수 있었다.


“그래 잘했다. 미리 이렇게 술을 풀고 잠시 쉬면서 영기를 회복하는 게 더 낫겠다.”

“네, 법사님··· 제가 먹을 걸 좀 찾아볼게요.”


건우는 비닐하우스 주변을 둘러본 후 사람이 없는 걸 확인한다.


과감하게 어느 한 하우스 안에 들어간 건우가 참외 두 개와 수박 한 덩이를 들고나왔다.


정철은 어이없어하며 고개를 저었지만,


“나중에 찾아와서 돈을 드리는 걸로 하죠.”


건우의 말에 마지못해 타협하는 눈짓을 던진다.


짧은 장풍에 쪼개진 수박이 두 사람의 손에 들렸다.


와그작.

와그작.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수박이 사라졌고, 이어 참외까지 눈 깜짝할 사이에 껍질만 남았다.


정철과 건우의 얼굴에서 이제 좀 살겠네 하는 안도의 표정이 흘렀다.


건우는 손에 묻은 과일즙을 쪽쪽 빨면서 잠시 하우스 옆에 몸을 눕혔다.


하늘이 청명했다.


청운당에 처음 들어가던 날의 하늘도 이랬다.


그리고 청운당에서 도망쳐 나온 날도 역시.


건우는 그사이 자신에게 엄청나게 많은 일이 일어난 게 실감 나지 않았다.


“휴우··· 전 군대 가려면 아직 멀었는데 벌써 군대까지 갔다 와 버렸네요.”


정철은 건우의 말에 하늘을 보고 잠시 웃었다.


과일과 휴식.


맑은 하늘과 시원한 바람.


그렇게 구름이 떠가는 걸 보며 자연과 하나 됨을 즐기기를 한동안.


드디어 두 사람은 바닥났던 영기가 차오르는 걸 느끼고 몸을 일으켰다.


“어서 움직이자! 스승님이 어쩌면 지금쯤 운천을 따라잡으셨을지 모른다.”


정철이 한적한 국도변으로 들어서면서 말했다.


건우는 아직 영기가 충만한 상태가 아니었기에 천라지망을 쓰는 게 버거웠다.


하지만 몸 상태를 보니 조만간 가능할 듯싶었다.


“일단 축지술로 돌아가면서 스승님의 흔적을 찾자꾸나.”

“축지술이요?”

“아··· 축지술을 직접 하는 건 처음이지?”


정철은 호기심 어린 건우의 눈을 보며 입가가 부드럽게 벌어졌다.


탁!

탁!


정철의 발이 비포장 흙바닥을 두드리며 달릴 채비를 했다.


발목을 슬슬 돌리다가 천천히 발을 내딛기 시작하는 정철.


“잘 봐라! 시작은 언제나 우보법(소걸음)이다.”


느릿느릿하지만, 묵직하고 안정감 있어서 주변의 공기를 압도하는 것 같은 발걸음!


건우는 조심스레 우보법을 따라 한다.


정철은 제법 잘 흉내 내는 건우를 보면 흐뭇하게 웃는다.


“발동이 걸리면 그때부터는 호보법(흑호랑이 걸음)이다. 양발이 가볍고 경쾌해지면서 땅을 차는데 탄력이 생기지.”


정철의 말대로 발바닥에서 묘한 탄력이 느껴지자 건우도 신이 난 듯 발이 빨라진다.


어느새 머리털이 뒤로 훌러덩 넘어갈 정도로 속력이 붙은 건우가 큰소리로 웃는다.


“하하하!”


이 정도만 해도 신이 나 만족스러운데 정철은 다시 보법을 변화시킨다.


“자 한 단계 더! 지금부터는 용보법(용의 걸음걸이)이야!”


정철을 따라 보법을 바꾼 건우의 얼굴에 바람이 빠르게 스치면서 귀가 울었다.


마치 고속으로 터널을 지날 때 나는 소리가 이와 같을까.


입 주위에서 나는 소리도 묘하고 신기한지 건우는 자꾸만 아! 하는 소리를 내뱉으며 장난을 쳤다.


그렇게 잔뜩 신이 난 건우가 서울 부근에 접근했을 때였다.


“어··· 정철 법사님!”


영기가 끝까지 차오른 건우가 마침내 운천을 느끼고 반응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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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 138. 사필귀정 1 24.06.10 7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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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3 133. 한강 대첩 1 24.06.03 3 0 12쪽
132 132. 괴수를 막아라 3 24.06.01 3 0 11쪽
131 131. 괴수를 막아라 2 24.05.31 4 0 12쪽
130 130. 괴수를 막아라 1 24.05.30 6 0 12쪽
129 129. 운천의 최후 2 24.05.29 4 0 12쪽
» 128. 운천의 최후 1 24.05.28 4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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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 122. 쫓기는 일성 2 24.05.22 4 0 11쪽
121 121. 쫓기는 일성 1 24.05.21 6 0 11쪽
120 120. 독 안에 든 쥐 3 24.05.20 5 0 11쪽
119 119. 독 안에 든 쥐 2 24.05.19 8 0 12쪽
118 118. 독 안에 든 쥐 1 24.05.18 9 0 11쪽
117 117. 철산이 쓰러지다 2 24.05.17 5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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