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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나이다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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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나이다
작품등록일 :
2023.12.01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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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21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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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22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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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122. 쫓기는 일성 2

DUMMY

4.


평택 송탄역 부근.


메뚜기로 변해 달리던 일성의 발이 조금씩 느려졌다.


가벼운 미물로 변한 상태에서 축지술을 써야겠다는 판단은 적절했다.


아직 확신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따라오는 법사들과의 거리를 제법 벌린 것 같았다.


어지럽고 기운이 달리는 건 어느 정도 해소가 되었다.


영기가 떨어질 때마다 마주치는 모든 생물을 족족 잡아서 그 기운을 취했으니까.


그 때문인지 청운당에서 수련할 때마다 차오르던 그런 상쾌하고도 맑은 기분은 더 이상 느껴지지 않는다.


대신 짐승과도 같은 충동과 욕정, 또 살의가 시도 때도 없이 불쑥불쑥 끓어오르는 것 같았다.


이제 확실히 피와 영이 달라진 걸 느낄 정도였다.


뭐랄까?


더러워진 기분···?


그래도 일성은 후회하지 않았다.


지난번 골프장에서 야생동물들의 영기를 취할 때 이미 마음을 다잡지 않았던가.


중요한 건 영기의 종류가 아니라 그 영기로 무엇을 하느냐이라고.


비록 취한 영기가 맑지 못하고 더럽다 하더라도 하는 일만 제대로이면 된다고.


일성은 이렇게 객지에 나와 한쪽 팔까지 잃고 고생하는 이유를 되새기며 다시 마음을 단단히 먹는다.


인파가 많은 대로변을 벗어나 아스팔트가 아닌 비포장길로 들어서자 흙먼지가 잔뜩 일었다.


주택가와 상가에서 멀어지면서 속세의 소음은 줄어갔지만, 대신···.


쿠르르르릉.

쿠르르르릉.


지축을 울리는 대형트럭 소리가 고막을 흔들어댔다.


풀숲 밑에 몸을 숨긴 일성은 다가오는 차량 행렬을 보고서 눈이 작아졌다.


“군용트럭!”


어디 훈련이라도 나갔다가 돌아오는 모양이었다.


열 대도 넘어 보이는 차량과 백 명 정도 되어 보이는 군인들의 행렬.


비포장 길을 꽉 채운 채 줄을 맞춰 이동하는 모습이 근엄해 보였다.


청운당에 있을 때 아랫마을 슈퍼 TV로 본 적이 있었다.


국군의 날이라는 공휴일에 시가지를 활보하던 군용 무기들과 군인들의 행진을.


일성은 자기가 숨은 자리에 흙먼지를 잔뜩 뿌리며 지나가는 차량을 가만히 살펴보았다.


단순한 수송 차량은 아니었다.


대부분 위장포로 덮여 있었는데, 맨 마지막 트럭은 그대로 오픈된 채였다.


“뭐야? 대포인가?”


보통의 대포치고는 길이도 길고 컸으며 구멍도 여럿이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신기한 건···.


군인들이었다.


얼핏 봤을 때는 다들 한국군인 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 미군도 섞여 있었다.


미군이 한반도에 기지를 운영하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막상 이렇게 직접 보니 낯설기만 했다.


일성이 그들의 움직임을 지켜보면서 흙먼지가 가라앉기를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가까이서 법사들의 영기가 느껴졌다.


“젠장···.”


제법 멀찍이 따돌렸다고 생각했는데 너무 쉽게 따라잡힌 것 같자 헛웃음이 나왔다.


분명 무리에서 철산이 제 역할을 못 하는 걸 뻔히 알고 있는 일성이었다.


“···대체 어떻게 저리 빨리 내가 있는 곳을 짚으면서 추격한단 말인가?”


놀라움과 당황스러움에 잠시 안절부절못하던 일성은 얼른 다리를 움직였다.


앞서가는 군용차량까지 단숨에 도달한 일성이 제일 마지막 트럭 위로 뛰어올랐다.


트럭 위에선 미군과 한국군이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주고받으며 대포를 만지작대고 있었다.


일성은 그들의 발에 밟히지 않게 조심하면서 구석 자리로 뛰었다.


쿵!

쿵!


바닥을 거칠게 디디는 군홧발 소리.


끼이익!

끼익!


장비가 서로 물리는 쇳소리가 트럭 엔진 소리와 섞여 불협화음을 내는 속에서 일성은 숨을 죽였다.



5.


달리던 도마뱀 셋이 멈춰 섰다.


도마뱀은 변신한 법사들이다.


맨 앞에 선 건우가 주위를 둘러보더니 고개를 갸우뚱한다.


분명 비포장도로 위에서 마지막 흔적이 느껴졌었는데, 갑자기 사라져 버린 일성.


아무 말 없이 두리번대기만 하는 건우가 답답한지 운천이 대뜸 목소리를 높였다.


“놈이 또 사라진 거냐?”


건우는 여전히 꼬리로 바닥을 쓸며 어슬렁댄다.


“···네! 또 갑자기 사라졌네요.”


항상 이렇게 민가와 비포장도로가 붙어있는 곳이 문제였다.


민가 쪽에서 흘러나오는 도시의 방해전파와 비포장도로의 흙먼지.


이 둘이 서로 겹치는 곳은 항상 감각과 영기를 무디게 하곤 했다.


이렇게 무디고 애매한 부분은 아마도 건우가 철산만큼 나이를 먹고 수련이 쌓이면 저절로 해결될 것이다.


“아··· 찾았어요!”


다시 밝은 표정으로 돌아온 건우가 꼬리를 뒤로 돌리면서 한쪽을 보고 섰다.


“저쪽이요!”


건우가 바라보고 있는 방향은 높고 긴 철조망이 보이는 미군 부대였다.


“일성이 저 안으로 달아났다고?”


정철이 미심쩍은 얼굴로 물었다.


의심의 눈초리를 더하는 건 운천도 마찬가지였다.


호수공원에서 달아날 때 만신창이였던 일성의 몸!


숨이 겨우 붙어있는 상처 입은 짐승처럼 급하게 달아나느라 인파를 가로지르기까지 했었다.


그런 그가, 회복에 필요한 한적하고 조용한 곳이 아닌, 군부대 안으로 들어갔다고?


저렇게 위험물질과 위험한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는 곳으로?


선뜻 이해가 되지 않는지 운천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러면서 일성이 달아난 후 여기까지 도달했을 시간을 헤아려보았다.


중간중간 회복술을 썼다 해도 부족한 영기로 완전히 회복하기는 어려운 시간이었다.


“설마··· 저 안에서 또 무슨 꿍꿍이를 벌이는 건가?”


일성의 눈이 가늘어지다가 다시 커졌다.


“따라 들어가자!”


도마뱀 세 마리가 다시 땅을 차고 달렸다.


삼엄한 경비초소를 지나 정돈이 잘된 진입로에 들어왔다.


확실히 한국과는 다른 분위기의 공간 배치를 보면서 세 사람은 다른 나라에 와있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들었다.


건우는 이국적인 전경에 잠시 두리번대다가 영어 표지판이 어지럽게 붙어있는 갈림길에서 한곳을 찍었다.


“저쪽이에요.”


달리는 족족 느끼는 것이지만, 이동하는 길목마다 관목이나 정원이 잘 가꿔져 있어서 몸을 숨기기에는 그만이었다.


가끔가다 무리 지어 걷던 미군들이 도마뱀을 발견하고는 후다닥 달려와 놀라게 하거나 돌을 던지는 장난을 쳤지만.


그때마다 법사들은 풀숲이나 관목 뒤로 몸을 숨길 수 있었다.


바삐 달리던 건우가 다시 속력을 줄인 건 큰 운동장 같은 공간의 진입로에 다다랐을 때였다.


“여기에 있는 거 같아요.”


건우가 플라타너스 그늘 밑으로 들어가면서 말했다.


법사들도 건우의 뒤에 바짝 붙어 서면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잔디가 듬성듬성 드러난 모랫바닥 위로 차량이 나란히 도열해 있었다.


조금 전 군부대 앞에서 봤던 바로 그 차량이었다.


그리고 차량이 늘어선 가운데에 큼지막한 단상이 하나 서 있었다.


무슨 행사가 벌어지는 건지 영어로 적힌 플래카드와 함께 요란한 깃발이 세워진 게 보였다.


잠시 후 마이크가 연결되는 소음과 함께 사람의 목소리가 들렸다.


먼저 영어로, 이어서 우리말로 순차적으로 흘러나오는 멘트는 신형 미사일 시스템에 관한 것이었다.


법사들과 건우는 그 안내 멘트를 귀를 세우고 집중해서 들었다.


“···우리 한미연합군은 새로 도입된 신형 이동식 미사일 시스템을 통해 한층 더 업그레이드된 작전 역량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사정거리가 300km까지 늘어나 유사시 적 기지를 먼저 선제 타격할 수도 있는 이 시스템은···.”


연설이 거의 끝나갈 때쯤 차량 위를 덮고 있던 천막이 하나둘 벗겨졌다.


단상 위에 나란히 앉아 있던 장교들과 귀빈들, 또 그 앞에 도열해 선 군인들이 동시에 손뼉을 쳤다.


박수 소리가 마이크를 통해 쩌렁쩌렁 울렸다.


법사들이 귀를 틀어막으면서 고개를 돌릴 때였다.


건우가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저기 있어요!”



6.


단상 뒤 간이 천막 안.


대기하는 귀빈들이 커피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고 있다.


그 한쪽 구석에 군용견으로 보이는 셰퍼드 한 마리가 기둥에 묶여있다.


일성은 그 기둥의 꼭대기에 앉아 천막 안과 바깥을 번갈아 주시한다.


법사들이 다가오고 있었다.


이렇게까지 필사적으로 달아나고 있건만, 법사들은 목숨이라도 건 듯 따라오고 있었다.


“허··· 참!”


혀를 내두른 일성은 영기가 떨어지는 걸 느끼며 눈앞이 다시 흐려졌다.


이런 곳에서 갑자기 영기가 바닥나 불쑥 모습을 드러나 버리면 무슨 봉변을 당할지 모른다.


일성은 결국 또 하나의 짐승을 잡아야겠다고 생각한다.


마침 그의 눈앞에 셰퍼드 한 마리가 있었다.


기회를 노리던 일성.


천막 밖에서 마이크 소리가 요란하게 울리더니 갑자기 귀빈들이 동시에 일어나 단상으로 향했다.


“그래··· 아주 좋아!”


폴짝!


기둥 꼭대기에서 뛰어내려 셰퍼드의 목덜미에 내려앉은 일성이 더듬이 끝에 힘을 주었다.


“깨게에엥···.”


가벼운 신음과 함께 셰퍼드가 주저앉았고 영기를 취한 일성은 다시 벌떡 일어났다.


흐느적대던 다리에 다시 기운이 솟았다.


그때 미군 하나가 개가 쓰러진 걸 보고는 달려왔다.


일성은 얼른 천막 밖을 벗어났다.


빠르게 다가오는 법사들이 느껴졌다.


삼십 초도 안 걸려서 일성의 눈앞에까지 들이닥칠 만한 거리였다.


이 상태로 법사들과 맞설 수는 없었다.


자신은 혼자인데, 상대는 운천에 정철··· 그리고 어리지만 건우까지.


몸이라도 성하다면야 맞서보기라도 하겠으나, 이런 영기로는 어림도 없다.


일성은 입술을 깨물다가 단상 옆으로 뛰어간다.


폴짝!

폴짝!

폴짝!


부대 깃발이 서 있는 자리 앞에 총을 든 미군이 있었다.


일성은 얼른 그 군인의 다리를 타고 올랐다.


일성을 확인한 법사들이 달려드는 게 보였다.


도마뱀 세 마리!


혀를 날름대며 달려드는 게 메뚜기로 변한 일성을 단숨에 집어삼킬 기세였다.


하지만···.


일성은 그보다 더 빨리 군인의 어깨까지 뛰어올라 그의 목덜미를 눌렀다.


“일성··· 멈춰라!”


십 미터 정도의 앞에서 도마뱀 세 마리가 점프하며 날아드는 순간이었다.


기가 막힌 타이밍에 사역당한 군인이 총을 들더니 전방을 향해 사격을 시작한다.


타타타!

타타타!


달려들던 도마뱀 세 마리가 혼비백산 공중에서 몸을 틀면서 흩어졌다.


총소리에 놀란 군인들과 귀빈들은 전부 비명을 지르며 땅에 엎드렸다.


공포에 질린 한 귀빈의 와이프는 드레스의 치맛자락으로 얼굴을 감쌌다.


또 한 여인은 하이힐을 벗어들더니 무릎걸음으로 엉금엉금 자리를 벗어났다.


그럼에도 총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타타타!

타타타!


순식간에 탄창 하나를 다 비운 군인은 다시 하나를 끼우더니 이번에는 총구를 돌렸다.


총구는 도마뱀 세 마리가 흩어진 방향으로 따라가는 것이었다.


하지만 다른 이들이 보기에는 사람을 노리는 것으로 오해하기 충분했을 것이다.


타타타!

타타타!


약 오 분 여 동안 이어진 총격은,


“STOP!”


탕!


들이닥친 다른 군인에 의해 제압되었다.


일성은 혼란을 틈타 달아나려고 군인들 사이로 뛰어들었다.


하지만 법사들은 이번에는 놓치지 않겠다는 듯 일성의 뒤를 쫓았다.


빠르게 달아나는 메뚜기.


그 뒤를 따르는 도마뱀 셋.


이들이 가로지르는 운동장 한가운데에는 아직도 아우성과 비명이 이어지고 있었다.


좀처럼 거리가 벌어지지 않자 일성이 갑자기 방향을 틀었다.


그의 눈에 미사일 발사 트럭 옆에 선 또 하나의 무장 군인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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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 131. 괴수를 막아라 2 24.05.31 4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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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9 129. 운천의 최후 2 24.05.29 4 0 12쪽
128 128. 운천의 최후 1 24.05.28 4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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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2. 쫓기는 일성 2 24.05.22 5 0 11쪽
121 121. 쫓기는 일성 1 24.05.21 6 0 11쪽
120 120. 독 안에 든 쥐 3 24.05.20 6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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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 118. 독 안에 든 쥐 1 24.05.18 9 0 11쪽
117 117. 철산이 쓰러지다 2 24.05.17 5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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