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아위로 님의 서재입니다.

행운 1,500으로 선협 세계 빙의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퓨전

공모전참가작 새글

아위로
작품등록일 :
2024.05.18 23:25
최근연재일 :
2024.07.04 00:54
연재수 :
36 회
조회수 :
266,165
추천수 :
7,717
글자수 :
241,210

작성
24.06.28 07:54
조회
5,273
추천
187
글자
17쪽

원씨 가문

DUMMY

그 시각.


원씨 가문의 장원, 그 안에서도 꽤 운치가 있는 한 정자 안.


그곳엔 가주 원광의 증손녀 중 한 명인 원영산(袁影山)이 우아한 자세로 차를 마시며 앉아 있었다.



그녀는 나이 사십에 축기기의 경지에 오른 재능있는 수사로, 그 자질이 자질인 만큼 원씨세가 내부에선 꽤나 입지가 있는 편이었다.


가주나, 또는 그와 똑같이 결단기의 경지에 이른 백부를 제외한다면.


이 집안에서 가장 지위가 높은 축에 드는 사람 중 하나가 바로 그녀.



그러니 그런 그녀가 직접 손님을 맞이하는 건, 원씨 가문 입장에선 백령자를 향해 사실상 가능한 한 최고 수준의 예우를 해주는 셈이었다.


하지만. 증조부의 명령에 군소리 없이 알았다고 대답은 했지만서도.


원영산은 이 상황이 그렇게까지 썩 마음에 들진 않았다.


‘백령자라···.’


스스로의 도호를, 무려 ‘하얀 봉우리’라고 짓는 수사라니.


‘너무나도 오만한 이름이구나.’


아무리 재능이 빼어나다곤 해도, 고작 축기기 수사가 이 정도로 방자하게 구는 건 조금 과하다는 게 그녀의 생각이었다.


그리고 원영산이 그렇게 작게 혀를 차던 그때.


“아가씨. 손님께서 거의 도착하셨다고 합니다.”


들려오는 시비의 말에, 원영산은 고개를 끄덕인 후 가볍게 옷매무새를 정리했다.


그리고 잠시 후, 백령자가 골목을 돌아 마침내 스스로의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그녀는 고즈넉한 태도로 고개를 돌려 다가오는 그의 얼굴을 확인했다.


그리고.


“아···.”


원영산의 입에선, 순간 저도 모르게 탄식에 가까운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무슨 사람의 얼굴이···.’


스스로를 저지할 새도 없이 본능적으로 벌어진 일이었다.


그도 그럴게, 백령자의 용모는 정말이지 당황스럽게 느껴질 정도로 준수했기 때문이었다.


‘설마 이 정도일 줄은···.’


완벽이라고 밖엔 묘사할 수 없는, 한 명의 사람이 가질 수 있는 매력의 한계치에 닿아 있다고 느껴질 정도의 얼굴과 분위기.


‘확실히··· 확실히 이자는 뭔가 다르긴 다르구나.’


걸음엔 기품이 넘치며, 표정엔 자신감 넘치는 은은한 미소가 깃들어 있었다.


살짝 위로 치켜든 고개에선, 세상 만물을 관조하는 약간의 오만함도 느껴졌다.


뒷짐을 진 채 옷자락을 나풀거리며 천천히 그녀를 향해 다가오는 그를 마주보고 있노라면.


원영산은 저도 모르게, 온세상의 수도자 중 오직 이자야말로 진정 신선이라는 이름에 걸맞는 품격을 가졌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아···.”


그리고, 그렇게 원영산이 두 입술을 벌린 채 넋을 놓고 백령자를 바라보던 그때였다.


“아가씨, 아가씨!”


옆에서 시종이 또 한 번 작게 소리치고 나서야, 마침내 원영산은 정신을 되찾고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백령자를 맞이할 수 있었다.


“손님께서 오셨습니다.”

“크흠··· 그래. 백령진인께서 오셨구나.”


그녀는 헛기침을 한번 한 후.


‘시작부터 이런 추태를 보이다니···. 내가 넋을 놓고 있던 꼴을 분명히 봤겠지? 날 너무 우습게 여겨선 안 될 텐데···.’


못난 모습을 보였던 자신을 자책하며, 애써 태연한 척 허점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마음을 다잡았다.


그리고.


그다음으로 원영산이 시작한 건 지극히 의례적인 이야기였다.


“혹시라도···.”


포장지에 싸여있을 뿐, 그 안에 들어있는 알맹이는 양측이 뻔히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원씨세가는 백령자를 초대해 융숭히 대접할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며칠 동안 상대를 지켜보며 괜찮은 사람인지를 확인한 후.


마음이 맞는다면 그를 손님으로 받아들여, 그가 영도진에 머무르는 동안은 서로가 상부상조하는 관계로 거듭날 것이다.


“저희··· 원씨 가문이 며칠간 귀하를 모시고 대접한다고 해도 괜찮겠습니까?”

“물론이지요.”


백령자는 차분한 목소리로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며 원영산의 제안을 수락했다.


그리고.


“머무를 동안 읽고 싶은 책이 있습니다.”


이어서, 그는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뭔가를 부탁하기 시작했다.


원영산은 조금 당황했다. 백령자는 마치 원씨세가가 당연히 이러한 그의 요구를 들어줘야만 한다는 듯한 태도였다.


***


원영산과 짧은 대화를 나누고 헤어진 후.


원씨 가문의 시비가 날 이끈 곳은 그들의 장원 안에 위치한 별장이었다.


‘오.’


화려한 장소였다.


인공적으로 형성된, 웬만한 운동장 정도의 크기를 가진 호수.


그리고 그 위에 지어진, 정자와 삼 층 짜리 누각을 포함한 여러 가지 구조물.



각각의 건물 사이론 편하게 호수 위를 거닐 수 있도록, 작은 다리 같은 통로가 마련돼 있었고.


그 다리 위를 걷다 보면, 자연스레 호수 위에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연꽃들이 시야에 들어오기도 했다.


와중에 새들은 날아와 내 어깨 위에 앉으며 청아한 목소리로 짹짹거린다.


‘좋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다. 이곳의 환경은 너무나 쾌적해 말문이 막힐 정도였다.


예전, 온갖 부귀영화를 누리던 왕이나 황제들이 바로 이런 곳에서 여가 시간을 보내곤 했을까.


아니. 심지어 그들조차 이처럼 운치가 좋은 장소에서 생활하는 호사를 누리진 못했을 것이다.


“전 이만 물러가 보겠습니다.”

“그래.”


하지만. 시비의 안내를 따라 주변을 가볍게 한 바퀴 둘러본 다음에도.


난 어딘가에 앉아 연못을 바라보며 운치를 즐기기보단, 우선 누각 안으로 들어가 지금의 상황을 먼저 살피기로 했다.


‘일단은 참자.’


난 부귀영화를 누리고, 인간 세상의 쾌락을 즐기는 걸 조금도 꺼리지 않았다. 되려 이러한 일을 반기고 좋아하는 편이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두 번째.


내가 제일 중요하게 여기는 첫 번째 우선 사항은 어디까지나 항상 수행과 실리였다.


‘즐기는 건 나중에 해도 돼.’


원씨세가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의 저력과 재산을 가진 경류문도, 불필요한 사치는 되도록 기피하는 풍조를 가지고 있지 않은가?


이는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대개 황금과 금은보화란 수선지로에 있어서 방해물이 되기 일쑤기 때문이었다.


‘암.’


난 그렇게 우선은 마음을 차갑게 가라앉히며 잠시 생각에 잠겨 상황을 점검했다.



내가 가볍게 조사한 바에 따르면, 영도진은 한 원영기 수사의 지배를 받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이곳에 머무르지 않고 근방의 다른 지역을 전전하기 일쑤였는데, 그 이유는 영도진 주변엔 원영기 수사의 격에 맞는 마땅한 떡고물이 없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호랑이 없는 굴의 토끼처럼, 이곳에서 왕 노릇을 하는 세력은 따로 있었으니.


그게 바로 원씨세가와 모(毛)씨세가였다.


‘캐릭터 정보. 인벤토리 1번.’


[1. 연기기 수사용 중하급 저물대]

[인벤토리]

[전체] [재료]

[소모품] [기타]

[하급 영석: 2,765]

[용량: 89.9/90]


내겐 용량을 꽉 채운 저물대가 이미 서너 개나 있었다.


난 이 엄청난 수량의 물건을 처분해 영석으로 바꾸기 위해.


그 외에도 다양한 일을 처리하기 위해 두 가문 중 하나에 몸을 의탁해 그 힘을 빌릴 생각이었다.



그리고, 모씨세가를 살펴보는 것도 좋겠지만.


별문제만 없다면야, 난 그럴 필요 없이 되도록 그냥 원씨세가와 관계를 맺을 생각이었다.


‘이게 나을 거야.’


운적인 요소가 따랐을 수도 있지만.


어쨌든 원씨 가문이 날 먼저 찾았다는 건, 아마도 그만큼 손님을 중시하고 발 빠르게 움직이는 성향이 있을 거라는 얘기.


다른 부분이야 상관없었다. 허튼짓을 하지 않고, 최대한 나를 중히 여길 사람들과 교류하는 것이야말로 이 상황엔 가장 상책이었다.


그리고, 내가 그렇게 생각에 잠겨있던 그때였다.


‘생각보다 빠르군.’


문득 신식 범위 안에 누군가가 접근하는 게 느껴진다.


그녀는 아까도 내게 이곳을 안내해줬던 시비.


난 삽시간에 최겸의 상태를 벗어난 후, 가면을 쓰고 다시 백령자로서 그녀를 맞이했다.


“선배님. 물어보셨던 대로, 가문이 소유한 풍수에 관한 책을 전부 가져왔습니다.”

“고맙다. 두고 가거라.”


선배님이라.


이 시점.


최겸이라면 아마도 무슨 말씀이냐며 손사래를 치고, 고개 숙여 인사한 후 일어나 시비를 배웅했겠지.


하지만. 백령자라면 여기서 무슨 행동을 해야 할까?


‘아마도···.’


그는 고귀한 신분을 타고난 자. 타인의 섬김을 받는 게 익숙한 자.


난 이 아이가 연기 초기에 머무르고 있는 수사라는 걸 간파했다.


이런 사고를 꺼림칙하게 여겼을 최겸과 달리, 백령자는 그와 시비 사이에 형성된 상하관계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아랫사람에게 관대히 무언가를 베풂으로써 윗사람의 덕목을 드러내고자 하지 않았겠는가?


따라서.


그녀가 책을 내려놓은 후 조심스럽게 뒤로 물러날 때.


“혹시 수행에 막히는 부분이 있진 않으냐?


난 상냥한 목소리로 시비를 멈춰 세워 그녀를 향해 가볍게 물었다.


“제가 어찌 감히···.”


그녀는 주제넘게 손님을 괴롭힐 수는 없다는 듯 손사래를 치고 있었으나.


‘보인다.’


난 알 수 있었다. 그녀가 쉽게 미련을 버릴 순 없을 거라는 걸.


아무렴. 재능있는 축기기 수사의 개인 지도를 경험해볼 수 있는데, 연기기 수사로서 어찌 이런 기회를 그냥 놓치고 싶을까.


“괜찮다. 어디 가서 입도 뻥긋하지 않을 테니 편하게 말해 보거라.”

“그렇다면···, 혹시 선배님께선···.”


그녀는 수행을 닦는 데 있어서 이론적으로 고초를 겪는 부분에 대해 내게 질문했다.


오성이 뛰어난 나는 막힘 없이 그녀의 의문을 해소해줄 수 있었다.


거기에 더해.


“이건 내가 주는 선물이다.”


난 아예 저물대에서 내겐 별 쓸모가 없는 영과를 하나 꺼내 생색을 내기도 했다.


그리고. 그러던 내 눈엔 머뭇거리며 부끄러워하는 시비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아, 내 매력 스텟은 신성이었지.’


새삼스럽게 기억난다. 내가 가진 무기는 5대 스텟이나 속성자질뿐만이 아니었다는 걸.


그리고, 최겸은 매력을 되도록 숨기며 필요할 때만 이용하고자 했다면.


백령자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러한 무기를 거침없이 발산하는 남자.


난 시비의 부드러운 손을 잡고 직접 영과를 건네주며 말했다.


“가져가거라.”

“감···감사합니다.”


허둥지둥 누각을 빠져나가는 그녀를 보며, 난 편하게 등을 기대고 그녀가 가져온 책들을 살피기 시작했다.


‘음···.’


이제, 앞으론 좀 더 중요한 인물로부터 입질이 오길 기다릴 차례다.


본격적으로 거래를 요청하고 이에 관해 논의를 해야 할뿐더러.


관각안으로 중요 인사들의 성향을 확인해볼 필요도 있었으니 말이다.


‘아마···.’


기다림은 금방 끝날 수도, 며칠이 걸릴 수도 있겠지.


아무렴 어떠랴. 그때까진 이들이 제공한 책이나 읽고 있으면 될 것을.


[승직한 이후, 처음으로 축기기 수준의 지식을 받아들이기 시작했습니다.]

[시원하게 사고가 뚫리며 예상치 못한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풍수가 10 상승합니다.]

[현재 능력치: 60]


***


그 무렵.


원씨세가의 가주, 원광은 시비의 보고를 들으며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손가락을 까딱거리고 있었다.


“책을 드리러 가보니, 이미 정자를 떠나 누각으로 들어간 흔적이 보였습니다.”

“오호라.”


원광은 일찍이 명했다. 백령자에겐 장원 안에서 가장 으리으리한 별장을 내어주라고.


그건 백령자가 그 정도 대접을 받을 정도의 가치를 가지고 있어서이기도 했지만.


색다른 환경을 던져주고, 그의 반응을 떠보며 백령자란 남자에 대해 좀 더 많은 걸 알고 싶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랬단 거로군···.’


운치를 즐기는 일엔 크게 눈길을 주지 않고, 곧장 누각으로 들어가 명상을 하고 있었다라.


그렇다면 그는 아마도 얼음처럼 냉철해 자제력이 뛰어난 사람일 것이다.


성격이 지극히 담대해, 하찮은 속세의 기쁨에 큰 가치를 두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고.


‘아니면···.’


또는, 그 화려한 별장이 단순히 백령자의 눈에 그다지 차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만약 경우가 이쪽에 해당한다면, 그는 지극히 부유한 명문대파나 이름난 고문(高門)의 후계자일지도 모른다.


이 경우 그의 출신성분은 확실히 그냥 넘기기 힘들 정도로 범상치 않은 부류에 속한다.


‘흐음···.’


다만.


그렇게 원광이 생각에 잠겨있을 때였다.


그는 이상하게도 시비의 숨소리가 꽤 거칠고, 그녀의 얼굴에 홍조가 조금 떠 있다는 걸 눈치챘다.


“허. 두어 번 봤다고 벌써 그자와 사랑에 빠지기라도 한 게냐?”


그는 격조가 없어 아랫사람들을 편히 대하고 종종 실없는 농담을 하나씩 던지곤 하는 편이었다.


이 역시 그러한 맥락에서 별 생각 없이 했던 이야기.


하지만.


“송구하오나 그렇습니다, 가주님.”

“그ㄹ··· 아니, 잠깐. 뭐라고 했느냐?”


예상치 못한 대답에, 원광은 미간을 찌푸리며 시비를 바라봤다.


“주제넘게 안 될 꿈을 꾸진 않습니다. 하지만 그분은··· 그분은 확실히 쉬이 저항하기 힘든 마력을 지니긴 하였습니다.”

“뭣이라···.”


원광은 황당한 마음에, 또 한 번 원영산을 불러 그녀에게도 비슷한 질문을 던졌다.


“아까 그자와 대면할 때 특이한 점은 없었느냐?”


헌데.


“흥. 그··· 그자는 확실히 제법 분위기가 있긴 하던데요.”


그녀마저, 시선을 내리깔며 부끄럽다는 듯한 표정으로 중얼거리듯 백령자를 칭찬하는 게 아닌가?


“···?”


원광은 황당한 표정으로 자신의 증손녀를 바라봤다.


이는 평소 남자에 관심을 두지 않던 그녀의 행실과 완전히 상반되는 모습이기 때문이었다.


‘일과 수행에만 미쳐 살던 아이가···.’


게다가 그녀의 나이도 이미 마흔을 넘었다.


아무리 오랜 세월을 살고 젊은 정신을 유지하는 게 수도자라곤 해도, 그 정도면 마냥 적다고 하기에도 뭣한 나이.


근데 그런 그녀가 무슨 이제 와서 갑자기 사춘기 소녀처럼 굴고 있단 말인가?


“허!”


원광은 크게 헛기침을 터트렸다.


황당한 일이었다.


백령자라는 사람을 초대한 지, 아직 하루도 채 되지 않았으며 이제 고작 두 사람이 그를 방문했을 뿐이다.


헌데.


처음 소식을 전했던 점원을 포함해, 백령자를 만난 사람들은 하나같이 그의 매력에 사로잡힌다.


무슨 귀신한테 홀리기라도 한 것처럼 완전히 매료돼, 반쯤은 그의 종이 되다시피 해버렸다.


‘확실히 보통이 아니군.’


원광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됐다. 쇠뿔도 단김에 뽑으랬다고···.’


그들같이 대단한 세력이 없는 가문은 항상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해, 능력이 있는 객인을 홀대할 처지가 못 됐다.


만약 백령자라는 남자가 그토록 대단하다면.


직접 대면해 사람 됨됨이를 확인해본 후, 최대한 빨리 연을 맺고 정식으로 귀빈 삼아 모시는 것도 밑지는 장사는 아닐 것이다.


***


한 번 결심을 내린 후.


원광은 더 이상 기다릴 것도 없이 곧바로 출발해 상대를 만나기 위해 이동했다.


그리고 백령자가 머무르고 있는 별장에 도착했을 때.


“일찍 오셨군요.”


백령자는 느릿하게 몸을 일으키고, 적당히 예를 차려 인사를 하며 여유로운 목소리로 원광을 응대했다.


마치 가주가 방문할 걸 이미 예상했다는 듯한 태도.


‘이런···. 난 결단기 수사란 말이다.’


원광은 작게 눈살을 찌푸렸다.


크게 문제가 있는 건 아니었지만, 역시 들은 대로 백령자가 조금은 오만하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원광은 일단 별다른 내색을 하지 않으며 백령자의 맞은편에 앉아 그와 대화를 나눌 준비를 했다.


헌데.


툭-


‘응?’


얘기를 시작해보기도 전.


이 백령자란 남자는 대뜸 절도 있는 동작으로 탁자 위에 저물대를 두 개 올려놓는 게 아닌가?


“가주께서는 부디 살펴보시지요.”


의미심장한 얘기에, 원광은 일단 잠자코 영력을 운용해 그 안을 살펴봤다.


그리고.


이어서 그는 눈을 부릅뜰 수밖에 없었다.


백령자가 건네준 두 저물대 안엔, 개인이 취급하기엔 너무 많을 정도로 엄청난 숫자의 재료와 약재들이 들어 있기 때문이었다.


“원씨 가문이 영도진에서 벌이는 사업이 꽤 많은 것 같았습니다.”


백령자는 여유로운 어조로 말을 이어갔다.


“이 물건을 처리하고 싶은데 마땅한 방법이 없더군요. 몫을 나누는 대가로, 가문에서 대신 이 물건을 처리해 줄 순 없겠습니까?”


원광은 애써 마음을 가라앉히며 그에게 되물었다.


“이게 끝인가?”


정말 물건이 더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은 아니었으며, 단지 예의 삼아 던졌을 뿐인 이야기였다.


헌데.


“방금 보여드린 건 제가 가진 물건 중 지극히 일부분에 불과합니다.”

“···!”


백령자는 원광이 차마 생각지도 못했던 답을 돌려주는 게 아닌가?


“무슨···.”


그리고, 잠시 말을 더듬는 원광을 보면서.


백령자, 즉 최겸은 조용히 미소를 짓고 있었다.


‘좋다.’


아까도 확인했다시피, 사실 그에게 당장 그 정도로 많은 물건이 있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가 터를 잡고 일 년에 가까운 세월을 기다릴 동안, 설마 아예 손가락을 빨면서 놀기만 하겠는가?


요수를 사냥하든, 길을 가면서 줍든. 장차 그가 얻게 될 막대한 양의 재료들.


일이 잘 풀리기만 한다면, 최겸은 전처럼 골머리를 썩일 것 없이 원씨 가문의 힘을 이용해 그 모든 자원을 손쉽게 팔아치워 영석을 챙길 생각이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9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행운 1,500으로 선협 세계 빙의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추천, 후원 감사 인사 24.06.28 94 0 -
공지 연재 주기 +1 24.05.22 6,976 0 -
36 진법 (3) NEW +6 7시간 전 1,153 80 12쪽
35 진법 (2) +10 24.07.03 3,145 152 16쪽
34 진법 (1) +12 24.07.01 4,135 185 16쪽
33 저물대 +13 24.06.30 4,773 191 16쪽
» 원씨 가문 +9 24.06.28 5,274 187 17쪽
31 백령자(白嶺子) +11 24.06.27 5,768 192 14쪽
30 두 번째 모임 (3) +13 24.06.25 6,298 195 15쪽
29 두 번째 모임 (2) +15 24.06.24 6,163 226 14쪽
28 두 번째 모임 (1) +11 24.06.22 6,474 221 13쪽
27 저점 매수 +15 24.06.21 6,500 186 12쪽
26 인망 +8 24.06.20 6,774 212 14쪽
25 정리 +10 24.06.19 7,088 208 21쪽
24 하늘의 길 (4) +17 24.06.17 7,081 233 15쪽
23 하늘의 길 (3) +21 24.06.16 7,051 239 17쪽
22 하늘의 길 (2) +15 24.06.14 6,932 236 14쪽
21 하늘의 길 (1) +17 24.06.13 7,093 238 12쪽
20 승급 (2) +7 24.06.12 7,006 219 14쪽
19 승급 (1) +7 24.06.11 7,103 215 14쪽
18 주자호 +12 24.06.09 7,217 211 15쪽
17 거래 +13 24.06.08 7,454 217 17쪽
16 천영경 +21 24.06.07 7,575 229 13쪽
15 화신기 수도자의 유해 (4) +10 24.06.05 7,629 218 18쪽
14 화신기 수도자의 유해 (3) +8 24.06.03 7,496 193 11쪽
13 화신기 수도자의 유해 (2) +13 24.06.01 7,529 198 11쪽
12 화신기 수도자의 유해 (1) +9 24.05.31 7,900 209 15쪽
11 연단 +5 24.05.30 8,026 221 14쪽
10 식별 +6 24.05.28 8,297 218 15쪽
9 천도 축기경 +7 24.05.28 8,704 222 18쪽
8 통성명 +8 24.05.27 8,834 238 16쪽
7 업무 +7 24.05.26 9,077 242 14쪽
6 이득 +9 24.05.25 9,100 242 13쪽
5 해야 하는 일 +15 24.05.24 9,519 246 15쪽
4 오성 +8 24.05.23 10,114 239 12쪽
3 마음가짐 +20 24.05.22 10,952 238 18쪽
2 자질 +10 24.05.20 11,689 249 12쪽
1 주사위 굴리기 +23 24.05.18 13,065 272 18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