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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위로 님의 서재입니다.

행운 1,500으로 선협 세계 빙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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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새글

아위로
작품등록일 :
2024.05.18 2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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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22 0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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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8쪽

마음가짐

DUMMY

“속세에 대한 미련이 아예 느껴지지 않는다니.”


적성자가 하던 말을 끝낸 후.


‘무슨···.’


도열해 있던 오십 명의 사람들은 하나같이 경악에 사로잡혔다.


이제 막 문파에 가입해, 아직 수행을 시작하지조차 않은 풋내기가.


속세에 대한 미련을 아예 느끼지 않는다라.


그게 정말 가능한 일이란 말인가?


‘말도 안 돼.’

‘대체···.’


경류문은 당당한 마도 문파로, 이곳에 모인 사람들 역시 평균적으로 남들에 비해 무정하고 이기적인 심성을 지닌 편이었다.


덤덤하게 고향을 떠나, 다시는 가족의 모습을 보지 않을 각오로.


오직 신선이 되겠다는 마음만으로.

수행을 쌓아 경지를 올리고, 고강한 법력을 갖춰 부와 권력을 누리며 남들 위에 군림하겠다는 마음만으로.


그렇게 정신을 단단히 무장한 뒤에야 문지방을 나섰던 이들 역시 부지기수였다.


헌데.


‘저 녀석···.’


그런 사람들이 수천, 수만이나 모여도 누구 하나 해낼 수 없던 일을.


능히 해낼 수 있었다는 것이다. 저 남자 한 사람만큼은.


이는 저 최겸이란 녀석의 정신력이, 실로 다른 문도로서는 범접할 수조차 없을 정도로 지고지순한 경지에 이르렀단 말이 아니겠는가?


‘꿀꺽.’


하나둘씩 침을 꿀꺽 삼켰다.


실로 격이 다른 의지력이라는 게 무엇인지를 알 것 같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에 반해.


‘이런 젠장맞을···.’


정작 당사자인 최겸은 마음속으로 탄식만을 터트리고 있었다.


최대한 조용히 모든 일을 넘기고 싶던 게 그의 마음이었는데, 결국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야 말았다.


속세에 대한 미련이 없다니.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어.’


사실 현실은 정반대였다.


아마 이곳에 있는 그 누구보다도, 속세를 향해 돌아가고픈 열망으로 가득 찬 게 바로 그였을 것이다.


수도자가 되어 힘을 만끽하고자 자발적으로 이곳에 온 다른 이들과 달리, 최겸은 어디까지나 난데없이 타의에 의해 끌려온 입장이었으니.


‘···뭐.’


하지만 왜 적성자가 그런 말을 했는진 알 것 같았다.


최겸은 뼛속 깊이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원하는 게 무엇이든, 그 정답은 오로지 수행에 있다는걸.


돌아갈 장소 따위는 없다는걸.


‘내가 무슨 차원 이동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언제라도 마음만 먹는다면 물리적으론 고향에 돌아갈 수 있는 다른 자들과 달리, 최겸에겐 아예 그러한 선택지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니 쓸데없는 미련을 품을래야 품을 수가 없고, 수행에 적합한 마음가짐을 가지게 될 수밖에.


적성자의 말이 그래도 반쯤은 맞았던 셈인 것이다.


“좋다!“


그리고, 적성자가 그렇게 최겸을 향해 오행지초를 넘기려던 그때였다.


“저··· 적성진인! 잠시만··· 제 증조부께선···.”


군중 안, 값비싸 보이는 비단옷을 입고 있던 남자 한 명이 다급하게 소리치며 손을 들었다.


뻔한 수작이었다.


탐나는 물건이 남의 손아귀에 들어가기 직전이었으니, 가족 친지의 이름이라도 빌려 숟가락을 얹어보겠다는 게 아니겠는가?


“제 증조부께서도 바로 경류문 소속으로, 그분께선 현재 축기기의 경지에 머무르고 계시는 수사입니다. 혹시···.”


하지만 말을 미처 끝마치기도 전에.


“닥쳐라!”

“아···.”


적성자의 호령과 함께 구름이 주홍색으로 물들고, 마른하늘에선 낙뢰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벼락을 맞은 산맥의 봉우리 하나는 굉음을 내며 조금 무너져 내렸다.


어느새 사람들의 발밑, 연무대의 바닥 석판 위엔 칠흑색의 스산한 기운이 맴돌고 있었다.


“약육강식(弱肉強食), 우승열패(優勝劣敗)!”


고함치는 적성자의 목소리는 천둥처럼 울려 퍼지며 사람들의 고막을 파고들었다.


“약자는 도태되고, 강자가 번성한다는 건 비단 우리 같은 마도 문파뿐만이 아니라 수선계 전체를 관통하는 섭리다!”


서늘한 공포가 군중에 스며들고 있었다.


“만약 네 증조할아버지가 나와 같은 결단기, 아니면 원영기의 수사였다면 내가 오늘 이토록 네 놈을 함부로 대할 수나 있었겠느냐? 네놈이 이곳에서 나와 드잡이질을 할 필요나 있었겠느냐?”


특히나 이 사단을 일으킨 당사자였던 비단옷을 입은 남자는, 얼굴이 그야말로 백지장처럼 하얗게 질려 당장 졸도해도 이상하지 않을 수준이었다.


“또 물렁한 소리를 하는 놈이 있다면 내가 먼저 손을 써 죽여 버리겠다! 불만이 있다면 힘을 가져라. 이 오행지초는 이미 최가 놈의 몫이야!”


말을 끝마친 적성자는 사나운 눈초리로 전방을 응시했다.


그리고 그가 발견한 건.


‘오호라.’


겁에 질려 몸을 부들부들 떠는 신입 문도들.


그리고, 그에 반해 마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듯 평온한 표정으로 무덤덤하게 서 있는 최겸이었다.


“재미있는 녀석이군.”


적성자는 입꼬리를 주욱 찢으며 최겸을 향해 미소 지었다.


“받아라. 내 언젠가 널 다시 만나러 오겠다.”


벌겋게 물든 두 흰자위는 시뻘건 안광을 사정 없이 분무하고 있었다.


***


한바탕 소란을 피운 적성자가 자리를 떠난 지도 시간이 조금 흐른 후.


내 귀엔 예상치도 못했던 소리가 들어왔다.


“조심해라.”

“···뭐?”

“기고만장하지 말고 행실을 조심하라고 말했다.”


그동안 줄곧 내 옆에 서 있던 이름 모를 동료가 꺼낸 말이었다.


“···.”


난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무슨 얘기를 한다고 해 봤자 긍정적인 반응이 나올 리도 없을 것 같았다.


그리고. 그렇게 몇여 분의 시간을 더 기다리고 나니.


“따라오거라.”


머지않아 머리가 하얗게 센 백발의 노인이 나타나 나를 데리고 어딘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는 장씨 성을 가진 노인이었는데, 경지는 알 수 없지만 그 역시 수도자로 몸을 움직이는 모양이 상당히 날렵해 보였다.


“이곳이 앞으로 네가 지낼 곳이니라.”


머지않아 우리가 도착한 곳은 문파 경내의 인적이 드문 곳에 위치한 작은 집이었다.


이곳은 내가 축기기의 경지에 이르기 전까지 생활할 장소기도 했다.


“어르신. 혹시 제 수준에 맞는 공법이나 법술이 담긴 비급을 찾으려면 어디로 가야 합니까?”


난 이대로 장 노인과 헤어지기 전, 뭐라도 얻을 것이 없나 하는 마음에 질문을 하나 던졌다.


“자질구레한 일들은 내일이 되면 자연스레 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소인은 당장 수행을 시작하고 싶습니다.”

“쯧···.”


그가 혀를 찰 때만 해도 괜한 소리를 한 건가 싶었지만.


“이것은 거화공(擧火功)이라는 책으로 내겐 더 이상 조금도 쓸모가 없는 것이다. 가지거라.”


결국은 장 노인에게서 당장 수행을 시작하기 위한 기초 공법이 담긴 비급을 하나 얻을 수 있었다.


난 계속해서 그에게 질문했다.


“수행을 시작한 후 처음으로 도달하는 경지는 연기(煉氣)가 맞습니까? 다음 단계는 뭐죠?”


“···이제 막 수행의 길에 발을 올린 첫 번째 단계가 네 말대로 바로 연기기(煉氣期)지. 이어서는 차례대로 축기기(築基期), 결단기(結丹期), 원영기(元嬰期), 화신기(化神期). 그리고 마지막으론 오도(悟道)와 합도(合道)의 경지에 이른다.”


그의 말을 들으면서, 난 경지를 구분하는 방법이 내가 알던 게임의 정보와 여전히 일치한다는 사실 역시 확인했다.


이어서, 내가 모르는 정보를 캐내기 위한 시도 역시 해봤지만.


“그 위로는 없습니까?”


장 노인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을 뿐이었다.


“나로선 알 수가 없구나.”


그 말을 끝으로 장 노인은 등을 돌린 뒤 내 방을 떠나 버렸다.


“후우···.”


난 침대 위에 걸터앉았다.


짧은 시간이지만 많은 일이 있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아니.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난 현대 지구에서 살고 있었지만.


어느새 나는 아예 다른 차원의 세계에 와 있다.


‘이제···.’


난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과연, 이제부터 내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그리고 정답은 명확했다.


‘역시 이대로 수도자가 돼야겠지···.’


결국은 수행이었다.


내가 어째서 이 세계에 빙의한 건지, 혹시라도 돌아갈 방법을 찾을 수 있진 않을지.


그 단서를 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이러한 세계의 비밀에 접근할 수 있을 만큼 강대한 힘을 가진 수사가 되는 것뿐이었다.


게다가.


‘그렇게 나쁜 일도 아니야.’


툭 까놓고 말해서, 수도자들이 범인으로선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힘과 권력을 누린다는 사실 역시 조금이나마 나의 빠른 결심에 일조했다.



난 보통 사람들이 꿈에만 그리는 영근을 지니고 있는 데다가, 그런 영근을 지니고 있는 자들조차 꿈에서나 그릴 만큼 엄청난 재능을 가졌다.


게임을 통해 얻었던, 적지 않은 양의 정보 역시 있었다.


그러니 계속해서 수행에 매진하기만 한다면, 언젠가 만인지상의 자리에 올라 무소불위의 권력과 함께 영생을 누리는 것도 터무니없는 꿈은 아닐 터.


이미 상황이 이렇게 되고야 말았는데, 굳이 억지로 점잔을 빼면서 이러한 길을 피해 가야만 할 이유는 또 뭐란 말인가.


그리고 애시당초.


‘···뭐.’


내겐 선택지 자체가 없기도 했다.


이미 난 수도 문파에 가입해, 심지어는 이미 오행지초까지 챙겨버린 몸.


갑자기 이제 와서 선인이 되고 싶지 않다고 징징거리기라도 할 건가?


‘잘못했다간 바로 목이 날아가겠지.’


내 머릿속엔 문득 적성자의 말이 떠올랐다.


“약육강식, 우승열패···.”


난 이 여덟자의 글귀가, 특히 경류문 안에서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경류문의 방침은 이랬다.

아무리 자질이 뛰어난 자라도, 온실 속의 화초로 자란다면 결국은 대단한 전력이 되는 일 없이 허무하게 죽는다.


오직, 적자생존의 법칙을 이겨내고 살아남은 자만이 진정 어엿한 한 사람의 수사다.


‘하필 빙의해도 이따위 문파에···.’


이곳의 생활 여건 역시 이러한 문규에 따라 조성돼 있었다.


축기기의 경지에 오르기 전까지, 나 같은 신입 문도들이 지내는 환경은 사실상 야생이나 마찬가지였다.


그야 동문을 죽이면 안 된다는 기본적인 규칙이나 법도야 있지만.


내 경지가 오르기 전까진, 따로 문파 차원에서 날 철저하게 보호해 주는 일 따위는 없을 거라는 얘기다.


빨리 수행을 쌓아 올리든, 든든한 뒷배를 구하든, 누구도 날 건드릴 수 없는 환경으로 숨어버리든.


내 명줄을 부지하는 일은 오로지 내게 달린 일.


‘할 거면 제대로 하자.’


난 물렁했던 전생의 나를 내 안에서 조금 지워버렸다.


좋든 싫든 이제부터 난 한 사람의 수도자로서 살아가야만 했다.


그러므로.


‘···최겸, 마음먹었으면 빨리 움직여라!’


굳게 마음을 다진 후, 난 마침내 주머니에서 오행지초를 꺼내 들었다.


‘이거···.’


이걸 내가 직접 취하냐, 아니면 적당한 대가를 받고 넘기냐 역시 선택할 수 있는 두 가지 길이었다.


‘먹자.’


내 선택은 두말할 나위 없이 ‘취하자’였다.


꿀꺽-


[오행지초를 복용했습니다. 모든 속성 자질이 +10 상승합니다.]


이미 수선자의 길을 걷기로 결심하고 정신을 무장시킨 이상, 오행지초는 쉽사리 양보하기엔 아쉬운 아이템이었다.


지금 같은 극초반부에 모든 속성 자질 10 증가라.


이로 인해, 난 연기기 수사에게 어울리는 저계 법술 중 대부분을 익힐 수 있는 몸이 되었다.


심지어 거기에 더해.


‘···!’


[당신은 오행지초의 약효를 흡수하던 중, 우연찮게 새로운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모든 속성 자질이 추가로 +5 상승합니다.]


문득 뱃속의 기운이 조화롭게 합쳐지는 감각과 함께, 난 머릿속이 탁 트이는 것 같은 기분이 느껴졌다.


‘미쳤군.’


이게 1,500의 행운으로 인해 발생한 일이라는 걸 잘 알았다.


앞으로도 내겐 이런 요행이 계속해서 쉴 틈 없이 찾아올 것이다.


그리고.


‘알림창이 눈앞에 뜬다는 건···.’


여태껏 놓치고 있던 한 가지 사실 역시 깨달을 수 있었다.


지금까지 무의식적으로, 난 그저 내가 세 가지 특성만을 가지고 이 세상에 빙의한 것처럼만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러고 보니, 빙의하기 직전 그런 메시지가 뜨지 않았었던가.


[관각안]을 획득했다고.


‘혹시···. 캐릭터 정보?’


-캐릭터 정보

[이름: 최겸]

[수명: 20/32]

[매력: 신성]

[심력: 10]

-능력치

[자질: 500]

[오성: 500]

[행운: 1,500]

[손재주: 500]

[눈썰미: 500]

-속성 자질

[화: 35] [수: 35]

[토: 35]

-기술

[연단(煉丹): 10] [연기(煉器): 10]

[부적: 10] [풍수: 10]

[식별: 10]

-특성

[보유 개수: 4]


‘···그랬군.’


과연.

관각안이라는 특성은 상태창을 말하는 거였다.


‘특성. 관각안.’


[관각안(觀覺眼): 본질을 꿰뚫어 보는 눈을 얻었습니다.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을 명료하게 한 눈에 파악할 수 있습니다. 조건부로 타인의 경지와, 그가 중시하는 가치를 간파할 수 있습니다.]


또한, 설명을 읽어보니 관각안엔 또 다른 효과가 하나 더 있다는 사실 역시 알 수 있었다.


타인의 경지와, 그가 중시하는 가치를 파악할 수 있다라.


기회가 생길 때 한 번 시험해 봐야겠다.


하지만 지금은 일단 다른 할 일을 해야 할 때였다.


‘빨리 움직이자.’


아까도 결심했다시피, 더 이상 농땡이를 피우고 안일한 마음가짐으로 살아갈 생각은 없었다.


수도자들의 세계에서 하루란 아무것도 아닌 시간이지만, 그래도 당장 내일 무슨 일이 발생할지는 그 누구도 모르는 법.


난 장 노인으로부터 얻었던 비급을 펼쳐 들었다.


본디 신입 문도들이 수행을 시작하는 날은 내일이었지만, 난 남들보다 먼저 한 발자국을 내디뎌 조금이라도 우위를 점해 안전을 도모할 생각이었다.


***


그날 밤.


[공법을 단련해 연기기의 경지에 도달했습니다.]

[숨을 쉬는 게 편해집니다.]

[몸이 한결 가벼워집니다.]

[앞으로 법술을 익힐 수 있습니다.]

···


아까부터 시작해 쉬지 않고 거화공을 익힌 끝에, 연기기의 경지에 도달한 후 떠오르는 메시지창을 확인하고 있을 무렵이었다.


똑똑-


‘···!’


누군가가 문을 두들기는 소리를 들은 나는 놀라 경계심에 눈을 부릅떴다.


“날 기억하느냐? 들어가겠다.”


하지만 상대의 말소리를 듣고 난 이후엔 어느 정도 안심해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선녀께서는 무슨 일로 이 누추한 곳까지 오셨습니까?”


상대는 적성자와 함께 신입 문도들을 내려다보던 세 명의 결단기 수사 중 하나, 흑련선자였다.


“너에게 제안할 것이 있다.”


거침없이 안으로 들어온 흑련선자는 침대 위에 걸터앉아 다리를 꼬았다.


그녀가 꺼낸 건 단도직입적인 이야기였다.


“이 흑련은 너처럼 용모와 자질이 빼어난 청년 준걸을 좋아하지. 내 너와 사제의 연을 맺을까 하는데, 네 생각은 어떤지 한번 말해줄 수 있겠느냐?”


날 제자로 삼고 싶다는 제안.


그녀의 말이 끝나는 순간.


난 주저 없이 바닥에 엎드려 절을 하고 사제지간의 예를 올렸다.


“스승으로 모시겠습니다.”

“귀엽기는. 너무 요란을 떨진 말거라.”


장점만 있는 건 아니었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흑련을 스승으로 모시는 건 딱히 손해라고 할만한 일도 아니었다.


최소한 한동안은, 그녀가 날 반드시 지켜야 할 소중한 제자 따위로 여길 일은 없겠지만.


어쨌든, 내가 현재 시점에서 최우선으로 여기는 ‘신변의 안전’에 도움이 되긴 될 것일뿐더러.


“받아라. 이것이 네 수행에 도움을 줄 것이다.”


이것 봐라.


제자가 되기로 하자마자, 그녀는 보란 듯이 내게 영초를 한 뿌리 하사했다.


아무리 [행운]의 영향도 있다지만, 벌써부터 스승을 모신 보람이 느껴지지 않는가.


‘이건···.’


그녀가 나에게 선물로 준 건 아직까진 정확히 효과를 파악할 수 없는 뿌리 약초였다.


그리고.


이 물건을 만지작거리며 좀 더 자세히 그 모양을 살피던 도중.


“옳지···.”


불현듯 내 허벅지와 가슴팍에서 푹신한 뭔가가 느껴지는 걸 깨달은 난 당황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려 흑련을 바라봤다.


“어···?”


그녀는 어느새 내 무릎 위에 올라타 서로 얼굴을 마주 보는 자세로 앉아 있었다.


그 숨결이 고스란히 느껴질 정도로 가까운 거리.


“스승님. 무슨···.”

“으응, 얌전히. 혹시 스승님과 함께 쌍수(双修)를 배워보지 않겠느냐?”


난 실로 허를 찔려 버렸다.


‘이런 미친!’


그러고 보니 잠시 동안 잊고 있었다. 특정 수준 이상의 [매력]을 보유한 캐릭터로 오행지초를 하사받고 나면, 흑련이 일정 확률로 쌍수를 제안한다는 걸.


“스승님. 부디 제자를 난처하게 만들지 말아 주십시오.”


난 우선 그녀를 떼어놓고자 에둘러 거절을 해보기도 했지만.


“괜찮대도.”


흑련선자의 태도는 막무가내였다.


‘이런, 잠시라도 그냥 지나가는 순간이 없구나···.’


잠시 동안, 난 대체 무슨 짓을 해야 그녀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를 고민했다.


그리고 머지않아.


‘아니, 잠깐.’


난 또 생각했다. 내가 왜 굳이 지금 그녀를 피해야 하지?


처음에야 본능적으로 거부반응이 느껴지긴 했지만.


따져보니 꼭 그럴 이유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내가 처신만 잘한다면야, 어떤 형태로든 흑련선자와 관계를 맺는 건 나쁘기만 한 일이 아니었다.


허울뿐인 사제관계에서 끝나는 수준이 아니라, 서로 한 번 애정을 나누기까지 한 사이가 된다면.


‘혹시···.’


장차 그녀의 후광을 등에 업고, 내가 주도적으로 뭔가 일을 벌여볼 여지가 생길 수도 있을 터.


게다가 밤새도록 그놈의 쌍수를 하고 나면, 내 수행이 어느 정도 증진될 거라는 사실 역시 간과할 수 없었다.


“어허. 다른 생각 하지 말고 누나에게 집중해야지.”


내가 고민하는 이 순간에도, 흑련선자는 내 뺨을 쓰다듬으며 연신 날 향해 뜨거운 입김을 내뿜고 있었다.


“···예.”


흑련의 얼굴이 기어코 가까이 다가와 서로의 입술을 포개는 순간.


결국 결심을 내린 나는 흑련선자의 뒷목과 허리를 끌어안으며 그녀의 입술 안으로 혀를 집어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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