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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위로 님의 서재입니다.

행운 1,500으로 선협 세계 빙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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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위로
작품등록일 :
2024.05.18 23:25
최근연재일 :
2024.07.04 0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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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08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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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쪽

거래

DUMMY

무진주 어느 곳.


고풍스러운 느낌을 풍기는 분위기와는 달리, 오직 값이 싸 보이는 가구 몇 가지만이 검소하게 놓여 있는.


누군가가 영력을 불어넣어 정해진 문을 두드리지 않는 한, 조금도 안팎으로 소리나 기척이 통하지 않도록 제작된 방 안.


“이··· 이런!”


방금 막 천영경에서 빠져나온 초중년의 남자.


육호, 임영서(林映書)는 당황한 표정으로 깨어나 머리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그들에게 못난 꼴을 보였군.’


그는 숨을 한번 깊게 내쉬었다.


이번 모임에선 놀랄만한 일이 많았다.


오늘 대화의 중심에 서 있었던 팔호도 팔호였지만.


‘칠호···.’


마찬가지로, 칠호 역시 그랬다.


아무리 잠시 고장이 났었다지만, 여전히 자신의 귀는 열려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듣든 말든 신경도 안 쓴다는 듯 보란 듯이 큰 소리로 칠호가 떠들어댔던, 그 반천역도공이란 심법의 내용은 정말이지···.


“그자는··· 그자는 정말 제정신이 아니야. 어떻게 그토록 소름 끼치는 발상을 할 수가···.”


육호, 임영서는 수도계에서의 견식이 결코 적지 않았지만.


그런 그로서도 이처럼 패도적인 공법은 한 번조차 구경해 본 적이 없었다.


‘무섭게 느껴질 정도의 광기다···.’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임영서 역시 만만찮은 남자는 아니었지만, 소유한 공법의 위력과 그 천재성에 있어서 만큼은 절대 칠호를 따라가지 못할 것이다.


이 공법의 수준은 그야말로 하늘에 맞닿아 있다고밖엔 표현할 방법이 없을 정도였다.


‘팔호는 정말 귀한 물건을 얻은 셈이야.’


그리고, 이 공법을 막 손에 얻게 된 팔호는 대체 어떤 남자일까.


임영서가 그렇게 고민에 고민을 이어가던 그때였다.


똑똑-


문득 문밖에서 들려오는, 누군가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


‘···.’


임영서는 삽시간에 얼음처럼 차가운 표정으로 되돌아와.


법술로 단정하게 머리를 정리한 후, 소매를 펄럭거리며 문을 열고 당당한 걸음걸이를 한 채 문밖으로 향했다.


“맹주님! 나오셨습니까.”

“그래.”


그가 머무르고 있던 방이 자리 잡은 곳은, 무진주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엄청난 길이의 거대한 성벽.


대명장성(大明長城) 위. 그중에서도 정확히 중간에 위치한 지점이었다.



밖으로 나온 임영서는 아무런 감정도 드러나지 않는 얼굴로 성벽 아래를 굽어봤다.


그곳엔 황금빛으로 빛나는 선인들의 수도.


수도계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 금하성(金霞城)이 찬란한 빛을 발하며 스스로의 위용을 뽐내고 있었다.



황금색으로 빛나는 진노란색 기와는 도시 전체를 수놓았다.


곳곳엔 폐관 수련을 위해 마련된 공련탑(空鍊塔)이 둥둥 떠다니고 있었고.


평범한 수사들이 머무르는 구역조차 마치 인간 세상의 황제가 머무르는 궁궐을 방불케 했다.


마치 세상의 모든 부가 이곳에 모여있는 것처럼만 느껴지게 만드는 광경이었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그 반대쪽엔.


“무슨 일로 날 불렀느냐.”

“그것이··· 사급··· 사급 대요수가 접근하고 있습니다!”


그 흔한 영초 하나조차 자라지 않을 만큼 척박한.


오로지 우글거리는 요수들로만 가득한 불모지. 대막황야(大漠荒野)가 자리 잡고 있었다.


“맹주님···.”

“조용.”


임영서는 가늘게 뜬 눈으로, 저 멀리서 느릿느릿 다가오는 산만 한 크기의 거대 요수를 바라봤다.


어느 순간부터 시작된, 끝없는 요수들의 습격을 막기 위해 조직된 단체.


무진주의 정도 수선계를 대표하는 선도맹(仙道盟)의 맹주로서.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다.”


대명장성을 수호하고, 이곳에 접근하는 모든 요수들을 처리하는 건.


그가 지고 있는. 오로지 그만이 질 수 있는 숭고한 의무.


스릉-


허리춤에 차고 있던 평범한 외양의 검을 뽑은 후.


임영서는 결인을 맺으며 물처럼 부드러운 동작으로 허공에 칼을 휘둘렀다.


그러자.


“···!”


천리 밖.


다가오던 대요수는 아무런 소리도 없이 불현듯 반으로 토막 나, 마치 단면이 맞닿은 두 얼음 조각이 미끄러지듯 몸체가 붕괴돼 쓰러져 지천을 흔들며 굉음을 울렸다.


‘이··· 이게 맹주님의···.’


임영서를 부르러 달려왔던 시종은 침을 꿀꺽 삼켰다.


웬만한 문파 하나를 멸망시킬 수도 있는 수준의 전력으로 분류되는 사급 대요수가 이토록 쉽게 죽었다.


고작 일격. 그것도 천리 밖에서 휘두른 칼짓 한 번에 그 목숨을 잃어버리고야 만 것이다.


“감···감사합니다, 맹주님! 도움을 요청하는 일이 점점 잦아져서 죄송합니다. 이러다가 합도경에 이르시는 데 방해가 되진 않을지···.”

“언젠가 이 요수들의 습격이 끝나거나, 내 자리를 이을만한 다음 사람이 선출되기 전까지. 난 단 한 순간도 맹주로서의 의무를 게을리하지 않을 것이다. 걱정하지 말고 이만 가거라.”


감정의 기복이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 덤덤한 목소리로 대답한 육호, 임영서는.


다시 그가 머무르는 밀실 안으로 들어가 문을 걸어 잠그고는.


‘갈수록 요수들의 공격이 거세지는군. 그나저나 팔호, 팔호···.’


이어서 고민하기 시작했다.


팔호. 그의 정체가 대체 무엇일지.


임영서는 깊은 생각에 빠져들어 여태껏 팔호에 대해 눈치챈 사실들을 되짚어 보기도 했다.


‘내가 알 수 있는 건···.’


그는 아마도 두 개, 혹은···. 확률은 희박하지만, 그 이상의 대천부운명을 가졌다.


저계 수사의 치기일지, 계산된 자신감일진 모르겠지만. 그는 결코 담이 작진 않은 남자다.


그는 연기기 수사의 몸으로 천영경에 들어올 수 있었다.


‘그는 대체···.’


팔호는 누구인가?


엄청난 재능을 가진 연기기 수도자를 찾아, 그의 육신을 빼앗은 사악한 무언가인가?


모종의 방법으로 환생 따위를 한 노괴이진 않을까?


수행을 한 번 초기화하고 시작부터 기초를 두텁게 다져 나간다는, 전설로만 들어봤던 공법을 익힌 사람은 아닐까?


그것도 아니라면, 정말 그저 극도로 비범한 연기기 수도자란 말인가?


‘힘들군.’


계속되는 고민 끝에, 어느 순간 임영서는 굳은 표정으로 이 문제에 대해 생각하는 걸 멈췄다.


아무리 생각해도 답을 찾을 수가 없는 문제라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거래라···.’


아예 방법이 없는 건 또 아니었다.


팔호가 말하지 않았는가.


그냥 대답해 줄 순 없지만, 거래를 할 순 있다고.


사실 생각해 보면 지당한 이야기였다.


‘분명 공평한 일이다.’


애당초, 천영경이란 공간의 핵심적인 속성 자체가 바로 서로의 정체를 숨길 수 있다는 것인데도.


굳이 서로의 본모습을 보고 싶다고 설치는 건, 그야말로 이러한 공간의 근간 자체를 뒤흔드는 일.


그러니. 이처럼 금기를 대놓고 깨면서까지 그의 정체를 꼬치꼬치 캐묻고 싶다면.


무언가 대가를 치르긴 해야겠지. 딱히 억울할 것도 없는 조건이었다.


‘흐음.’


육호, 임영서는 턱을 만지작거리며 잠깐 생각에 잠겼다.


거래, 거래라.


‘난 그자에게 무엇을 제공할 수 있지?’


***


‘응?’


칠호, 유성풍(劉星風)은 잠깐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천영경의 공간에서 빠져나오고 보니, 자신의 손이 웬 놈의 머리채를 붙잡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아, 맞다.’


머지않아 그는 천영경에 들어가기 전, 자신이 무슨 일을 하고 있었나를 떠올렸다.


그래. 일이 있어 잠깐 어딘가로 이동하던 도중.


우연히 근처의 한 수도자가 역겨운 짓거리를 하는 걸 감지해, 도륙을 내버리겠다는 마음에 잠깐 밑으로 내려온 참이었지.


“잘못했습니다, 잘못했습니다···. 제발 살려주십···.”

“네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는 아느냐?”

“소··· 소인이 범인들의 마을에 진법을 설치하고 주민들의 생기를 전부 흡수하려고 해서가 아닙니까?”


그의 손아귀에 붙들린 원영기 수사는 비굴한 표정으로 유성풍을 향해 애원하고 있었다.


“살려주십시오. 다시는, 다시는 그러지···.”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게야?”

“···예?”


하지만.


“약자가 강자에게 죽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 네놈은 늑대가 토끼를 사냥했다고 해서, 그들을 잔혹하고 사악하다고 탓할 생각이냐?”

“무··· 무슨···.”

“네가 수행에 꼭 필요해 어쩔 수 없이 그들을 죽였다면, 나 역시 오지랖을 부리지 않고 그냥 넘어갔을 것이다.”


아직까진 차분하게 들리는 말투와 달리.


칠호, 유성풍은 속으론 상대를 보내줄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었다.


“그럼 왜···.”

“나도 방금 기억났다!”


그는 돌연 격노해 소리치며 원영기 수사의 머리통을 땅바닥에 패대기친 후.


“네놈! 진법을 설치하기 전, 분명 마을 주민들을 재미 삼아 잔인하게 능욕했었지!”


자신의 무릎을 높이 들어 올리고, 다음으론 연신 발바닥을 밑으로 내리찍으며 원영기 수사의 몸을 고기 경단처럼 다져버리기 시작했다.


“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이 망할 놈! 죽일 거면 그냥 죽일 것이지, 왜 굳이 비위 상하는 짓을 하면서 사람의 영혼을 희롱해야 했단 말이냐? 왜 또 하필 그 짓거리를 하면서 내 눈에 띄었냔 말이야!”

“제발··· 제발··· 제발 살려주십···. 끄하아아아아아악!”


사방으로 원영기 수사의 피와 살점이 튀었다.


한 번 발길질을 당할 때마다, 그의 육신뿐만 아니라 원신 역시 함께 붕괴하고 있었다.


‘안돼, 안 돼···.’


그는 도주를 시도해 볼 틈조차 없이.


차마 표현할 수조차 없을 정도로 극심한 고통을 느끼며 서서히 유성풍의 손에 죽어갔다.


“으아아아아! 죽어라, 죽어! 바퀴벌레보다 못한 놈. 난 너 같은 놈들을 보면 구역질이 올라오고 하루 종일 수행을 닦을 맛이 나질 않는다!”


그리고 그렇게.


오로지 밟는다는 행위 하나만으로, 상대의 원영까지 남김없이 전부 짓뭉개 죽이는 기행을 저지른 후.


‘팔호, 팔호라···.’


칠호, 유성풍은 더러워진 신발 바닥을 흙에 긁어 닦아내며 생각했다.


‘그는 이 녀석처럼 밥맛이 떨어지는 벌레 놈일까. 아니면 천영경에서 봤던 것처럼 화끈한 맛이 있는 사내일까.’


과연 현실에서의 팔호는 어떤 부류의 사람일지.


‘곧 알게 되겠지.’


조급한 기분이 들진 않았다.


팔호는 비범한 사람이니, 산골에 처박혀 산수 노릇을 하지만 않는다면 분명 어디에서든 두각을 드러내고 있을 터.


시간의 문제일 뿐, 유성풍은 아마도 결국 언젠가 팔호를 찾아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최소한 천산주의 영역 안에선, 그의 영향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생명체는 단 하나도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으니.


***


내가 천영경을 얻었던 동굴.


그곳으로 돌아온 난 아무 소리 없이 화신기 수사의 유해를 노려보고 있었다.


“···.”


그 모든 일을 겪고 나니 이제서야 알겠다.


이 정체 모를 화신기 수사는, 아마도 천영경의 시험을 받는 과정 도중에 죽었을 것이다.



그 역시 대천부운명을 하나 가지고 있기야 했겠지.


하지만 경지가 고작 화신기에 불과했기 때문에. 하나의 대천부운명만 가지곤 고비를 넘길 수 없어 이 꼴이 됐을 테고.


‘···후우.’


난 새삼스럽게, 천영경의 구성원들이 가진 실력을.


그리고, 그 정도의 실력을 가진 사람 두 명 중. 적어도 한 명은 조만간 날 추적하기 시작할 거라는 사실을 상기했다.


상상만으로도 오금이 저리는 일.


하지만 곧 나는 한숨을 한번 쉰 후, 이 사실을 일단은 그대로 흘려보냈다.


‘뭐, 당분간은 괜찮겠지.’


육호와 칠호. 둘 중 그 어느 사람도, 아직까지 내게 적대적인 태도를 보인 적은 없었다.


그러니 설령 내 정체를 들키는 순간이 온다고 한들.


눈이 마주치자마자 때려죽인다는 식의, 정말 최악의 사태가 바로 발생하진 않을 터.


게다가 어쨌든 이건 당장 일어날 일이 아니기도 하지 않은가.


‘안심해서도 안 되지만, 무조건 세상이 망할 정도로 겁을 먹을 필요도 없다.’


이 문제는 일단 이 정도에서 결론 내린 후.


난 우선 오늘의 모임으로 얻을 수 있었던 성과부터 제일 먼저 확인하기로 했다.


그리고.


‘캐릭터 정보. 심법.’


[심법]

-보유 목록

[거화공: 수행을 닦기 위한 기초 공법입니다.]

···

[현재 할당된 심력: 10/10]


-미할당 심법

[반천역도공: 몸 안에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 천지영기를 응집할 수 있게 해주는 공법입니다.]

[점유 심력:1,127]


‘오, 이런 미친···.’


상태창을 본 난 할 말을 잃어버렸다.


요구 심력이 무려 1,127. 연기기 수사용 공법이 이 정도로 미친 수준의 요구치를 갖고 있다니.


심력은 내가 얼마나 높은 위력의 심법들을 장착할 수 있는지를 결정하는 능력치였다.


가뜩이나 올리기가 쉽지 않고 획득처가 제한적인 스텟이라.


이 부분을 신경 쓰지 않고 키우면, 화신기에 도달해서도 최대 심력이 천을 넘지 않는 일 역시 부지기순데.


벌써부터 1,127의 심력 요구치라는 게 대체 말인지 방구인지···.


‘뭐···.’


그래도, 어이가 없긴 했지만.


이건 괜찮았다. 천도 축기경에 이르르기만 한다면, 페널티를 어느 정도 무효화시키고 이 공법을 사용하기 시작할 수 있을 테니.



하지만 무엇보다 정말 미쳐 있는 건, 그 요구조건에 걸맞는.


아니, 이 정도로 미친 요구조건마저 한층 뛰어넘어 버리는 수준의 공법 성능이었다.


‘캐릭터 정보. 반천역도공.’


[반천역도공]

-숙련도

[입문: 몸 안에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 천지영기를 응집할 수 있습니다.]

[초급: 아직 깨우치지 못함.]

[숙련: 아직 깨우치지 못함.]

[통달: 아직 깨우치지 못함.]

[소성: 다음 경지에 개방.]


몸 안에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 천지영기를 응집한다라.


아직 자세히 알 순 없지만, 이건 아마도 수행. 또는 전투에 있어서 근본적인 뭔가를 뒤바꿔 버릴 정도의 효과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어디 그뿐일까. 최상급의 유니크 공법인 만큼, 숙련도 단계가 하나씩 올라갈 때 새로 얻게 될 효과들 역시 하나하나가 새로운 스킬이나 다름없는 수준이겠지.


‘말도 안 되긴 하네.’


난, 만년에 한 번 나오는 천재라는 게.


이것이 그가 일생의 자랑으로 여기는 공법이라는 게 과장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칠호라는 수도자가 가진 무시무시할 정도의 저력이 어떤 수준에 도달해 있었는지를 깨달았다.


‘심력.’


그가 가진 천재성은 둘째치더라도.


이 공법을 연기기 때 창안할 수 있었다면.


그는 최소한 그 언저리의 시점부터 이미, 상태창으로 따진다면 1,000이 넘는 심력을 보유하고 있었다는 게 아닌가?


‘···.’


역시.


세상은 넓고, 이 넓은 세상 안엔 정말 오만가지 종류의 인간이 다 있구나.


나 역시 연기기 수준에서 전투력이 약한 편은 아니었지만.


아마, 이 공법을 창안했을 시절의 칠호는 그런 날 힘도 들이지 않고 갈기발기 찢어 죽일 수 있었겠지.


‘빨리 강해져야겠다.’


난 새삼스럽게 느낄 수 있었다.


부적이든, 속성자질이든, 시작 특성이든 나발이든.


결국 아직까진, 이 세상에서 난 고작 나약해 빠진 연기기 수사 한 명에 불과한 존재라는 걸.


***


이어서 동굴을 빠져나오는 건 어렵지 않았다.


내가 천영경의 주인으로 인정받은 후, 그동안 내 감각을 교란했던 금제가 풀리고.


공기의 흐름을 느낄 수 있게 되면서, 누가 알려줄 것도 없이 자연스럽게 밖으로 향하는 길을 파악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


하지만, 그대로 약초원을 향해 돌아가는 길.


‘사람이 두 명이나 죽었어.’


내 마음속엔 여전히 작은 걱정이 남아 있었다.


‘곤란한데.’


왕자운이 죽은 건 상관없었다.


경류문은 연기기 수사들끼리 서로 치고받다 죽는 일엔 관심 자체를 두지 않으니까.


그렇다고 그가, 앙심을 품고 내게 대신 복수해 줄 만한 누군가를 가지고 있던 것도 아니고.


다만 문제는 채희였다.


그녀는 어찌 됐든 같은 약초원의 식구.


나와는 별 접점이 없었지만, 추 노인과 선우연은 그녀와 나눈 정이 적지 않았겠지.


게다가 그녀의 죽음에 난 간접적이나마 관여한 셈인데, 대체 무슨 면목으로 그들한테 이 얘기를 꺼내야 한단 말인가?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난 동굴을 빠져나와 홀가분하면서도, 이토록 복잡한 마음 역시 가진 채 우선은 좌기의 속도를 높이며 계속 약초원을 향해 이동했다.


그리고.


‘응?’


슬슬 약초원에 도착할 무렵. 내 눈엔 예상했던 것과 다른 광경이 들어왔다.


나란히 서 있는 추 노인과 선우연.


그리고 그 앞에 서서, 한 손으로 허리를 짚은 채 오만한 표정으로 연신 손가락질을 하고 있는 누군가.


“추가야, 너는 정말 구제불능인 놈이다.”


조심스러운 태도로 가까이 다가가며, 저 낯선 사람이 하는 말이 어떠한지 들어보니.


그 내용은 아주 가관이라고 밖엔 할 수 없었다.


“너를 보니, 한번 패배자는 끝까지 패배자란 말이 과연 틀리지 않았다는 걸 알겠다. 너 같은 폐물 밑에 붙어있는 저 계집의 수준도 알만하구나.”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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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하늘의 길 (1) +17 24.06.13 7,089 238 12쪽
20 승급 (2) +7 24.06.12 7,003 219 14쪽
19 승급 (1) +7 24.06.11 7,098 215 14쪽
18 주자호 +12 24.06.09 7,215 211 15쪽
» 거래 +13 24.06.08 7,453 216 17쪽
16 천영경 +21 24.06.07 7,574 229 13쪽
15 화신기 수도자의 유해 (4) +10 24.06.05 7,627 218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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