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팅커테일 님의 서재입니다.

사람을 읽는 변호사가 세상을 바꿈

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현대판타지

팅커테일
작품등록일 :
2023.09.06 15:27
최근연재일 :
2023.11.21 12:00
연재수 :
74 회
조회수 :
110,292
추천수 :
1,934
글자수 :
393,542

작성
23.09.11 12:05
조회
3,418
추천
46
글자
12쪽

002. 내 이름은 김일목

DUMMY

나는 그 사건이 일어나기까지 평범한 가정에서 자랐고, 일이 살짝 꼬여 있는 상태였다.


내 원래 이름은 김일목(金日目)이었다.

유난히 쉬운 한자가 쓰인 내 이름을 지어준 사람은 아버지 김대광(金大光).

아버지의 이름이나 그가 지어 준 내 이름을 보면 대충 짐작이 가겠지만 나의 아버지는 중학교를 겨우 졸업한 무식한 사람이었다.

중학교만 졸업한 사람이라고 다 무식한 것은 아니겠지만 나의 아버지는 그런 소리를 들을 자격이 충분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텅 빈 머리와 달리 외모는 출중해서 아버지의 말로는 어린 시절 동네에 사는 여자치고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고 했다.

조금 과장되기는 했으나, 과거 사진을 봤을 때 어느 정도 사실은 사실이었다.


한편, 아버지는 자신의 무식함을 자식에게 물려주지 않아야겠다는 신념을 갖고 있었다.

그리하여 자기를 따라다니던 예쁜 여자를 모두 물리치고 동네에서 죽어라 공부만 하던 어머니가 서울대에 입학하자 곧바로 구애하여 결혼에 성공했다.

어머니는 동네에서 최고 인기를 구가하던 아버지를 속으로 흠모하고 있었는데, 자기에게 청혼하자 따져 볼 것도 없이 수락했다.

결혼 다음 해 임신을 하고 그 다음 해에 내가 태어났는데 나를 보자마자 부모님은 매우 기뻤다고 했다.

외모는 아버지를 닮고 똘망똘망한 눈은 어머니를 닮았기 때문이었다고.


나는 부모님의 바람대로 무난하게 자라났다.

초등학교를 거쳐 중학교, 고등학교에 이르기까지 상위권을 유지했고, 서울대는 못 갔어도 명문대로 불리는 세연대 법학과에 입학했다.

부모님은 나에게 사법시험을 봐서 판사나 검사가 되기를 원했고, 나는 그들의 뜻을 따라 1학년을 마치고 바로 고시생이 되었다.


출발은 순조로웠다.

2학년 일 년 동안 열심히 공부해서 다음 해 1차 시험에 합격하자, 부모님은 물론 주위 사람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너무 일찍 1차 시험에 붙은 게 독이 되었을까 아니면 원래 안 될 팔자였을까.

1차 시험에 합격한 다음 두 번의 2차 시험에서 낙방을 하고, 난 독한 마음으로 고시의 메카 신림동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신림동에서 고시를 준비하는 고시생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죽어라 공부에 몰입했기 때문에 합격을 위해서는 노력과 함께 어느 정도 관운도 필요했다.

아쉽게도 나에게 관운은 쉽사리 찾아오지 않았고, 아쉽게 합격을 빗겨 가며 시간이 흘러가고 있었다.

그러다 나이 서른이 된 어느 날 사건이 벌어지고 말았다.


2002년 봄.

나는 사법시험 1차를 치고 본가에 들어와 시험공부를 하느라 미뤄뒀던 ‘태조 왕건’을 몰아서 보고 있었다.

당시 나의 유일한 낙은 ‘태조 왕건’을 보는 것이었고, 다른 시청자들처럼 왕건보다는 궁예에 열광하고 있었다.

금빛 안대를 두른 궁예의 카리스마는 가히 사람을 압도하는 매력이 있었고, 특히 궁예가 관심법을 쓰며 광기를 부릴 때는 잠시도 눈을 돌릴 수가 없었다.


누가 기침 소리를 내었어?


궁예가 기침 소리를 낸 신하를 찾으며 눈을 희번덕거리자 나는 숨죽여가며 그의 연기에 몰입하고 있었다.

그때, 방문이 ‘쾅’하고 열리며 화난 얼굴을 한 아버지가 들어왔다.

술 냄새가 훅하고 코를 자극했다.

TV에 몰입하고 있던 나는 정말 뭐에 씌인 사람처럼 아버지에게 대사를 치고 말았다.


“누가 기침 소리를 내었어?”

“뭐? 이놈아! 네 나이가 몇 살인데 이러고 있냐?”


나는 술에 취해 이성을 잃은 아버지를 진정시키려고 했지만 성질 급한 아버지는 잠시의 시간도 주지 않았다.

그는 책상에 놓여 있던 재떨이를 TV를 향해 있는 힘껏 던졌고, TV와 재떨이가 산산조각이 나면서 파편 중 하나가 정확하게 나의 왼쪽 눈을 향해 날아들었다.

섬광이 번쩍이면서 난 정신을 잃었고, 그 길로 곧장 병원 응급실로 가게 되었다.


***


“왼쪽 눈의 시력이 회복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 사건이 있은 일주일 후 의사는 내게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애꾸눈이 된다는 말을 의사는 애써 완곡하게 말한 것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의사의 말에 크게 낙담하지 않았다.

약간 짜증은 났지만 오히려 후련한 마음이 들기까지 했다.


“너무 낙담하지 마시고, 젊으시니까······”

“괜찮습니다. 너무 위로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런데, 애꾸눈이라는 게 표시가 나나요?”


나의 덤덤한 반응에 의사는 흠칫 놀라다가 서둘러 대답했다.


“사람들이 봐서는 전혀 못 알아볼 겁니다. 그건 걱정 마세요.”

“그나마 다행이네요. 저는 괜찮으니 선생님이나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말을 마치고 진료실을 나서는데 의사는 어이없다는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막상 진료실을 나서자 좀 전까지 담담했던 마음은 아버지에 대한 원망으로 바뀌었다.

해처럼 밝은 눈을 가지라는 뜻으로 일목(日目)이라고 이름까지 지어 놓고선 애꾸눈을 만들다니.

사법시험 1차 합격하면 당장 2차 공부도 해야 되는데 아버지라는 사람이 아들을 이렇게 만드는 게 말이 되느냔 말이다.

이런 생각까지 들자 나는 아버지에게 소심한 복수를 하기로 했다.


‘기분도 좆같은데 이름이나 바꾸자.’


나는 집으로 돌아가려던 발길을 돌려 법원을 향했다.

법원에 들러 간단하게 서면을 작성해 개명을 신청했다.


- 사건본인 김일목(金日目)의 호적부 중 이름 일목(日目)을 일목(一目)으로 개명하는 것을 허가한다는 결정을 구합니다.


신청서를 법원에 제출한 후 한 달쯤 되었을 때 담당 판사가 나를 불렀다.


“한자만 변경하는 것으로 개명신청을 하셨네요? 맞습니까?”

“네.”

“일목이라면 애꾸눈이라는 뜻인데, 꼭 그렇게 변경을 해야겠어요?”


판사의 눈에 불쾌한 감정이 여실히 드러났다.

나는 판사에게 내가 왜 개명을 하게 됐는지 간단하게 설명을 했다.

나의 설명을 듣고도 판사는 수긍이 안 되는지 여전히 적대적인 감정을 드러내며 목소리를 높였다.


“아버지가 지어 주신 이름이 장난인 줄 압니까? 이렇게 기분 내키는 대로 바꾸는 건 아버지에 대한 예의가 아니에요!!”

“네. 판사님 말씀이 어떤 말씀인지 잘 알겠습니다. 그래도 저는 꼭 바꾸고 싶습니다.”

“알았어요. 그만 돌아가 보세요!”


판사는 법정이 썰렁해질 정도로 차갑게 말을 내뱉었다.

개명 신청이야 당사자가 원하면 거의 다 받아 주는 것인데, 왜 저렇게 냉랭하게 구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하여간 그때의 분위기로는 나의 개명신청은 물 건너간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한 달 뒤 법원에서 온 결정문을 본 나는 판사가 왜 그렇게 냉랭하게 굴었던 건지 알 수 있었다.


- 사건본인 김일목(金日目)의 호적부 중 이름 일목(日目)을 일목(一目)으로 개명하는 것을 허가한다.


판사 우동


판사는 이런 이름을 갖고 있으면서도 살고 있는데, 내가 개명을 한다니 얼마나 한심해 보였을까.

어쨌든 그렇게 내 이름은 일목(一目)으로 바뀌었다.


***


그렇게 내 이름이 바뀔 무렵 나는 사법시험 1차에 합격했다.

병원에 입원하고, 개명을 하면서 이래저래 시간을 보내다 보니 어느덧 2차 시험일이 한 달 앞으로 다가와 있었다.

9년 중 5년 이상을 2차 시험에 매달려도 합격을 못했던 나인데, 한 달 바싹 해봤자 합격을 하겠냐는 것이 그때 나의 솔직한 마음이었다.

그래도 어렵게 잡은 기회를 그냥 날려 버리기가 아쉬워 틈나는 대로 공부를 하기는 했다.

이런 나의 나태한 모습에 평소 같으면 불호령을 쳤을 아버지였지만, 본인이 저지른 일 때문에 끽소리도 못하고 내 눈치만 봤다.

사법시험 2차를 준비하면서 그렇게 편했던 시기는 단연코 없었다.


시험 준비는 7개 과목의 기출 문제 중심으로 나올 것 같은 것만 추려서 공부했다.

그동안 공부해 놓은 가닥이 있다는 걸로 내 자신을 위로해 보기도 했지만 합격에 대한 기대는 10% 이하였다.

오죽하면 2차 시험 일주일 전에 벌어진 한국과 이탈리아의 월드컵 16강전을 봤겠는가.

휴게실에서 축구를 보는 내 모습을 보면서 지인 몇몇은 안도의 한숨을 쉬기도 했다.

그렇게 결전의 날은 다가왔다.


첫째 날, 헌법과 행정법 시험을 볼 때 내가 찍은 부분이 반 이상 적중했을 때만 해도 우연이겠거니 생각했다.

둘째 날, 까다로운 민사소송법과 상법 시험에서 선전을 하자 합격에 대한 기대가 조금씩 밀려왔다.

셋째 날, 형법과 형사소송법을 보고 나서는 정말 합격에 가까워졌다고 느꼈고, 마지막 날 민법에서 과락만 넘기면 붙겠다는 확신까지 들었다.

그래서 나는 시험 기간 내내 안 하던 공부를 자정이 넘어서까지 하고 잠에 들었다.


마지막 날 고사장에서 민법 문제지를 받아든 순간 나는 고민에 빠졌다.

분명 이중 압류 효력에 관한 쟁점인데 대법원 최신 판례가 떠오르지 않았던 것이다.

일단 아는 부분을 먼저 작성한 뒤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시험장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정신 줄을 놓아 버린 놈들이 몇 놈 보였고, 나머지 놈들은 인상을 있는 대로 찌푸리며 끄적거리고 있었다.


‘어렵긴 한가 보네. 이 판례만 쓰면 합격할 것 같은데.’


멍하니 천장을 보고 있는데 시험관이 내게 다가와 눈짓으로 주의를 줬다.

하지만, 좀처럼 최신 판례는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다 다시 앞에 앉아 있는 수험생의 뒤통수를 봤을 때 무슨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 이건 공과금과 지방세에 대한 최신 판례 문제 같은데··· >


왜 이런 소리가 들리는 건지 얼떨떨해서 두리번거리는데, 시험관이 다가와 한 번 더 그러면 퇴실시키겠다는 경고를 날렸다.

퍼뜩 정신을 차려 다시 문제를 보니 어디선가 들려온 소리처럼 대법원 최신 판례가 떠올랐다.

/나는 민사집행법 쪽을 봐서 관련 규정을 찾았고 기억을 더듬은 끝에 최신 판례를 적어 정답을 적어낼 수 있었다.

그때는 어디선가 들려온 그 목소리가 나를 구원하기 위한 하느님의 음성이라고 생각했다.

종교도 믿지 않았던 내가 말이다.

그렇게 나는 무사히 민법 시험을 마칠 수 있었다.

그리고, 시험 시간에 뒤통수를 봤던 바로 그 학생의 얼굴을 확인했다.

그 학생의 이름은 재혁이었다.


몇 달 뒤.

사법시험 2차 발표가 있던 날.

마음이 심란했던 나는 국립중앙도서관에서 궁예의 야사를 다룬 책을 보고 있었다.

눈으로 책을 읽으며 신경은 온통 휴대폰에 가 있었다.

만약, 내가 합격을 한다면 바로 축하 전화나 문자가 올 것이기 때문이었다.

책 한 번 보고, 휴대폰 한 번 보고, 시계 한번 보는 루틴이 끊임없이 반복되었다.


시간은 네 시를 넘어 다섯 시를 향해 가고 있었다.

사법시험 합격자는 통상적으로 다섯 시에 공고되었다.

일 초가 지나가는 게 한 시간 같이 느리게 느껴졌다.

초조함, 간절함, 체념의 감정들이 순식간에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내 손에 들려 있는 궁예의 야사도 어느덧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마침내 5시가 되었을 때 내 휴대폰은 미친 듯이 진동음을 내기 시작했다.

합격을 직감한 나는 손에 든 궁예 야사를 내려놓고, 휴대폰을 확인하기 위해 도서관을 뛰쳐나갔다.

그날 내가 책상에 놓고 나간 궁예 야사의 마지막은 이렇게 적혀 있었다.


- 궁예는 최후를 맞으면서 이렇게 외쳤다.


-나의 관심법은 여기서 끝나지 않을 것이다. 내 후손 중 반드시 나와 같이 한쪽 눈으로 마음을 보는 자가 나타날 것이다. 그리고, 그는 세상을 지배할 것이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6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사람을 읽는 변호사가 세상을 바꿈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연재 중단 공지합니다 +5 23.11.21 282 0 -
공지 매일 12시(정오)에 연재합니다. 23.09.11 2,382 0 -
74 074. 이슈는 이슈로 덮인다. +3 23.11.21 409 16 12쪽
73 073. 범인은 내 손으로 (2) +3 23.11.20 449 18 12쪽
72 072. 범인은 내 손으로 (1) +4 23.11.19 488 20 12쪽
71 071. 결정적 단서 +3 23.11.18 521 18 12쪽
70 070. 동상이몽 +3 23.11.17 519 20 12쪽
69 069. 조폭은 조폭 (2) +2 23.11.16 560 20 12쪽
68 068. 조폭은 조폭 (1) +3 23.11.15 565 19 12쪽
67 067. 옴니버스 펀드 (4) +3 23.11.14 581 19 12쪽
66 066. 옴니버스 펀드 (3) +4 23.11.13 562 14 12쪽
65 065. 옴니버스 펀드 (2) +3 23.11.12 590 18 12쪽
64 064. 옴니버스 펀드 (1) +3 23.11.11 681 20 12쪽
63 063. 승자와 패자 +4 23.11.10 699 18 12쪽
62 062. 숨기려는 자, 밝히려는 자 +4 23.11.09 699 19 11쪽
61 061. 불가능이란 없다 (3) +4 23.11.08 706 18 12쪽
60 060. 불가능이란 없다 (2) +4 23.11.07 730 22 11쪽
59 059. 불가능이란 없다 (1) +3 23.11.06 765 22 12쪽
58 058. 치킨대전 (4) +3 23.11.05 792 20 12쪽
57 057. 치킨대전 (3) +4 23.11.04 771 18 13쪽
56 056. 치킨대전 (2) +3 23.11.03 784 19 12쪽
55 055. 치킨대전 (1) +4 23.11.02 843 19 11쪽
54 054. 떡볶이와 오뎅 (3) +5 23.11.01 871 22 12쪽
53 053. 떡볶이와 오뎅 (2) +6 23.10.31 917 25 12쪽
52 052. 떡볶이와 오뎅 (1) +4 23.10.30 953 25 13쪽
51 051. 격랑(激浪)속으로 +5 23.10.29 976 30 12쪽
50 050. 김앤전의 반격 (2) +5 23.10.28 971 25 12쪽
49 049. 김앤전의 반격 (1) +4 23.10.27 983 25 12쪽
48 048. 재혁의 비밀 +5 23.10.26 1,006 26 12쪽
47 047. 신참 변호사 이유리 +4 23.10.25 1,033 24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