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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읽는 변호사가 세상을 바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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팅커테일
작품등록일 :
2023.09.06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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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0.25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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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7. 신참 변호사 이유리

DUMMY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신광정유 사건의 첫 변론 기일.

원고 측 대리인은 대한민국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대형 법무법인 퍼시픽이었다.

그리고, 이 사건의 담당 변호사는 정승우 변호사였다.

서울대학교 공대 출신에다 특허법원 판사를 지낸 나름 지재권 분야의 권위자였다.

원고석에 앉아 있던 그는 내가 피고석으로 들어오자 경계하는 눈빛으로 쳐다봤다.


“재판장님 입장하십니다. 모두 자리에서 일어서 주십시오.”


경위의 외침에 법정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일어섰다.

잠시 후 출입문으로 파마머리를 한 여자 재판장과 남자 배석판사 둘이 들어왔다.

그런데 왠지 모르게 주심의 낯이 많이 익었다.


‘누구지? 어디서 많이 본 사람인데?’


내가 주심을 쳐다보고 있는데 마침 그와 눈이 마주쳤다.

시선을 교환한 몇 초 후 그의 마음이 들려왔다.


< 아! 저 사람. 나 개명 심판할 때 만났었는데. 이름이 뭐더라? 되게 특이했는데. >


그리고, 주심은 앞에 놓인 서류를 뒤적였다.

주심의 마음을 들은 나는 그가 누군지 기억해 냈다.

나의 개명 신청을 받아 준 판사 우동.


< 여기 있네. 김일목. 맞아 김일목이었지. 변호사가 됐나 보네. >


우동 판사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쳐다봤다.

말도 안 되는 개명신청을 했던 내가 변호사가 되리라고 생각이나 했을까.

그가 놀라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했다.


“자. 재판 시작하겠습니다. 원고 대리인은 법무법인 퍼시픽에서 정승우 변호사가 나오셨고, 피고는···.”

“피고 대리인 법률사무소 일혁에서 김일목, 이유리 변호사 출석했습니다.”

“네. 좋습니다. 앉으세요.”


재판장이 앉으라는 손짓을 한 뒤 원고 대리인 정승우 변호사를 보며 말했다.


“원고 측은 청구 취지를 간단하게 말씀해 주세요.”

“네. 원고 신광건설은 ‘신광’ 상표의 실 소유자로 신광정유와 상표 사용 계약을 체결하였는데, 신광정유가 사용료를 지급하지 않고 있으므로 사용료의 지급을 구하고 있습니다.”


정 변호사는 짧지만 아주 명료하게 취지를 밝혔다.

재판장이 흡족한 듯 고개를 끄덕이다 나를 보며 물었다.


“이에 대한 피고 측의 항변은 어떤 건가요?”

“상표권 등록은 원고 신광건설과 피고 신광정유가 공동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실 소유자가 원고 혼자라는 주장은 믿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때, 원고 대리인 정 변호사가 끼어들었다.


“그런데, 계약서를 보면 피고도 원고가 실 소유자라는 것을 인정하고 있고, 상표권자 등록은 지분의 절반을 신광건설이 명의 신탁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건···.”


아직 준비가 덜 되었기에 마땅한 대응 논리를 댈 수가 없었다.

모두가 나를 쳐다보고 있었고, 침묵이 흐르는 순간, 우동판사의 마음이 들렸다.


< 계약서대로 하면 이기기 어렵겠어. 근데, 명의신탁을 하려면 신광건설이 먼저 상표의 소유권을 취득했어야 하는 거 아닌가···. >


맞다.

명의신탁은 말 그대로 실제 소유자가 명의만 다른 사람으로 하는 것이다.

당연히 명의신탁을 하기 위해서는 신탁하는 사람이 실제 소유권을 취득하였다는 전제가 있어야 한다.


“말씀 드리···.”


반박할 논리가 생각나 말을 하려는 찰나, 옆에 있던 이유리가 돌연 끼어들었다.


“재판장님. ‘신광’ 상표를 원고가 피고에게 명의신탁하려면 원고가 상표를 먼저 취득했다는 것이 입증되어야 합니다. 그 입증책임은 저희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원고에게 있는 것이고요.”


헉!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한 변론이었다.

생각지도 않았던 이유리의 활약에 할 말을 잃고 멍하니 그녀를 바라봤다.

재판장이 눈을 몇 번 깜빡거리다 원고 측 정 변호사를 보며 말했다.


“으음··· 일리가 있네요. 지금 원고 측에서 주장하는 건 상표권 등록부에 기재된 것은 명의신탁이라는 것이니까 원고는 언제 상표권을 취득한 것인지 입증하시기 바랍니다.”

“재판장님. 그건 이미 계약서에 피고가 인정한 부분인데, 그걸 다시 입증하라고 하시면···.”


정 변호사는 억울한 표정으로 호소했다.

하지만, 재판장은 그의 호소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최선을 다해서 입증해 보시고, 못 하시면 계약서의 내용을 보강해서 주장하십시오.”


말을 마친 재판장은 첫 재판을 마치고, 다음 재판 기일을 고지했다.

재판장 오른쪽에 있던 우동 판사가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마음을 드러냈다.


< 김일목 변호사. 뻘짓만 하는 줄 알았는데 사람은 제대로 구했네. >


***


“여기 있습니다. 대표님.”


김앤전 하태현 실장이 김형모 대표에게 결재판을 건넸다.

결재판을 열어 안에 든 문서를 본 김 대표가 말했다.


“담당 변호사가 정승우야? 특허 법원에서 판사하던 친구?”

“네. 맞습니다.”

“여기 적힌 연락처도 확실하고?”

“네.”

“알았어. 가 봐.”


김 대표의 손짓에 하 실장이 대표실을 나가려 몇 걸음 걸어가다 멈췄다.

몸을 돌려 다시 김 대표에게 돌아온 하 실장이 공손하게 물었다.


“대표님. 뭣 좀 여쭤 봐도 되겠습니까?”

“뭔데?”

“그 법률사무소 일혁 애들한테 너무 신경을 많이 쓰시는 것 같아서. 혹시 무슨 일이라도.”

“그건 자네가 관여할 게 아니야. 내가 알아서 할 거니까 자네는 신경 쓰지 마!”


김 대표가 미간을 찌푸리며 단호하게 말했다.

이 정도로 말하면 진작에 물러났을 하 실장이지만 이번엔 달랐다.


“대표님. 얼마 전에 명패 집어 던지신 것 때문에 직원들이 불안해 하고 있습니다.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으셨잖아요. 대표님답지 않으십니다.”

“하 실장. 자네 마음은 알겠네만 선을 지키게. 내가 이런 행동 싫어하는 거 알잖나. 앞으로 나도 조심할 테니까 더 이상은 이러지마. 다음에는 용서하지 않겠네!”


김 대표는 부드럽지만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하지만, 큰소리로 화를 내는 것보다 오히려 섬뜩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그런지 하 실장은 인사를 하고 나서 식은땀을 흘리며 허둥지둥 대표실을 나갔다.

하 실장이 나가고 김 대표가 휴대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


- 네. 정승우입니다.

- 안녕하세요. 정 변호사님. 나 김앤전 김형모입니다.

- 네? 김앤전 김형모 대표님이라고요?


정 변호사가 깜짝 놀라 물었다.


- 네. 제가 김형모입니다. 만나서 인사를 해야 되는데, 실례가 많아요.

- 아닙니다. 아닙니다. 그런데, 무슨 일로 저한테 전화를 다 주시고?

- 다름이 아니고 정 변호사님 지금 신광건설 사건 하시죠? 상대방이 신광정유고.

- 네. 맞습니다.


정 변호사가 바짝 긴장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 상대방 대리인이 법률사무소 일혁 맞나요?

- 그런데, 그건 왜?

- 아··· 원래 신광정유가 저희 고객인데, 이번에는 희한하게 그쪽이랑 일을 진행해서 잘 하고 있나 알아보려고요. 고객한테 피해가 가면 안 되는 거잖아요. 하하하!!!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해서 그런지 김 대표의 웃음소리가 몹시 어색했다.


- 그거야··· 그러실 수도 있겠네요. 나름 주장도 일리 있게 하고요. 쉽게 이길 줄 알았는데, 예상보다 어렵게 됐습니다. 더 이상은 말씀드릴 수 없고요.

- 네. 이해합니다. 그런데, 상대방 대리인 중에 김재혁이 나왔나요?

- 김재혁 변호사요? 글쎄요. 김일목 변호사하고 어떤 여자 변호사가 나왔던데···.

- 아아. 네. 감사합니다. 언제 시간 되면 식사나 한번 합시다.


김 대표는 서둘러 통화를 종료했다.

지금까지 법률사무소 일혁은 김일목과 김재혁 두 사람만 나왔다.

그런데, 갑자기 여자 변호사가 나왔다니 이게 무슨 말인가.

이렇게 큰 사건에서 김재혁이 안 나온 이유가 뭔지 알고 싶었다.

김 대표는 당장이라도 뛰쳐나갈 것처럼 몸을 들썩들썩거렸다.


***


“형. 재판 잘 갔다 왔어?”


재혁이 회의실에 들어오며 물었다.


“응. 오늘 이유리 변호사가 한 건 해 줬지. 정말 대단했어.”


나는 이유리를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이유리는 쑥스러워서 그런지 손사래를 쳤다.


“이 변호사님이 어떻게 했길래?”

“신광건설이 상표권 지분을 우리한테 명의 신탁한 거라고 주장하니까 그럼 먼저 신광건설이 상표권을 취득한 사실을 입증하라고.”

“우와. 정말이에요?”


재혁이 이유리를 쳐다보며 물었다.

이유리는 수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이 변호사. 그걸 어떻게 생각했어요?”

“그거야 대표님이 힌트를 주셨잖아요. 태종대 황소갈비 사건으로.”


이유리가 손으로 나를 가리키며 대답했다.

며칠 전 내 방에서 이유리와 태종대 갈비 사건 얘기를 한 적은 있었다.

하지만, 내가 무슨 힌트를 준 적은 없었다.


“내가요? 무슨 힌트를 줘요?”

“두 곳의 갈비 맛이 어땠냐고 물어보셔서 맛은 똑같다고 하니까 맛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 가게의 역사가 중요하다고 하셨잖아요. 역사라는 말에 확 꽂혔죠.”

“내가 역사라고 했다고?”

“네. 분명히 그렇게 말씀하셨죠. 그때 제 머릿속에 확 꽂히는 게 있었어요.”


며칠 전 일인데도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그런 말을 했다고 하더라도 그냥 스치듯 했을 텐데 그걸로 사건에 중요한 포인트를 만들어 내다니 참으로 대단했다.


“그래서 뭐가 생각나셨는데요?”


재혁이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이유리에게 물었다.


“으음. 신광건설이 신광정유보다 먼저 만들어진 것은 맞는데, 지금의 ‘신광’이라는 상표가 만들어질 때 두 회사가 모두 만들어진 것인지를 확인해 봤죠.”

“그래서요?”

“지금과 같은 모양의 ‘신광’ 상표는 두 회사가 모두 설립된 이후 만들어진 거예요. 그래서 이 상표를 등록할 때 두 회사의 공유로 한 것 같고요.”

“그렇군요.”


이유리의 설명은 명쾌했다.

같은 상표를 사용하는 그룹 소속 계열사가 상표권을 공유하는 게 상식적이지 그중 한 기업이 소유권을 독차지하는 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유리는 뭔가 찜찜한 게 남아 있는 표정이었다.


“이 변호사. 표정이 왜 그래요? 뭔가 문제가 있어요?”

“네. 하나 걸리는 게 있어서요.”

“그게 뭔데요?”

“같은 그룹 계열사가 상표권을 공유했는데, 왜 상표 사용계약서에서 신광정유가 신광건설이 실 소유자라고 인정했느냐 하는 거죠? 게다가 거액의 사용료까지 지급하면서 말이죠.”


이유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 손종민 회장한테 얘기를 못 들어서 그렇게 생각하는구나!’


생각해 보니 이유리는 신광건설의 자금 지원 때문에 상표 사용 계약서가 작성되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없었다.


“이 변호사가 손종민 회장한테 얘기를 못 들어서 그런가 보네요. 신광건설이 IMF 때 자금이 부족해서 부도가 날 뻔했는데, 그때 계열사들이 자금을 지원하기 위해서 그 계약서가 작성된 거라고 했어요.”

“아아!! 그랬군요!! 왜 신광정유가 그런 말도 안 되는 계약을 했는지 궁금했거든요.”


이유리는 손뼉을 치며 아이처럼 밝게 웃었다.

그녀의 해맑은 모습에 재혁과 내 기분까지 좋아졌다.


“이제 어느 정도 방향이 잡혔네. 신광건설에서 단독으로 상표권을 취득했다는 것은 입증하지 못할 거고. 계약서는 우리가 신광건설의 소유권을 인정한 게 아니라 자금 지원 때문에 형식적으로 작성된 것이라는 것만 밝히면 될 거니까.”

“네. 대표님.”


내 말을 재혁이 장난스럽게 받았고, 이유리가 옆에서 까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똑. 똑. 똑.


“김재혁 변호사님. 손님 찾아오셨습니다.”


정성식 국장이었다.


“네? 손님이요?”


재혁이 어리벙벙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회의실 문이 천천히 열리면서 재혁을 찾아온 손님이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그 손님이 누군지 알아보지 못했으나 이유리는 대번에 알아봤다.


“김앤전 김형모 대표!!”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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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062. 숨기려는 자, 밝히려는 자 +4 23.11.09 690 19 11쪽
61 061. 불가능이란 없다 (3) +4 23.11.08 697 18 12쪽
60 060. 불가능이란 없다 (2) +4 23.11.07 720 22 11쪽
59 059. 불가능이란 없다 (1) +3 23.11.06 754 22 12쪽
58 058. 치킨대전 (4) +3 23.11.05 781 20 12쪽
57 057. 치킨대전 (3) +4 23.11.04 760 18 13쪽
56 056. 치킨대전 (2) +3 23.11.03 776 19 12쪽
55 055. 치킨대전 (1) +4 23.11.02 835 19 11쪽
54 054. 떡볶이와 오뎅 (3) +5 23.11.01 861 22 12쪽
53 053. 떡볶이와 오뎅 (2) +6 23.10.31 908 25 12쪽
52 052. 떡볶이와 오뎅 (1) +4 23.10.30 944 25 13쪽
51 051. 격랑(激浪)속으로 +5 23.10.29 967 30 12쪽
50 050. 김앤전의 반격 (2) +5 23.10.28 961 25 12쪽
49 049. 김앤전의 반격 (1) +4 23.10.27 973 25 12쪽
48 048. 재혁의 비밀 +5 23.10.26 997 26 12쪽
» 047. 신참 변호사 이유리 +4 23.10.25 1,021 2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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