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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읽는 변호사가 세상을 바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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팅커테일
작품등록일 :
2023.09.06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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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1.12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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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065. 옴니버스 펀드 (2)

DUMMY

쭉 뻗은 도로 왼쪽으로는 국회의사당이, 반대편에는 증권사들이 쭉 늘어서 있었다.

국회의사당 앞에서 우회전을 하여 100미터쯤 직진하자 가나 증권 사옥이 보였다.

어림잡아도 30층 이상으로 보이는 건물은 국내 최고 증권사다운 풍모가 있었다.


“오빠! 저 건물인가 봐요.”


조수석에 앉아 있던 유리가 가나 증권 사옥을 가리키며 말했다.


“응. 나도 봤어.”


나는 사옥 지하로 들어가 주차를 했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로비로 갔다.

안내데스크에 있던 직원의 도움을 받아 17층에 있는 영업본부장실로 향했다.

창문으로 한강이 훤히 보이는 영업본부장실은 웬만한 회사의 사장실보다 훨씬 컸다.


“어서 오십시오. 배 회장님 건 때문에 오셨다고요.”


번들번들한 이마에 포마드를 발라 가르마를 탄 영업본부장이 느끼하게 웃으며 우리를 맞았다.


“네. 저는 김일목 변호사고, 이쪽은 이유리 변호사입니다.”


변호사라는 말을 듣자 본부장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우리가 건넨 명함을 찬찬히 살펴보던 본부장이 본인의 명함을 건넸다.


“영업본부장 성동원입니다. 변호사님들께서 무슨 일로 저를 찾아오셨습니까? 저는 배 회장님이 고객을 소개시켜주는 줄 알았네요. 하하!!”


성 본부장은 소리 내어 웃기는 했지만 의심의 눈초리는 여전했다.

아무리 변호사라고 해도 필요 이상으로 경계하는 모습을 보니 뭔가 이상했다.

하지만,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태연하게 굴었다.


“저희가 아무리 불청객이라고 해도 이렇게 세워두실 건가요?”

“아이고. 이런 실례를··· 이쪽으로 앉으시죠.”


성 본부장이 손으로 우리가 앉을 자리를 가리켰다.

자리에 앉자마자 성 본부장이 느끼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래. 저를 보자고 한 이유가 뭡니까?”

“옴니버스 펀드 때문에 왔습니다. 배 회장님이 알아봐 달라고 해서요.”

“허험··· 험·· 험·· 죄송합니다. 갑자기 기침이···”


마른기침을 한 성 본부장이 티슈를 꺼내 입을 닦는 시늉을 했다.

그가 당황하는 것으로 보아 우리에게 보낸 경계의 눈빛은 옴니버스 펀드 때문인 것 같았다.

티슈를 휴지통에 버린 뒤 성 본부장이 말했다.


“옴니버스 펀드가 왜요? 그거 배 회장님께 충분히 설명을 드리고 판매한 건데.”

“그 펀드가 투자하는 게 국공채라고 하던데 맞는가요?”

“그··· 그렇죠. 대부분은···”

“대부분이라고요? 펀드 보고서 보니까 전부 국공채에 투자한 것으로 되어 있던데.”


성 본부장은 바로 대답을 하지 않고 옆에 있던 주전자를 들어 컵에 물을 따랐다.

물을 따르는 그의 손이 떨려 컵 밖으로 물이 조금 흘러 내렸다.


“아이고! 나이가 드니 이런 실수가 많아져요. 하하!!”


긴장감 때문에 벌어진 일을 실수로 포장했지만, 그의 웃음은 무척이나 어색했다.

조금만 더 밀어붙이면 그가 마음을 드러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러니까 펀드 보고서에는 전부 국공채에 투자한 것으로 되어 있는데, 대부분이라뇨?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사실대로 말씀해 보세요. 저희 조사 많이 하고 왔습니다.”


조사를 많이 했다는 건 사실이 아니었고, 한번 찔러본 말이었다.

그런데, 그 효과는 바로 나타났다.


< 이 자식 어디까지 알고 온 거야? 혹시 ‘불사조’파도 알고 온 건가? >


내 귀에 들려온 성 본부장의 마음에 낯선 단어가 섞여 있었다.

‘불사조’파라니 생전 처음 들어보는 말이었다.


“본부장님!! 왜 말씀이 없으세요? 빨··· 아니. 빨리 말씀해 주세요.”

“아··· 네. 펀드가 어디에 투자하는지는 영업 비밀이라 제가 그것까지 완전히 파악을 할 수가 없어서. 확실하게 말씀을 드릴 수가 없습니다.”


성 본부장이 대충 얼버무렸다.

옆에서 듣고 있던 유리가 답답했는지 테이블을 손으로 두드리며 말했다.


“그게 말이 됩니까? 펀드를 판매한 금융기관에서 뭘 파는지 검증도 안 해 보다니.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아··· 아! 그건 그렇죠. 변호사님들이 이렇게 알려주셨으니까 제가 한 번 알아보겠습니다. 저는 회의 일정이 있어서요. 나중에 조사해 보고 연락드리겠습니다.”

“본부장님 뭡니까? 이렇게 일방적으로 끝내셔도 되는 겁니까?”


유리가 항의해 봤지만 성 본부장은 인터폰으로 직원을 호출했다.


“손님들 나가시니까 잘 배웅해드려. 얼른!”


성 본부장이 인터폰을 내려놓기 무섭게 건장한 남자 직원 둘이 들어왔다.

나는 씩씩대고 있는 유리를 데리고 본부장실을 나서며 말했다.


“본부장님. 말씀 잘 들었습니다. 다음에는 좋은 모습으로 뵈었으면 좋겠네요.”


내 인사를 듣고도 성 본부장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얼핏 비친 그의 얼굴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나는 여전히 씩씩거리는 유리와 함께 건물 지하 주차장으로 향했다.


***


두 변호사가 나간 문을 물끄러미 보던 성동원 본부장이 휴대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

뚜우. 뚜우.

몇 번의 연결음이 울린 끝에 전화가 연결됐다.


- 회장님. 저 성 본부장입니다.

- 본부장님. 말 안 하셔도 잘 알고 있습니다. 어쩐 일로 전화를 다 주셨습니까?

- 방금 변호사 둘이 옴니버스 펀드 건으로 저를 찾아 왔습니다.

- 왜요? 펀드 사고 싶대요? 하하!!


수화기 너머로 정 회장의 웃음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하지만, 성 본부장은 오히려 표정이 굳어졌다.


- 회장님. 웃으실 때가 아닙니다. 점점 펀드에 대해서 의심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어요. 이대로 가다가는······

- 아따! 성 본부장 완전 새가슴이시네. 조금 있으면 큰 거 터지면 다 해결되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몇 번이나 말했구만.

- 지금 펀드 해지하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얼마인 줄 아십니까? 겨우겨우 틀어막고 있는데, 큰 거 타령은 언제까지 하시려고 그래요?

- 성 본부장!! 뭐 큰 거 타령? 내가 꼬박꼬박 존댓말 하니까 만만하게 보이는가?


정 회장은 기분이 상했는지 다소 거친 말투로 물었다.

그러자 성 본부장은 바로 태세를 전환했다.


- 죄송합니다. 회장님. 제가 어떻게 회장님을 만만하게 보겠습니까? 자꾸 이 사람, 저 사람 찾아와서 옴니버스 펀드 어떻게 됐냐고 물으니까 걱정이 돼서···

- 성동원이. 내가 이 자리까지 올라오느라 얼마나 고생했는지 모르지? 이런 일은 내가 수도 없이 겪었어. 그리고 나 혼자 우리 회사에 있는 거 아니잖나? 짱짱한 뒷배들이 있는데 뭐가 걱정돼서 그렇게 발발 떨고 있어. 자네나 나나 임 의원이 대통령 되면 인생 완전 풀리는 거야. 그때까지 쭉 달려 보자고.

- 회장님! 저는 회장님만 믿고 가겠습니다

- 나를 믿지 말고 임 의원을 믿어. 아니 임 대통령을 믿으라고!! 그럼 나중에 술이나 한잔 합시다.


통화가 끝나자마자 성 본부장은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평소 같으면 정 회장의 시원시원한 말 한마디에 쌓였던 걱정이 한방에 날아가곤 했었다.

하지만, 오늘은 이상하게도 찜찜한 기분을 떨쳐낼 수가 없었다.


***


불사조파.

성동원 본부장은 분명히 마음속으로 그렇게 말했었다.

불사조파라는 이름을 쓸만한 사람들은 조폭밖에는 없다.

하지만, 조폭이 사모펀드와 무슨 관련이 있다는 말인가.

조폭이 유흥업소나 건설업을 한다는 말은 들어봤어도 사모펀드를 한다는 얘기는 금시초문이었다.

정말 불사조파가 조폭이고, 옴니버스 펀드와 관련이 있다는 말인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강호 팀장이 들어왔다.


“변호사님. 가나 증권에는 잘 다녀 오셨습니까?”

“네. 만나고 오기는 했는데, 별 소득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얼굴은 왜 그러세요?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강호는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며 물었다.

불사조파를 생각하느라 나도 모르게 인상을 쓰고 있었던 걸 이상하게 생각했던 것 같았다.


“아닙니다. 무슨 생각 좀 하느라고요. 팀장님은 뭐 좀 알아보셨어요?”

“네. 저는 옴니버스 펀드 운용하는 회사 내역 좀 알아봤습니다.”

“아! 그래요? 뭐 좀 나왔습니까?”


안 그래도 옴니버스 펀드 운용 회사가 어떤 곳인지 궁금했는데 잘 됐다 싶었다.

강호는 들고 있던 서류 뭉치를 내밀며 말했다.


“옴니버스 펀드 판매액이 3천억 정도 되는데, 펀드를 운용하는 회사가 생긴 지 3년밖에 안 됐습니다.”

“네? 3년밖에 안 된 회사가 그 정도 투자금을 굴린다고요.”

“더 놀라운 건 직원이 상주하는 10명도 안 된다는 겁니다. 대신에 고문들은 엄청 대단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국회의원, 법원장 출신, 검사장 출신, 금감원 출신 등등.”


회사는 별거 없는데 고문만 화려한 회사라 어쩐지 구린 냄새가 풍겼다.

그런 느낌은 강호도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그는 눈을 가늘게 뜨고 의심 가득한 눈으로 서류뭉치를 보고 있었다.

그러던 강호가 피식 웃으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회사 이름도 피닉스가 뭐야? 피닉스가?”


나는 서류를 보고 있다가 강호의 말에 깜짝 놀랐다.


“네? 지금 뭐라고 하셨어요?”

“피닉스. 피닉스 파트너스. 옴니버스 펀드 운용하는 회사 이름입니다.”


성 본부장한테 들었던 불사조가 여기서 또 등장했다.

불사조가 영어로 피닉스니 이건 우연이라고 보기 어려웠다.


“옴니버스 펀드를 운용하는 회사가 피닉스 파트너스라고요? 불사조?”

“네. 맞다니까요. 여기 법인등기부등본 보십시오.”


강호는 서류를 뒤져 법인등기부를 내게 보여줬다.

거기엔 분명히 피닉스 파트너스라고 적혀 있었다.

그리고, 법인이 생긴 지 3년도 안 된다는 강호의 말도 사실이었다.


“그리고, 회사에 펀드매니저가 2명 있는데 물어보니까 거의 일을 안 한다고 하더라고요.”

“그게 무슨 말이에요? 펀드 운용하는 회사에 펀드 매니저가 일을 안 한다니?”

“걔네들은 그냥 뒤처리나 주로 하고, 투자금을 어디 투자할지 결정하는 건 대표가 전적으로 맡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요? 대표는 뭐하는 사람입니까?”


강호는 내 질문에 바로 대답을 하지 않았다.

뭔가 의문이 있는 것처럼 그는 고개를 두어 번 갸웃거리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대표 이름이 정홍조인데, 어디서 낯이 많이 익어요.”

“정홍조라고요? 이름이 특이하네요.”

“한자는 더 특이해요. 紅鳥에요. 붉은 새.”


사람 이름이 붉은 새라니 정말 특이하다 못해 괴이했다.

붉은 새를 몇 번 되뇌다 보니 머릿속에서 활활 불타는 피닉스의 이미지가 그려졌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테이블을 내리치며 소리쳤다.


“이거야! 대표 이름을 땄어. 홍조. 불사조파!!”

“앗! 깜짝이야! 갑자기 그게 무슨 말입니까? 홍조는 뭐고 불사조파는 뭐에요?”


깜짝 놀란 강호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조폭들은 두목의 이름이나 별명을 따서 자신을 지칭하는 경우가 많았다.

성 본부장의 속마음에서 나온 ‘불사조’도 주식회사 불사조의 회장인 정홍조의 이름에서 나온 것이 분명했다.

이걸 전부 강호에게 설명하는 건 무리.

적당하게 얼버무릴 필요가 있었다.


“가나 증권 갔을 때 제가 들은 얘기가 있거든요. 옴니버스 펀드가 조폭이랑 관련 있는데, 그 조폭이 불사조파라고. 팀장님한테 ‘정홍조’ 얘기를 들으니까 느낌이 팍 오네요.”

“조폭이라고요? 흐음···”


이번엔 강호가 눈을 꾸욱 감고 깊은 생각에 빠졌다.

몇 번 미간을 찌푸리며 기억을 끄집어 내려던 그가 눈을 번쩍 뜨며 소리쳤다.


“그놈이야! 그놈!”

“그놈이라뇨? 누가요?”

“변호사님! 저 좀 다녀오겠습니다. 정홍조 그놈 좀 확인하러요.”


뭐라 말을 붙일 틈도 없이 강호는 사무실 밖으로 뛰어나갔다.

창밖으로 가느다란 봄비가 흩날리고 있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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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 067. 옴니버스 펀드 (4) +3 23.11.14 581 19 12쪽
66 066. 옴니버스 펀드 (3) +4 23.11.13 562 14 12쪽
» 065. 옴니버스 펀드 (2) +3 23.11.12 590 18 12쪽
64 064. 옴니버스 펀드 (1) +3 23.11.11 681 20 12쪽
63 063. 승자와 패자 +4 23.11.10 699 18 12쪽
62 062. 숨기려는 자, 밝히려는 자 +4 23.11.09 699 19 11쪽
61 061. 불가능이란 없다 (3) +4 23.11.08 706 18 12쪽
60 060. 불가능이란 없다 (2) +4 23.11.07 730 22 11쪽
59 059. 불가능이란 없다 (1) +3 23.11.06 765 22 12쪽
58 058. 치킨대전 (4) +3 23.11.05 791 20 12쪽
57 057. 치킨대전 (3) +4 23.11.04 771 18 13쪽
56 056. 치킨대전 (2) +3 23.11.03 783 19 12쪽
55 055. 치킨대전 (1) +4 23.11.02 843 19 11쪽
54 054. 떡볶이와 오뎅 (3) +5 23.11.01 871 22 12쪽
53 053. 떡볶이와 오뎅 (2) +6 23.10.31 916 25 12쪽
52 052. 떡볶이와 오뎅 (1) +4 23.10.30 953 25 13쪽
51 051. 격랑(激浪)속으로 +5 23.10.29 975 30 12쪽
50 050. 김앤전의 반격 (2) +5 23.10.28 971 25 12쪽
49 049. 김앤전의 반격 (1) +4 23.10.27 982 25 12쪽
48 048. 재혁의 비밀 +5 23.10.26 1,006 26 12쪽
47 047. 신참 변호사 이유리 +4 23.10.25 1,033 2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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