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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읽는 변호사가 세상을 바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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팅커테일
작품등록일 :
2023.09.06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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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1.03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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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6. 치킨대전 (2)

DUMMY

2006년도 며칠 남지 않은 시점.

거리엔 눈이 쌓여 있고, 추위는 절정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

저절로 몸을 움츠리게 만드는 날씨에도 메가 치킨 류경훈 대표는 차에서 내리자마자 김앤전 사옥으로 뛰어들어갔다.

로비에 있는 엘리베이터에 올라 탄 그는 대표실이 있는 23층을 눌렀다.

엘리베이터가 23층에 서자마자 류 대표는 거의 뛰다시피 대표실로 들어갔다.


“아니 아침부터 웬일이야?”


결재서류를 보고 있던 김형모 대표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그를 쳐다봤다.


“대표님. 배가 치킨에서 저희한테 소송을 걸 모양입니다!”

“무슨 소리야? 걔네들이 무슨 소송을 거는데?”

“그··· 그게···.”


너무 급하게 오느라 숨이 차서 그런지 류 대표는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보다 못한 김 대표가 물을 한잔 따라 건넸다.

물 한 모금 마시고 겨우 숨을 고른 류경훈 대표가 다시 말하기 시작했다.


“그게 제가 그쪽에 심어 놓은 애한테 들었는데, 저희 신상품이 프레쉬 후라이드 치킨의 레시피를 모방했다고 그걸로 소송을 하겠다고 그러네요.”

“글세. 그게 어떤 레시피인 줄은 몰라도 일반적인 레시피를 침해했다고 소송거리가 되지는 않아. 너무 겁먹은 거 아니야?”

“아! 그런가요? 근데, 이건 일반적인 레시피라고 하기엔 좀 그런데···.”


김 대표의 말에도 류 대표의 근심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뭐야? 뭐 특별한 거라도 있다는 거야?”

“그게 프레쉬 후라이드 치킨의 레시피를 아는 사람이 저를 포함해서 네 명뿐이거든요. 게다가 제가 배가 치킨 관두면서 비밀 유지 각서도 썼고.”


별거 아니라 생각해 평온한 표정이었던 김 대표의 얼굴이 급격하게 굳어졌다.

네 명만 아는 레시피라면 영업 비밀에 해당할 여지가 충분히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레시피가 뭔데?”

“네. 다른 업체는 전혀 모르는 건데, 치킨 염지할 때 민트를 소량 첨가하는 겁니다. 민트를 넣으면 닭의 잡내도 없애고, 상쾌한 맛이 나요.”


김 대표는 고개를 끄덕여 알겠다는 시늉을 했다.

하지만, 그는 평소 치킨을 먹지 않아 류 대표의 말이 선뜻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게 다른 치킨들과 쉽게 구별이 되는 정도인가?”

“치킨 좋아하는 사람들은 구별할 겁니다.”

“그럼 이제부터 민트를 빼.”

“그럼 당장 맛이 바뀌어서 항의가 빗발칠 텐데요.”


노심초사하는 류 대표의 얼굴을 보며 김 대표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띠며 말했다.


“치킨이나 먹는 놈들을 뭘 그렇게 챙겨. 그놈들은 개나 돼지 같은 놈들이잖아. 맛이 좀 달라졌다고 해도 브랜드에 한번 들인 놈들은 어디 안 가. 너무 걱정하지 말아. 소송 결과만 잘 나오면 그때 다시 민트를 넣든 하면 되니까.”

“그럴까요?”

“내가 이런 일 한두 번 겪나? 대신 그 유나인가 뭔가 하는 애 광고나 많이 내보내라고. 그러면 그놈들은 어디 안 가고 주구장창 너네 치킨 먹을 거니까.”

“네. 알겠습니다.”


가슴을 쓸어내린 류 대표는 자리에서 일어나 김 대표에게 깍듯하게 인사했다.

그리고 뒤돌아 허둥지둥 대표실을 빠져나갔다.

류 대표의 뒷모습을 보던 김 대표가 차갑게 비웃으며 중얼거렸다.


“정 회장은 왜 저렇게 덜떨어진 놈을 대표로 앉혀놔서···.”


김 대표는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면서 옆에 있던 수화기를 집어 들었다.


“하 실장. 오늘 점심은 스테이크나 먹으러 가지. 저번에 갔던데 거기로 예약해.”


수화기를 내려놓은 김 대표는 류 대표가 오기 전 하던 일을 다시 시작했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의 얼굴은 곧 평온을 되찾았다.


***


영업 비밀 침해에 따른 손해 배상 청구.

사법연수원에서 잠깐 공부하고 판례를 통해 접해 본 외에 실제 사건을 수행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어떤 요건을 갖춰야 하는지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지 알아야 했다.

그건 유리의 담당이었다.


“유리야! 좀 알아봤어?”

“네. 판례를 검토했더니 크게 알려지지 않은 정보여야 하고, 경제성이 있고, 비밀로 관리되어야 하는 요건을 갖춰야 되더라고요.”

“레시피니까 경제성은 있는 거고, 일반인들에게 공개된 레시피가 아니니 비공지성은 인정되겠네. 문제는 비밀로 관리됐냐는 거겠네.”


비밀로 관리된다는 게 어느 정도 관리를 요구하는지 궁금했다.

유리는 기다렸다는 듯 말하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코카콜라 같은 경우 원액을 만드는 공장 자체가 특정되어 있고, 그 공장에서도 원액을 만드는 과정에 핵심 인력만 들어가서 한다고 그래요. 그 정도는 아니어도 상당한 노력을 들여야 영업 비밀로 인정받을 수 있어요.”

“음식 만들 때 그걸 지킬 수가 있나. 옆에서 볼 수도 있는 거고. 특히 같이 일하는 직원이야 매일 보겠지.”

“그러니까 레시피는 영업 비밀로 인정받기가 정말 어려워요.”


레시피 침해로 영업 금지 가처분을 신청했다가 기각 당했다고 투덜대던 연수원 동기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때는 몰랐지만 막상 우리가 이런 소송을 하게 되니 참으로 막막했다.

레시피가 영업 비밀로 관리되지 않는다면 소송 자체를 하는 게 의미가 없을 수도 있다니.

배철호 회장은 민트 레시피를 4명만 안다고 했다.

그럼 일반 직원들이 접근할 수 없는 곳에서 염지 원료가 제작되었을 가능성이 높았다.

나는 곧바로 배가 치킨 공장을 조사하러 간 정 국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 국장님. 조사는 다 마치셨어요?

- 네 변호사님. 방금 조사 다 마치고 막 올라가려던 참이었습니다.

- 어때요? 염지 원료는 잘 관리되고 있던가요?

- 장난 아닙니다.


장난이 아니다?

정 국장의 말을 듣는 순간 왠지 모를 기대감이 부풀어 올랐다.


- 장난 아니라뇨?

- 저는 무슨 군사시설에 온 줄 알았습니다. 빨간 사선 두 줄 쫙 긋고, 관계자 외 출입금지 써놓고 출입 시 수사기관에 고발 뭐 이런 거 써 있고. 저도 들어갈 때 바짝 쫄았다니까요.

- 아하! 그래요!!


나도 모르게 목소리 톤이 높아졌다.

옆에 있던 유리가 어리벙벙한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 네. 무슨 좋은 일 있으세요? 갑자기 목소리가···

- 아닙니다. 조심해서 올라오십쇼.

- 네. 자료 잘 챙겨서 올라가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나는 유리를 보며 큰소리로 외쳤다.


“군사시설이래!!”

“네? 그게 무슨 말이에요? 오빠!”


유리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염지 원료 만드는 곳 말이야. 거기 빨간 줄 두 개 쫙 긋고, 관계자 외 출입 금지 표시되어 있고 관리를 엄청 빡세게 하고 있나 봐.”

“아! 진작 그렇게 말해야지!!”


유리가 어이없다는 듯 피식 웃더니 말을 이었다.


“그럼 염지 원료를 만드는 곳에 핵심 인력만 출입 가능하고, 염지 원료가 중요한 비밀이라는 것을 직원들이 충분히 인식할 수 있었기 때문에 영업 비밀은 인정이 되겠네요. 게다가···”


말끝을 흐린 유리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뭔가 좋은 게 더 있다는 것 같은 기분 좋은 미소였다.


“뭐야? 말해 봐!”

“류경훈 대표가 배가 치킨을 그만둘 때 비밀 유지 각서도 썼더라고요. 오늘 배가 치킨 쪽에서 각서 사본을 보내 줬어요.”

“오호! 그럼 이제 메가 치킨에서 배가 치킨 레시피를 도용했다는 것만 밝혀 내면 되는 거잖아.”

“후훗. 그렇죠.”


유리와 나는 서로를 보며 활짝 웃었다.

그것도 잠시 우리 두 사람은 머금었던 미소를 거둬들였다.

사실 영업 비밀의 인정 여부는 소송을 하기 위한 기초적인 공사에 불과했다.

결국, 영업 비밀로 인정된 레시피를 메가 치킨이 도용했느냐가 가장 큰 관문이었다.


“유리야. 고생했다. 이제 재혁이 소식을 기다려 보자.”

“네. 오빠.”


메가 치킨의 성분 분석에서 민트 성분이 검출되어야만 우리의 여정은 계속될 수 있다.

이제 한 단계 허들을 넘은 우리에게 남겨진 허들은 아직도 많이 남아 있었다.


***


“부르셨습니까? 대표님.”


류경훈 대표의 갑작스런 호출에 당황한 홍보팀장은 잔뜩 긴장한 목소리였다.


“어. 김 팀장. 오유나 있지.”

“오유나라면 저희 CF 모델 말씀입니까?”

“그래. 걔 말이야. 그 CF 좀 더 돌릴 수 없나?”

“지금도 꽤 많이 돌리고 있는데, 더 돌리라고요? 비용이 꽤 많이 나갈 텐데.”


김 팀장은 홍보비 많이 나온다고 으르렁대던 재무팀 상무의 얼굴이 떠올랐다.

류 대표는 김 팀장의 볼멘소리에 버럭 소리를 쳤다.


“사장이 하라면 하는 거지. 뭐가 그렇게 말이 많아!!!”


류 대표의 큰소리에도 김 팀장의 걱정은 오직 재무팀 상무였다.

류 대표는 배가 치킨에서 넘어온 인물인데 비하여 재무팀 상무는 사모펀드에서 직접 파견 온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메가 치킨의 재무와 인사는 오롯이 재무팀 상무가 좌지우지했다.


“네. 알겠습니다. 상무님께 보고해서 처리하겠습니다.”

“야! 상무가 위야? 사장이 위야? 이 자식이 정말 뵈는 게 없나?”

“죄송합니다. 사장님.”


김 팀장은 사과를 하는 둥 마는 둥 고개를 까딱 숙이고 나서 돌아섰다.

김 팀장은 완전 똥 씹은 얼굴이 되어 대표실을 나섰다.

류 대표는 김 팀장의 행동에 화가 솟구쳐 올라 얼굴이 시뻘겋게 변했다.


“아 씨발!! 개나 소나 사람을 무시하고 말야. 더러워서 관두든지 해야지!”


류 대표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주차장으로 향했다.

오유나가 나오는 CF 방영횟수를 늘리라는 조언은 실행했으니 이제 치킨에 들어가는 민트를 뺄 차례였다.

민트를 넣는 작업은 경기도 이천에 있는 공장에서 이뤄졌다.

류 대표는 손수 운전하여 이천으로 향했다.

중간중간 속도위반 카메라가 있었으나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김 대표는 F1 카레이서처럼 차를 몰아 이천 공장에 도착했다.

서울 본사에서 출발한 지 1시간도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공장장 어디 있나?”


류 대표는 공장에 내리자마자 제일 먼저 보이는 직원에게 소리쳤다.


“오따가 반말해! 새끼야!”


어설픈 한국말로 화를 내는 직원은 태국인이었다.

멀리서 이 모습을 보고 있던 한국인 직원이 사색이 되어 뛰어왔다.


“야! 쏨차이! 사장님이야! 사장님!”

“아 그래? 미안미안!”


쏨차이는 류 대표를 향해 안 되는 한국말로 사과했으나 때는 이미 늦었다.


“야! 이 새끼 짤러! 확인할 거야! 공장장 어딨어?”

“네. 공장장님 원료 배합실에 계십니다.”


류 대표는 쏨차이를 한번 노려본 후 원료 배합실로 향했다.

쏨차이는 류 대표의 등 뒤에 깍듯이 인사를 했다.

류 대표가 배합실을 문을 거칠게 열고 들어가자 일을 하고 있던 공장장이 그를 맞았다.


“류 대표. 이 시간에 웬일이야? 연락도 없이.”

“류 대표? 보자보자 하니까 이 양반이 아래위도 없이?”

“왜 그래? 맨날 그렇게 했는데···.”

“황천수 공장장. 황천수씨! 제발 공사 좀 구별합시다!!”


서슬 퍼런 류 대표의 기세에 황 공장장은 뒤로 주춤 물러섰다.


“공장장 오늘부터 후라이드 염지할 때 민트 넣지 마세요!”

“갑자기 그건 왜요? 지금 한참 잘 팔리는데.”

“그건 묻지 말고. 하라면 하라는 대로 좀 해요! 왜 이렇게 말들이 많아? 말들이!!”


다짜고짜 화를 내는 류 대표를 보니 황 공장장이 울컥했다.

배가 치킨에서 같이 근무할 때 보이지도 않던 후배 녀석이 상사가 됐다고 저렇게 꼬라지를 부리니 말이다.

아니꼽고 치사해도 처자식이 있으니 참을 수밖에 도리가 없었다.

눈물이 흐르는 걸 억지로 참아 내며 황 공장장은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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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064. 옴니버스 펀드 (1) +3 23.11.11 681 20 12쪽
63 063. 승자와 패자 +4 23.11.10 699 18 12쪽
62 062. 숨기려는 자, 밝히려는 자 +4 23.11.09 699 19 11쪽
61 061. 불가능이란 없다 (3) +4 23.11.08 706 18 12쪽
60 060. 불가능이란 없다 (2) +4 23.11.07 730 22 11쪽
59 059. 불가능이란 없다 (1) +3 23.11.06 765 22 12쪽
58 058. 치킨대전 (4) +3 23.11.05 791 20 12쪽
57 057. 치킨대전 (3) +4 23.11.04 771 18 13쪽
» 056. 치킨대전 (2) +3 23.11.03 784 19 12쪽
55 055. 치킨대전 (1) +4 23.11.02 843 19 11쪽
54 054. 떡볶이와 오뎅 (3) +5 23.11.01 871 22 12쪽
53 053. 떡볶이와 오뎅 (2) +6 23.10.31 916 25 12쪽
52 052. 떡볶이와 오뎅 (1) +4 23.10.30 953 25 13쪽
51 051. 격랑(激浪)속으로 +5 23.10.29 975 30 12쪽
50 050. 김앤전의 반격 (2) +5 23.10.28 971 25 12쪽
49 049. 김앤전의 반격 (1) +4 23.10.27 982 25 12쪽
48 048. 재혁의 비밀 +5 23.10.26 1,006 26 12쪽
47 047. 신참 변호사 이유리 +4 23.10.25 1,033 2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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