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팅커테일 님의 서재입니다.

사람을 읽는 변호사가 세상을 바꿈

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현대판타지

팅커테일
작품등록일 :
2023.09.06 15:27
최근연재일 :
2023.11.21 12:00
연재수 :
74 회
조회수 :
110,288
추천수 :
1,934
글자수 :
393,542

작성
23.11.05 12:00
조회
791
추천
20
글자
12쪽

058. 치킨대전 (4)

DUMMY

김앤전 대표실.

김형모 대표가 쇼파에 앉아 소장을 꼼꼼하게 읽고 있었다.

맡은 편에 앉은 메가 치킨 류경훈 대표는 숙제 검사를 받는 학생처럼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소장을 다 읽은 김 대표가 테이블에 소장을 내려놓을 때도 류경훈은 그의 눈치만 보고 있었다.


“예상대로 소장이 왔네요.”

김 대표가 침묵을 깨고 입을 열었다.

하지만, 애가 닳아 있던 류경훈의 궁금증을 풀어 줄 만한 말은 전혀 아니었다.


“대표님. 소송에서 저희가 불리할까요?”

“소장에 첨부된 성분 분석표를 보니까 그럴 만도 하네요.”

“성분 분석표요?”

“네. 거기 보니까 배가 치킨이나 메가 치킨 모두 민트 성분이 검출됐잖아요. 그럼 배가 치킨 레시피를 메가 치킨이 따라 했다고 볼 수 있는 거죠.”


김 대표의 말에 류경훈이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

류경훈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김 대표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띠며 말했다.


“류 대표 얼굴이 왜 그래요? 메가 치킨 망했습니까?”

“방금 대표님이 말씀했잖습니까? 메가 치킨이 배가 치킨 레시피를 따라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그럼 우리 제품 판매 금지 당하고 손해 배상도······.”

“후훗!!”


거의 사색이 되어 울먹거리는 류경훈을 보며 김 대표가 다시 한번 알 수 없는 코웃음을 날렸다.

류경훈은 김 대표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에 볼멘소리를 냈다.


“대표님. 왜 자꾸 그렇게 웃으세요? 저는 죽을 것 같은데.”

“아이고. 죄송합니다. 바로 말씀 드리려고 했는데, 대표님이 너무 심각하셔서. 하하!!”

“무슨 말씀인지 빨리 좀 부탁드립니다!”


속이 부글부글 끓는 류경훈은 거의 폭발 직전의 감정을 누르며 말했다.

다른 사람 같았으면 벌써 폭발하고도 남았을 테지만 김앤전 김형모 대표 앞이라 참고 또 참았다.

김 대표는 류경훈의 그런 마음을 알면서도 일부러 여유를 부렸다.


“말씀드리겠습니다. 성분 분석표를 보면 분명 거의 같은 성분이 검출되었는데, 분석은 단 한 번만 한 거죠. 다시 말해 성분 분석이 잘못되었거나 그 당시 치킨에 들어 있던 민트 성분이 일시적으로 들어간 거라 주장할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아!! 그렇게도 생각할 수 있는 거군요.”


김 대표의 말에 류경훈의 표정이 단번에 풀어졌다.


“제가 저번에 말씀드린 대로 염지할 때 민트는 빼고 있죠?”

“네.”

“그럼 우리도 성분 분석 의뢰해서 민트 성분이 없다는 증거를 제출하면 될 겁니다.”

“하하!! 역시 대표님의 명성이 괜히 있는 게 아니군요.”


류경훈은 아주 흡족한 듯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하지만, 김 대표는 표정 변화 하나 없이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래서 민트초코를 만든 거군요.”

“그게 무슨 말씀인지?”

“치킨에 민트를 넣기 위해 민트초코를 만든 거 아니에요? 아무 이유 없이 민트를 사오면 의심받을 테니까.”

“아이고. 귀신은 속여도 대표님은 못 속이겠네요! 하하!!”


류경훈이 손사래를 치며 껄껄 웃어댔다.

그제야 김 대표는 류경훈을 따라 웃었다.

들릴락말락하던 김 대표의 웃음소리가 조금씩 조금씩 커지기 시작했다.

마침내 그의 웃음소리는 류경훈을 뛰어넘어 대표실 전체를 뒤덮었다.

류경훈은 갑자기 미친 사람처럼 웃어대는 김 대표를 보며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였다.


***


치킨대전.

배가 치킨이 메가 치킨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사건을 두고 한 일간지에서 붙인 이름이다.

업계 1, 2위가 자존심을 걸고 맞붙은 소송이니 그런 이름을 붙일 만했다.

만약 메가 치킨이 배가 치킨의 레시피를 무단 도용한 것이 밝혀진다면 업계에서 살아남기 어려울 것이고, 반대의 경우라면 배가 치킨이 상당한 어려움을 겪게 된다.

이렇게 큰 사건임에도 메가 치킨 쪽은 이상하리만치 조용했다.

보통 이런 소송을 당하면 억울함을 호소하며 여론전을 펼치기 마련인데도 말이다.

메가 치킨이 그렇게 무대응으로 일관했던 이유는 따로 있었다.


“형! 메가 치킨 쪽에서 답변서를 보내왔네.”


나는 재혁이 내민 답변서를 훑어봤다.

답변서를 읽는 와중에 눈에 확 띄는 부분이 있었다.


“이건 뭐야? 자기들은 염지할 때 민트를 넣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거야?”

“응. 성분 분석서도 증거로 첨부했어.”


답변서 뒤쪽을 보니 메가 치킨에서 첨부한 성분 분석서가 있었다.

그들의 주장처럼 성분 분석서에 민트 성분은 검출되지 않았다고 되어 있었다.


“이거 우리가 성분 분석을 의뢰했던 기관에서 만든 거잖아?”

“맞아. 메가 치킨에서 일부러 우리가 의뢰했던 기관에다 한 것 같아.”

“재혁아. 저번에 성분 분석 더 의뢰하라는 건 어떻게 됐어?”


재혁은 근심이 가득한 표정으로 성분 분석서 몇 장을 내밀었다.

나는 재혁이 내민 성분 분석서를 하나씩 살펴봤다.

총 일곱 번의 성분 분석 중 민트 성분이 검출된 건 두 번뿐.

나머지 다섯 번의 성분 분석에서 민트 성분은 검출되지 않았다.

법원에 이 자료를 제출해 봐야 메가 치킨 쪽만 유리해질 거라 제출하지 않는 편이 나았다.


“하아··· 이거 배가 치킨 쪽에 첩자가 있는가 보네.”

“그런 것 같아. 일곱 번 성분 분석 중에 마지막을 제외하곤 메가 치킨에 소장이 가기도 전이거든. 아무래도 우리가 제기할 소송을 이미 알고 있었던 것 같아. 이제 어쩌지?”


재혁은 막막하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레시피를 도용했다는 것은 이 소송의 처음이자 끝이다.

만약 그게 입증되지 않는다면 소송에서 지는 것은 물론이고, 업계 1위인 배가 치킨이 밀려나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

부담이 되는 건 나도 재혁과 마찬가지였다.


“방법을 찾아봐야지. 그래도 두 번의 성분 분석에서 민트가 검출되었다는 것은 우리에게 유리한 자료니까··· 아!! 맞다!!”


불현 듯 떠오른 생각에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침울한 얼굴로 앉아 있던 재혁이 깜짝 놀라 몸을 들썩였다.


“뭐야? 깜짝 놀랐잖아.”

“그거야. 그거.”

“그게 뭔데? 갑자기 왜 그래 형?”

“메가 치킨이 레시피를 바꾼 거라면 말이야. 치킨 맛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그럼 그거 자주 먹던 사람들이 맛이 달라진 걸 알았겠지!”


메가 치킨은 실수로 한두 번 민트가 들어갔다고 주장하겠지만, 메가 치킨을 꾸준히 먹어온 사람들이라면 레시피가 바뀐 걸 분명 알아차릴 것이다.

내 말을 들은 재혁은 감탄하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오오!! 좋은 생각이야. 메가 치킨 홈페이지나 커뮤니티 한 번 조사해 볼게.”

“그래. 그래. 잘 찾아 보면 분명 뭔가가 나올 거야.”


조금 전까지 오만상을 찌푸리고 있던 녀석은 콧소리를 내며 서류를 챙겼다.

신이 나서 나가는 재혁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완전한 증거는 분명 아니야. 사람들의 입맛은 다를 수 있는 거니까. 보다 확실한 증거가 필요해. 확실한 증거!’


치킨대전의 첫 번째 변론 기일은 바로 내일이었다.


***


메가 치킨 본사가 잠실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에 이 사건 재판은 서울동부지방법원의 관할이었다.

첫 변론 기일임에도 치킨대전의 화제성 때문인지 기자가 여러 명 몰려왔다.


“변호사님. 이 사건 승소를 자신하십니까?”

“당연히 승소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메가 치킨 류경훈 대표는 배가 치킨에서 오랫동안 근무했고, 레시피를 알고 있었습니다. 때문에 저희는 그가 레시피를 도용한 것이라 확신하고 있습니다.”


재판에 들어가기 전 변호사는 일반적으로 사건에 대해서 조심스럽게 말을 한다.

하지만, 이번 사건은 다르다.

최대한 화제성을 살려 많은 사람들이 메가 치킨의 맛에 대해서 평가하도록 만들어야 할 필요가 있었다.


“메가 치킨 쪽에서는 레시피를 도용한 사실이 없다고 하는데요?”

“그건 재판 과정에서 밝혀질 겁니다. 메가 치킨의 맛이 달라졌다고 하는 사람들이 꽤 많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건 무슨 말씀이시죠?”


질문을 한 기자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다.

하지만, 나는 재판에 들어가야 하는 것처럼 대답을 하지 않고 자리를 피했다.

궁금증을 유발해서 직접 찾아보도록 유도하는 전략.

전략이 먹힐지 아닐지 알 수 없어도 최소한 궁금증은 주었으니 어느 정도 효과는 보장된 셈이었다.

법정에 들어서니 상대방 변호사가 이미 자리에 앉아 있었다.

우리가 원고석에 앉자 상대방 변호사는 곁눈질만 할 뿐 돌아보지는 않았다.


“원고 측 출석했으니 재판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재판장은 피고석에 앉아 있는 김앤전 변호사의 시선을 일부러 피했다.

그리고, 그가 시선을 피한 이유는 그의 마음을 통해 고스란히 나에게 전달됐다.


< 정섭이하고 나하고 친한 건 어떻게 알았지? 김앤전 정말 집요하네. >


재판에 오기 전 나는 재판장인 진영복 부장판사와 김앤전 이정섭 변호사의 관계를 조사했었다.

겉으로만 봐서는 두 사람은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사람이었다.

출신 대학도, 연수원 기수도, 같이 근무한 적도 전혀 없었다.

같은 점이라곤 광주광역시가 고향이라는 것 뿐 출신 고등학교조차 달랐다.

그런데, 재판장의 마음에서 들리는 저 소리는 뭔가?


‘친한 사이라니 이건 또 뭐지? 어떻게 조사한 거지?’


사실 전관이라고 단순히 검사 출신이거나 판사 출신이라고 해서 잘 봐주는 건 없었다.

그나마 같은 법원이나 같은 재판부에 근무했다면 재판상 편의는 봐주었다.

하지만, 정말 친한 사이라면 그건 상대방으로서 상당히 곤란한 상황이었다.


“원고 측 청구 이유 간단하게 요약해서 말씀해 보십시오.”

“네. 이 사건은 원고의 주력 상품인 프레시 후라이드 치킨의 레시피를 피고가 도용하였기 때문에 피고의 제품 판매 금지 및 손해 배상을 구하는 것입니다.”


이유리가 짧고 명료하게 청구 이유를 밝혔다.


“이에 대한 피고의 답변 취지는 뭡니까?”


재판장은 피고 대리인 쪽을 쳐다보지 않고 말했다.

대수롭지 않게 볼 수도 있었지만 내막을 알고 있는 나로서는 그런 행동도 신경이 쓰였다.

저 정도로 의식하는 것이면 굉장히 친한 사이인 것 같았다.


“원고의 주장은 터무니없는 억측입니다. 원고가 제출한 성분 분석서에 있는 민트 성분은 피고 제품 중 하나인 민트초코에 있었던 성분이 우연히 검출된 것에 불과합니다. 저희가 원고와 동일한 기관에서 받은 성분 분석서에는 민트가 검출되지 않았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피고의 항변이 일리 있어 보이는데, 원고는 추가로 제출할 증거가 있으신가요?”


담담하게 말했지만 재판장은 피고 측 주장에 만족하는 것 같았다.

사정을 모르는 이유리가 재판장의 말을 받았다.


“지금 인터넷 커뮤니티에 원고의 레시피가 달라졌다는 게시물들이 올라오고 있습니다. 그걸 정리······.”

“글쎄요. 그건 개개인의 주관적인 생각일 뿐이라 객관적인 증거로 인정하기가 어려울 것 같은데요. 뭐 좋습니다. 변론기일 한 번 더 드릴 테니까 정리해서 제출해 보세요.”


재판장은 변론을 마치면서 피고 측 이정섭 변호사를 흘끔 쳐다봤다.

두 사람이 시선을 맞춘 것은 잠깐이었지만 두 사람의 유대관계가 충분히 느껴졌다.

서로를 신뢰하는 교감을 보며 나는 잠시 눈앞이 아득해졌다.


“오빠. 재판장이 우리 편을 들어 주는 것 같은데. 히힛.”


아무것도 모르는 이유리는 키득거리고 있었다.

‘여자의 촉’이라는 말은 적어도 이유리에게 해당하는 말은 아닌 것 같았다.


“그래. 나도 그렇게 생각해.”


힘없이 터덜터덜 걸어 법정을 나서는데, 강호 팀장이 내 앞에 나타났다.

강 팀장이 자신만만한 얼굴로 내 손을 잡으며 말했다.


“변호사님. 저랑 같이 좀 가셔야겠습니다.”

“어디를요? 나중에 가면 안 될까요?”

“어허! 지금 안 가시면 후회하실 텐데요?”

“팀장님! 지금 그럴 기분이 아닙니다.”


내가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자 강 팀장이 살짝 삐졌는지 입을 샐쭉거렸다.


“관두십시오. 내가 어렵게 메가 치킨 공장장 섭외했는데···.”

“네? 메가 치킨 공장장이요?”

“그럴 기분이 아니라면서요?”


나는 강 팀장의 소매를 끌어당기며 말했다.


“갑자기 기분 좋아졌어요. 어서 가시죠!!!”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3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사람을 읽는 변호사가 세상을 바꿈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연재 중단 공지합니다 +5 23.11.21 282 0 -
공지 매일 12시(정오)에 연재합니다. 23.09.11 2,382 0 -
74 074. 이슈는 이슈로 덮인다. +3 23.11.21 409 16 12쪽
73 073. 범인은 내 손으로 (2) +3 23.11.20 449 18 12쪽
72 072. 범인은 내 손으로 (1) +4 23.11.19 488 20 12쪽
71 071. 결정적 단서 +3 23.11.18 521 18 12쪽
70 070. 동상이몽 +3 23.11.17 519 20 12쪽
69 069. 조폭은 조폭 (2) +2 23.11.16 560 20 12쪽
68 068. 조폭은 조폭 (1) +3 23.11.15 565 19 12쪽
67 067. 옴니버스 펀드 (4) +3 23.11.14 581 19 12쪽
66 066. 옴니버스 펀드 (3) +4 23.11.13 562 14 12쪽
65 065. 옴니버스 펀드 (2) +3 23.11.12 590 18 12쪽
64 064. 옴니버스 펀드 (1) +3 23.11.11 681 20 12쪽
63 063. 승자와 패자 +4 23.11.10 699 18 12쪽
62 062. 숨기려는 자, 밝히려는 자 +4 23.11.09 699 19 11쪽
61 061. 불가능이란 없다 (3) +4 23.11.08 706 18 12쪽
60 060. 불가능이란 없다 (2) +4 23.11.07 730 22 11쪽
59 059. 불가능이란 없다 (1) +3 23.11.06 765 22 12쪽
» 058. 치킨대전 (4) +3 23.11.05 791 20 12쪽
57 057. 치킨대전 (3) +4 23.11.04 771 18 13쪽
56 056. 치킨대전 (2) +3 23.11.03 784 19 12쪽
55 055. 치킨대전 (1) +4 23.11.02 843 19 11쪽
54 054. 떡볶이와 오뎅 (3) +5 23.11.01 871 22 12쪽
53 053. 떡볶이와 오뎅 (2) +6 23.10.31 916 25 12쪽
52 052. 떡볶이와 오뎅 (1) +4 23.10.30 953 25 13쪽
51 051. 격랑(激浪)속으로 +5 23.10.29 975 30 12쪽
50 050. 김앤전의 반격 (2) +5 23.10.28 971 25 12쪽
49 049. 김앤전의 반격 (1) +4 23.10.27 982 25 12쪽
48 048. 재혁의 비밀 +5 23.10.26 1,006 26 12쪽
47 047. 신참 변호사 이유리 +4 23.10.25 1,033 24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